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 글 / 허신행 박사(전 농림수산부장관)
‘깨닫다’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깨치어 환하게 알아내다’, ‘몰랐던 사정 따위를 느끼어 알아채다’, ‘앞일을 미리 알아차리다’ 등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는 비교적 평범한 설명으로서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몰랐던 어떤 지혜를 강의시간에 듣고 알아서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런 경우 ‘깨달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사를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면 행복이 오는 데 반하여, 욕심 때문에 사람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기 시작하면 몸 속에 독이 생긴다든지 또는 몸에 질병이 없기를 바라면 탐욕이 생기기 쉬우므로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는 것이 좋다는 등의 생활이치를 듣고 실천하여 ‘깨달았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별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과학에서 밝혀낸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든가, 질량 에너지 보존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을 듣고 배워 물리의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가면서 “깨우쳐간다”고 말한다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화합법因緣和合法을 통해 이 몸뚱이가 평소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독자적인 자아自我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오늘 “하나를 깨우쳤다”고 말한다 해서 죽비를 내려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일생을 살다보면, 사람은 대오大悟를 백 번, 소오小悟를 무수히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인간 두뇌활동에 의한 의식으로 만든 지식에 불과하고, 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그런 통속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거나 의식으로 만든 지식형태의 깨달음이란 플러스(+)적인 지식의 축적 내지 망상妄想을 더 보태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그 반대로 마이너스(-)적인 지식의 소멸 내지 모든 번뇌 망상煩惱妄想을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소아·대아·무아·진아의 통일적인 본성에 닿는 깨달음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견성見性(모든 망혹妄惑을 버리고 자기 본연의 천성으로 되돌아감), 성불成佛(모든 번뇌를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열반涅槃(도를 이루어 모든 고통과 번뇌가 끊어진 해탈의 경지), 해탈解脫 (번뇌와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속세간의 근심걱정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름), 각覺(법의 본체와 마음의 본원을 깨달아 앎), 정각正覺(올바른 깨달음)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감, 메타노이아Metanoia(일상적인 정신상태를 뛰어넘거나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전환, 에고의 속박으로부터 해방, 우주 의식, 그리스도 의식, 부활, 재림 등이 모두 ‘깨달음’을 의미하고 있다. 심지어 메시아의 어원이 되는 아랍어 m’shekha가 그리스도(구원자)이고, 이는 완벽함 또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재림이라는 것도 속세적인 예수의 환생이나 재림이 아니라, 자아自我의 환상과 온갖 그릇된 가치관 및 습성의 세속적인 꿈에서 깨어나 생사生死를 초월한 하나님의 천국으로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구원의 길이 바로 깨달음이요, 이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 자체가 부활이요, 그리스도의 재림이자 천국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깨달음을 득도得道, 성도成道, 도통道通, 신선 합일神仙合一 또는 득선도得仙道 등으로 부르고 있다. 개념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근본적인 생각에 있어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 같다.
도道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주불변常住不變의 절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체體 및 진여眞如, 기독교의 하나님 등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득도得道는 성불成佛이나 부활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공자孔子(BC 552∼BC 479)의 도道는 이런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도道를 가리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원적인 원리’라고 보는 다른 견해도 없지는 않다.
하여간 깨달음이란, 그 의미에 있어서는 견해들이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대충 정리해보면 이렇다. 탐진치貪瞋癡와 번뇌망상煩惱妄想으로 가득 찬 소아小我, 즉 자아의식의 에고로부터 벗어나 진여(하나님·도·신·절대자·참나·영혼·한마음)의 순수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를 구호적인 쉬운 말로 표현하여 ‘자아에서 우주의식으로’, ‘소아小我에서 진아眞我로’, ‘중생에서 부처로’, ‘속인俗人에서 성인聖人으로’, ‘생멸生滅의 세계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세계로’, ‘속세에서 천당과 극락으로’ 등 숱한 말들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