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은 모든 일이 마음에 바라는 대로 잘 이루어질 때에,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느꼈든, 생명이 없는 피조물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든, 그 모든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덕분으로 돌리게 된다. 모든 일이 번창한다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감사하게 된다.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는 곧바로 마음을 높이 들어 하나님께로 향할 것이며, 하나님의 손길에서 인내와 마음의 평안을 풍성하게 얻게 될 것이다. 요셉이 형들의 배신을 계속해서 마음에 두었더라면, 절대로 그들을 향하여 형제다운 애정을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들을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욥의 경우도 만일 갈대아 사람들의 잔악한 행위를 계속 마음에 두었더라면 즉시 보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즉시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인정하였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다윗의 경우도 시므이에게서 협박과 모욕을 당하였을 때에 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더라면, 곧바로 부하들을 시켜 보복하였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삼하16:11).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39:9).
끓어오르는 분노와 조급한 마음을 치료하는 것으로 과연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기를 배운 사람은 분명 굉장한 유익을 얻을 것이고, 언제나 마음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곧 “주께서 그렇게 뜻하셨으니 반드시 견뎌야 마땅하다. 비단 그것을 대적하여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주께서는 정의로우며 유익한 일 이외에는 어떠한 일도 뜻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혹시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상처를 당할 때에라도, 그들의 악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 우리의 고통만 더 악화되고 우리의 마음에 복수할 생각만 날카롭게 일어날 뿐이니-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경륜에 따라 허락된 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기를 배우기를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보복할 마음을 갖지 않도록 절제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엡6:12) 우리의 영적 원수 마귀에 대한 것임을(엡6:11) 지혜롭게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싸움을 잘 대비하게 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분노를 일으킬 모든 충동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교훈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귀와 모든 악인들을 무장시켜 싸우게 하시며, 친히 그 싸움의 재판장으로 앉아 계셔서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빛도 짖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사45:7).
경건한 사람은 부차적인 원인들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유익을 베풀어준 사람들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섬기는 자들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베푼 인간적인 친절에 대해서 무시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느끼며, 자신이 무언가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고백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려 할 것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서 주님을 근원으로 여겨 그에게 찬양과 공경을 돌리며, 동시에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서 존귀하게 여길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뜻을 가지셔서 그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될 경우라도, 이 경건한 사람은 그런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동시에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릴 것이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 경우는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런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일이나 그들의 조언을 청하는 일을 꺼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무엇이든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은 모두 주께서 베푸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것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정당한 도구들로서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지금 취하고 있는 조치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들을 베푸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에게 최상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저런 조치들을 취할 때에,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지혜에 맡겨서 올바른 목표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후원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온통 기대고 확신 가운데서 안심하거나, 혹은 그런 것이 없을 때에는 그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떨 정도로 그런 것을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만 생각을 고정시킬 것이고, 그리하여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궁리로 그 섭리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서 벗어나지를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압은 전쟁의 결과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의무를 부지런히 수행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삼하10:12)
-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상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pp 266-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