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순한 성경공부용 교과서가 아니다. 이 책은 짧은 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의 정병으로 무장되어야 할 군사들을 위한 훈련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성경공부 교재와 달리 실천에 주목표를 둔 학습용으로 기술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영적 전장으로 던지움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영적 전투에 이미 몰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질 필요가 없는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미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위대한 지휘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실만으로 자동적 승리를 약속받은 싸움은 아닙니다. 지휘관이신 그분의 전략을 따라 순종할 때에만 약속된 승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의 최대의 전략은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함으로,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 위해 기도해 주시는 지휘관이신 예수님을 따라 함께 무릎으로 싸워가야 할 인생의 전장에서 우리 모두의 건투와 건승을 위해 축복된 훈련장으로 나아가십시다.
이 책의 사용법
이 책은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1. 한 강좌에 한 시간씩 7시간을 사용하고 그 밖의 기도시간, 중보기도 사역 소개 등 도합 10시간 정도의 일박이일의 중보기도세미나를 갖는 방법이다.
이 경우 과제물 등은 나중에 제출하게 하고 우선은 강의와 기도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2. 또 한 방법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모일 때마다 강의 1시간 기도 30분 정도로 모두 7, 8주에 걸쳐 학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경우 과제물 등을 강조하고 기도의 효과 등을 간증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장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기도에 대한 강의만 아니라, 기도 자체를 강조하고 기도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는 기도함으로써만 배우는 것이지, 기도에 대한 이론 강의만으로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역 훈련의 궁극적 목표는 각 지역교회 내에 중보기도 사역을 공적 사역으로 심고자 하는 것입니다.
훈련된 사람들이 이웃들의 기도 제목을 가슴에 품고(비밀을 지켜주며) 각 교회의 중보기도실에서 기도를 시작할 때 민족의 치유와 세계 선교의 거룩한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목 차
1. 중보기도 사역
2. 중보기도의 특권과 의무
3. 중보기도의 승리의 모본
4. 교회적 중보기도의 중요성
5. 응답받는 기도의 태도
6. 병든 자를 위한 기도
7.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
부록 : 기도 경호와 여리고 기도작전
Ⅰ. 중보 기도 사역
(딤전 2:1-8, 요 14:11-14)
암 송
요 절“그러므로 내가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와 와 와 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하고 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2)
웹스터 사전은 “기도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와 을 사용하여 경건히 그리고 겸손하게 신에게 접근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적으로 기도를 정의한다면 “기도란 피조물인 인간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중보자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의 도움을 구하거나 그와 더불어 대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경배의 기도, 고백의 기도, 감사의 기도, 간구의 기도, 중보의 기도, 찬양의 기도, 명령의 기도, 묵상의 기도, 침묵의 기도 등 여러 형태가 있으나 이 모든 유형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도의 형태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구체적인 이웃사랑 실천의 장이요 하나님 나라 사역의 가장 권세 있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요 순교자인 본회퍼는 “중보기도란 개인과 공동체가 날마다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하는 목욕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이 중보기도 사역의 본질적 특성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중보기도 사역은 주님이 친히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사역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주께서 십자가상에서 인류를 위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사역을 끝마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죽으심의 사건 이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질문 1히브리서 7:25절과 로마서 8:34절의 말씀을 읽고 예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 보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의 중보자(딤전 2:5-6)이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중보자이시기도 합니다. 그는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 지금은 구속된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사역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그는 지금 기도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성도들을 도우시며 또한 온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질문 2요한복음 14:12절에서 예수께서 그 분의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성도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한편 주님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주님만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중보기도자의 자리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함께 기도하도록 초청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의 사역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 중보기도 사역은 성도들이 첫째로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디모데전서 2:1절에서 바울 사도가 사용한 표현인 ‘첫째로’라는 의미는 첫째, 둘째, 셋째 등의 논리적 순서상 첫째라기보다도 사역의 ‘우선순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도를 어떤 사역의 준비과정으로만 이해하지만 기도 자체가 바로 사역인 것입니다. 기도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 주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금식의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마 4:1-2)
․ 그분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기에 앞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3)
․ 그분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에 앞서 기도하셨습니다.(요 11:41-42)
․ 그분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22:41-44)
우리 주님 자신도 먼저 기도로 사역을 감당하셨다면 연약한 인간성을 지닌 성도들은 얼마나 더욱 기도해야 할까요?
특별히 우리 주님의 기도들 가운데 대표적 기도들은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제자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눅 22:32)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는 주님의 제자들을 위한 긴 중보기도의 사례입니다.
중보기도는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야 할 사역의 영역인 것입니다. 기도는 사역의 시작입니다. 기도가 곧 사역입니다.
질문 3나의 하루 24시간 중 기도의 시간 전체를 합하며 얼마나 되겠습니까? 분
그 중 중보기도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분
3. 중보기도 사역은 주께로부터 가장 놀라운 상급이 약속된 사역입니다.
기도에 대한 놀라운 보상은 기도의 응답 그 자체일 것입니다(요 14:14).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상급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요 14:13).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기도 응답의 결과로 우리의 사회,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의 내면의 삶에서 고요와 평안을 누리게 되는 특권입니다(딤전 2:3).
그러나 중보기도의 결과는 때로는 한 지역, 한 도시, 한 나라, 한 민족을 구원하고 세계의 역사를 변혁시키는 엄청난 사건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주께서는 예루살렘 성에서 공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찾으면 그 성을 사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렘 5:1).
욥은 이런 경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할 사람이 없음을 한탄합니다(욥 9:3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중재자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시며(사 59:16)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고 성의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하나님으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겔 22:30)을 찾고 계십니다.
질문 4베드로전서 2:9절에서 성경이 성도들을 단순한 제사장이 아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고]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만인 제사장을 말하는 것으로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라는 말이다.
우리의 제사장적 기도의 사역으로 한 나라, 한 민족, 한 도시, 한 지역, 교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도로 이미 왕 노릇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열방들 가운데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상급은 어디 있겠습니까?
▣ 학습훈련 - 다음과 같은 중보기도 사역 훈련 목표를 위해 기도합시다.
1. 훈련에 참여하는 우리들 개개인이 중보기도자가 되어 기도응답의 풍성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2. 우리의 기도의 승리가 우리의 이웃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또한 중보기도자로 헌신하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3. 이 사역을 통하여 우리 교회 안에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고 이 부흥의 불길이 다른 교회와 우리 사회로 번져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중보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만약 우리가 찬양과 기도로 반 자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하여 백 리를 다가오실 것이다” -에드윈 아놀드 경- 영국시인
Ⅱ. 중보 기도의 특권과 의무
(창 18:22-33)
암송요절“나는 너희를 위하여 하기를 쉬는 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 12:23)
오늘 본문에서는 유황불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지기 직전, 한 민족 한 도시민들의 운명을 붙들고 기도하는 중보기도자 아브라함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넘어서서 또 하나의 기도자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조국과 사회의 불확실한 내일, 교회 앞에 놓여진 엄청난 선교의 과제, 우리들의 가정과 자녀들의 절실한 필요, 삶에 찌든 채 고난의 짐을 지고 있는 이웃들의 고통스런 삶의 부담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자 당신과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우리가 나 자신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웃들의 문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그 대답은 본문 27절에서 아브라함이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고 말한 고백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중보기도는 성도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은 여호와 하나님께 근접할 수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물론 죄인인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출발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에서부터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여호와 서 있다가”(22절) “가까이 ”(23절)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은 하나님과의 교제는 아브라함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특권을 자기 만족을 위한 탄원의 기회가 아닌 이웃을 위한 탄원의 기회로 사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장관이었던 느헤미야가 왕 앞에 나아가 자기 조국 예루살렘의 성벽재건을 탄원한 것과도 같습니다. 또한 이것은 메데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 앞에 에스더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가 자기 민족(유대)의 구원을 탄원한 것과도 같습니다.
실로 우리가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이웃들의 연약함을 탄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이상의 특권인 것입니다. 그것은 티끌과도 같은 우리가 감히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질문 1출애굽기 33:1-4절을 읽고 같은 장인 33:12-16절의 말씀과 비교하며 중보기도의 특권을 말해 보십시오.
2. 중보기도는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고모라 주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정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그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결정에 대한 취소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소돔․고모라 주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호소한 것입니다. 이 백성들에 대한 용서의 기도야말로 아브라함의 가장 절실한 사랑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기도를 여섯 번 이상 되풀이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소돔․고모라인들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도덕적 의무”로 수용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자기 민족 앞에 고백하여 이르기를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하기를 쉬는 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 12:23)고 말합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티끌과 같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고상한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2출애굽기 32:30-32절까지의 모세의 중보기도를 읽고 그가 이런 기도를 하게 된 심정을 말해 보십시오.
마무리 말씀
중보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 특권을 행사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요? 중보기도가 성도의 의무라면 나의 기도생활 중에 얼마만큼이나 이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는지요? 아브라함처럼 이제 우리는 주께 나아가 감히 주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보의 기도를 드리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요구하셨던 “의인됨”의 모습에 못 미치는 우리의 “죄인 됨”을 먼저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3요한일서 1:9절에서 2:2절까지를 읽고 예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지를 말해 보십시오.
▣ 기도 학습훈련
1. 의로운 중보기도자로 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성령께서 지적하시는 죄들을 자백하십시다.
2. 사무엘에 의하면 중보기도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중보기도의 의무를 불이행한 불순종을 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3. 오늘 세 가지의 중보기도 제목을 찾아 기도합시다.
․민족을 위한 기도제목 :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
․이웃을 위한 기도제목 :
▣ 과제
1. 복습하십시오.(특히 암송성구를 암송해야 합니다.)
2. 매일 기도시간을 현재보다 15분 정도 더 증가시켜 보십시다.
3. 매일 기도 시간 중 절반 정도는 중보기도 시간으로 사용해 보십시다.
4.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웨슬리 듀웰 저의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생명의 말씀사)를 읽어 보십시오.
Ⅲ. 중보 기도의 승리의 모본
(출 17:8-16)
암 송
요 절“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아브라함 링컨은 미 남북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로버트 리 같은 명장이 없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수고를 치하하는 참모들에게 “아닐세, 치하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네. 승리를 주신 그 분에게 엎드려 감사를 드리세”라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중보기도의 위력이 그대로 나타나고 영적전쟁에서 승리의 모범이 되는 사건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이라는 강적과 싸우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아말렉에 대하여는 신명기 25:17-19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이라는 강적과 싸워 승리했을 때, 제일 먼저 한일은 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단을 이름하여 “여호와 닛시”, 즉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라’고 불렀습니다. 그 깃발은 곧 승리의 깃발이었다. 주의 백성들이 쟁취한 이 빛나는 승리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1. 기도의 승리
이 싸움에서 실제적인 전사는 여호수아였으나 본문이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라”( 11절)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싸움은 결국 기도의 싸움이었고 이스라엘의 승리는 결국 기도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미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의 원인을 분석한 많은 이유들이 제시되었을 때, 링컨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 그것은 기도일세”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A.T. 피어선이라는 선교사겸 전기 작가는 한 사람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프러시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았던 이 사람, 지위도 교육도 돈도 배경도 없이 이 한 사람이 이룩한 엄청난 사역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2천명이 넘는 고아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그는 단 한 번의 도움을 요청한 일이 없이 평생 7백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였다. 그에 의해 여러 개의 성경 학교와 예배당이 세워졌다. 그로 인하여 수 백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그의 사역의 단 하나의 비밀은 기도였다. 그의 이름은 브리스톨 사람 죠지 뮬러이다. 죠지 뮬러는 ‘이 땅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빈곤의 존재한다. 그것은 기도의 빈곤이다’라고 했다. 그의 삶의 부요한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던 것이다.”
2. 중보기도의 승리
기도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찬양의 기도, 감사의 기도, 고백의 기도, 간구의 기도 등 그러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기도는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날의 승리는 여호수아를 위한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산상의 모세가 그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그 모습은, 하늘의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롬 8:34).
오늘날 성도들의 승리와 번영과 축복은 주님의 기도에 힘입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그들의 승리와 번영, 축복의 원인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캐리는 42년간의 인도 사역을 통해, 그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45개의 인도방언으로 성경 전체를 번역하였고, 여러 권의 책과 사전을 집필하였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또한 많은 젊은이들을 세계 선교의 장에 헌신케 하였습니다.
‘캐리전’의 작가는 캐리가 42년간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밀은 영국에서 42년간 병상에 누워 기도한 캐리 누님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질문 1히브리서 7:24-25절의 말씀을 당신 자신의 말로 알기 쉽게 풀어서 기록해 보십시오.
질문 2로마서 8:34절에 이어 35-39절에 나타난 주님의 중보기도가 우리의 삶을 향해 주실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를 요약해 보십시오.
3. 팀을 이룬 중보기도의 승리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손을 내리고 싶을 때 모세의 양편에서 손을 붙들어 올린 이들은 아론과 훌이었습니다(12절). 이들은 일종의 기도 동역자들이요 중보기도 팀(Team)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물론 개인적인 중보기도에도 응답하시지만,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합심하여 드리는 중보기도 팀의 기도에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함께하심과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마 18:19-20).
사람의 손은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합니다. 노동의 손, 사랑의 손, 협력의 손, 도박의 손, 비난의 손, 빌라도와 같은 무책임한 손 등. 이 모든 손의 표현 중 중보기도를 위해 높이 쳐든 기도의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성경은 각 가정의 가장들에게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딤전 2:8)
질문 3골로새서 4:2-3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4:7절 이하에서 그가 소개하는 동역자들의 명단과 그들에 대한 묘사를 적어 보십시오.
질문 4전도서 4:9-12절의 말씀을 읽고 사역에 있어서 팀워크(Teamwork)의 중요성을 말해 보십시오.
마무리 말씀
이스라엘 백성의 르비딤에서의 승리는 결국 기도의 승리, 특히 중보기도의 승리였고 그 중에서도 팀을 이루어 드린 중보기도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승리의 비밀을 배워 실천한다면 우리들의 역사와 삶의 마당에는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 학습 훈련
1.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중보기도 팀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보십시오.
2. 세 사람씩 짝을 지어 각자가 하나씩 중보기도 제목을 제출한 다음, 각 기도제목을 위한 기도자를 가운데 세우고, 두 사람이 좌우에서 그의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 과제
1. 복습과 예습을 하십시오.
2. 죠지 뮬러의 자서전을 앞으로 1개원 이내에 읽고 그 소감문을 1 페이지로 기록하여 제출하십시오.
Ⅳ. 교회적 중보기도의 중요성
(행 12:1-12)
암 송
요 절“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는 때로 나갈 길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 절망의 벽을 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장에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8절)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도 한때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삼상 20:3)이라고 했습니다. 욥은 “죽기를 바라도 죽을 수 없으며 ....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욥 3:21,26)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낫다”(욘 4:8)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에게도 같은 절망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던져진 신세입니다. 며칠 전 사도 야고보가 투옥되어 칼로 죽임을 당한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양쪽 팔목에 매인 두 줄의 쇠사슬은 그가 도망할 여지가 없도록 다른 죄인의 팔목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옥문에는 두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베드로가 갇힌 감옥과 거리 사이에는 두 개의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6-7절). 그는 유월절기가 끝나는 날 처형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7절). 우리는 이 기적의 비밀을 알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옥문들을 열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베드로를 가두었던 옥문들이 열릴 수 있었습니까?
1. 교회적인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은 개인을 위한 개인의 기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을 위한 교회의 기도 곧 공동체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개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두세 사람 이상이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공동체의 기도에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기도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8:19-20절의 말씀에서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주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 하는 곳에 친히 함께 하실 것과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두 세 사람은 단순한 그룹이 아니라 교회의 이름으로 된 모임인 것을 문맥에서 알 수 있습니다(마 18:17 말씀 참조).
주께서는 성도들이 지상에서 고독한 싸움을 싸우지 않도록 주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게 하시고, 이런 교회의 기도를 존중히 여겨 열납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교회에 알기기를 기뻐해야 하고, 교회는 또한 마땅히 이들을 위해 기도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질문 1내가 이 순간이라도 교회에 기도제목을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신 어떤 기도제목이 있으신지요? 두 가지만 적어 봅시다.
․일반적 기도제목 :
․긴급한 기도제목 :
2. 교회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간절하다”( Fervent)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내 모든 열정과 기운을 소모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마치 생명을 버리는 듯한 모든 것을 건 기도를 말합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에 대하여 “거기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급진적인 젊은이들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지하감옥의 습격”을 계획했을지 모릅니다. 보다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교인들은 헤롯왕에게 돈으로 흥정을 하여 베드로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지 모릅니다. 허무주의적 교인들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 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는 지도자들은 “기도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었고, 그들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감옥의 문을 연 것입니다.
질문 2야고보서 5:17-18절의 말씀을 읽고 엘리야가 하늘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한 비밀은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십시오.
질문 3사무엘상 1:9-18절에서 여인 한나의 기도 중 그녀의 간절함을 나타내 보여주는 대목들은 무엇입니까?
3. 교회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단회적인 한 번의 기도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베드로가 석방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옥문을 나온 후 마가 요한의 다락방 교회의 기도처에 당도했을 때, 교회는 아직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천사를 움직인 것은 교회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그 기도제목에 대한 부담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는, 우리는 기도를 시작한 그 제목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지속적인 기도는 바로 기도를 응답하시게 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의 표시인 것입니다. 이 지속적인 기도가 옥문을 연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를 시작했다가 응답되지 못한 채로 기도를 중단했던 것 기도 제목들은 없는지요? 두 가지만 생각해 내어 간절하게 매일 기도해 보십시다.
▣ 과제
1. 복습하십시오.
2. 학습 훈련의 기도제목들을 매일 기도하십시오.(부담감이 사라질 때까지)
3. 예습하십시오.
Ⅴ. 응답받는 기도의 태도
(왕상 18:41-46)
암 송
요 절“오직 구하고 조금도 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기도가 소극적으로는 낙심과 절망의 옥문을 여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는 은혜와 축복의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시대의 민족의 불행을 끌어안고 기도함으로 하늘문을 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가득했던 우상의 죄(왕상 16:30-33)를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하늘문을 닫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늘은 비를 주고 땅은 열매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응답의 기적을 낳은 엘리야의 기도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엘리야의 어떤 뛰어난 인간됨을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야고보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역설합니다.(약 5:17) 다만 그의 기도가 하늘문을 연 것입니다. 엘리야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하늘 못지 않게 오늘 우리들의 하늘도 어둡고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 하늘문을 열어 우리네 삶의 마당에 은혜와 축복의 장마비가 쏟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지금 메마른 땅에 비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비를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알아야 합니다(왕상 18:1). 부모 된 이들이 자녀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면 자녀들이 “아빠(엄마) 약속했잖아요” 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하나님의 뜻(의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들이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 기도가 자기 욕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보다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분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은 또한 말씀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질문 1느헤미야 1:4-11절에서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습니까?
질문 2야고보서 4:1-3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할 수 없는 기도는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2. 우리는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구약학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기도의 모습은 ① 자신의 피조물성의 고백 ② 죄인됨의 고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겸손함의 모습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겸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피조물성과 죄인 됨을 망각한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벧전 5:5) 증거합니다. 겸손은 기도자의 필수조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의 용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질문 3기도하면서 아직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 영역들은 없는지 살펴 보십시오.
3. 우리는 기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가 기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비가 올 것을 기대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 사환에게 “바다편을 바라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나이다”고 보고하는 사환에게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명합니다. 그가 기도를 믿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우리 주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는 기적을 행치 아니하셨는데 그 이유는 저들이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께 대한 기대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기대가 없는 곳에서 주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질문 4이사야 30:18절의 말씀을 읽은 소감을 기록해 보십시오.
4. 우리는 기도한 바를 들으신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 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기도했다면 우리는 기도한 바를 하나님이 이미 들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그의 사환이 일곱 번째 바다 편을 살핀 후 “바다에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를 하자 아합 왕에게 “비를 맞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믿음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이미 자기의 기도를 들으신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응답의 증거가 당장에 나타나지 아니할지라도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사환은 처음에 “아무것도 없다” 고 보고했으나 엘리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5야고보서 1:6-8절의 말씀을 읽은 후 앞으로의 기도생활에 대한 나의 결심을 기록해 보십시오.
▣ 마무리 말씀
엘리야의 이런 기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1. 그는 단순히 “비”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큰 비”를 주셨습니다(45절).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이”이십니다(엡 3:20)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엘리야에게 “여호와의 능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46절). 기도는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하늘 문은 열리고 있는지요”
▣ 기도 학습훈련
1. 짝기도를 통해 한 사람은 엘리야, 한 사람은 사환이 되어 보십시오.
엘리야가 기도할 때 사환은 기도의 조력자가 되어 기도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맞습니다. 주님”, “( )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등으로 돕습니다. 특히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기도의 능력을 힘입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2. 성령의 능력을 입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능력 입음”이야말로 모든 유형의 사역의 기초가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9)
▣ 과제
1. 복습하십시오.
2. 매일 기도 시간에 먼저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3. 예습하십시오.
Ⅵ. 병든 자를 위한 기도
(약 5:13-18, 막 2:1-12)
암 송
구 절 “ 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을 얻으리라”(약 5:15)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삼중사역은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지금도 성도들을 고치시고 또한 성도들을 통하여 병든 자를 치유하십니다. 물론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시는 영적 치유를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체적으로 병든 자들이 그분께 나아왔을 때 그들을 다 고치셨습니다.(마 8:16) 그리고 마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의 한 결과적인 예언의 성취라고 선언하였습니다.(마 8:17)
인간이 육체적인 질병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롬 8: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우리에게 “이미” 질병을 이기는 승리를 부분적으로나마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병든 자를 위한 기도의 근거와 원리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주께서는“교회”를 통하여 치유의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주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손으로 병든 자를 만지고 고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이 치유사역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교회는 복음전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이 치유사역의 명령에도 순종하여 병든 자를 고치시는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① 영적 지도자들(약 5:14)과 ② 병고침의 은사를 가진 이들(고전 12:9) ③ 병든 자를 위한 성도들의 믿음의 기도(약 5:15, 막 16:17-18)를 통하여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성도들과 동시에 모든 성도들에게 전도를 명하신 거서처럼, 어떤 특별한 성도들에게 병고침의 은사를 주어 기도하게 하심과 동시에 모든 성도들이 치유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명하십니다.(약 5:13)
2. 주께서는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병을 치유하십니다.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약속합니다. 이미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9:20-22절의 말씀에 따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을 때 예수께서는 “그녀의 이 그녀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전선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공급하시어 치유를 일으키십니다.
3. 주께서는 때대로 “타인들의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일반적으로 병든 자 본인의 믿음이 치유의 방편으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본인이 아닌 타인들의 믿음을 통하여 주님이 신유를 행하시는 사례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2:1-12절의 본문에 나타난 중풍병자의 치유 사건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온 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막 2:5) 요한복음 4:46-54절에는 왕의 신하였던 아버지의 믿음을 의지하여 그의 이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회생한 기적의 치유가 증언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병든 자를 위한 중보기도의중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병든 이웃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신유의 기도에는 언제나 영적 치유의 사역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야보고서 본문은 병든 자를 위하야 기도할 때 죄문제에서의 자유(영적 치유)를 위해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16절) 모든 병이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병은 죄 때문에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육체그이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에서 그분 앞에 나타난 사람이 직면한 절실한 문제가 “중풍병”이었음에도 그보다 먼저 “소자야, 네 을 받았느니라”(5절)고 선언하심으로 먼저 그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든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동시에 그의 심령의 질환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고전 12:8)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 마무리 말씀
A. 기도의 단계(Do's)
1. 병자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구하십시오.(마 9:35-36)
2. 치유에 관계된 은사들을 구하십시오.(예 : 신유, 권위, 혹은 지혜, 지식의 말씀)
3. 잠시 대화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십시오.(진단)
4. 치유의 방법을 결정하십시오.(예 : 기도, 안수, 기름, 명령이나 영적 치유 등)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5.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6. 기도한 후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① 즉석에서
② 지속적으로 필요할 때엔 계속 기도하십시오.
B. 주의 할 일(Don'ts)
1. 모든 질병을 사단의 역사나 죄 때문이라고 간주하지 마십시오.
2. 의학적 수단을 정죄하거나 금하지 마십시오.
3. 치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치유되었다고 선언하지 마십시오.
4. 치유되지 않은 사람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5. 치유의 결과를 과장하지 마십시오.
6. 치유의 결과를 인하여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십시오.
▣ 기도 학습훈련
1. 병든 자를 위해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기도하십시오. 이 네 사람이 병든 이웃의 치유를 위해 손을 얹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십시다.
2. 앞으로 3개월 이내에 다음 책자를 읽고 치유사역에 응용해 보십시오.
“당신도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켄 블루 지음(나침반사 간행)
▣ 과제
1. 복습하십시오.
2. 금주 내에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병중에 있는 성도를 찾아가 네 분이 한 조가 되어 방문하여 치유기도를 하십시오.
3. 예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