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파노라마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까지의 약 350년의 기간(期間)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역사입니다.
다시 상기시켜드립니다만
사사기는 독립적인 책이 아니라 구속사(救贖史)에 있어서 한 시대를 점하고 있는 역사(歷史)라는 사실입니다.
역사임을 어째서 강조하고 있느냐 하면
역사에는 단절(斷絶)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 기간동안 어떻게 이루어 오셨는가를 깨닫는 일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사기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기드온이 300명의 적은 군사로 대군을 물리쳤다는 말씀도, 삼손의 실패담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사기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의 연속성
최우선적으로 유념해야할 점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연속성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말미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수 24:31)
하고 마치고 있는데,
사사기는 그 서두에서
,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삿 2:7) 하고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연속성이 어째서 중요하냐하면
사사기에 나타난 정치체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 여호수아서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는,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다"는 말씀이 후렴처럼 네 번(17:6, 18;1, 19:1, 21:25)이나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어찌하여 그 시대에는 왕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마땅히 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변이
장로들이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였을 때에 하신 말씀 중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사사기 시대는 결코 왕이 없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셔서 다스리신 신정시대(神政時代)였던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기드온은,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왕이 되소서)" 하고 말했을 때에
,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8:22-23)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를 망각하고 사사기 시대에는 왕이 없던 시대라고 말한다면
우리들도 사사기 시대 같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염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의 시대도 왕이 없는 양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다시 말하면
제 마음대로 행하는 그런 혼란을 겪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사사기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와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왕의 제도
어찌하여 하나님은 왕을 세우시지 않으셨는가?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고 장로들이 요구했을 때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삼상 8:9)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왕의 제도"란 왕정제도(王政制度)가 실현될 경우 백성들이 메게 될 무거운 멍에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8:10-18절에서 말씀하시는 왕정제도의 문제점은, "취하여, 취하여,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삼상 8:17)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신정제도는
"주시고, 또 주시는" 베푸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왕정제도는
왕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취(取)하는, 즉 거둬들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원래 왕의 제도란,
①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 ② 왕 된 자는 말(馬)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③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④ 은 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하고 경계하신 후에,
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 17:14-19) 하고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 중에 이에 합당한 왕이 그 누구이겠습니까?
이를 아셨기에 왕을 세우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던 시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중도에 간섭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심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섭리 중에 한 사람이, 한 민족으로 발전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을 구속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친히 다스리신 신정시대가 사사기 시대임을 인식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편으로 친히 다스리셨는가?
다시 한 번 사사기 시대가
여호수아 시대의 연속임을 상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는
출애굽기 시대와 민수기 시대의 연속임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중심해서 다스리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 25:8) 하고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이 성막에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여호수아 22장에 강력하게 부각되어 있는데,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전쟁이 끝나자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다가 요단 언덕에 이르러 볼 만한 큰 단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자칫 동족상잔이 일어날 뻔했는데
왜냐하면,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성막의 번제 단) 외에 다른 단"(수 22:19)을 쌓는다는 것은 곧 여호와께 대한 반역으로 용납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② 성막 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성막을 섬길 대제사장을 주심으로 다스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각 지파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삼차(三次), 즉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 여호와께 보이라 명하심으로 다스리셨습니다.
③ 또한 레위 지파를 통해서 다스리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한 곳에 모여 살도록 땅을 분배해 준 것이 아니라 각 지파가 얻은 기업에서 나누어 준 48 성읍(수 21:41)에 흩어져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48 성읍 가운데는 6개의 도피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도피성을 6개나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서
레위인을 전국 방방곡곡에 분산시켜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의중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오살자가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면 도중에 잡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배려해서 6개나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48개 성읍이나 되는 레위인들의 거주지는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스라엘 12지파의 아주 가까운 이웃에 레위인들을 골고루 두시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심으로 살아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인들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 시대에 주어졌던 신정체제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할 고도(高度)의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사기에서 이러한 체제가 제 기능들을 발휘하고 있었던가?
일곱 번의 악순환
사사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 첫째 부분(1:1-3:6)은
서론이라 할 수가 있는데, 사사기 시대가 혼란에 빠지게 된 모든 문제점과 원인 등이 요약되어 있는 원론과 같은 내용입니다.
둘째 부분(3:7-16장)은
서론에서 제기된 원인으로 인하여 7번이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내용으로 사사기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셋째 부분(17-21장)은
당시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두 개의 부록으로 되어 있습니다.
7번의 악순환이란
, ①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좇습니다.
② 진노하사 대적에게 내어줌으로 징벌하십니다.
③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④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셔서 구원하여주십니다.
⑤ 그 땅에 평화가 옵니다.
⑥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하고 다시 죄를 범합니다.
⑦ 진노하사 대적을 통해서 징계하십니다.
또 부르짖습니다.
구원자를 세우셔서 구원해주십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일곱 번뿐이겠습니까?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악순환은 역사의 전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사사기는 보
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개개인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데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혼란에 빠지게 된 원인들
첫째 원인은
패역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완전히 내어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무가 될 것을 아시고,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신 7:2-3) 하고 경계하셨으나,
1장에는, ①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을 9번이나 반복하여 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34절에 보면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했다"고
도리어 쫓겨 들어간 것을 보게 됩니다.
쫓아내지 못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②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 사이에 거하여"(3:5),
③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④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3:6)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화(世俗化)되고 타락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性)을 통한 타락은 여기가 처음이 아닙니다.
노아 당시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 6:2) 합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모압 여자들과 음행함으로 바알브올에게 부속됨으로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었더라(민 25:9) 합니다.
그리고 이제도,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벧후 2:18) 하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란은 사탄의 최대의 무기인 것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2:10) 합니다.
어찌하여 알지 못하게 되었는가?
모세는 이렇게 될 것을 우려하여 죽기 전에 당부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심 6:4-7) 했는데
이를 귓등으로 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 밭을 황폐화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냥 버려 두면 된다
. 자녀들을 신앙으로 가꾸기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황무지처럼 되고 만 것입니다.
세 번째 원인으로는
사사기에서는 성막도 제사장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사기라는 혼란기에 성읍 48 개나 주어 살게 한 레위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17장 이하에는 당시의 어두웠던 시대상을 말해주는 두 편의 부록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레위인들이
두 사건에 모두 주동자로 등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레위인 소년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17:7)으로
, 다른 레위인은
그의 첩으로 말미암아 동족상잔을 일으켜 베냐민 지파가 전멸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로 등장합니다.
사사 말기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와 제사장들인 그의 두 아들에 대한 언급에서 사사기 시대의 제사장 지파의 부패와 타락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29, 12) 합니다.
마지막으로, 1-3번까지의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겼다"(2;20)는 말씀으로 요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조와 세운 언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메시아언약"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복음을 등한히 하게 되면
사사시대와 같은 암흑한 시대가 되고 만다는 것이 사사기가 말씀하고 있는 경고입니다.
구원자를 세워주신 하나님
사사기의 중심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역을 던져버리시거나 중단함이 없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셨다"(3:9, 15)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사사기 시대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에도 "태평"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3:30) 합니다.
그런데 태평한 시기의 기사는 침묵한 체
, 사사기는, 범죄로 말미암아 대적에게 내어준 바 되어 신음하며 고통 중에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셔서 구원하여주셨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느냐 하면
인간의 자력으로는 구원의 가망이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는 "구원자", 곧 왕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사사기와 사무엘상 사이에 끼어있는 룻기서입니다.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 1:1) 이렇게 시작하여,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2) 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일곱 아들을 뛰어넘어,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하고 말씀함으로 끝마치고 있는가?
사무엘상 16:1절에서
사무엘을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보내시면서,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하고 말씀하심을 통해서 왕이 없던 사사시대에 하나님은 "왕"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계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왕이 일차적으로는 다윗이라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구원자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사 11:1)
하고 예언했던 것입니다.
한결같이 선지자들은
,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겔 37:24-25) 하고 다윗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의 인물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사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교회시대란 사사시대에 세우셨던 신정시대(神政時代)의 성취라 할 수가 있습니다.
위에서 거론한 "성막, 대제사장,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 왕"이 누구의 예표들입니까? 이는 복음시대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① 지금 가견적(可見的) 교회 앞에는 눈에 보이는 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하신 진정한 왕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이를 망각하고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즉 제 마음대로 행하는데 있습니다. ② 또한 눈에 보이는 성막도, 성전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③ 사사시대는 신정(神政)의 범위가 이스라엘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교회시대란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계로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인 레위인들로서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사사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해졌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어 쫓으라",
즉 복음으로 정복해 나가라. 부지런히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