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3_순교자들의 기도 (계 6:9~11)
2013-11-06(수) 새벽기도회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도 기약도 없이.”
개척교회 초창기에 부흥이 더딜 때에 제가 종종 하던 말인데 그런 기간이 오래 되니까 이제는 힘들다는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기다립니다. 대신에 이런 말에 은혜를 받습니다. ‘세상은 성공하는 자에게 갈채를 보내지만 하나님은 충성하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신다.’
그런데 최근에 저의 제자 전도사가 페이스북에 기다림이 힘들다는 글을 쓴 것을 보면서 너 아직 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기다리다보면 견딜 맷집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데 맷집으로 견디다니 좀 목사답지는 못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다리기 힘든 것은 고난이 심하고 박해와 순교를 당하던 시절의 교회는 훨씬 더 심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고난을 견뎌야 합니까?’ 이것이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이 다섯째 봉인(封印)을 떼실 때에 이제 무대가 땅에서 하늘로 바뀝니다. 앞의 네 심판은 땅에서 세상 나라를 향한 심판이었는데 이제는 하늘에서 순교자들이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향해 탄원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곧 세상의 심판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통한 피 값을 갚아주지 않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실 것이냐는 순교자들의 탄원에 하나님은 순교자의 숫자가 차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순교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더 이상 지상교회에 박해가 없도록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런 거룩한 순교자의 수가 좀 더 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기도하는 장소는 제단(번제단) 아래입니다. 번제단은 어린양의 피를 뿌리고 제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어린양은 바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가 뿌려지는 제단 아래에 순교자들이 있다는 말은 순교자들의 피는 바로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불신과 죄악 세상을 거부하다가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고귀한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초대 교부 터툴리안의 말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말 그대로 순교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순교하면서도 성도는 결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친히 갚아 주실 것이며 순교의 피를 흘리고 억울함과 손해를 본 모든 것에 대하여 원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롬 12:19)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눅 18:7)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지금 세상은 큰 소리를 치며 하나님과 교회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마음대로 성도에게 박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계시는 것은 무능하시거나 무심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줄 생명의 면류관을 준비해 놓고 순교자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교회를 박해하도록 두는 것은 마치 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貫盈)하도록 두신 후에 심판하였듯이 심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제 최후 심판의 시기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의 기회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고통당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더 큰 상급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쉬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위해 당할 수 있는 모든 손해나 억울함을 고통을 기쁘게 여기며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면류관을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