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라는 나라가 상당한 군사력과 경제력의 소유국이라는 것을 누차 지적하였습니다. 동한 및 서한의 기록,魏나라,晋나라의 기록에까지 강대국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북부여,동부여 할 것없이 강국사이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할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 평가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운영자 주)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그들의 재주가 모두 주몽을 따르지 못하였다. 그의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했다. “주몽은 사람이 낳지 않았으며, 그 사람됨이 용맹하므로, 만일 일찍 처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청컨대 그를 제거하소서.” 그러나 금와왕이 이를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金蛙>有七子, 常與<朱蒙>遊戱, 其伎能皆不及<朱蒙>. 其長子<帶素>言於王曰: “<朱蒙>非人所生, 其爲人也勇, 若不早圖, 恐有後患, 請除之.” 王不聽, 使之養馬.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3 '동명왕조'
왕자와 여러 신하들은 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주몽의 어머니가 그들의 책략을 몰래 알아 내고 주몽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장차 너를 죽이려 한다. 너의 재능과 지략이라면 어디간들 살지 못하겠는가? 여기에서 주저하다가 해를 당하기보다 차라리 멀리 가서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에 주몽은 오이,마리,협보 등의 세 사람과 벗이 되어, 엄호수에 이르렀다.
王子及諸臣又謀殺之. <朱蒙>母陰知之, 告曰: “國人將害汝. 以汝才略, 何往而不可? 與其遲留而受辱, 不若遠適以有爲.” <朱蒙>乃與<鳥伊{烏伊}><摩離><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淲水>[一名<盖斯水>, 在今<鴨綠>東北].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3 '동명왕조'
14년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곳의 왕 금와가 그를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고, 그의 신묘를 세웠다.
十四年, 秋八月, 王母<柳花>薨於<東扶餘>. 其王<金蛙>以太后禮,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3 '동명왕조'
대소의 동부여를 정벌하지 못하고 주몽도 고구려를 창업하고 세상을 뜨게됩니다.
유리명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유리인데, 혹은 유류라고도 하였다. 그는 주몽의 맏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씨이다. 이전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 들었는데 그녀에게 태기가 있었다. 그녀는 주몽이 떠난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유리였다.
<瑠璃明王>立. 諱<類利>, 或云<孺留>. <朱蒙>元子, 母<禮>氏. 初, <朱蒙>在<扶餘>, 娶<禮>氏女有娠. <朱蒙>歸後乃生, 是爲<類利>.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3 '유리왕조'
14년 봄 정월,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보내와 방문하고, 인질의 교환을 요청하였다. 유리왕은 부여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태자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도절이 두려워하여 가지 않자 대소가 분개하였다. 겨울 11월, 대소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였으나, 큰 눈이 내려 동사자가 많이 생기자 곧 돌아갔다.
十四年, 春正月, <扶餘>王<帶素>遣使來聘, 請交質子, 王憚<扶餘>强大, 欲以太子<都切>爲質, <都切>恐不行, <帶素>恚之. 冬十(-一)月, <帶素>以兵五萬來侵, 大雪人多凍死, 乃去.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제 13 '유리왕조'
32년 겨울 11월, 부여가 침범해왔다. 유리왕이 아들 무휼(대무신왕)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이를 방어하게 하였다. 무휼은 병력이 적어 대적할 수 없음을 염려하여, 기묘한 계책을 내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부여 군사가 곧바로 학반령 아래에 이르자, 숨겼던 군사를 출동시켜 불의의 공격을 하니, 부여 군사들이 크게 패하여 마필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무휼이 군사를 풀어 그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三十二年, 冬十一月, <扶餘>人來侵. 王使子<無恤>, 率師禦之. <無恤>以兵小, 恐不能敵, 設奇計, 親率軍, 伏于山谷以待之. <扶餘>兵直至<鶴盤嶺>下, 伏兵發, 擊其不意, <扶餘>軍大敗, 棄馬登山. <無恤>縱兵盡殺之.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3 '유리왕조'
겨울 10월,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통하여 붉은 까마귀를 보내왔다. 그 까마귀의 머리는 하나이고 몸은 둘이었다. 처음에 부여 사람이 이 까마귀를 얻어서 왕에게 바쳤는데, 어떤 사람이 부여왕에게 “까마귀는 검은 법인데, 이제 빛이 변하여 붉게 되었고, 또한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이니, 이는 두 나라가 병합될 징조입니다. 왕께서는 고구려를 합병함이 어떤가요?”라고 말하였다.
대소가 기뻐하며 붉은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내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한 말도 전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고 부여왕에게 대답하기를 “검은 색은 북방의 색깔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의 색이 되었으며, 또한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인데, 그대가 이것을 얻었으나 가지지 못하고 나에게 보냈으니, 두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구나!”라고 하였다. 대소가 이 말을 듣고 놀라며 후회하였다.
冬十月, <扶餘>王<帶素>遣使送赤烏, 一頭二身. 初, <扶餘>人得此烏獻之王, 或曰: “烏者黑也, 今變而爲赤, 又一頭二身, 幷二國之徵也, 王其兼<高句麗>乎?” <帶素>喜送之, 兼示或者之言. 王與群臣議答曰: “黑者, 北方之色, 今變而爲南方之色, 又赤烏瑞物也, 君得而不有之, 以送於我, 兩國存亡, 未可知也.” <帶素>聞之, 驚悔.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4 '대무신왕조'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 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그는 왕에게 절을 하고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친다하니 제가 따라 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대무신왕이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北溟>人<怪由>. 竊聞大王北伐<扶餘>, 臣請從行, 取<扶餘>王頭.” 王悅許之.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4 '대무신왕조'
5년 봄 2월, 왕이 부여국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그곳에는 진흙 수렁이 많으므로 왕은 평지를 선택하여 병영을 만들고, 말 안장을 풀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두려워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부여왕이 전국의 군사를 동원하여 출전하였다. 그는 고구려가 대비하지 않는 틈을 노려 기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말을 급히 몰아 진군하다가 진흙 수렁에 빠져서 앞으로 갈수도 뒤로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왕이 이 때 <괴유>를 출동시켰다. 괴유가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가니, 부여의 1만여 군졸들이 넘어지고 쓰러져서 버틸 수 없었다. 이 때 괴유가 곧바로 전진하여 부여왕 대소를 붙잡아 목을 베었다.
五年, 春二月, 王進軍於<扶餘國>南, 其地多泥塗{淖}, 王使擇平地爲營, 解鞍休卒, 無恐懼之態. <扶餘>王擧國出戰. 欲掩其不備, 策馬以前, 陷濘不能進退. 王於是揮<怪由>. <怪由>拔劍號吼擊之, 萬軍披靡, 不能支. 直進執<扶餘>王, 斬頭.
『삼국사기』「고구려본기」권 제 14 '대무신왕조'
동부여와 고구려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초기부터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그러나 그 후시대에까지 동부여가 기록에 보이는 것을 보아서, 이때 동부여가 망했다고 보기는 석연찮은 점이있습니다.
운영자 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