曲藝(곡예)를 부리는 속에 온전한 것을 보게된다 휘어진 곳에서 곧은 것을 갖게된다 웅덩이가지지 않으면 가득찰 것이며 낡아지지 않는다면 새로워 질 것인가? 작은 것으로 느껴져야지만 구하여선 더 얻게될 것이며 많아 보인다면 어찌 그 서로들 갈등 의심 냄을 두지 않을 건가이며 경쟁체제가 성립되어선 그 왕따 따돌림 당하는 자가 없을 손가? 또는 많아 보임으로선 그중 어느 것을 자연 眞僞(진위)를 의심 냄을 두게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래서 성인은 하나로 결집시키는 포용력으로서 천하를 위하는 법방을 삼는다 자신만만하게 관찰력을 가졌다 아니함으로써 스스로 밝아진다 所以(소이) 不住而生心(불주이생심)에 원리인데 先入見(선입견)을 깔아노 놓고선 무엇을 행위하려 든다면 그 선입견이 걸림돌이 되어선 제대로 事物(사물)을 파악할 수 없다는 그런 논리다
그 어느 울테 안에 묶인다면 넑은 안목을 못 갖는다는 것으로서 훌훌 털고 벗어던지고 테를 파괴하고 나오라는 그런 내용 釋氏(석씨)가 먼저 말한 것인지 老聃(노담)이 먼저 생각한 것인지 그렇게 무언가 조건이나 목적을 깔고 마음을 존재시키고 보면 밝아질 수 없다는 그런 내용이다 자신만이 아집독선 바르다 하지 않음으로서 저절로 우뚝하게 서보인다는 것이요 老松(노송)이 雪寒風(설한풍)에 獨也靑靑(독야청청)하는 것은 자신이 바르다 해서가 아니라 설한풍이 그렇게 바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리라
스스로 쳐서 얻은 공과를 자랑하려 들지 않는지라 그러므로서 그 功勞(공로)가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요 자신마이 내세울만한 긍지를 가졌다 하지 아니 함으로써 그 주장의 내세움이 뚜렸해 진다는 것이요 그래선 오직 사소하게 다투려 들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천하에 그 누구와도 잘 다투려들음이 없어지는 것이라 자신이 경쟁체제를 갖지 않으려 하는데 세상인들 그렇게 시비를 걸려 들겠느냐 이다
각자가 그렇게 마음 먹고 행위 한다면 세상은 경쟁이 없고 그 시비가 없어진다는 것이리라 그렇게되면 오히려 좋은 점보다 필자의 생각에는 자연나태 도태 될 것인데 老聃(노담)은 무위자연 한가지 생각만 한다 할 것이다
죄우당간 옛의 이른바 굽어지면 온전해 진다하는 것이 이래 하는 말이라 어찌 헛된 말이라할 것이며 실로 온전해지면 그 根本(근본)으로 復歸(복귀)한 것이 될 것이니라 所以(소이) 道(도)로 복귀하여선 그 길을 가는 것으로 되어진 다는 것이리라
무언가 부실한 면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 원만해지는 것을 생각하고 그 원만해지는 것을 자연 얻게될 것이라는 다 그런 逆說的(역설적)인 논법에 의해서 發想(발상)을 일으키는 논리 전개라 할 것이다 결과물이 근본이 있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나 그 뜻은 大同小異(대동소이) 하다하다 할 것이다
* 本文 二十二章(이십이장) = 굽은게 있어야지만 온전해지고 휘어야만 곧아진다 움푹 파인 곳이 있어야 지만 채워지고 헐어짐이 있어야 지만 새로워지고 부족한 게 있어야 지만 얻어지고 많아지면 되려 곤혹스레 여겨 덜릴 땔 바란다 이래서 성인이 하나를 끌어안아 천하의 법 방을 삼았다 자신을 보지 못함으로 밝고 스스로를 바르다 않함으로 돋보이게 되고 스스로를 자랑치 않음으로 공을 갖게되고 자신을 뽐내지 않음으로 어른대접을 받게 되고 대저 다투지 아니함으로 천하에 더불어 잘 다툴려 듦이 없다 옛의 이른바 굽음이 있어야만 온전해 진다는 게 어찌 헛된 말이라 할 것인가? 그래야만 진실로 온전함으로 돌아가게 되리라
* 굽으면 완전해지고 휜즉 정직해지고 무너지면 새롭게되고 작다싶으면 얻으려 노력하게되며 많을 성싶으면 의심내게[ 이럴가 저럴가 헷갈리게] 된다 , 이래서 성인 하나를 끌어안아서 천하를 위하는 방식을 삼으니 ,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연고로 밝고, 자신을 바르다 않는 연고로 여럿을 수용할 수 있는 밝아지는 안목을 갖게되며 자신을 자랑하려들지 않음으로 공로를 두게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음으로 장점을 삼는다
그러므로 천하 더불어 다툴리 잘 없다 옛의 이른바 휘어야 지만 완전해진다는 것이 어찌 헛된 말이라 할 것인가? 이래 진실로 완전해져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 소씨는 주석하대. 성인은 움직이대 반드시 순리로 움직인다 이치가 존재하는 곳은 혹 곧기도 하고 혹 굽기도 하다 중요한 건 통용에 있을 따름이다 통하여 씀으로 사물이 더불어 오역함이 없고 거슬리지 아니함으로 온전해진다 할 것이다 곧아서 그것이 그릇된 이치라 하면 곧지 않으면 될 것이다 이치를 따름 비록 휜 것이라도 천하가 곧음에 다다름이라 모두가 돌아가서 수긍하여서 (*순응해 옳은 이치에 숙인다는 것임) 비록 채우려 들지 않음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세속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영리에 얽매여 昭昭察察(소소찰찰)한다는 것은 길이 아니다 번민해서 장차 무너트리려는 듯해야지 날로 새로움이 저절로 나오게 되 있는 것이다 길은 하나를 집중 꿰뚫는데 있을 따름이라 (*得一則)= 모든 걸 하나로 집약 수용하는 그런 자세라면 얻지 못할게 없을 것이다 (*포용해서 용납되지 않을게 없다) 많이 배워서 하나로 꿰뚫고 집약할 줄 모르면 곤혹스러 워 지리라 하나를 끌어안는 것은 거듭 본성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대저 굽어야 지만 온전해지고 휘어야 지만 곧아지고 구렁져야 지만 채워지고 무너지면 새로워지고 부족한 게 있어 야지만 얻어짐은 모두 하나로 끌어안은 여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를 끌어안음으로써 마칠 것이니 눈은 자신을 잘 보지 못함으로서 사물을 볼 수 있고 거울은 스스로를 비춰 볼 수 없음으로서 다른 물건을 잘 비춰 볼 수 있다 만일 자신을 보고 자신을 비춘다면 스스로를 위하려 듦도 한가롭지 못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물사를 관찰하고 비춰봄에 이른다 할 것인가? 자신을 보지 못함으로 인해서 자신만을 옳다않고 자신을 자랑하려 들지 않고 자신을 으시대려 들지 않게 되는 것은 모두 다투려 들지 않는데서 나오는 여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투지 아니함으로써 결실을 맺는다 세상이 곧음으로서 바름을 삼고 굽음으로서 그릇됨을 삼음에 장차 이치를 쫓아서 세상에 실천하려 든다면 굽음을 면치 못할게 있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글 말미에 거듭 말씀을 해서 말하길 이 어찌 헛된 말씀이라 하리요 그래야만 진실로 온전함에 돌아가리라 함인 것이다 대저 이른바 온전하다 하는 것은 유독 자신의 온전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내적으로 자신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외적으로 모든 物事[물사]를 온전하게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이 저를 겸한 온전함을 가져서 본성에 돌아오면 그 곧음 됨이 크다 할 것이다
* 여씨 주석하대. 모든 衆甫(중보= 영걸) 들의 그러함을 잘 알면 하나를 잘 끌어안아 부드러움에 이름인 것이다 하나를 잘 끌어안아 부드럼에 이르면 꺽이길 잘하고 휘길 잘하고 파여지길 잘하고 (*들어올 자리를 잘 비워둔다는 뜻) 허름해지길 잘함이리라 꺽히는 것은 가식 없는 자연적인 굽힘인 것이다 휘는 것은 저절로 하여금 (*누가 시키지 않아도)(*屈=굴)굽신 거리는 것이다 천하의 사물이 오직 黃河水(황하수)처럼 길 하는 게 몇이나 될까? 한번은 서로 꺽였다가 한번은 동으로 꺽였다가 해서 흘러 만물을 잘 상하게 함이 없음이니 이는 굽이침으로서 온전해 짐인 것이다 장애를 피하고 만 번이나 꺽 이면서 필히 동으로 흐른다 이는 휘면 곧아진다는 표현이리라 잘 흘러 내려서 일백 골짜기가 짐은 이는 고랑지면 채워진다는 표현이리라 천하의 더러움을 받아 들여서 맑음이 없음은 이 허름해지면 새로워진다는 뜻이리라 오직 하나로 집약 한자만이(*포용 또는 수용한자만이) 유족하게 이와 더불어 한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아직 젊어 부족한 점이 많은 듯 하면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게 많다 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그렇게 잘못하는지라 그는 곧 하나를 제대로 수용치 못함에서 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수용해서 貫一(관일)치 못하고 많은 가짐을 제대로 소화 정리치 못한다면 곤혹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재물을 사용하는 제도 에 있어서도 필히 방식이 있고 흙과 나무를 다루는데도 필히 방식이 존재해서 그런걸 잘 알아 지닌 자는 그런 일 에 임함에 있어서도 간추려 묶길 잘하고 응용하는바에 있어서도 넓다 성인이 하나를 포용해서 천하에 방식을 삼음도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이라 그러므로 써 바르게 꺽임을 쓴다 할 것이요 바르게 휨을 쓴다 할 것이요 바르게 고랑 짐을 썻다 할 것이요 바르게 헐어짐을 썻다할 것이니 이왕이 하나로 집약됨이 아니 없다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천하의 보는 바로 인하여서 보아가고 내 자신을 보는게 아니면 (*혹은 자신의 좁은 안목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보는 게 살피지 못할게 없음이라 그러므로 말하길 자신을 보지 못함으로 밝고(*혹은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보지 않음으로 밝고) 천하 옳게 여기는 바로 인해서 옳게 여겨짐이라서 내 자신을 바르다 아니하면 바른 게 잘 덮힐리(*엄폐될리)없다 그러므로 말하길 스스로 옳타 아니 함으로써 돋보이게 된다 천하에 공을 돌림으로서 내 자신이 두었다 하지 아니하는지라 그러므로 공이 있게 된다 만물을 맡아서 무르 성숙케 하여도 내 뽐내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어른대접을 받게 된다 이 같은 것은 다른 게 없다 하나를 얻으면 내라함이 없고 내라함이 없으면 다툼이 없어진다 오직 다툼이 없어 짐 이라야 천하 더불어 잘 다툴려 듦이 없어지리라 옛의 이른바 꺽이어 서만 온전해 진다는 게 그 요점이 이와 같을 따름이다 꺽이어야 지만 온전해짐을 알면 휨에 있어서도 곧게 되고 파인 곳에 있어서도 채워지게 되고 헐어짐이 있어서 새로워 짐을 앎음 이라서 자신을 보지 않고 밝고 자신을 옳타 않함으로 돋보이고 자신을 자랑 않함으로 공을 두게 되고 자신을 뻐기지 않음으로 어른대접 받음이 다 이로 말미암았다 할 것인데 어찌 이른바 온전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할 것인가? (*온전하지 않는 곳으로 돌아간다 할 것인가?)
* 박씨는 주석하대. 曲(곡=굽다 휘다 굽히다 휘게하다 마음이 바르지 아니하다 사악하다)이란? 折(절= 꺽다 자르다 쪼개다 꺽이다 부러지다)즉 꺽임을 뜻한다 枉(왕= 굽다 굽히다 邪曲한사람)은 屈(굴=굽다 굽히다 물러나다 베다 자르다) 즉 굽혀듦을 뜻한다 窪(와=웅덩이 우묵한 것 맑은물) 는 빈 것을 뜻한다 (페= 해지다 깨지다 부서지다 지다 패배하다)는 오래져서 헐어진 것(故)을 뜻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게 나타난다는 뜻이리라) 하늘길(天道)은 가득한 건 이지러 지게 하고 겸손하면 더하게 함으로 曲이진건 잘 온전해지고 枉 한게 잘 곧아지고 파인 곳이 잘 채워지고 부족한 게 잘 얻어지게 되고 등 모두 겸손함으로서 더함을 얻는 것이다 많은 건 되려 곤혹스러워서 찬 것은 이지러짐을 얻게 된다 이래서 성인이 길을 수용해서 천하의 법을 삼을진대 자신을 보지 않으면 총명이 넓어지고(*자신의 영리만을 추구케 되면 물심이 앞을 가려 시야가 좁게됨으로 총명이 흐려진다) 스스로를 바르다 아니하면 덕을 좋게 돋보이게 되고 공을 자랑치 않음 성숙한 공을 두게 되고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으면 잘 몸과 명리를 보전케 된다 (*譯者言= 요즈음 세상이야 어디 그런 가 자기선전 과시 시대라 자기를 돋보일려 노력 않함 뒷전으로 밀려나 낙오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노자 사상은 겸허한 방법으로 자신을 돋보일려 한다는 것인데 성장하는 사람에겐 다소 무리가 있다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인정받을만한 인지도가 쌓인 사람이면 물러나는 방법을 채택해 자신을 한껏 돋보이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겠지만 아직 성장하고 배우는 자의 입장에선 진취적이어야 할텐데 어찌 양보만 미덕이겠는가? 서로가 경쟁하는 속에 동량이 되는 것이니 노자의 말씀은 어느 정도 올라선 자 덕 쌓인 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아주 취할 것 없는 건 아니다 자기를 내보이는데는 여러 가지 수단이 이용되는데 겸허나 양보나 회생이나 이런걸 갖고 해서 주위에 점수를 많이 따놓는 것도 자기 위상을 높이는데 한몫을 한다할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가 모두 마음을 비워서 겸쟁할 게 없는 꺽임의 길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꺽이면 온전해 진다는 게 어찌 헛된 말이라 할 것인가? 오직 부드럽게 잘 꺽이어 져서 하늘 참(實)으로 온전하게 돌아 갈 뿐이다 (*譯者言=사람이 모든걸 포용하면 하늘같은 큰그릇이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