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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심리학의 역사
1. 발달심리학의 시작 : 근대적 사고의 시작과 발달심리학의 출현
현대 우리사회와 서구사회는 아동기를 인간의 일생에서 하나의 분리되고 독특한 시기라고 본다. 이시기 동안에 어린이들은 사랑 받고 양육되고 보호되어야하며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책임이나 의무들을 지닐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 보호법은 어린이가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규제하고, 또 학대받는 것을 방지한다. 공공교육의 원칙은 어린이를 교육하고 이들의 양육을 지원하는데 사회자원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도록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동기를 항상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온 것은 아니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현재 아동기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는 현대사회에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인간본성과 사회질서를 믿는 우리의 일반적인 신념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린이를 양육, 취급하는 것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관심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1)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어린이에 대한 관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어린이를 엄격히 구분된 권리와 책임을 지닌 미래의 시민과 가족 집단의 일원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고대 도시의 발굴된 유적에서 어린이의 묘지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중류와 상류계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어린이를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세에 와서 형성된 관점은 일상 생활을 더욱 어른 중심으로 만들었으며, 어린이의 지위(또한 여자의 지위)는 상실되게 만들었다.
중세 교회는 아담(Adam)의 타락에 의해 인간은 원죄를 타고났으며, 이 이유 때문에 어린이는 원죄의 흔적을 가지고 태어난 선천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어린이를 양육하는 기본 목적은 원죄가 어린이로부터 씻겨져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원죄와 함께 어린이 속에 있는 사탄의 의지를 꺾기 위해 아이의 요구는 들어주지 말아야하며, 힘든 일도 시키고 심지어는 심한 벌도 가하였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보다는 죄에서 구제된 아이가 더 중요하였으며, 아이가 기쁘게 뛰어다니고 노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중세기와 그 이후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구별은 불명확하였다. 또한 언제 아동기가 끝나고 언제 성인기가 시작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중세이후, 유럽에서는 어린이를 어른과 같은 완전한 책임을 기대할 수 없는 나약한 것으로 간주하는 생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중세말기의 종교운동에서는 어린이의 순진함을 강조하면서 이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성직자들은 어린이의 영혼들이 구제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하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들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어린이에 대한 태도에서의 눈에 띌만한 변화는 16세기 동안에 일어났다. 1545년 영국의 내과의사이며 법률가인 토마스 페이어(Thosmas Phayer)는 소아과에 대한 최초의 책을 발간하였다. 이 무렵, 최초의 문법학교(grammar-school)가 생겨 상류계급의 소년이 경제와 정치에 대한 지식의 획득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중세 시기 이후의 어린이들은 성인의 세계에 일찍 들어서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또한 어른과는 다르며 그들 나름대로의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인정받았었다.
동양사회에서도 어린이의 발달과정이나 심리특성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전통에 의해 어른과 아이의 구별이 있었으나 이것은 혼인이나 성인식 등의 사회적 의식에 의해 결정되었다. 공자의 사상에서 인간의 사회적 위치는 20대 이후부터 형성되는 것이었으며 어린아이란 어리석고 아직 완전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동양에서도 중세이전의 서양과 마찬가지로 아동기를 인생의 하나의 분리된 독특한 시기로 보는 관점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2) 계몽시대와 그 이후 시기의 어린이에 대한 관점
중세 이후에 나타난 어린이에 대한 상류 계급에서의 태도의 변화는 사회 전반적인 어린이의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90년도에 살았더라면, 학교에 들어갈 나이의 어린이들이 1600년에도 시대에서는 완전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였으며 작업장에서는 집에서보다 더 심하게 취급받았다. 어린이에 대한 무지와 학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었다. 모유를 먹이는 것은 야만적인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하인들을 부릴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유모로 하여금 신생아를 양육하게 하였다.
발달이 기는 행동에서부터 걷기 시작하는 점진적인 신체의 성장과 충동적인 행동에서 점진적인 자기통제(self-control)를 할 수 있게되는 인간정신의 성장이라는 개념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들은 당연히 어른들의 행동을 어린이에게서 기대하였으며 어린이들은 마치 어른의 행동을 훈련받아야 하는 개나 말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어린이를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16세기와 17세기의 생각은 아동기가 인간의 일생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시기라는 근대적 사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서구사회에서는 어린이의 옷을 어른과 다르게 한다던 지하는 변화를 보임으로서 어린이의 세계를 어른의 세계와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중류와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과 생각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나머지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었다.
2. 발달심리학의 출현: 발달심리학이 과학으로 형성되기 이전의 연구
발달심리학 특히 어린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시작은 20세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18세기경 어린이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던 철학자들의 글은 아동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7세기말과 18세기, 어린이의 특성과 교육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주된 철학자로 우리는 존 로크와 쟝 쟈크 루소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생각은 서로 비교가 될 정도로 달랐지만, 이들은 어린이를 정적인 존재로 보는 것에 반대하고 변화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존재로 볼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입장들은 어린이가 단지 어른의 권위에 좌우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가정에 반박하였으며 어린이는 이성과 존경으로 대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발달시켰다.
1) 철학적 기초 :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쟝 쟈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초기 경험이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물리학자며 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에 의해 강하게 제기되어졌다. 1660년에 발표된 그의 유명한 논문인 [인간 이해에 관한 수필(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로크는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획득하는가에 관한 자신의 믿음을 제시하였다. 로크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날 때 어떠한 정보도 지니지 않고 있으며, 신생아의 마음은 '타불로 라사(tabula rasa)', 즉 경험이 새로이 새겨지는 '깨끗한 백지'와 같다는 것이다.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은 환경적 경험이 지식을 형성한다는 생각이며, 현대 심리학에서의 행동주의(behaviorism)라고 불리는 학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로크은 보상과 벌, 모방, 그리고 자극들 사이의 연합(associations)들이 정신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로 보았다. 그의 두번째 저작인 [교육에 관한 몇가지 생각 (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1693)]에서 로크는 어린이의 훈련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더욱 심도 있게 제시하였다.
두번째로 중요한 계몽시대의 철학자는 어린이를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으로 표현하였던 프랑스 사상가인 쟝 쟈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였다. 루소에 따르면 어린이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들은 반드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그들의 자연적인 충동과 경향성을 사회적 질서에 맞추기 위해 어른이 권위로 부드럽게 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자신의 저작인 [에밀(Emile, 1762)]에서 루소는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스스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라는 아이 양육의 일반적인 믿음을 제시하였다.
루소는 호기심 있고 활달한 아이의 특성과 어른의 행동을 하기를 요구하는 그 사회환경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강조하였다. 루소는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중요한 측면은 개인적인 성향과 더 큰 사회로부터의 요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른은 아이의 자연적인 발달과 기운을 억압하고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발달과정에서의 어린이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현대의 사고는 이러한 루소의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이의 자연적인 호기심과 발견과정을 기초하여 아이를 교육시킬 것을 주장하였던 루소의 생각은 인지발달을 기술하였던 20세기의 유명한 이론가인 쟝 삐아제(Jean Piaget)의 글에서도 반영되었다.
2) 아동 전기 작가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 빌헬름 프레이어(Wilhelm Preyer, 1841-1897)
1800년의 중엽과 말에 자연과학 특히 새롭게 나타난 생물학에서는 어린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원과 생리적 과정의 역동성에 관한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가능성에서 아동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려 하였다. 이런 연구의 예들을 찰스 다윈과 빌헬름 프레이어, 또는 여러 아동 전기작가들의 생각과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개인의 발달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을 연구하였다기보다는, 자신의 진화론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하기 위해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연구하였다. 즉 다윈은 인간의 행동과 다른 종의 행동 사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진화적으로 동일한 조상을 가진 결과라고 가정하고, 인류의 기원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려는 목적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의 생후 삼년 간의 행동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다윈은 자율적인 근육운동과 언어, 그리고 두려움이나 화 또는 애정의 표현과 같은 정서반응의 출현뿐 아니라 빨기와 같은 초기 반사행동을 기록하였다. 비슷한 점이 나타날 때면 어린아이의 행동을 다른 동물의 행동과 연결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또 다른 생물학자인 빌헬름 프레이어(Wilhelm Preyer)는 태내발달의 생리과정에 관심을 가졌으나, 곧 자신의 연구를 생후행동에 관한 연구로 확장하였다. 프레이어는 1882년에 출간한 [아이의 마음 (The Mind of the Child)]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아들인 '아젤(Axel)'의 생후 삼년 간의 발달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특히 그는 자아(self) 개념의 출현에 관해 언급하면서 아들의 감각발달, 운동발달, 언어 그리고 기억에 관해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비록 프레이어는 다윈을 포함한 이전의 아동 전기학자들처럼 관찰방식에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어린이에 대한 관찰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관찰자였다. 프레이어는 또한 현재까지 계속되는 논쟁중의 하나인 발달에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다. 프레이어는 어린이의 연구에 과학적 기법의 적용을 주장함으로써 나중에 미국에서 일어난 '아동연구운동(child study movement)'의 시작을 가져오게 하였다.
3. 과학으로서의 발달심리학의 시작
발달심리학을 특징짓는 구체적인 주제와 관련 사실들을 소개하기 앞서 마지막으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왜 발달심리학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가?"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19세기말에 나타난 새로운 지식의 출현과 그 당시 사회적 영향이라는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중엽 이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다르며, 그 자체로서 연구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산업화된 서구사회는 처음으로 아동기를 인생의 독특하고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어린이에 대해 이전에는 없었던 법적-사회적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아이의 각 연령별 차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으려는 '아동연구운동(child-study movement)'이라는 새로운 과학연구의 움직임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1) 아동연구운동 (Child-Study Movement)
근대에 들어와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아동기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면서 어린이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많은 사회 프로그램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어린이 보호단체, 학대방지 단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범죄 담당 법원, 고아원, 학교 그리고 수많은 어린이 건강 프로그램 등으로 나타났다.
1880년에 어린이에 관해 알려진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로 들릴지라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 '국립교육연합체(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의 아동 연구 부서의 책임자였던 사라 윌쯔(Sara Wiltse)에 따르면 실제로 1880년 이전에 미국에서는 아이의 생활에 관한 아무런 과학적 관찰이 없었다고 말한다.
각 연령에서의 어린이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아동연구운동의 참가자들은 '규범적(normative)'이라고 기술되는 일련의 연구들을 시작하였다. 규범적인 연구들은 단순히 말해 발달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동연구운동의 참가자들은 아주 많은 수의 어린이들을 신체적 성장에서부터 상상하는 능력까지 모든 것을 측정함으로써 이런 부족함을 메우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들은 방법상의 문제로 일반적으로 믿을만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했던 완전한 실패였다. 그러나, 아동의 발달에 대한 연구는 시작된 것이었다.
지 스탠리 홀(G. Stanley Hall)이 '어린이 마음의 내용(contents of children's minds)'을 찾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거창한 연구(1883)는 아동연구운동의 전형적인 예이다. 홀은 이 연구에서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의 5세와 6세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시작하였다. 이것을 측정하기위해 교사들은 어린이가 자연현상-계절, 무지개, 별 등-, 동물-벌, 달팽이, 로빈 등-, 신체 부위-갈비, 허파, 팔꿈치 등-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문제들-가죽으로 만든 물건들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측정하는 아주 긴 설문지를 사용하였다. 이 연구에서 그는 어린이들은 실제로 생각하였던 것보다 덜 알고 있으며 아주 잘못된 개념들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다른 연구에서 존 한콕(John Hancock)은 어린이들의 운동능력을 연구하여 아주 정교한 근육운동을 요구하는 그 당시 유치원에서의 교육과정은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린아이들의 활동들은 큰 근육의 움직임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한콕은 보고하였다. 다른 연구들의 특성과 목적도 그 제목에서 판단해 볼 수 있다. '학령기 어린이의 기억성장(The Growth of Memory in School Children; Boldton, 1892)', '아동기의 언어(The Language of Childhood; Tracy, 1893)', '어린이의 청각(The Hearing of Children; Chrisman, 1893)', 그리고 '어린이의 상상에서 나타나는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s in the Imagination of Children; Burnham, 1893)' 등이 이 시기에 나타난 연구들이다.
19세기말에 나타난 이러한 연구들의 열풍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갑자기 아이의 발달에 관심을 보여 주었다는 사회-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아이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서의 관심은 '아동기의 발견'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사회적 운동의 정점을 형성하였다. 19세기말에 드디어 아동기는 완전히 발견되었으며 그 발견은 오랫동안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인식, 즉 어린이들이 축소된 어른이라는 인식의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2) 발달심리학의 기초자들
발달심리학의 확립은 19세기 후반, 인간의 특성과 변화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제시하였던 몇몇 과학자들의 선구적인 사상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여기에서 소개될 네 명의 심리학자들은 발달현상과 과정에 대한 초기의 이론을 형성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본성의 형성과 그 변화에 대한 현대적 사고를 창시하였다. 이들의 이론들은 어린이의 발달과정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사고틀을 제시하였으며 그 이후에 이루어진 인간 정신과 사고의 변화에 대한 이론들의 기본적인 틀로 작용하였다.
- 지 스탠리 홀 (G. Stanley Hall, 1844-1924) : 발달심리학의 창시자
지 스탠리 홀은 미국에서 아동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 시작하는데 아마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홀은 또한 1887년에 최초의 심리학 잡지를 만들었으며 1891년에는 현재 [유전적 발달심리학지(Journal of Genetic Psychology)]로 불리는 최초의 심리학술지를 만들었다. 초대 미국 심리학회의 회장이었으며 발달 심리학연구의 기초자였던 지 스탠리 홀은 어린이에 대한 관심때문이라기 보다는 '사회진화(social evolution)'에 대한 관심에서 1880년에 어린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홀은 유럽에서 심리학의 개척자인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와 심리학을 연구한 최초의 미국인으로 1880년 '어린이의 마음의 내용'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배운 설문지 방법을 도입하여 보스톤(Boston) 지역의 약 200명의 유치원 아이들에게 "소를 본 적이 있느냐?" "벽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등의 질문들을 물어보았다. 특정 답을 한 아이들의 분포를 표로 나타내었으며 소년과 소녀, 도시아이와 시골아이, 각 다른 인종의 아이들 간에 만들어진 반응들을 비교하였다. 이런 연구는 한 어린이의 세부적인 특성을 조사하였던 이전의 연구와 달리 처음으로 집단자료를 모아 어린이 집단을 비교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었다.
홀의 알려진 주요 업적은 청소년기에 관한 연구이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발달하는 인간이 그의 계통적 과거를 재현하는 것을 중지하고 현재 인간의 생을 살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보았다. 홀의 표현에 따르면 ꡒ청소년기는 이제 다시 태어나는, 보다 높고 더 완전한 인간적인 특성이 탄생하는 시기ꡓ라고 말했다. 이때 나타나는 신체와 영혼의 질은 더욱 새로운 것인데 비하여, 어린이는 과거로부터의 흔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청년기가 진화에 의해 지워진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개인성을 형성하는 발달의 시기라고 믿었다. 청년기는 발달에서의 선택의 여지가 많으며 폭 넓은 범위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로 보았다. 따라서 홀은 아동기의 영역 내에서의 특정한 시기의 중요성을 확인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 지그문트 프로이드 (Sigmund Freud, 1856-1936): 성격발달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1880년에 오스트리아의 의학도였던 프로이드는 일반적으로 진화론적 사고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으며 특히 의학훈련의 일부로 진화재현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의학훈련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후에 수행한 심리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정신분석 이론의 형성에서 그는 성격의 출현과 발달을 인간의 '성적 행동(sexual behavior)'과 관련시켰다.
지 스탠리 홀에 못지 않게 프로이드도 진화이론과 생물유전법칙을 가장 광범위하게 심리학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유아기에서의 양육과 초기 아동기의 배설을 성적활동으로 해석하는 프로이드의 어느 곳에서 생물유전 법칙에 관한 해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드에 따르면, 먼저 개체가 그들의 종의 역사를 재현한다면 性의 역사도 재현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어린이는 태고적 형태의 성적 쾌락을 재 경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초기 형태의 쾌락을 구강(oral)과 항문(anal)에서 찾았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구강과 항문이 이전에는 생식기관이었기 때문에 성적쾌감이 구강과 항문 활동으로부터 나오며 性의 발달단계가 구강과 항문의 단계를 거쳐간다는 것이다. 1905년 비엔나(Vienna)에서 처음 출판된 그의 [성 이론에 대한 세 가지 기여(Three Contributions to the Sexual Theory)]에서 프로이드는 성적 활동 즉, 출생 이후부터 나타나는 성적 충동을 어린이와 연관시킴으로써 이전의 아동기의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프로이드의 환자들은 출생 때부터 존재했으리라 추측되는 성적 느낌을 나타내는 어린 시절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었다. 프로이드는 "신생아는 성적감정의 싹을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썼다. 성에 대해 여전히 억압적이었던 당시 사회에서, 순진한 아이가 성적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프로이드는 어린이의 정서발달의 공통적인 경로를 생의 초기에서 나타나는 육체적 쾌감과 연결 지었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성적 경험은 성장한 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인간의 행동이 유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비록 생물적인 충동에 의해 좌우되더라도 개인은 환경과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아주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프로이드의 발달관에 대한 비판가들은 그의 '심리성적 발달이론(Psychosexual developmental theory)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중류계급 이상에 속하는 유럽인의 특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아동기의 정상적인 발달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발달개념을 성적 욕구의 변화과정으로 변화시켰다는데 주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어린이의 욕구는 사회의 적절한 통제에 의해 조정되어야 하며, 어린이가 자신의 내적, 외적인 갈등을 해소해 가는 정도는 자신의 성인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드의 생각은 나중에 등장한 발달개념의 핵심이 되었다.
- 알프레드 비네 (Alfred Binet, 1857-1911) : 개인차의 연구
프랑스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비네는 주로 지능을 측정하는 최초의 공식적인 척도를 개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네는 초기에 어린이가 보이는 기억이나 수 추론 활동 등과 같은 아이들 사고의 일반적인 특성에 관심을 두었다. 그의 목적은 많은 미국 연구자들처럼 어린이의 인지를 단순한 요소로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인지의 복합성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학습에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을 가려낼 수단이 필요하였던 파리 교육성의 요구에 따라 비네와 그의 동료인 사이몬(Simon)은 광범위한 고등정신과정과 문제해결, 어휘, 그리고 운동기술 등을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일련의 과제들을 개발하였다. 어린이의 사고에 관한 비네의 연구들은 어린이의 정신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여러 검사들의 기초가 되었다.
비네와 사이몬의 연구결과로 각 아이의 독특한 정신역량의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도구들이 만들어졌다. 또 처음으로 각 사람의 정신역량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합당하고 중요하다고 결론 지워졌다. 따라서, 비네는 한 집단에서 각 개인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개인차 연구의 선구자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의 경향은 사람들의 일반적 심리특성이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었으므로, 개인내에 있는 다양한 정신역량의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조한 것은 비네의 업적이었었다. 그리고 정신검사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곧 미국에서 임상가와, 학교 심리학자 그리고 어린이를 다루는 실제 장면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제임스 마크 발드윈 (James Mark Baldwin, 1861-1934): 발달 이론가
발달심리학 역사의 초기에는 어린이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만드는 것과 어린이의 행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동안 또 다른 영역에서 제임스 마크 발드윈은 20세기 초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발드윈의 많은 독창적인 사상들은 40년 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발드윈의 가장 중요한 주장 중의 하나는 발달은 단순히 조각 조각의 지식이나 행동을 축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이고 위계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이 발달의 일부분을 이루는데, 이것은 단순히 행동의 반복으로 나타나는 습관(habit)과 유기체가 자신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단계의 지식과 인식을 가져오는 조절(accommodation)이라고 하였다. 발드윈은 정신의 진보는 단계의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면서 이 생각을 인지 발달연구의 역사에 도입하였다. 아이의 사고 발달에 대한 발드윈의 주장은, 초기의 사고는 논리이전(prelogical)의 형태이지만 점차 논리가 나타나며 결국에는 가설적(즉, 형식적) 추론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을 제시하였다.
발드윈은 또한 사회발달과 성격형성에 관한 그의 독특한 이론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아이를 넓은 사회에 의해 이루어진 행동과 믿음을 단순히 수용하는 사람으로 특징 지우기보다는, 타인들과의 계속되는 상호교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의 산물로서 아동의 자아가 출현된다고 기술하였다.
4. 발달심리학의 현대적 성립 : 발달심리학 이론들의 형성
20세기 초기와 그 이후에는 여러 주요한 이론가들이 발달의 특성에 관한 그들의 이론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30년에서 1960년 동안에는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서의 미국 심리학계는 학습이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강화(reinforcement), 욕구(drive), 그리고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 등의 학습이론의 개념들은 행동변화를 설명하는 주요 기제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들 개념들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의 행동을 설명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특히 특정 심리적 기능이나 특성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학습개념은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1) 학습이론과 정신분석에 기초한 심리사회(psychosocial) 발달 이론들 : 1900년도 초기
행동주의(behaviorism)의 창시자인 존 비 와트슨(John B. Watson)은 어린이가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형성하는 정서발달에 조건반응과 같은 학습이론을 적용하였다. 사회학습이론(Social Leaning Theory)을 내세웠던 달라드(Dollard), 밀러(Miller) 그리고 시어즈(Sears) 같은 이들은 '학습된 욕구(learned drive)'의 개념을 사용하여 어린이의 사회행동 학습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들 사회학습 이론가들은 학습이론뿐 아니라 프로이드 영향을 받았기에 프로이드의 개념을 '자극-반응(stimulus-response)'의 틀 속에 넣어 보려고 하였다.
유럽에서 비엔나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 온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 발달의 이론에 정신분석과 인류학의 독특한 사상을 주입하였다. 비엔나에서 프로이드의 딸인 안나 프로이드(Anna Freud)에게서 아동의 정신분석에 대한 훈련을 받은 에릭슨은 인형이나 다른 장난감들을 사용하여 어린이의 특성과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어린이 놀이에 관한 해석적인 접근법을 개발하였다. 1950년경 에릭슨은 그가 관찰한 어린이와 어른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연속을 전 생애에 걸친 성격발달의 개념으로 통합하였다. 인간의 발달은 사회적 경험의 적응 정도와 그 내용에 따라 쉬워지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프로이드의 性적 발달단계를 수정하여 8단계의 심리사회적(psychosocial) 발달단계로 나타내었다. 특히, 인간의 전 생애의 발달과정을 각 단계에서 독특하게 나타나고 해결되는 '심리-사회적 위기'로 특징 지웠다. 에릭슨은 신뢰감이나, 수치심, 근면성, 친밀감과 같은 사회적 감정이 발달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중요한 사회-문화적 사건 등이 개인의 각 발달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또한 인생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인간발달을 알기 위해서는 아동기에서 성인기에 이르는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에릭슨이 인간발달에 항상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던 사회적 상호작용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발달의 내적법칙(inner laws of development)'이 계속되는 잠재성을 만들어내지만 이 발달의 전체적인 계획은 개인과 접촉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향상되기도 하며 또 때때로 왜곡되기도 한다. 또한 발달하는 어린이와 접촉하는 중요한 개인을 나타내는 영역은 부모나 가족에서 친구, 친척, 그리고 학교 등으로 확장된다. 비록 한 개인의 발달은 각 단계에서의 위기의 출현과 해소로 그 성격적 변화를 나타내지만 각 개인의 인생은 특정 공통체 속에서 펼쳐진다. 비록 특정한 형태의 성격 유형은 미리 결정되어 있을지라도 각 성격발달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내용과 형태 그리고 이것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특정한 사회 문화적 상황이 작용한다.
에릭슨이 정체감과 인생 전반에서의 발달이론을 형성하는 동안에 사회학습 이론가들은 학습이론의 새로운 개념들을 또 받아들여 사회행동의 발달에 적용하였다. 비 에프 스키너(B.F. Skinner)의 후예로 특징 지워지는 일단의 심리학자들은 학습되거나 학습되지 않은 욕구의 존재 모두를 부정하고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를 강조하면서, 아동연구가 시작한 이래로 가장 기계적인 측면에서 사회행동의 발달을 설명하려고 나섰다. 그들에 의하면 개인의 사회행동은 '강화수반성(reinforcement contingencies)'의 축적으로 형성된 강화의 역사에 의해 완전히 이루어진다. 즉, 개인은 과거에 보상을 받았던 행동을 계속한다. 개인의 어린 시기의 자극과 반응의 경우에 초점을 두었던 이 스키너주의자(Skinnerian)들은 바람직한 행동(반응)이 강화(자극)를 수반하면 이 행동은 더욱 반복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2) 인지발달 이론의 등장: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언급한 이론가들이 그 자체로 발달심리학의 개념과 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현대 발달심리학에 누구보다도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은 쟝 삐아제(Jean Piaget, 1896-1980)이다. 삐아제는 좀처럼 한 사람의 이론이 독점하는 법이 없는 현대 발달심리학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일 뿐 아니라, 그는 유아에서 성인까지 발달하는 인간의 사고와 지식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형성시켰다. 그러나 이 스위스 심리학자의 이론이 비록 일찍이(1920년대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출판되었지만 1960년대까지 미국 심리학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단지 1960년말 이후 아이의 활동이 인지발달의 기초로서 작용하며, 발달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정신구조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그의 주장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후 많은 발달심리학자와 교육자들에 영향을 미쳤다.
삐아제의 최초의 연구 관심은 생물학이었지 심리학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의 생물학에 대한 그의 훈련은 인간의 사고와 그것이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관한 그의 이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삐아제가 제시한 지적 발달의 관점은 '지능(intelligence)'에 대한 두 가지 지배적인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첫째, 지능은 일종의 생물적인 적응(adaptation)이며, 둘째 지능은 개인이 외적 환경과 상호작용 함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조직화(organization)된다는 것이다. 삐아제에 따르면, 어린이는 자신의 외부세계에 적응하고 배우려는 선천적인 경향성을 타고나며 마치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듯이 자신의 환경과 상호작용 한다. 마치 눈, 귀, 허파, 심장 등의 여러 신체기관들이 생물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화되어 형태를 갖추듯이 정신구조도 더욱 복잡한 사고를 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형태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히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의 접촉, 조작, 분류나 정리 등과 같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삐아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정신구조를 '스키마(schemes)'라 하였으며 이것은 조정되며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행동형태와 추론방식,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과 대상에 적용되어지는 행위와 사고의 모형 틀을 나타낸다. 이 스키마가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삐아제는 어린이가 자신의 외부세계에서 획득하는 경험을 내적 지식체계로 형성하는 과정들을 설명하는 두 가지 중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 개념이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modation)'의 개념이다. 동화는 외적대상이 내적 정신구조에 맞추어지기 위해 변화되는 과정이며, 조절은 내적 정신구조를 외적대상에 맞추는 과정이다. 이 두 개념은 외적대상과 내적 정신구조가 상호 작용할 때 변화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분하는데 적용된다. 삐아제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생물학적 훈련과 발드윈의 발달이론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삐아제에 따르면 동화와 조절은 모든 심리활동의 기본이며 서로 상보적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은 아동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지식 체계-스키마-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즉,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적 수준이나 스키마에 새로운 경험을 동화시키며, 이와 동시에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스키마에 맞지 않는 경험은 이해를 위해 계속적으로 경험에 맞게 스키마를 조절하도록 하는 압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자신이 넘어지는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그의 발달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과 세계에 관한 성숙된 사고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로의 보다 복잡한 스키마로의 적응과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 역동적 과정이다.
삐아제는 이러한 적응과정의 결과로 스키마의 '평형점(equilibrium)' 또는 균형이 점차로 증대한다고 한다. 이 뜻은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구조 내에서의 갈등, 즉 스키마에서의 혼란이 동화나 조절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안정점을 찾아 다시 아이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린이와 그가 속한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라 일어난다. 따라서 환경이 적절한 사고의 양식을 제공하여주면 어린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환경에 대한 지식을 형성해 간다. 마치 우리가 걷는 것을 굳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저절로 걷게 되듯이, 아이는 시간이나 공간 또는 다른 물리적 특성과 범주적 차원에 관한 지식을 획득한다. 즉, 아이들은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물리적 세계에 관한 지식을 능동적으로 구성한다. 따라서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 관해 이해하는 과정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단계의 지적 발달을 이루는 것이다. 결국 삐아제가 주장하고 싶은 발달의 기본 내용은 더욱 효율적인 지식의 단계로 인간의 정신구조가 전이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것이 삐아제가 보는 인간발달, 즉 심리변화 과정의 핵심인 것이다.
3) 발달심리 이론의 변화와 확장 : 1990년대까지
- 1970년대 이후에 일어난 발달심리 연구에서의 변화
미국 심리학자들이 1960년대에 삐아제를 발견한 이후 발달심리학은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을 겪었다. 발달심리학 연구의 많은 부분이 삐아제 이론의 검증과 확장에 몰두하였다. 특히 1970년대의 사회발달과 정서발달에 대한 연구자들은 삐아제의 이론에 기초한 인지발달의 연구방법과 연구결과, 이론적 설명을 통합하여 '사회인지(social cognition)'라는 발달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영역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론적 배경은 '정보처리이론(information processing theory)'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컴퓨터의 작동으로 표현되는 정보처리의 원리에서 유추하여, 인간이 뇌에 어떻게 지식을 저장하고 삭제하며, 어디에 정보를 저장하고 어떻게 처리하며, 기억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특히 어떤 조건에서 뇌가 신호를 옳게 받는가 아니면 혼동하는가 등의 문제들을 탐구하였다. 정보처리 이론은 어린이들은 성인과 유사하게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다시 인식시켜 주었다. 발달심리학자는 정보처리이론을 각 연령별로 차이가 있는 기억 과정에 적용하였을 뿐 아니라, 각 연령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처리의 특성과 내용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발달과정에서 획득되어진 정보의 특성과 그 형식(format)이 어린이에서 나타나는 행동변화와 어떻게 관련되어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지식구조(knowledge-base)가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어떤 중재적인 역할을 하는 지를 탐색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어린아이의 제한성을 정신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로 설명하기보다는, 단순히 축적된 지식의 양과 기억의 확장 정도에서 나타나는 차이로 해석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 사회 역사적 맥락을 강조한 발달이론: 변증법적 사고의 영향
1970년대 이후 비록 1900년대 초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심리학 이론이 북미 대륙에 또다시 영향을 미쳤다. 이 이론은 독일 철학자인 게오그 헤겔(Georg Hegel, 1770-1831)에 의해 제시된 '변증법적 사고(dialectical thinking)'-한 사상(thesis)은 반드시 반대되는 사상(antithesis)을 일으키며 이러한 과정은 결국 새로운 사상(synthesis)을 형성한다-라는 철학사상에 배경을 두었다. 변증법적 관점에서는 인간발달-특히 언어발달, 문제해결 등의 '고등정신과정(higher mental process)'의 변화-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상과 반 사상 그리고 통합의 과정으로 보면서, 발달에서의 안정성이나 균형점보다 동적인 흐름에 더욱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 관점은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심리적 기능과 행동의 생득적인 생물학적 기원을 찾기보다는 이들이 사회와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 근원에 더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생각은 초기 서구 심리학자들에게는 사상적인 거부감으로 무시되었으나 점차 인간발달을 분석하는 새로운 도구로 등장하였다.
변증법적 관점을 내세우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는 레브 세마노비치 비가츠키(Lev Semanovich Vygotsky, 1896-1934)였다. 그의 이론과 저작은 러시아 혁명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널리 알려졌지만 불행히도 그는 30대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와 추종자에 의해, 그의 이론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학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상과 업적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적 틀을 갈구하는 현대 미국 심리학계에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다.
비가츠키는 인간은 서로 상호작용 함으로써 학습할 뿐 아니라 지식은 인간의 문화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비록 몇몇 심리학자들이 '지각(perception)'이나 기억, 문제해결 또는 주의집중과 같은 고등정신작용들은 보편적인 단계에 의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는 이 생각에 반대하여 "사고는 어린아이의 세계를 형성하는 사회 역사적'가정(assumption)'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가 인간발달에서 나타나는 생물적인 영향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즉, 언어획득 이전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행동은 생물학적인 기원에 의한 것이며, "문화의 영향은 단지 자연에 의해 주어진 환경을 인간의 목적에 의해 변화시키는 것이다"고 하였다.
20세기 초기에 변증법적 사고를 발달 과정에 적용하였던 비가츠키와는 달리, 크라우스 리겔(Klaus Riegel, 1925-1977)은 변증법적 관점을 '일생전체(life-span)'의 발달에 적용하였다. 그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삐아제의 균형개념을 인간발달을 나타내기 위해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리겔에 따르면, 모든 발달은 불균형의 상태에서 진화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인지발달의 단계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야 하며, 삐아제의 인지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으로 제한된 인간의 마음을 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즉,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각 인지단계에서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장하며 더 큰 갈등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아이가 우는 행동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발달에 긍정적인 기초를 제공하여 주는 위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비가츠키와 마찬가지로 발달심리학자는 현실적인 사회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두 사람-'어머니와 아이'- 간의 대화와 같은 것이 분석의 좋은 모형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아동기에 대한 연구에서 인간의 '일생전체'에 대한 연구로 발달심리학의 영역을 넓힐 것을 강조하였다.
- 일생전체(life-span)로의 관점과 생태환경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
일생전체에 초점을 둔 발달심리의 연구는 펄 발테스(Paul Baltes)와 워너 샤이에(Warner Schaie)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들은 아동기와 청년기에서의 변화 과정을 중시하고 이후 시기의 발달을 정태적인 것으로 보았던 전통적인 발달 관점을 수정하여, 발달의 변화는 일생에 걸쳐 여러 시기에 나타나며 그 방향도 여러가지로 나타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또한 대부분의 현대 발달심리 이론의 관점과 유사하게, 심리적 사상이 드러나는 사회 역사적 맥락의 분석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관점은 발달과정에서 형성하는 사회관계나 개인의 인생사에서의 경험 그리고 역사적 변화가 심리사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일생 전체를 보는 발달심리학자들은 나중의 경험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초기 특질을 밝혀내며 특히 발달을 불안정하게 변화시키는 개인의 특성에 관심을 두었다. 예를 들면, 일생 전체를 보는 관점에 따르면 지능은 여러 가지 심리능력의 복합체로서 일부는 생애 초기에 나타났다가 약해지기도 하며 어떤 것은 중년기와 노년기에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들은 시대와 연령, 그리고 성별에 따른 효과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개인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가도 연구하였다.
변증법적 관점과 일생전체 이론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이 '생태학적 접근(ecological approach)'이다. 이 접근에 따라 발달을 보는 관점은 각 연령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 가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발달심리학 이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유리 브론펜브레느(Urie Bronfenbrenner)에 의해 제시된 이 관점은 인간 행동을 볼 때, 사람들이 자신이 자라고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또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조절하는 가에 초점을 둔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아마 가장 중요한 발견은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실험 연구에서는 행동에 관한 하나의 변인을 분리해 내고 다른 모든 변인들을 통제하여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반해, 생태적 연구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많은 변인들을 통제하여 고려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브론펜브레느는 어린이의 사회화를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자는 전통적인 연구와 마찬가지로 그 어린이가 속한 사회계층을 통제하나 연구설계에는 가족구조, 아동 양육형태(가정 또는 탁아소) 등의 요인들도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생태주의(ecological view)'는 인간은 발달과정에서 다양한 환경들과 복잡한 상호작용 과정을 거치며, 발달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의 맥락들이 인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발달심리 연구에서의 새로운 노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 발달심리학 연구에서의 사회적 영향
사회과학에서의 이론이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발달심리학을 인도하였던 이론들은 그 당시의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반영하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발달심리학의 각 연구주제를 형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 이론들은 연구에서 나온 결과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중요한 참조 틀이 되었다. 따라서 발달심리학은 행동과 사고과정의 변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한다는 점과 더불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에서 강조하는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의 다른 영역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리학에서, 아니 사회과학 내에서 연구자 개인이 택하는 이론적 입장과 연구주제는 그 연구자 개인의 독특한 흥미와 사회 문화적 '시대정신(Zeitgeist)'의 반영이지 과학적 연구 활동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다. 따라서 발달심리학의 다양한 이론들은 인간의 발달현상이 얼마나 다양하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될 수 있는가를 반영하는 것이며 또 이런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하여 소개될 주제들은 인간 발달에 관한 과학적 사실과 함께 인간의 변화과정과 그에 관련된 요인들을 특징짓는 현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발달심리학이 얼마나 역동적인 학문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발달심리학이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변화와 교육, 복지, 건강과 같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 역시 발달심리학이란 학문이 성장하는 사회의 성격과 그 사회가 이러한 학문의 필요를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아마 그 좋은 예가 미국의 경우일 것이다. 20세기 이후 심리학이 미국에서 사회과학 연구의 핵심으로 등장한 이래 어린이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 병원, 개인 진료소 또는 사회기관을 중심으로 발달심리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농작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밀이나 옥수수 경작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어린이의 성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그 결과 록펠러 기념 재단이 지원하는 '아동복지연구소(Child Welfare Research Stations)'가 1917년 아이오아(Iowa) 대학을 시발로 여러 대학에 세워져서 어린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되게 되었다.
발달심리학의 연구는 특히 사회문제와 사회변화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 1960년대에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이라는 미국사회 개조운동에 이론적 배경과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은 부유층 아이들과 빈곤층 아이들이 가지는 경험의 차이가 이들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 연구하게 하였으며, 또 발달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헤드스타트 운동(Head Start Movement)'과 같은 조기교육 프로그램이나 여타 사회개조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운동에 발맞추어 발달심리학의 연구들은 어린이의 발달에 가정과 사회가 미치는 영향을 경험적으로 밝혀내어, 결핍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조적인 학습 경험을 제시하여 이들에게 정상적인 아니 향상된 발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새로운 사회개조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처럼 미국내의 발달심리학은 실험실 내에서의 과학적 연구 이외에도 사회적인 변화에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구로서 작용하였다. 20세기 후반에 미국 사회를 특징 지웠던 '가정의 파괴가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 'TV, 컴퓨터 또는 전자게임과 같은 미디어가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 '대리모의 사회적 의미', '탁아소가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장기적인 심리적인 효과',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 '어린이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 있는 가의 문제', '비행 아동과 청소년의 교정프로그램의 개발', '교육과정의 개편이나 새로운 학습 프로그램의 개발' 또는 '청소년의 약물 사용'과 '미혼모 문제', 심지어, '에이즈(AIDS)의 예방과 확산을 막기 위한 청소년의 성교육과 행동의 변화' 등의 주제들에 관해 발달심리학이 이용되었다. 즉 이러한 문제의 확인과 이해 그리고 이들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발달심리학의 연구에서 밝혀진 많은 결과들이 이용되었다.
첫댓글 지 스탠리 홀 (G. Stanley Hall, 1844-1924) : 발달심리학의 창시자.
지 스탠리 홀은 미국에서 아동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 시작하는데 아마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홀은 또한 1887년에 최초의 심리학 잡지를 만들었으며...
1891년에는 현재 [유전적 발달심리학지(Journal of Genetic Psychology)]로 불리는 최초의 심리학술지를 만들었다.
우리는 현대 발달심리학에 누구보다도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은 쟝 삐아제(Jean Piaget, 1896-1980)이다.
삐아제는 좀처럼 한 사람의 이론이 독점하는 법이 없는 현대 발달심리학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일 뿐 아니라...
그는 유아에서 성인까지 발달하는 인간의 사고와 지식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형성시켰다.
기초한 인지발달의 연구방법과 연구결과, 이론적 설명을 통합하여.....
'사회인지(social cognition)'라는 발달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영역을 만들어 내었다....잘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