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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으로 본 재건교회의 정체성: 극단적 분리주의? 아니면 이단적 색채를 띤 종교집단?
요즘 친일파 진상규명운동이 국가적 차원에서 어느 때 보다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 속에 약해져 가는 한국교회 전체와 성도들 모두에게 재건신앙운동의 위대함과 재건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또한 우리 재건교회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정체성 확립 문제는 중요한 이슈로 대두 된다. 한국복음주의 역사신학회 모임에서 한국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토론이 있었다. 그들의 신학논쟁 와중에 특히 고신 교단 역사학 교수간의 논쟁은 신학적, 정치적 더 나아가서는 인격적 문제까지 거론 될 정도로 심각하다. 그들의 논쟁의 저변에 깔려있는 문제점을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교회의 정체성 확립 부재로 빗어진 문제이고, 둘째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정체성 확립 추세에 발 마취 교단주의 이기적 발상에서 비롯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재건교회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하여 더 이상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교회가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아래의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재건교회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신사참배를 가결한 한국장로교회를 ‘정통교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한국교회 정체성 확립에 근본적인 질문이다. 최덕성 교수는 이러한 견해를 역사학회 모임에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그는 신사참배를 가결한 한국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배교적 종교기구”로 전락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필자는 그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그가 초기 고신교회를 분리주의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재건교회를 분리주의자라고 한 점에서는 동의할 수는 없어서 그에 대한 비평을 재건교회 목회자 방에 부득불 올려놓았다.(최덕성교수의 소논문, ‘“칼빈의 교회관과 신사참배거부운동”에 나타난 재건교회에 대한 신학적 반론’을 참조하라; 인터넷 다음싸이트, 재건목회자방 게시판, 2004년 7월20일자).
1884년 이후,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단일 교단으로 복음을 전하던 예수교장로회가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맞물려 어려움을 겪어오다가 38년 9월 27차 총회에서 급기야 신사참배 할 것을 가결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단지 한국교회사 차원에서만 비극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적 관점과 세계교회사 차원에서 바르게 규명해야 된다고 본다. 최덕성 교수는 이런 점에서 신학적-역사적 맥락에서 비교적 정리를 잘 하고 있으나, 칼빈의 교회관에 대한 비평이 미약하다 보니,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교단 중심적 입장에서 섭렵하게 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견해는 한상동목사가 분리주의 성향이 있었다고 말하는 이상규 교수를 지지하는 어느 목사의 말과 같이 “교권의 시녀로 전락할 수”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뉴스엔조이, 이광호목사, “교권이 신학 재갈 물리면 안돼” 참조).
보다 큰 문제는 일제 강점기 때 우상 숭배한 한국교회를 ‘정통교회’로 인정하는 견해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 오덕교 교수는 이러한 논지를 가지고 재건교회와 고신교회를 분리주의로 비난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재건교회를 극단적 분리주의 교회 또는 이단적 색채를 지닌 종교집단으로 아래와 같이 심하게 매도하고 있다. 그의 잘못된 견해를 종합 분석하고 비평하는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 재건교회의 정체성이 더욱 확립되리라 믿는다.
재건교회에 대한 오해
오덕교 교수는 재건신앙운동을 “극단적 분파주의 운동”으로 비하하면서 재건교회를 이단적 색채를 띤 종교집단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쓴 소논문 “칼빈의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분열운동”(신학정론, 제 20권 1호, 2002년5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재건파는 배타적일 뿐만 아니라 독선적이었고, 교회의 순결을 교회의 본질과 같이 생각하였다. 이러한 재건파 운동은 한국교회를 재건하는 운동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분파주의 운동이었다. 순결을 위해 성도의 교제를 무시할 정도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였고, 독선적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들의 입장에 반대할 때는 분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는 재건교회가 성경과 역사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오는 결과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의 책 장로교회사 266쪽에서 다음과 같이 재건교회를 정죄하고 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일제에 의하여 박해를 받던 성도들이 출옥하여 세운 재건파는 기성교회를 마귀당으로 정죄하면서 기성교회 교인과 교제하는 것을 신사참배 동참죄에 빠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가족이 신앙적으로 하나 되지 못하면 이혼하라고 가르칠 정도로 배타적인 자세를 고수하여 비성경적이며 반역사적인 집단으로 남게 되었다.”
오덕교 교수가 극단적으로 비평하는 재건교회에 대한 두 가지 견해는 재건파는 분파주의자 들이고 또한 이단적색채를 띤 종교행위를 자행한 교회로 보고 있다. 단 그가 재건교회만이 분리주의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신교회나 기타 한국교단들의 분리주의 경향을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로 “배교적 종교기구”가된 한국교회를 정통교회로 인정하는 가운데서 재건교회를 극단적인 분리주의로 보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다. 첫 번째로 칼빈의 교회관 입장에서 신사참배를 한 교회는 거짓교회로 판명 되어야 하며, 두 번째로는 재건교회가 균형 잡힌 교리와 실천적 행위들로부터 오해 받는 청교도들의 삶과 유사하다는 견해이다.
칼빈이 그의 책 기독교강요 4권 2장에서 타락한 카톨릭 교회를 거짓교회로 보고 있다. 참교회는 거짓교회로 부터 분리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칼빈의 강조는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차이의 시금석은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진리의 터요 기둥이라는데 있다. (딤전3:기독교강요15/4-2-1)
개신교가 왜 발생하였는가? 전통교회의 타락으로 되어졌다는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원인으로 내세운 95개 조항에서 그들의 부패함을 잘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의 타락의 원인을 칼빈의 입장에서 분석하면 교부들 이후 교회의 사도적 권위가 전통에만 치우쳤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아니라 사도적 전승을 교회의 중요한 본질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잘못된 교리를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졌고, 예배는 형식적이었다. 예배당은 우상으로 가득 찼고 성례와 성찬은 의식에만 치중하게 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의 통일성은 상실하게 되었다. 교회가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교황중심의 죽은 교회가 되어 마치 썩은 시체와 같았다. 칼빈은 이러한 교회를 거짓교회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기독교강요 4권2장1-6)
이러한 거짓교회에 대한 특징들은 어느 시대나 같은 양상을 뛴다. 칼빈의 거짓교회의 대한 특징을 성령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구약시대의 거짓선지자들이나 로마 카톨릭 교황의 공통점은 성령의 역사함을 무시한다. 마치 적그리스도와 같이 악령의 지배를 받고, 이로 인해 공동체를 망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성령에 이끌리어 교회를 인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 자신들이 사탄에 의해서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일제 강정 기에 한국교회 지도자들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허락했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성령의 이끌려서 하기보다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우상숭배를 허락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예수 믿는 성도들과 목사를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사탄에 의해서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교회의 특징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비교해 보자.
로마교회-죽은 예배(살아있는 말씀이 없음), 잘못된 교리, 우상으로 가득한 예배당, 형식적인 성찬, 잘못된 정통성주장,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음, 그리스도 중심의 통일성 상실.
한국교회-죽은 예배(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고발), 잘못된 교리(신론-신도교교리), 신주단지를 들여놓은 예배당(우상숭배), 형식적인 세례와 성찬(미소기바라이-신도침례), 친일파 전통,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일본 천왕중심 등등.
칼빈의 교회관 입장에서 이 두 교회의 모습을 비교한 결과 그 당시 한국교회는 거짓교회임이 틀림없다. 칼빈은 카톨릭교회를 아합과 여로보암시대에 우상숭배로 타락한 교회로 예를 들고 있다.(왕상12:28이하/기독교강요4권2장10)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을 향해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성막이 아니라 우상의 소굴로 단호히 정죄하고 있다. 칼빈이 타락한 한국교회 시대에 있었다면 누구보다 더 본질적으로 거짓교회임을 강조했을 것이다.
거짓교회와 분리할 수밖에 없는 예
실제적인 예를 고신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정체성의 문제가 되는 고신교단의 지도자 한상동 목사가 분리주의자냐 아니냐. 라는 논쟁에서 참교회가 거짓교회에서 분리 할 수밖에 없는 귀납법적 증거로 잘 찾아 볼 수 있다.
재건교회 초창기에 재건신앙운동지도자들은 하나였다. 옥중에서 풀려나와 우상 숭배한 한국교회에 대해서 회개를 촉구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초기지도자 한상동 목사가 재건교회를 떠나서 기성교단인 경남 노회에 가입하게 된다. 회개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신사참배를 제외한 동방요배등은 개인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여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친일파들의 기득권 속에 그들과 도저히 함께 신앙생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신앙이 서로 틀린 공동체에 함께 할 수 없음은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이러한 경우는 한국 장로교단 안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정치적인 부패로 인한 분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교리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어 분리하는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빈의 교회관 입장에서 결론을 내리면 근본적으로 타락한 거짓교회와 분리하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목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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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한 한국교회는 ‘마귀당’
우상숭배, 미신, 그리고 불경건한 교리에 오염된 종교집단 이였던 과거의 한국교회를 ‘마귀당’ 이라고 호칭 것은 너무나 지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재건교회가 그들을 마귀당 이라고 한 것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재건교회가 신앙의 정조를 팔아버린 창녀와 같은 교회들을 향해서 ‘창녀촌’이라고 하지 않고 ‘마귀당’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도 듣기 싫은가?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나? 아니면 무식한 단어 같이 들려서 듣기가 거북한가?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질책하셨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인데도 하나님의 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책망하셨고, 그들의 상을 엎으셨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서는 우상 숭배한 카톨릭 교회들을 불태웠다. 필자도 에딘버러에서 공부하면서 세인트 엔드류에 불타서 앙상하게 남아있는 그 성당을 가본 적이 있다. 지금은 그곳이 관광지로 남아있다. 종교개혁자 존 낙서는 썩은 카톨릭과 그의 잔당 메리를 단호하게 처리하고 역사상 가장 철저한 기독교국가로 터전을 마련하지 않았던가! 어느 재건교회 성도들도 마귀당 같은 교회를 참을 수 없어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과 벨리알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성경적-역사적 증거임을 강하게 보여준다.
오늘날도 만일 교회에다 사주단지를 들여놓고 절한 후 예배드린다면 합신교단의 교회들이 앞서서 그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를 마귀당 이상으로 불렀을 것이다. 사탄의 회라고 저주할 것이다. 교회에다 이슬람의 코란이나 불교의 부처상을 들여놓고 절한다음 찬송하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어느 종교에나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재건교회가 우상 숭배한 기성교회에 대해서 유식하게 종교다원주의라고 말하지 않고 마귀당 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도 잘못된 것인가?
만일 오덕교 교수의 입장에서 그래도 그런 교회도 교회니 그곳에 가서 함께 예배드리자고 했다면, 동방요배등의 잘못을 죄라고 규명한 박윤선 목사님은 주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할 것이 자명하다. 마귀당에서 예배드리며 신실한 성도들을 고발한 친일파 종교집단들은 지금도 그 당시 사건을 숨기려하고 있다.
친일파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이 사실상 제16대 국회에서 이미 통과되었다. 그러나 시민연대 뿐 아니라 각계각층이 그 법안이 부족하고 만족하지 않는 법안으로 여겨져서 17대 국회의원들의 이름으로 수정하여 다시 상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법안을 바꾸려한다고 그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새로 상정된 법안은 친일파에 대한 적용규정을 조금 더 강화한 것이다.
왜 시민단체를 비롯해서 각계각층의 뜻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법안이 발효되도록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는가? 반세기가 넘도록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 왔던가? 애국자의 자녀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어려운 삶을 한탄하다 못해 위대한 선친들의 고귀한 삶들을 후회 할 정도였고, 또한 이로 인해 후세에 남길 기력조차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오히려 친일파 사람들이 권세와 명예와 부를 누리며, 활개 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정치권력 앞에서 바른 역사평가는 쓰레기같이 외면되어졌고, 힘 있는 자에 의해서 역사는 다시 쓰여 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역사를 날조 하였고, 이로 인해 바른 역사는 심히 뒤틀렸다. 이러한 부정이 부패로 이어져 왔고, 정치, 문화, 사회, 교육, 그리고 종교 전반에 걸쳐 이러한 문제는 만연하다고 본다. 종교계 중 특히 기독교 안에서 이러한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덕성 교수(고신대 교회사)의 공헌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의 책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본문과현장사이, 2000)에서 이러한 문제를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요즘 크리스천 신문들 등에서 계속해서 친일파의 이름과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문제를 파해져서 무엇하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체성 확립은 공동체의 발전과 미래를 밝게 해준다. 보다 깨끗한 삶을 보장해 준다. 이런 점에 있어서 정체성 확립은 분명하게 규명되어야 하며 서로 협조해야 한다. 친일파 교단들과 개인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한다면 오히려 존경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회개 안에서는 교회가 하나 될 수 없다. 이는 바른 믿음 대신 여전히 친일파적 종교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영락교회 고 한 경직 목사의 친일파 행적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가 독일에서 고백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그가 베를린에 와서 템플턴 상을 받을 때 참석하였던 적이 있어서 그 문제를 보다 실감 있게 느꼈던 적이 있다. 최덕성 교수가 그에 친일파 행적과 회개하는 모습을 자세히 다루었다. 허나 필자는 지금도 그 분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다. 그 분의 회개를 하나님이 인정하셨을까? 독일교회는 2차대전 당시 나치당에 의해서 거의 해체 되었고 믿음의 종들은 옥중에서 고난을 당해야 했었다. 사실상 일제 신사참배 강요보다는 심각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나치에 반항하며 투쟁했던 고백교회 목사들의 희생은 컸었다. 중요한 것은 전쟁 후에 나치당에 아부했던 목사들이 자신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고난당했던 목사들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한 경직 목사가 인생마감직전에 세계적인 상을 받을 때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이라고 추측한다. 첫째, 만일 자신이 자백하지 않으면 그 좋은 상을 받을 때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양심에 꺼린 심한 염려 속에서와, 상을 받고난 후의 염려 곧 친일파로 일할 당시 신사참배 거부하는 목사들과 성도들의 후손들이 그를 세계적인 기독교의 배교자로 고발 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 번째로는 그가 이제는 잘못 했다고 고백해도 교회정치의 지도자노릇 다 했고, 정부(청치권력)와 타협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세계적으로 폭로할 필요가 무엇이 있었겠는가. 자신을 세계적인 죄인임을 자처했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교만한 자세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할 뜻이 있었다면 1954년도에 했어야 했고(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참조), 또한 그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특히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는 재건교회 앞에서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독일교회 목사들 같이 자신이 상 받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하나님 앞에 보이는 최상의 방법이었으리라.(최덕성교수는 템풀턴 상을 포기한 남미의 종교지도자 오스카 로메로와 비교한다) 열린 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부친의 친일파 행적을 깊이 사죄하고 기득권층에서 물러난 최근 사건을 보면서 기득권층의 한국교회가 심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아직도 자신과 교단의 이기적 마음을 버리지 못한 체 한국교회 정체성의 왜곡, 담합, 혹은 엎어치기(?)하려는 모습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양심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덕교 교수는 재건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한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같은 교회 선배가 된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지엽적인 면들을 보고 재건교회 전체를 싸잡아 감정적으로 비평하다는 점에서 그가 교회사 교수인지 의심스럽다. 재건교회를 극단적 분리주의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 합동측 김남식 목사는 그가 재건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한 역사신학자인데 “재건 운동 그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은 연구방법이 아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 양태연구”, 신학지남 2003년 여름호, p362). 물론 그가 재건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상교회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재건교인들은 그렇게 혐오 적이고 편협한 무리인가?
참교회는 신앙고백과 믿음이 살아있다. 그 교회 공동체 일원들은 역사와 지역을 초월해서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모시기 위해서 옥중에서나 토굴에서 고통을 당하할지라도 신앙은 버리지 않는다.
재건신앙운동 당시 재건교인들의 삶은 신학도 없고 모범도 없는가? 청교도들의 삶을 보라. 그들의 열정은 오늘날 미국을 낳았다. 그들 출신의 많은 지도자들은 훌륭한 신학자 목사 정치가 교육가를 낳았다. 청교도 역사 100여년 속에서 수많은 핍박과 희생으로 태동한 청교도 정신은 포스트 모던세계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요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고 에롤 허스는 그의 책 청교도들은 누구인가에서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21세기 한국교회는 신사참배거부 운동을 위해 조직된 지하교회나 가정교회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그 당시 교인들은 신앙의 열정에 있어서 청교도들과 거의 같은 모습의 삶을 살았다. 순교의 정신은 물론이요 개혁정신은 시대적 상황을 떠나서 거의 같은 수순이었다. 16-17세기에는 어떤 공동체도 종교적-정치적 관용을 전혀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믿음이 다르다고 생각되면 화형을 시킬 정도였고 출교 등의 가벼운 징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순교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신앙을 지켜왔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핍박을 받던 참교회 성도들에게는 동일한 현상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대교회 카타콤시대를 손꼽을 수 있고, 로마 카톨릭교회 당시의 수도회들, 프랑스의 왈도파, 위크리프의 무리, 후스파, 영국핍박당시의 청교도, 언약주의자들, 히틀러당시의 고백교회, 공산주의 시대의 수많은 지하교회들 등이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지하교회와 가정교회는 해방 후 재건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들이 선천 미곡 창고에서 예배를 드릴 때 성령 충만하여 밖에서 보던 사람들이 불이 났다고 할 정도로 뜨거웠다. 옥중성도들이 기도하면 병든 자들이나 귀신들린 자들이 치유 되었다. 그들은 집에서 서로 모여서 예배드리며 말씀과 교제와 구제로 사랑의 공동체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 말씀가운데서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공공적으로 자백하고 회개하였다.(역사의 증언 1,2,3, 재건교회총회역사편찬위원회, 1997-2003 참조)
청교도들이나 재건교인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후예들의 신앙성격에 대한 오해이다. 청교도들과 재건교인들의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청교도들에 대한 성격들 중 여러 가지 오해들이 있다. 레란드 라이켄은 그의 책 청교도의 정체 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청교도들은 성관계를 반대했다. 청교도들은 웃는 적이 없고 즐거운 삶을 반대했다. 청교도들은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을 반대했다. 청교도들은 예술을 적대시했다.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참지 못하였다. 청교도들은 지나치게 엄격했다. 청교도들은 사람의 외형적 행동만 보고 판단한 율법적인 도덕주의자들이었다.
필자는 재건교인들과 비슷하게 이야기 되는 부분만 나열하였다. 재건교인들이 50여 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청교도들과 같이 비슷한 성격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 사실이 아니지만 어떤 경우는 부분적으로 사실인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청교도들이 예술을 적대시한다는 것은 그들이 로마 카톨릭 형태의 예배와 의식에 대한 반대 때문이다. 재건교인들도 우상숭배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교회에 우상 같은 모습의 모든 것을 제하였다. 심지어 가정에서 비너스 상조차도 우상이라고 해서 버렸다고 한다. 교회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던 적도 있다. 재건교인이나 고신교인은 주일날 차를 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지나친 자들은 주일날 불도 켜지 않았다. 특히 결혼문제는 더욱 엄격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또한 결혼 후 이단들에 빠진 자들과는 이혼하였다. 재건교인들이 과거에는 기성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배타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서로 멀리하였다고 한다. 결혼한 후 기성교회 교인이라고 이혼하라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와 같이 청교도와 재건교인의 신앙의 특징이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신학적인 부재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경우가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전혀 없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는 칼빈의 혼합교회론적 관점에서 교회 안에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오덕교 교수가 재건교회를 이단적 색채를 띤 종교집단의적인 행동을 자행했다고 말하는 것은 감정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재건교회를 사랑하다보니 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음에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와 같이 옥중에서 풀려난 신앙성도들이 교회의 순수성에 대해서 강조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제치하에 강요된 우상숭배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이 문화말살정책으로 종교의 탄압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우상숭배 강요도 없었을 것이고 회개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선교의 차원에서 보다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주님 안에서 참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신사참배와 동방요배 등의 잘못된 죄악들이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를 타고 안방으로 들어오고 있다. 일본의 참교회들은 우상문화 속에서 매일 싸우고 있다.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오늘날 일본 사람들 모두에 돌릴 수만은 없다. 선교적 차원에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신앙노선이 같은 교단들과 교류를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교회와의 관계도 신앙노선이 같다면 함께 복음을 전하며, 서로 격려해야 한다. 이는 초창기 재건신앙운동의 살아있는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서 재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건신앙운동은 재건교회만의 믿음의 유산이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의 것이다. 50년 희년을 맞는 어느 재건교회는 요즘 어려운 이웃의 빛 값아 주기 운동과 장기기증하기 운동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회개와 용서의 순서로 해결되지 않으면 방법을 바꿔서 용서해 주고 회개케 하는 능동적인 방법이 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한다고 본다. 21세기 초에 사는 우리는 재건신앙적 삶을 유산으로 오늘날을 사는 이웃들에게 디지털 방식의 선명도를 높여서 우리의 삶을 확실히 보여주고 그들을 예수님의 참 제자로 삼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사도성을 회복하는 참교회로서의 특징임을 우리 모두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 글은 재건 서울노회 여름 수양회에서 특강한 것을 올려놓았다. 서울노회 교육부장과 부원들께 깊은 감사드리며, 특히 격려을 아끼지 않는 다음싸이트 관리자인 한용문 목사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복음주의 역사신학회 논쟁에 대한 정보를 자료실에 올려놓은 권영삼 전도사와 재건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다시 읽어봐도 너무 시원하고, 좋은 글이네요. 속이 다 시원합니다.
김영호목사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