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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대한 오해의 성경 절들.
1. 예수의 육체로 폐지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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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설명] 이 말씀을 과연 십계명이 폐지된 것으로 불 수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희생을 통해서 폐지된 것은 제사 제도와 관련된 의식법(제사법)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십계명을 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마5:17)라고 말씀하셨다. 결코 폐지될 수 없는 십계명과 그리스도의 삽자가로 폐지된 제사법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십계명(도덕법)] ①하나님께서 기록(출24:12)②돌에 기록(출31:18)
③법궤 속에 보관(신10:5)
[제사법(의식법]①모세가 기록(신31:9)②책에 기록(신31:24)③법궤 옆에 보관(신31:26).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는 “그런즉 율법이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율법이 범법(犯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면, 어떤 법을 범했다는 것인가? 그 원래의 법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범했을 때에 그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므로 제사와 관련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제사법은 “약속한 자손이 h시기까지”만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사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돌아가심으로 폐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2. 십계명을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 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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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설명] 이것은 분명히 십계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의문’은 에베소 2장 15절의 ‘의문’과는 다르다. 에베소의 의문은 원어로 ‘도그마’인데 ‘교리’ 혹은 ‘법령’의 뜻이 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3장7절의 ‘의문’은 그람마(νραμμα)로서 ‘글자’라는 뜻이다. 십계명 글자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 위의 성경 절이 십계명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3.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변경해도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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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설명] 이 말씀의 본 뜻은 무엇인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안식일을 사람의 형편에 맞추어 안 지켜도 되고 아무 날이나 지켜도 된다는 것인가? 성경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성경을 마음대로 변경하지 않듯이,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다고 해서 안식일을 변경하라는 말이 아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 있는 것이니 안식일 때문에 속박되거나 짐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안식일을 즐겁게 그리고 존귀하게 지키도록 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4. 안식일을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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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2:14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설명] 여기에서 ‘의문에 쓴 증서’는 헬라어로 ‘케이그라폰’인데 원래 단어의 뜻은 손으로 쓴 이라는 의미이며‘ 실제적으로 법정에서 사용될 때에는 ’빚의 문서‘를 지칭하여 사용된 단어이다. 우리를 대적하는 죄의 빚 문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도말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절기나 제사과 관련된 날에 대하여 편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두 종류의 안식일이 언급되어 있다 .성경 시대에는 오늘날의 공휴일 이라는 말을 안식일 이라는 용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한 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제일일 안식일과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명절이나 축일과 관련된 안식일들이 있었다. 레위기 23장을 읽어보면 제7일 안식일은 별도로 언급(3절)되어 있고, 4절부터 ‘기한에 미쳐’ 라는 말은 어떤 명절이나 축일을 가리키고 있다(TEV, "at the appointed times"- "정한 때에", KJV, "in their seasons"-"계절을 따라")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나 명절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공휴일들(안식일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제칠 일 안식일(요일 안식일) 외에 그들이 지키던 명절 안식일(날자 안식일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①1월 15일 안식일(무교절 시작) ② 1월 21일 안식일(무교절 끝날) ③ 3월 6일 안식일(오순절) ④ 7월 1일(나팔절) ⑤ 7월 10일 (대속죄일)⑥ 7월 15일 안식일 (초막절 시작)⑦ 7월 22일 안식일(초막절 끌날)
이러한 안식일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구속 사업이 완성된 이후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들이므로 그러한 절기나 명절 안식일에 대하여는 논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5. 율법은 요한의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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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설명] 신약에서 “율법이나 선지자”라고 할 때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구약성경은 침례 요한 때까지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이 폐지되었다는 말도 아니고 율법이나 계명이 폐지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17절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 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니라”
6. 모든 날이 다 같으니 자기 마음에 정하여 지키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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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4: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설명] 안식일 무용론에 골몰하다 보면 안식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성경절도 안식일과 관련시켜 아무 날이나 지켜도 된다는 식의 이론을 전개할 수 있다. 이 성경절의 배경은 이렇다. 당시 로마에는 유월절파와 요제절파의 대립이 있었고, 유월절파 내에서도 강건파와 온건파 사이에 유월절 양을 먹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호세아서에 보면 안식일이 폐지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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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2:11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설명]이 성경 절은 문장 앞뒤를 잘 살펴보면 안식일 자체를 폐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은 하나님께 배도한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되어 그 나라의 모든 절기와 명절을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우리의 설날이나 추석이나 개천절과 같은 명절과 국경일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안식일이 폐지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8. 구약의 할레제도가 폐지된 것처럼 안식일도 폐지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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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 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설명]할례 제도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며(행7:8)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시로서 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므로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그리스도인 들은 복음에 의해서 더 이상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7:19)
그러나 안식일 제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계명으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 주어진 것이며, 복음에 의해서 폐지되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9.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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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설명] 여기에서 날 이라는 말 속에 안식일 이 포함되는가? 이 곳의 날(헤메라스)은 복수로 되어 있으며, 보통의 날들이 아니라 유대 법의 규례에 의하여 지키는 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절기 안식일이나 금식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제칠 일 안식일이 여기의 날들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성경에서 재칠일 안식일에 대하여 ‘헤메라스’를 사용한 적 없다. ② 제칠 일 안식일은 날이나 달이나 절기들이 제정되기 2.500년 전 창조 시에 시작된 것이므로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없다.③ 안식일은 창조 시에 인간을 위한 축복의 제도로 주신 것이므로 안식일 지키는 것이 헛된 일이 될 수 없다.
10. 율법은 위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행이므로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는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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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설명] ‘몽학선생’이란 노예의 신분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 귀족 자녀들의 교육을 돕는 일종의 가정교사였다. 몽학선생은 그 주인의 자녀들이 학교 교육에 익숙해지도록 초등학문을 가르쳤으며 학교에까지 안전하게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을 수행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몽학선생에 비유하고 있다 .비유란 진리를 설명하는 보조 수단이지 비유자체가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이 비유는 몽학선생(율법)의 존재나 그 기능이 팔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몽학선생을 의지하여 그 아래서 구원을 받으려는 인간의 시도가 필요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이 분명해졌으므로 다시는 몽학선생 아래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폐지된 율법과 폐지되지 못할 율법에 대하여는 이미 공부하였다.
11.안식일은 유대인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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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유대인이란 넓은 범주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말한다. 안식일은 그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서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들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지키라고 하셨고 이사야 56장 6,7절에서도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삼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선상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 이라고 했다. 안식일은 유대인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37)이다.
12.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기 때문에 다른 계명들은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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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설명] 사도 요한은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 후, 곧 “이제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ㄹ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ㄴ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1:5,6)고 말한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신명기 6장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왔건 계명이다. 그것은 결코 새 계명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사랑 없이 율법의문자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재차 반복해 주신 것이다. 더구나 “사랑만하면 된다”는 것은 전혀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13. 지금도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출 35: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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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안식일 계명은 근본적으로 안식일의 노동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못 하게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광야에서 불을 붙이는 일은 대단한 노동이었다. 그러므로 음식은 안식일이 되기 전에 미리 조리해 두도록 하였다(출16:23). 하나님께서는 난방이 필요 없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불을 피우기 위하여 공연한 노동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현 시대에 있어서, 안식일 아침에 음식을 데우기 위해 가스 렌지에 불을 붙이는 일은 결코 힘든 노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4. 지금 우리가 알고 잇는 제 7일이 창조 당시부터 지켜온 안식일이라는 확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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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증거가 있다. 첫째는 수천 년 동안 안식일을 생명같이 지켜온 유대인들이 우리와 동일한 달력을 사용하여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 둘째는 만일 중간에 안식일의 순환이 깨어져 잘못되었다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로 잡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도 안식일마다 “자기 규례대로”(눅4:16) 회당에 가셔서 안식일을 지키셨다. 세 번째로는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가 마크 핀리(Mark A. Finley) 목사의 질문에 대하여 보내온 답신에서 확인된다.
“마크 핀리 귀하.
그리니치 천문대에 보낸 귀하의 편지가 여기에 도착하였으며 천문대 대장께서 저에게 답장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칠일 제도의 계속성은 유대 종교의 아주 시초부터 유지되어 왔습니다. 찬문학자들은 시간, 달력의 날짜, 연대와 관련된 것을 결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주일은 시민적, 사회적, 종교적 주기인 이상 달력의 조정으로 말미암아 방해 받아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칠일주기를 없애려는 어떠한 시도도 항상 유대 민족 당국의 가장 결정적인 반대를 야기 시켰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교란 시도가 결코 실행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오력으로의 변경(1582-1972)는 주(週) 중 날의 연속이 어 s제나 방해받지 않도록 만들어져 왔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R, H. 터커올림. 공보관”(미크핀리저. 김광오 역, 거의 잊혀진 날, 서울 시조사 : 1992. p. 30).
15. 국가마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안식일 시간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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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다음의 말씀에 그 답변이 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ㄴ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례23:3). 주님은 “거하는 각처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다. 지구상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서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16. 날짜 하루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너무 율법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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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이것은 예배일이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를 가리지는 것이 아니라 주임의 계명에 순종하느냐 사람이 만든 계명에 순종하느냐의 문제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느냐 인간의 권위에 순종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고,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어 경배”(막7:7)한다고 말씀하셨다. 날짜 하루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명령에 순종하느냐 하는 매우 결정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율법주의란, 믿음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구원은 틀림없이 믿음으로 얻는다. 참된 구원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선하게 살도록 사람을 변화시킨다.
17. 다른 교회의 수많은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은 이런 사실들을 몰라서 일요일에 예배 드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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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비슷한 질문이 신약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탐하러 하속들을 보냈다. 그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요7:46~48).
하속들이 예수님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은 “속지 말라. 종교 지도자들을 보라, 예수가 정말 메시아였다면 그들이 너희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수천 년간 기다려온 매시야인 것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그들이 구약성경을 외우다시피 연구하며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편견에 가리워 눈이 어두워진 결과로 구약의 중심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도 얼마든지 그러한 실수를 할 수 있다.
<영혼문제의 성경 절들>
1. 성경에 보면 영혼은 죽을 수도 없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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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에 영혼이라고 변역된 원어는 헬라어로 ‘푸쉬케’ 이다. 푸쉬케라는 단어는 영혼, 목숨, 생명, 마음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역상 가장 적절한 낱말은 선책하려면 문장의 전후 문맥을 면밀히 살피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 만태복음 10장안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교훈하시는 말씀들이다. 전도하면서 당할 여러 가지 시련과 핍박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에 대하여 사람은 ‘몸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하는 핍박은 최악의 경우 몸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 선교하는 정신을 사람이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영혼이로 번역된 푸쉬케라는 말은 다른 여러 경우(행15:24; 엡6:6; 골3:23등)에서처럼 “마음”으로 번역해야 합당한 것이다.
그리고 신약이나 구약 성경에 “생기” “호흡” “신” “영” “영혼” “생명” “목숨” “생물” “마음” 등 여러 가지로 변역된 헬라어(퓨뉴마, 푸쉬케) 단어가 1658회 나오지만 불멸하거나 몸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영혼의 개념으로 사용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영혼”이라는 말은 마음과 몸을 포함한 사람 전체를 묘사할 때 쓰이는 말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을 죽일지라”(겔18:20)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눅1:46).
2. 예수님 십자가 옆에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그 날 낙원을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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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설명]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예수께 구원을 요청했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마치 강도가 그 날 당장 낙원에 간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다. 위 성경 절에서 ‘오늘’ 이라고 하는 부사는 원래 “내가 오늘 네게 말하노니”라고 했어야 할 부분인데, 편견을 가진 번역자들이 본래의 헬라어 원문에는 있지도 않은 쉼표를 ‘오늘’ 앞에 찍어 넣음으로 문장을 이해하는데 혼란이 온 것이다.
우선 강도의 요청 내용을 정확하게 살펴보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공동번역 성경은 이 성경 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강도의 요청의 요청은 당잔 영혼을 구언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기를 구원하여 주시기를 요청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강도의 구원을 그날 바로 약속하신 것이지 그날 그의 영혼을 낙원으로 데려가신 것이 아니다. 강도의 실제적인 구원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예수님 자신도 돌아가신 그날 낙원에 가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신 다음의 말씀을 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자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올라간다 하라 (요20:17)
3.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는 죽은 후에 서로 교통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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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9~31(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설명] 이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영혼의 불멸을 믿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실화로 생각한다. 이 비유를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실화로 생각할 몇 가지 문제점들과 함께 이야기의 실상을 살펴보자.
①아브함의 품- 구원받은 의인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면, 아브라함 이전의 의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고통 받는 악인들이 아브라함에게 탄원을 해야 하는가?
② 눈, 손가락, 혀, -영혼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영혼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탈것이 없다. 뜨거움을 느끼는 감각도 없다. 몸이 아니기 때문에 눈이나 손가락이나 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문자적으로 적용ㅇ할 수 없는 이야기 이다. 영혼이 지옥에서 탄다는 것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매우 허망한 이야기에 불과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③아브라함의 품과 음부의 사이- 그 두 장소 사이의 거리가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혀를 서늘하게 해 줄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라면, 가족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졌을 경우 아브라함의 품도 생지옥에 불과할 것이다.
④실화가 아닌 비유- 이것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한 파피루스를 통해서, 예수님 당시 민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집트의 민속 설화였음이 밝혀졌다. 사실 누가복음 15장과 16장은 일흔 양, 잃은 은전, 탕자, 청지기, 부자와 나사로 등의 여러 가지 비유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있다.
⑤ 나사로라고 하는 이름- 설화나 우화 속에 아름이 들어있다고 해서 그것이 실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이다. 흥부와 놀부 이름이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실화는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들 때문에 소설이 실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다.(눅16:145)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사용하심으로 당시 부자들의 고정관념, 즉 부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므로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고쳐 주시려고 한 것이다.
4. 사람이 죽으면 그 신(神)은 하나님께로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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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2: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설명] 여기에서 신(神)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인데 이것은 본래 “바람”이라는 뜻이다. 아 단어가의미하는 것은 “호흡”이나 “생명”이다. 실제 이 말은 언제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활동하는 이성적인 존재에게만 사용되며 “르아흐”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대어 성경(성서교재 간행사, 1991년)에서는 “그때가 되면 흙에서 온 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네 생명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만일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 한다면 욥기 27장3절의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루아흐) 은 내코에 있느니라”는 말씀에서 영혼이 코에 있다는 우스운 말이 되고 만다.
5. 계시록 6장의 제단 아래 영혼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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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6:9,10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설명] 본문의 내용이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창세 이후로 순교한 모든 사람이 제단 아래 어떻게 모여 있을 수 있겠으며, 11절의 힌 두루마기를 육체가 없는 영혼들이 어떻게 입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아우의 핏소리가 ...호소”(창4:10)한다든지, “삯이 소리 지른다”(약5:4)든지,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계16:7)고 한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의인화된 표현이다.
핏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든지,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피에 대하여 신원하여 주기를 호소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의 죽음을 주목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의인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들은 하나 같이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했다(행7:60).
6. 사도 바울이 몸을 떠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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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설명] 이 성경절과 전후 문맥은 현대어 성경에 보면 더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가 죽으면 하늘에 있는 새로운 몸, 곧 영원한 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4절을 보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사리에 지처 신음하며 새 옷을 갈아입듯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것은 우리가 몸이 없는 영으로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이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힘들어 신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몸 입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 죽을 몸이 영원한 생명을 덧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고 되어 있다.
바울은 죽음에 굴복하는 지금의 육체를 벗고, 영원한 집 곧 영원한 육체를 언제 갖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는가? 죽은 직후인가?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 52~5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바울은 재림의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몸을 떠나’는 일은 죽음을 뜻하고 ‘주와 함께 거하는’ 일은 재림의 때에 죽은 자가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이 홀연히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될 때 성취될 것이다.
7.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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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설명] 바울이나 우리가 언제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인가? 죽는 즉시인가 ? 아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고 하셨고, 데살로니가 전서 4장16~18절에서는 “주께서 ...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다.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6~19) 만일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즉시 하늘에 갔다면 이 말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재림의 때부터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이제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곤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곶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딤후4:6~8).
8. 구원받은 영혼이 하늘에 없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누구를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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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설명]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오시겠다고 하셨다. 만약에 예수께서 구원받은 영혼들을 데리고 오신다면, 하늘에서 영혼들이 자고 있다는 말이 되어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말인가? “데리고 오시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악세이(αζει).이다. 사전에서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가다’ ‘데리고 가다’ ‘안도하다’ ‘데리고 가다’ ‘안내하다’ ‘데리고 오다’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세이(αζει).는 아고(αϒω)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 3인칭 단수임]
그러므로 문맥에 맞추어 성경을 번역하려면 ‘악세이’는 “데라고 가시리라”로 번역해야 합당하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9. 전도서에는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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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설명] 본문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고 되어있다. “누가 알랴”는 말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공동번역은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장담하랴”라고 번역했고 현대어 성경은 “인간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저 깊은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번역하였다. 여기 “혼”은 “루아흐”인데 공동번역이 숨으로 번역한 것은 잘한 것이다. 만일 죽은 사람의 혼이라면 짐승도 혼이 있다는 말이 되고 땅 속에는 짐승의 혼이 가득하다는 말이 되어 어리둥절하게 된다.
문맥을 잘 살펴보면 18절에서 사람이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였고, 20절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들아 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라고 한 후, 위의 성경 절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과 짐승의 숨이 각기 다른 곳으로 간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죽기는 일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10.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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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니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설명]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베드로의 말은 그 당시 죽어있던 사람들에게 생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유엥겔리스데, 단순과거형)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로는 사람처럼 삼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한번 심판을 받았으나 소망으로 계속 살아 있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잠’ 이라고 부른다. 죄 된 육신으로는 사람을 따라 죽었으나 살아생전에 복음을 받아드렸으니 영적으로는 삼판 시에 하나님을 따라 불멸의 몸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11. 예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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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잇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설명] 우리말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ㄹ 읽어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가서 노아 당시의 구원받지 못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다. 여기서 옥은 어디인가? 감시를 통하여 행동을 속박 받는다는 뜻의 감옥을 의미한다.
옥에 있는 영들이란 히브리서 12장 23절의 의인의 영들이나, 히브리서 12장 9절의 모든 영의 아버지, 또는 민수기 16장 22절이나 27장 16절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에 나타난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선악간에 하나님과 연관된 영적인 존재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성경적 용법이다. 진술된 ‘영’이나 ‘생명’ 모두 하나님의 생기나 성령을 뜻하는 헬라어의 ‘프뉴마’ 이거나 희비리어의 ‘루아흐’ 이다. 이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같은 본문의 다음절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부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 하던 자들”(벧전 3:20)이다.
그리하여 본문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죄악의 속박을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셨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말은 과거 노아의 때에 일이었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또한 평행절인 베드로전서 4장 6절에서도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재확인하고 있다.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변명의 여기가 있겠지만(행17:30,31). 이토록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순종치아니하던 자들”(벧전3:20)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적용되는 것이다.(벧전 4:5,6; 벧후 2:5~10)
12.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에 영혼이 떠났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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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설명] 이곳에 변역된 ‘영혼’ 이라는 말의 헬라어 프뉴마는 숨, 생기를 의미한다. ‘프뉴마’라는 단어가 몸을 떠난 어떤 의식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으 lqhswlf을 설명한 적은 신약성경에 한 번도 없다. 공동번역 성경엔ㄴ ld 부분을 “숨이 끊어지다”로 변역하였다.
.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영혼=프뉴마, (숨, 바람)
공동번역은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로 번역.
##영혼, 영으로 번역된 원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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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흐=389회 호흡, 바람, 기운, 숨, 생명. (성령,호흡, 생기. 정신 마음 신 영, 으로 번역됨).
루아흐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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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2:7=신, 시146:4=호흡, 겔37:5=생기, 시104:3 호흡, 욥27:3 기운.(내코에)
전3:19 동일한 호흡(루악)이 있고 같은 모양으로 죽는다. 영혼으로 번역하면 짐승에게 도 영혼이 있다는 말이됨.
퓨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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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령 악한영, 마음, 성령, 호흡, 숨, 생명.385회 성령
마4:1성령, 5:3심령 12:43진심 27:50 영혼, 막8:12 마음 고전16:18 마음, 눅8:55 영 요3:8바람.
이 모든 것이 사람과 함께 표현될 때는 불멸이거나 몸을 떠난 의식을같는 다는 것은 한군데도 없다.
네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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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영혼) 구약에 754 나옴.22회는 새, 7회는 사람과 짐승을 동시에, 물고기, 호흡이나 생명
창9:4생명,12:13 목숨, 14:21 사람, 27:25 마음, 35:18혼, fp11:46 기어다니는것,24:18짐승. 민9:6 시체 시49:16;22:6영혼으로 번역됨.
예: fp17:11육체의 생명(네페쉬)은 피에 있음이라. 이와같이 도일한 원어를 여러 가지로 번역하면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가 된다.
네페쉬를 구약에서 사람이나 생명에 적용하여 사용되었다. 죽은 어떤 것에 사용된 것은 없다.
신약성경.
프쉬케 105회 생명 마음 영혼
마6:25 눅9:24 요10:11목숨, 마26:38 마음, 눅1:46 행2:27 히6:19 영혼, 눅9:56생명, 행2:43 사람 ,롬2:9영.
1658회 신구약성경 전체에 영혼이라는 말이 나온다.
원래는: 호흡, 기운, 사람, 마음, 살아있는 생물, 사람 인격체, 성령, 악령,
영혼 불멸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번역하면 마치 불멸인 것처럼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영혼불멸의 오해되는 성경절들.###################
1.전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루악,호흡)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현대어 :그때가 되면 흙에서 온 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네 생명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뜻은 : 죽음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임. 죽기 전에 기억하라는 말이다.
2.계6:9~10. 제단아래 있는 영혼들.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순교를 당한 자들을 상징한 표현.
힌 두루마기를 주신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육체가 없는 영혼들이 두루마기를 입을 수 없다.
제단아래의 뜻= 번제단 아래 피를 쏟는 의식. 곧 예수로 인하여 순교당한 영혼들에 대한 위한 표현임.
창4:10 아벨의 피
약5:4. 삯이 소리지른다.
계16:7 제단이 말한다.
순교당한 영혼들을 돌보신다는 것과 픽박자들을 심판한다는 표현임
3.고후5:8. 몸을 떠나 주와 함께하는 그것이라.
현대어 성경 참조하라.(고후5:2-4)
바울은 고전15:52.53에서 재림의 때에 죽음을 몸을 벗고 새 옷을 입는다고 믿었다.
몸을 떠난다=죽음,
함께 거한다= 재림의 때에 부활을 말함, 고로, 빨리 죽을 몸을 벗어나 영원한 몸을 옷 입기를 바라는 뜻임.
4. 살전4:14. 데리고 오리시라.
예수의 부활이 있듯이 죽은 자들도 부활이 있다는 뜻임.
자는 자들도 데리고 오시리라= 이 말은 앞의 말과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실때에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했으니 하늘에 가 있는 사람들이 잔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맞지 않는다.
데리고 오신다는 말= 악세이(헬) 가다, 데리고 가다, 인도하다, 안내하다, 데리고 오다.
본뜻에 맞는 해석은 데리고 가다가 더 맞는 말이다.
현대인의 성경절을 참조하라.
5.전3:21. 인생의 혼은 위로 짐승의 혼은 아래로?
공동번역 :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 각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 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현대어: 인간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저 깊은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6. 빌1:23. 두사이에 끼었다.
감옥에서 쓴 편지, 삶과 죽음 사이에 끼었다는 말씀. 딤후4:6 죽을때가 가까이 왔다.
살전4:16 (예수께서 오실때에 구원하심) 고전15:16-19
딤후4:8 의에 멸류관이 준비됨.
7.벧전4:6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공동변역 :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인간이 받는 심판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따라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육적, 영적. = 세상이나 사단에게 속한 것은 육적, 하나님께 속한 것은 영적이라는 표현임.
(구원받음 영적, 멸망받음 육적,)
8. 벧전3:21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육체와 영=죽음은 육체, 부활은 영.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영혼불명에 의하면 영은 불멸이기 때문에 다시 살필요가 없다.
당신의 부활에 대하여 눅21:19. 영은 살과 뼈가 없다.
19절의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옥=죄악세상, (휠라케, 감옥, 갇힘) 계20:7 옥에서 놓여나와.
영=(푸뉴마) 성령,마음, 심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령으로 노아당시의 사람에게 전파하심.
벧전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노아당시의 예를 들어 믿음으로 살으라는 편지이다.
9.살전5:23. 영, 혼, 몸. (프뉴마, 푸쉬케, 소마) 전인적인 준비 권고.
10. 눅23:43. 왕으로 오실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공동번역 :눅23:22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요 20:17 나를 만지지 말라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요14:3 하늘에 가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이다.
11.눅16:19-31
아브라함의 품=아브라함의 이전 사람들은? 고통중의 사람들의 탄원을 아브라함에게 해야 하는가?
눈, 손가락, 혀=영혼은 물질이 아니다. 고로 불에 탈것도 없고 뜨거움을 느낄수 있는 감각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사이=피차 마주볼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혹 있을 가족이나 친구들의 고통을 보고 있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될 것이다.
눅15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예화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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