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발상지 뉴 올리언즈가 있는 루이지애나는
1718년 프랑스가 점령합니다.
1762년 루이 15세가 자신의 사촌인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에게 넘겨주었다가
1768년 다시 프랑스 손에 넘어가죠.
그리고 1800년 미국에 팔립니다.
보시다시피 루이지애나는 계속
프랑스와 스페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루이지애나의 수도인 뉴 올리언즈와
쿠바간의 교류는 상당히 깊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재즈와 살사 음악간의 교류도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가졌고
자연스럽게 살사와 재즈가 섞인 라틴 재즈가 탄생하게 됩니다.
살사 쪽에는 많이 알려져있지 않지만
마치또 Machito 라는 뮤지션이 있습니다.
몬뚜노를 개발한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와 함께
뉴욕에서 활동한 밴드 리더인데
이분은 일찌감치 쿠바 음악과 재즈의 접목을 시도했었습니다.
재즈 거장인 디지 길레스피와 앨범을 내는 등
재즈 쪽에선 이름있는 인물입니다.
앨범에 든 노래 하나 들어볼까요
가끔 빠에서 이런 노래 나오기도 하죠?! 이 분 노래입니다.
이 분이 한참 주가를 높일때
스페니쉬 할렘의 한 소년이 무용수를 꿈꾸다
사고로 발목인대가 끊어집니다.
13살 늦은 나이에 드러머로 새 출발을 합니다.
이 소년은 커서 마치또 Machito 의 뒤를 이어
살사와 라틴 재즈의 대중화를 성공시키고
"El Ray" 신(God) 또는 "Mambo King" 이라는 칭호를 받게됩니다.
이 소년이 바로 띠또 뿌엔떼 Tito Puente 입니다.
앨범 오른쪽 하단에 100번째 앨범이라는 거 보이시나요?
100번째 앨범을 내는 동안
다섯 번의 라틴 그래미 상을 시상하고
1952년 "쿠바 음악 50주년" 행사에
유일하게 쿠바에 초청된 쿠바인이 아닌 인물입니다.
(띠또는 푸에르토 리코 계 미국인 입니다.)
어릴적 꿈이 댄서여서 그런지
띠또 뿌엔떼는 밴드의 댄서들에게 상당히 까다로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댄서들에게 숙제를 냅니다.
"내가 전통적인 살사가 아니라
라틴 재즈를 연주하니까
여기에 맞는 새로운 스텝을 개발해와"
라고요.
몇 개의 제안이 들어오고
띠또 Tito Puente 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 제안을 한사람이 에디 또레스 Eddie Torres 이고요.
우리는 지금 에디 또레스 Eddie Torres 가 제안한
뉴욕 스타일 On2를 추고 있습니다.
P.S
띠또 뿌엔때 Tito Puente 를 비롯한 라틴 뮤지션들이
부시 전 미 대통령 초청 공연을 한 영상입니다.
중간에 띠또 뿌엔때 Tito Puente 연주때
왼쪽 남자가 에디 또레스 Eddie Torres 입니다.
폰으로 보시는 분들은 1분 25초쯤 부터 보세요.
P.S
띠또 뿌엔떼 Tito Puente 와 에디 또레스 Eddie Torres는
뉴욕 스페니쉬할렘의 같은 산부인과 출신이고
같은 푸에르토 리코 계 사람입니다.
P.S.
띠또 뿌엔떼 Tito Puente 는 2000년 5월 31일 작고하셨고
생전에 쓰던 띰발레스는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미국 역사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