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진(21)이 제주 출신 최초의 남자 프로기사가 됐다.
그동안 제주도 출신 여자기사 고주연 2단(2006년 입단)과 오정아 2단(2011년 입단)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남자 프로기사는 없었기에 제주도로선 이곳 출신 남자 프로기사의 출현을 고대해 왔다.
2월2일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치른 제135회 일반입단대회 본선9회전에서 홍무진은 김치우(21)를 꺾고 입단해 제주바둑팬의 염원을 풀었다. 2014년 133회 일반입단대회(재대국)에서 이번 대회 본선 64강 시드를 받았고, 파죽의 본선 9연승으로 수졸(守拙‧초단의 별칭)에 올랐다.
오정아 "무진아, 폭삭 속았쩌"
1994년생으로 제주가 고향인 홍무진은 5살 때 부산에서 바둑에 입문했고, 제주 강순찬 바둑교실과 제주 도남바둑교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뒤 장수영바둑도장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의 꿈을 키웠다. 2006년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기원본원 연구생이 된 후 2009년부터 입단대회 관문을 꾸준히 두드린 끝에 입단의 기쁨을 누렸다.
◀ 같은 제주도 출신의 프로기사 오정아는 한살 아래의 홍무진에게 "무진아, 폭삭 속았쩌. 축하햄쩌 (무진아, 정말 수고했어. 축하해)"라고 했다. 서귀포 토박이 오정아의 걸쭉한 제주도 사투리 버전이다.
오정아는 "제주도는 남자 프로지망생이 귀하다. 충분한 실력을 갖춘 홍무진이 하루빨리 입단하기를 제주 바둑계는 한마음이 돼 바랐다."고 말했다."
홍무진의 입단으로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모두 298명(남자 245명, 여자 53명)으로 늘었다.
2015년 두 번째로 진행된 제135회 일반입단대회에는 총 182명(본선시드 37명, 예선 145명)이 출전했다. 예선 및 본선으로 진행, 본선은 64강 스위스리그 11라운드 대국으로 진행된다. 총 5명이 입단하며 9승 입단, 8승 재대국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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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무진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걸출한 실력을 발휘했다. 사진은 2014년 11월 제주도 서귀포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 바둑경기 선서 장면. 제주 대표 홍무진(오른쪽)이 권정원과 손을 번쩍 들고 선서문을 낭독하고 있다.
홍무진(洪茂鎭) 초단
- 생년월일 : 1994년 5월 19일(제주)
- 홍희경(55)․전은경(59) 씨의 2남 중 차남
- 지도사범 : 박병규 9단
- 출신도장 : 장수영바둑도장
- 기풍 : 실리형
- 존경하는 프로기사 : 박병규 9단
- 입상경력 : 2014년 제9회 문경새재배 전국아마바둑대회 최강부 우승
2014년 제32회 덕영배 아마대항전 우승
2014년 제48회 전국아마국수전 준우승
2013년 전국체전 일반부 동메달
- 소감은?
“그동안 입단결정국에서 3번 떨어지고 동률재대국에서 2번을 떨어지면서 자신감이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이번 입단대회엔 놀러간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 편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랬는데 술술 풀렸다. 예전엔 잡념을 없애겠다고 신경 쓰다 더 긴장했던 것 같다.
입단하면 어떤 기분일까 늘 상상했는데 입단하고 나니 담담하다. 주위에서 감당 못할 정도로 축하를 해주시니 조금씩 실감난다.”
- 입문은 언제?
“1999년 5살 때다. 아버지께서 잠시 부산에 근무하시던 시절 집 근처 바둑교실에 날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는 실력이 그리 세지는 않지만 바둑을 좋아하신다. 바둑교실 원장님은 아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면서 받지 않으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한 달만 가르쳐봐달라고 하셨고, 그렇게 다니게 됐다. 한 달 뒤엔 외려 원장님이 아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보자고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그러나 몇 달 뒤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집을 옮기게 됐다.
제주도에는 통틀어 바둑교실이 10개 있을까 말까 한다. 그러나 사범님들의 열정은 그 어떤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제주도 강자인 강순찬 사범님이 운영하는 바둑교실과 도남바둑교실(원장-김영우)을 다녔고, 그렇게 1년 반을 공부하다 2001년 7월, 7살의 나이에 서울의 장수영바둑도장에 와 프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6학년 땐 대한생명배에서 우승했다. 입단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입단대회에선 끊임없이 고배를 마셨다. 나보다 어리고 순위로는 저 밑에서 보이지도 않던 애들이 차례차례 입단했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방황했다.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녀 본 것 같다. 이젠 마음이 편안하다.”
- 입단 포인트를 90점이나 쌓아놓았기에(100점이면 입단) 포인트 입단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 같았다.
“포인트가 넉넉해지자 필요없는 긴장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됐다. 남들은 입단대회에서 한 번 떨어지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포인트가 많으니까 기회가 더 있었던 것이다.”
- 제주 바둑계는 제주 출신의 남자프로기사가 탄생하길 간절히 바랐다. 드디어 나왔다.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신 제주도 바둑계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한다. 고만수 제주특별자치도바둑협회 회장님께선 제주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면서 무척 기뻐하셨다.”
- 기풍은?
“도장 형들은 나보고 ‘최고로 잘 된다면 박문요 같은 기사가 되겠구나’라고 말한다. 침착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스타일이란 거다. 별 특색이 없단 얘기이기도 하다. 한때 이런 점이 고민되어서 박병규 사범님께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박 사범님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무척 절망했었다. ‘딱히 잘하는 분야가 없다’란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웃음).”
- 좋아하는 (또는 존경하는) 기사는?
“원성진 9단이다. 대기만성을 대표한다. 입단대회가 가까워 올 때면 원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구리 9단과 둔 결승전 기보를 보고 또 봤다. 한데, 이세돌 9단은 ‘프로기사의 전성기가 25세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난 벌써 21살이니 어쩌면 좋나? 대기만성이란 말을 힘을 더 실어볼 수밖에… ^^”
- 여자친구 있나?
“바둑밖에 모르는지라 (여자친구가) 생길 환경이 못 된다. 프로기사가 되기 전까지 아마추어들은 대개 그럴 것이다.”
- 목표는?
“입단 전엔 별의별 계획이 다 있었는데, 지금은 딱 하나다. 빨리 타이틀을 따는 것이다. 우선 삼성화재배 우승을 노린다. 아까 말했던 원성진 9단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마추어 시절 여러 통합예선 중 가장 많이 출전했던 인연도 있다.”
-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잠을 많이 자고 싶다. 연구생을 나와도 입단 준비하는 이들은 평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공부한다. 프로기사는 좀 더 자유롭다. 도장 기숙사 생활은 당분간 더 할 생각이다.”
[자료협조ㅣ한국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