우울증을 포함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醫者인 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우울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지금도 한 해에 두세 번 가량은 순간적인 깊은 기분부전에 떨어지기도 하고, '아침지옥'(우울증 환자가 아침 시간대에 가장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을 묘사한 용어)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우울증을 완치하지도 못한 醫者가 어찌 남을 고친다고 하는지 의아해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고치는 게 이치입니다. 내가 아파야 남 아픈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깊은 기분부전에 떨어져 허덕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환우 한 분이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였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쉬비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이탈리아계 유태인입니다. 그가 그 지옥의 수용소 생활을 기록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 인간인가>입니다. 저는 그 책을 무심코 받아들고 무심코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책을 닫고 말았습니다. 지금 자신의 마음에 내려앉은 어둠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죽음이 30cm 이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어찌 감당해내겠습니까. 스무 번도 넘게 여닫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렇게 자맥질하던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담담함이 영혼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홀린듯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 책으로 말미암아 깊은 기분부전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은 물론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팬이 되었음도 물론입니다.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을 최근 다시 겪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울감에 온 마음이 적셔져서 척척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인도 카슈미르에 사는 여덟살 꼬마 가디아의 사연과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폐유를 모아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이 어린아이의 참담한 삶을 목도하는 찰나, 저는 도저한 부끄러움에 휘감기고 말았습니다. 몸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는가 하면 정신은 따귀를 맞은듯 얼얼해졌습니다. 폐유로 칠갑한 가디아의 몸, 특히 그 처연한 손이라니! 제 자신의 고통이 염치없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격한 순간이 온 영혼을 뒤흔들고 지나갔습니다. 이내 홀가분!
그렇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곧 염치를 일깨우면 크낙한 치유의 힘이 나옵니다. 기름에 절은 가디아의 그 작은 손이 뽀송뽀송한 제 큰 손을 가뭇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이 날카로운 치유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유의 경험을 이렇게만 이해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스스로 인간다움을 향해 열린 마음을 회복하는 것 또한 치유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 수없이 겪은 바이지만 순간순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못 했을 따름입니다. 향 맑은 생명감각을 지니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면 염치가 빚어내는 치유의 기적은 언제라도 찾아올 것입니다.
폐유를 스폰지로 빨아들여 모으는 가디아의 모습입니다.
폐유 범벅이 된 가디아의 처연한 고사리 손!
첫댓글 선생님 안부가 걱정이 됐더랬습니다.전화를 드려보라고 해야하나..생각도 했었지요.
이렇게 마음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