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시집가다와 장가들다’의 유래
‘시집가다’라는 말이나 ‘장가들다’라는 말에서 어른들은 갑순이와 갑돌이가 꽃가마 타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시골의 즐거운 잔칫날을 연상합니다. 이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갑순이와 갑돌이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떡과 잔치국수에 술을 마시고 춤추며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입니다.
여기에서 ‘시집가다’라는 말과 ‘장가들다’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여자는 ‘시집간다’고 흔히 말하고 남자는 ‘장가든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시집가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자가 신랑을 맞아 혼인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시집’은 결혼한 남자의 집을 말하며, 그곳은 바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사는 집이고 신랑이 함께 사는 집입니다. 여자가 결혼하면 자기가 살던 친정집을 떠나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사는 시집으로 가서 산다는 의미에서 여자가 혼인하는 것을 ‘시집간다’고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보면 ‘싀집’이라는 어휘가 나는데, “싀집에 가 여러 해 돌아오디 아니 더니” 또 옛 문헌 「오륜」에는 “싀어미 잘 섬기라.[善事吾姑]”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때의 ‘싀’가 ‘시’로 발음하고 표기도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시집간다’고 하는 것은, 새로이 남편이 사는 시부모 집으로 가서 시부모를 새로이 부모로 섬기며 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싀집’은 지금의 ‘시집’으로 변한 것으로, 여자가 새로운 어른들을 모시고 섬기며 살아가는 새로운 집인 ‘싀집’에 가는 것이 시집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싀집’은 순수한 우리 토박이말인데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여인이 늘 마음을 써 섬겨야 한다는 뜻을 살려 ‘시(媤)’자를 우리가 새로 만들어서 ‘시집’을 한자어로 ‘시댁(媤宅)’이라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장가들다’라는 말도 사전적 의미로는 역시 ‘남자가 신부를 맞아 혼인을 하다’의 뜻인데, 남자의 경우는 ‘장가간다’는 말보다 ‘장가들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남자가 결혼하여 장인 장모가 사는 집, 즉 ‘장가(丈家)’로 들어가서 산다는 뜻의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모계사회였고 그래서 남자는 결혼을 하면 바로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데릴사위로서 신부 집에서 일을 해주고 살았으며, 첫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독립해 나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고구려 때의 풍속에 따르면 혼인식을 하고 나서는 신랑은 장인, 장모의 집에 들어가서 신부와 함께 신혼생활을 하였으니, 그야말로 장인 집 곧 장가(丈家)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으므로, ‘장가든다’고 하는 것은 신랑이 장인 장모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서 신부하고 함께 산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몽골 칭기즈 칸의 어린 시절 테무친도 그의 신부 집에서 오래도록 살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데릴사위 결혼 풍습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풍습이 없어졌지만 ‘장가들다’라는 말에는 아직도 그 유습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또 전통 결혼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이 사흘 동안 신부 집에 묵어야 하는데 이것도 모계사회의 결혼 유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신혼부부가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 먼저 신부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시부모집으로 가는데 이것도 그런 유풍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계사회였을 때에는 남자가 장가를 들었고 부계사회로 되어서는 여자가 시집을 가는 양상으로 어휘가 나타난 것인데 요즘은 결혼하여서 장가에도 안 들어가고 시집에도 안 가고 그냥 신혼집으로 가는 경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생활의 진솔한 모습과 풍속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얼을 반영해주는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