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러디시 수상록 (隨想錄)
조성일
한 이야기로부터 떠오른 생각
요지음 필자는 독서하는 과정에 중국 선불교의 5대 조사(祖師)중 한분으로 알려진 혜능조사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였다. 그 이야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어느 한 고찰(古刹)에서 한 고승(高僧)이 한참 설법을 하고있을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어와 절간 마당에 세워진 바지랑대의 깃발이 큰 소리를 내면서 펄럭거렸다. 그러자 청중의 시선은 한결같이 그 깃발로 쏠렸다. 고승은 청중의 주의력을 자기의 설법에로 되돌리려 했지만 청중은 고승의 설법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란스러워지기만 했다. 그러자 고승은 문득 청중에게 물었다.
“지금 마당의 바지랑대 우에서 깃발이 소리내어 펄럭거리는것은 바람의 탓이냐? 깃발의 탓이냐?” 그러자 청중은 “바람이 불어서 깃발이 큰 소리로 펄럭거렸으니 바람의 탓이다”라는 사람들과 “깃발이 펄럭거렸으니 바람이 분것을 알지 바람이 눈에 보이느냐? 그러니 깃발의 탓이다”라는 의견으로 량분되였다.
고승은 량분된 의견이 웅성거리고 있을때 청중가운데서 문득 빙긋이 웃고만 있는 더벅머리 청년을 발견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바람탓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깃발탓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청년은 “바람의 탓도 아니요 깃발의 탓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탓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청년의 대답을 들은 고승은 단상에서 내려가 청년의 머리를 깎아주고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구합니다”라고 했는데 바로 그 더벅머리 청년이 후날의 혜능조사란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접하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새로운 시에는 바로 상술한 청년의 대답같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것을 참조계로 하여 자기 나름의 엉뚱하고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을 시화(詩化)한 작품도 포괄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기존의것을 빌어 자기 시각으로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하거나 느닷없이 엉뚱하게 만들어내는것도 새로운 시작품을 직조하는 작업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 굴리니 패러디와 패러디시가 필자의 뇌리를 치는것이였다.
패러디의 의미와 기능
석학들의 견해에 따르면 패러디란 어떤 원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 특정한 문체를 존속시키면서 거기에다 이질적인 주제나 내용이나 형식을 치환하는 일종의 창조적인 “문학적모방”이요 언어유희적 아이러니의 한 형식이다. 패러디의 류형은 원 텍스트의 어느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모방 인용 또는 변용하는가에 따라서 이를테면 어법,리듬, 운율, 어휘, 어구, 문장의 차원인가, 형식적 혹은 내용적 차원인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인가, 장르적 특정인가 하는 등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패러디는 남이 한것을 무턱대고 따라하는 자기의 재창조가 없는 모방과 구별되며 시나 글, 노래따위를 지을때에 남의 작품의 전부나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표절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어원적으로 추적해 볼때 패러디(parody)는 희랍어 paradia에 뿌리를 두고있다. Paradia는 para(counter, against 對應)와 odia(song, 賦)가 결합된것으로 “대응노래(counter-song)”, “파생적인 노래”를 의미했다. 조롱하거나 우습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니고 하나의 텍스트를 다른 텍스트에 대조시킨다는 뜻이였다. 원초적인 패러디의 의미는 유구한 세월을 경유하면서 특히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의 힘을 얻어 그 뜻이 확대되였다. 일반적인 경우 패러디는 “원전의 풍자적 모방” 또는 “희극적개작”이지만 모든 패러디가 골계적이고 풍자적인 요소를 띄는것은 아니다. 패러디는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풍자하거나 조롱하거나 희화화(戱畵化)시킨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텍스트와 텍스트간의 반복과 다름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패러디는 원 텍스트의 모방을 전제로 한다. 원 텍스트가 없는 패러디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방은 원 텍스트에 대한 기계적인 복사나 단순반복이 아니라 원 텍스트의 형식이나 내용이나 문체, 어법 등을 새롭게 해석했거나, 초문맥화하거나, 변용하거나 재기능화함으로써 “반전과 전복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창출”을 꾀한다. 바로 원 텍스트와의 차이에 의한 모방, 창조적 모방이란 점에서 서로가 고유한 성격을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음에 패러디의 이중성(혼합의 원리)이 있다.
패러디는 원 텍스트와의 관계속에서만 존재한다. 패러디는 원 텍스트와 교섭하는 지점에서 “대화”를 벌인다. 이때 새로 창조된 텍스트는 원 텍스트와 짝을 맺고 그와의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직조물이며 변형물이다. 따라서 패러디한 텍스트와 패러디된 텍스트(원 텍스트, 원전)는 상호 텍스트성(참여의 원리)를 확보하고있다.
패러디는 또한 자기 반영성(매타의 원리)을 갖고있다. 패러디는 원 텍스트가 없이 성립할수 없다는 점에서, 패러디스트 자기 의식의 반영으로서 패러디스트의 자기 비판적 의식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비평가는 패러디작품은 “삶의 반영이 아니라 삶의 반영인 원전을 반영한것”, 곧 “반영의 반영”인 셈이 된다는것이다. 례컨대 시에 대한 시쓰기, 소설에 대한 소설쓰기, 희곡에 대한 희곡쓰기가 다름 아닌 패러디의 자기반영성이다.”라고 설파하였다. 패러디스트는 원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의 생각에 따라 원 텍스트를 해체하거나 재해석하거나 내적동화(同化)나 이화(異化)에 따르는 의미확장을 하거나 변형을 꾀한다.
문학의 발전은 과거 전통의 기반위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방법으로 계승하고 또 새롭게 함으로써 가능한것이기에 순전한 의미에서의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를 재구성하는 힘의 원천을 패러디로 볼수 있다. 고대 호머의 영웅서사시《일리아드(Iliad)》를 패러디한《개구리들과 쥐들의 전쟁》을 비롯하여 중세 기사도 전설을 패러디한M.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15)》, S. 리처드슨의 《파밀라(1740)》를 패러디한 H. 필딩의 《조세프 앤드루의 모험(1742)》 등이 속출 했을 만큼 패러디 작품창작의 력사는 유구하다. 흘러간 문학사가 증언하다싶이 텍스트는 끊임없는 재해석과 재읽기를 요구할뿐만아니라 그 텍스트가 놓여진 현실의 맥락에 따라 새로운 의미화가 가능하다. 기존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 과정속에서 문학의 내용과 형식은 발전과 쇠퇴를 되풀이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석화의 패러디시
석화(1958년~)는 조선족시단의 앞자리에 좌정(坐定)하고있는 대표적인 시인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세기 70년대 중반에 조선족시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서정시《나는 나입니다》(1985),《나는 돌이 아니외다》(1987)를 창출함으로써 시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 뒤 시집《나의 고백》(1989), 《꽃의 의미》(1993), 《세월의 귀》(1998), 시선집 《연변》(2006)등을 출판함으로써 조선족시단의 중견으로, 대표적시인중의 한 사람으로 각광을 받고있다.
시인 석화는 인생살이의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를 감내하고 시창작을 숙명으로 자부하면서 “언제나 나에서 비롯하여”시대의 아픔과 세상사에 대한 “나의 고백”을 하였고 “꽃의 의미”로 자연의 절대성과 인간의 존재론적근원을 풀이하였고 “세월의 귀”로 개혁개방의 도도한 흐름의 소리를 들으면서 물신주의와 기술문명이 몰고오는 폐단들을 꼬집었으며 “연변”이란 이미지를 빌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사색의 문을 두드렸다.
시인 석화는 남다른 시풍경을 일궈낸, 자기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성숙한 시인이다. 그는 시창작에서 “끝없는 거듭나기, 아름다움에 가는 외길”(석화)을 무소의 뿔처럼 생벽을 지르며 숨가쁘게 걸어왔다. 그의 이런 시적창조의 길은 류추(類推)련상과 구이사유(求異思维) 에 힘 입은 “구신구이(求新求異)”의 갱신, 변신, 변모의 길이였다. 그는 시창작에서 부화뢰동(附和雷同)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이 말한것처럼 “새로운 시각을 찾아 거꾸로 보고 뒤집어보기”에 예각적인 대응을 꾀하였다. 그의 시에서의 이런 거꾸로보기, 뒤집어보기, 비틀어보기의 한 사례로 그가 창작한 패러디시를 들수 있다.
석화는 각고의 노력으로 끝없는 변신을 거듭하는 시인으로서 패러디스트이기도 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그는 20세기 8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 포터모더니즘의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패러디시 창작의 등반을 하였는바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10여수를 훨씬 웃도는 패러디시를 창출하여 우리 시단에 이채를 더해주었다.그의 패러디시의 류형은 다종다양하다. 력사적사건이나 인물을 패러디한 시, 전설이나 설화를 패러디한 시, 고전작품을 패러디한 시, 다른 쟝르를 패러디한 시, 전통적인 속담이나 명언명구(名句)를 패러디한 시, 아라비아수자(數字)나 수학방정식을 패러디한 시 등등이 그 사례라 하겠다.
석화의 패러디시에 한해서는 허련화의 평론《석화시에서 보여지는 패러디수법》, 김관웅의 평론 《석화시에서의 용전(用典)의 묘미》 등이 구체적으로 다룬바 있기에 필자는 이 기회를 빌어 그들이 다룬 두 작품에 한해서 자기의 생각을 덧붙혀 보려한다.
석화의 패러디시 《생각하는 사람》은 프랑스의 저명한 조각가 로댕의 명작《생각하는 사람》(조각)을 패러디한 시이다. 말하자면 비문학쟝르에 대한 패러디인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들어가
쭈크리고 앉으면
틀림없는 로댕의 그 자세다
이제 하루 들이켰던 온갖 잡동사니와
온밤 꿈자리를 어수선하게만들었던 끄나풀
끙 끙 아래로 힘을 줄 때마다
눈앞에서 불이 빈짝반짝 켜지고
한줄기 도통한 기가 숫구멍으로 뻗힌다
《생각하는 사람》
매일 아침마다 그 자세를 하고나면
시원하다
후련하다
오늘 또 그 비여낸것만큼 무엇이 가득차겠지만
《인생은 살기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석화의 《생각하는 사람》 전문
로댕의 조각《생각하는 사람》은 우람한 근육질의 한 남자가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지옥의 문”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무겁게 침묵하고있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는 고독에 다다른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 명상하고 있는 즉 “생각하는 사람”인것이다. 하지만 시적센스가 빠른 시인 석화는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화장실에 들어가 쭈크리고 앉았을 때의 자세로 비틀어놓고 익살과 유머아로 아이러니하게 자기의 기발한 생각을 내비추었다. 그러면 이 시에서의 석화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시《생각하는 사람》중에는 “끙 끙 아래로 힘을 줄 때마다/눈앞에서 불이 반짝반짝 켜지고/한줄기 도통한 기가 숫구멍으로 뻗힌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은 이 시의 압권(壓卷)적인 구절이다. 석화가 말하는 도통의 기란 바로 사물의 깊은 리치를 깨달아 통하는 기(道通한 氣)를 말한 것이라 짐작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윤동주시인이 말한것처럼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것이며 그 “부끄러움”을 초극하려는 행동적의지를 말한것 같다. 이처럼 석화는 로댕의 미술쟝르를 시텍스트로 패러디하여 시시각각 자기의 정신적오물을 배설하고 비우는 정화(淨化)의 작업을 해야 하며 시류에 편승하여 아무렇게나 쉽게 시를 만들어내는것은 시대와 독자에게 무책임한 짓임을 완곡적으로 설파하고있는것이라고 평가하고싶다.
석화의《연변.12-아침에 부르는 처용가》는 신라시대의 향가《 처용가(處容歌)》를 변모시킨 패러디시이다.
《 처용가(處容歌)》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處容)이 부른 8구체 향가로서《삼국유사(三國遺事)》권 2 <처용랑망해사(處容郞望海寺)>에 실려 전해지고있다.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경주에 들어가 예쁜 안해를 얻고 급간(級干) 벼슬을 하였다. 밤에 그의 안해가 역신과 함께 동침하는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불렀더니 그 역신이 물러났다고 한다. 뒤에 처용의 화상은 역신을 내모는 기능을 하여, 문신(門神)이 되였다. 처용의 이야기는 뒤에 처용무, 처용희 등으로 극화되였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이 노래와 춤이 지속되였고, 12월 그믐에 잡귀를 몰아내는 나례때에 처용놀이를 하기도 했다.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盻隱吾下於叱古
二盻隱誰支不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향가 《 처용가》는 향찰(鄕札)로 된것인데 이것을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서울의 밝은 달에
밤 깊이 놀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내 안해)이고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내 안해)이지마는
빼앗긴걸 어찌하리오.
이 《 처용가》를 보면 네 개의 다리 가운데 두 개는 자기의 것이고, 나머지는 누구의 것인지 알 지 못하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그런데 자기의 것을 빼앗겼다고 노래한다. 처용의 안해를 흠모한 역신이 처용의 안해를 범하였다고 하는 《 처용가》의 배경설화와 련결시켜 볼 때, 이 노래는 처용이 안해의 간통 장면을 목격하고 부른 노래라는 해석이 타당하게 보인다. 그리고 “빼앗긴걸 어찌하리오”로 노래가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체념인가 관용인가의 견해차가 분분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후에 역신이 처용의 분노하지 않는 태도에 감복하고 결과적으로 역신을 물리쳤다는 배경설화를 참조계로 할때 체념보다는 관용을 드러낸것이라는 해석이 더 큰 지지를 얻고 있는듯하다.
석화는 《연변.12-아침에 부르는 처용가》에서 향가 《 처용가》를
탈바꿈시키고있는데 이것은 시인에 의한 환골탈태(환골탈태)의 창의적인 작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 일어나 보니
머리카락 서너 오리 베개 위에 떨어져 있다
이젠 내 두피와 영영 작별한 저 것들을
지금도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지난겨울 둘러보았던 충남 부여의
고란사와 낙화암과 백마강이 떠오르고
삼천궁녀 꽃 같은 치맛자락이 베개 위에 얼른거린다
백제는 이미 망해 간 곳이 없고
그를 이긴 신라도 사라졌으니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을 뿐이다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 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져 갈 것인가
《원래는 내 해인데
앗아가니 어찌 하리요.》
체조하는 달밤도 아닌데
《처용가》 한 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연변.12-아침에 부르는 처용가》전문
흘러간 력사를 추적해볼 때 우리 민족은 잃은것도 많고 빼앗긴것도 허다하다. 석화시인은 치열한 력사의식과 랭철한 현실감각에 기대어 원 《처용가》의 주제나 소재를 모두 변모시켜 력사의 흐름속에서 우리 민족의 잃은것, 빼앗긴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과 한의 정서를 기묘하게 표출하였다. 석화는 바로 이런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처용가》 한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고 하였으니 석화의 시치미떼기와 위트에 우리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상술한 석화의 패러디시를 포괄한 석화의 전반 패러디시들에서는 치열한 민족의식과 력사의식이 숨쉬고있으며 인간의 존재론적의미에 대한 성찰과 현실의 폐단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 여울치고있으며 환골탈태(換骨奪胎), 점철성금(點鐵成金) 그리고 아이러니, 유모어와 해학, 위트 등 풍격이 돝보인다. 그의 이런 패러디시들은 그의 시창작에서의 변신과 변모의 몸부림으로서 조선족시단의 시적소재공간의 확대와 예술적창조의 다양화에 대한 값진 기여라고 보아진다. 하지만 그의 일부 패러디시에서는 패러디 심도가 깊지 못하거나 현실의 어두운 면의 날카로운 비판과 인간의 심층적인 아픔과 고통에 대한 해부가 예리하지 못한 부족점이 로출되고있다. 향후 시인의 게흐름없는 지속적인 자성과 각고의 노력, 시창작에서의 새로운 비상에 기대를 건다.
2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