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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일주여행(2) <2011.5.21~31>
<5월23일> 클로아티아
유럽 최고의 비경-세계자연유산에 빛나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인 클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가는 날이다. 보통 패키지여행의 경우 두시간 정도 구경을 한다는데 우리는 무려 5시간을 이 국립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즐기기 때문에 너무나 기대가 크다. 보통날 보다 30분 일찍 7시30분에 출발했다. 어제 저녁은 오토체(Otocec)호텔에서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해외여행 하다보면 잠이 부족하여 차에서는 늘 졸고 바깥구경도, 설명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면 그만큼 손해이다. 특히 오늘은 졸지 않으려고들 노력하는 표정들이다. 아침 날씨는 화창하고 새소리가 요란하여 더 이상 잠잘수도 없었다. 정말 복받은 땅이란 느낌을 받았다. 역시 호수가 있는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잔디밭에는 예쁜 꽃들이 멀리 이국에서 온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식당에 들르니 가이드가 이곳 사과쥬스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쥬스이니 많이 마시라고 테이불마다 일러준다.
차 안에서도 강조한다. 일생 한번뿐인 여행이니 구경도 사진도 열심히 찍으란다. 오토체에서 플리트비체 까지는 250km. 국경을 넘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플리트비체로 여행을 가는지 왁작지끌하다. 같이 사진도 찍고 좋아한다. 째째로호텔에서 미일박스(도시락)을 배급받아 각자 지참하고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표사는 시간도 많이 걸리는 모양이다. 크로아티아 국기와 국립공원 깃발이 휘날린다. 단체입장이 시작되었다. 일렬로 들어서니 우선 폭포가 시선을 끈다. 바위,숲,호수,나무다리,갈대,예쁜 꽃, 진한 옥색의 물 이 모두 황홀한 느낌으로 흥분시킨다. 서서히 공원 안으로들어선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발칸반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워낙 유명한 국립공원이다. 발칸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1979년)되었고 푸른 나무가 울창하고 표고차 150m나 되는 형형색색의 16개 호수, 120개가 넘는 아름다운 폭포들. 호수 주변에는 너도밤나무,삼나무,전나무들이 빽빽하다. 폭포를 보다 땅을 보면 예쁜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시멘트나 플라스틱 인공물이 전혀 없다. 다리도 보도도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휴지통도 예쁘게 나무로 만들었다. 벤치에 쉬면서 각자 느낌을 가지면서 산책을 한다. 이 공원은 모두 19.5헥타르로 전부다 보려면 사흘이 걸린단다. 1년에 9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고 한다.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여기서 배를 타고 간단다. 갖고온 도시락을 이곳의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에는 배를 타고 15분가량 P2지점으로 간다. 배는 100명이 정원이다. 배를 건너서 다시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H코스이다. 조금 올라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위에 있는 대피소 정자아래로 모여들었다. 우리 뿐만아니라 독일노인네들까지 무려 60여명이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15분가량 지나서 비는 그치고 언제 그랬나 싶게 햇살이 비친다. 비온 후라 더욱 공기도 맑고 초록 나뭇잎도 호수도 싱그럽게 느껴진다. 폭포수도 많고 산뜻하다. H코스에서 보는 폭포는 아까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호수에 그늘진 나무 그림자,산과 구름의 그림자가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물에는 청둥오리가 물반 고기반의 맑은 물위를 고기와 같이 재잘거리며 놀고 있다.
다시 배를 타고 가장 큰 코즈악 호수를 가로질러 돌아나왔다. 너무 좋은 코스로 플리츠비체의 진수를 다 본 것 같다. 운도 좋았다. 만일 비가 계속 되었더라면 완전 망가질뻔 한 게 아닌가-- 모두들 행복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내일 스플릿으로 가기 위해 가까운 시베닉으로 달린다. 아드리아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이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또 산간에 펼쳐진 목초지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젓소들의 모습도 평화스러워 보인다. 확실히 숲이 많은 나라이다. 녹색 숲과 빨간 농촌지붕이 너무 잘 어울린다. 시베닉 까지는 190km나 된다.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8시나 되었다. 호텔에서는 환영하는 악대의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기분이 우쭐해진다. 식사 중에는 악기로 생음악을 계속 연주해 주었다. 이곳은 리조트호텔로 바로 아드리아 바닷가에 붙어 있어서 내일 아침 산책코스도 기대가 되었다.
아침 산책코스가 너무 아름답다
아침산책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개구쟁이 학생들 째째로 호텔에서 밀박스(도시락)을 받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도착 크로아티아 국기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기/공원입장을 기다리는 인파
공원에 들어서자 울창한 삼림과 폭포수가 눈을 부시게 한다.
쪽빛 호수가 마음을 빨아드린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에 물고기들이 평화롭다.
바위,숲,호수를 거닐면 저절로 마음도 명경처럼 맑아진다.
환경보호를 위해 모든 인공물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나무다리 위를 줄지어 가는 관광객들.
자연이 아름다우니 사람도 고와 보인다.
16개의 호수와 120개의 폭포가 눈을 즐겁게 한다.
도시락 타임
백명 정원의 배를 타고--
유럽인 외에도 동양인들도 제법 많다.
폭포를 하도 많이 보다 보니 벌써 덤덤해지기 시작한다.
폭포를 배경으로 필자 부부
점점 폭포의 낙차가 커진다.
호수에 투영된 그림자가 멋있다.
하늘,구름,산,나무가 호수 아래에도-
청둥오리와 물고기들이 얘기를 나눈다.
하늘 높이 솟은 숲
저녁이 오니 하늘이 붉게 물든다.
<5월24일) 클로아티아
스플릿 디오클레시안 궁전
벌써 여행 4일째이다. 아침 산보를 위해 해변으로 나섰다. 여름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이곳 호텔 주변은 수영장과 각종 오락,술집,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수많은 파라솔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해적선을 만들어 술집으로,파티장으로 레스토랑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해적선 안으로 구경을 다녔다. 지중해성 기후라 열대성야자수들이 풍치를 돋운다. 오늘 첫 관광지는 시베닉에서 약 90km 떨어진 스플릿의 디오클라시안 궁전이다. 아드리아해변을 우측으로 끼고 차는 달린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숙박을 한 탓인지 9시20분부터 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외국 관광객이 엄청 몰리는 곳이라는데 다행이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불편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궁전 앞에서 베스나 라고 하는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궁전안을 돌며 설명을 하고 우리 인솔자가 통역을 하였다.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위치한 스플릿은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 이라 일컫는 곳으로 예로부터 무역 중심지로 번창하였고 목재와 대리석의 교역지였다. 인구 20만의 아드리아 해 연안 관광휴양도시로 기후가 좋아서 유럽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가 이곳 출신이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은 로마유적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난 유적으로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AD 305년부터 10년에 걸쳐 세워졌으며 사방이 난공불락의 요새화된 성벽과 주택 등 건물 대부분은 '스플릿' 앞바다의 브라체섬에서 캐온 질좋은 석회암을, 그리스와 이태리에서 수입한 대리석, 이집트에서 기둥과 스핑크스를 가져와 완공했으며, 성벽을 돌아가며 4개의 면중앙에 서로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들이 있다. 북쪽은 '황금의 문', 남쪽은 "청동의 문', 동쪽은 '은의 문', 서쪽은 '철의 문'이 있다 디오클레시안 궁전(Palais de Deocletien)은 로마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기 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바로 전 황제 디오클레디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되었다. 스플릿이란 도시는 그의 고향이었다. 노예출신인 이 황제는 병사에서 로마의 황제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퇴임 후 그는 고향인 이곳에서 살기 위해 10년간이나 공을 들여 궁전을 건설하였으나 궁전이 완성 되던해 세상을 떠났다. 1700년 전의 역사깊은 도시로 로마 초기의 여러 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석회암과 대리석을 사용한 이 궁전은 동서남북으로 네구분 되고 25m 한개면은 바다를 향해 있다.바다쪽은 황제와 친척이 반대쪽은 군사들이 거주 했다. 황제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으나 지금은 파괴되고 성당이 건축되었다. 중앙광장 중심의 도미니우스 성당이다.
4개의 성루가 있고 가로 세로 200m씩 정방형 성곽이다. 7세기에 지은 석루는 무척 아름다웠다. 피아짜스티것 거리는 우리의 명동거리와 같이 인파가 많은 상점가이다. 성곽 바깥은 물론 성곽 안에도 노천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뛰어난 문인으로 이름을 떨친 마르코마르루치(1450~1524)의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궁전 남쪽문은 바다쪽으로 나오는 문으로 항구도시로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바다에 떠 있는 대형 크루즈 선박이 두대나 정박하고 있었다. 베네치아와 아테네,이스탄불을 왕래하는 선박들이다. 수많은 배 그리고 요트들이 활발한 무역과 관광도시도시임을 증명한다. 달마치아 시절에는 아주 큰 도시였었다.
스프릿은축구도시로서도 유명하다.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때 4강에 오른 기억을 하면 이 작은 나라가 얼마나 축구에 열정을 쏟는가를 알 수 있다. 449만 인구의 나라에 축구 성인클럽이 2800개나 된다고 하니--이곳에 쟈그레브(수도)에 이어 두번째로 큰 경기장을 갖고 있다. 궁전 내부를 관람하던 도중 12명으로 구성된 아카펠라의 정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달마시안의 전통음악을 CD에 팔고 있어서 여행기 배경음악에 쓰려고 하나 샀다. 여행중 차에서 틀어서 일행이 같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숙소는 여름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바다에 있다.
수영장이 인접해 있어 편리하다.
아침산책길이 마치 관광코스 같다/해적선 안은 술과 음식을 파는 클럽이다. 숙소/디오클래시안 궁전 모형도를 보며 설명하는 현지가이드
디오클래시안 궁전 성곽과 외부모습
궁 내부 관람
내부 천정
디오클러티아누스 황제 조각상
궁전의 우람한 모습
옛 군인의 병사복장으로 관광객과 사진도 찍고-
달마시안 노래를 불러주는 아카펠라
성 안의 상점가와 식당들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높이 쌓은 성루
항구 쪽으로 성곽 외부는 관광객을 상대로 상점가가 즐비하다.
배를타고 들어오는 관광객이 많다.
클루즈 배도 보이고 많은 요트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재래시장-과일값이 너무 쌌다.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
모스타르 / 스타리 모스트 다리
호텔 야르당에서 스파게티로 중식을 먹었다. 모처럼 먹는 스파게티 별미였다. 오후 일정은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로 국경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모스트 다리를 보기 위해 135km를 달렸다.세르비아와 6년이 넘는 전쟁으로 이 아름다운 모스트 다리가 파괴되었으나 부서진 잔해를 모아 원형과 똑 같이 복구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기록을 갖는 다리이다.원형이 파괴된 것이 복구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오스만터키가 이 지방을 지배하여 이슬람교를 권장(강제가 아니)하는 관용정책을 쓰서 42%의 이슬람교인을 가졌다. 이곳 모스타르 지역은 모스트 다리 하나로 한쪽은 이슬람교 반대쪽은 세르비아정교를 믿는다. 각기 다른 교회가 서 있다. 오랜 전쟁을 극복하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며 화합과 상생의 공존부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더 유명하다. 1566년에 건설된 아치형 이 다리는 1993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완전 파괴 되었으나 잔해를 모아 2005년도에 완전 복구되었다. 내전의 아픔을 간직한채 지금은 사랑과 평화의 염원이 담긴 다리라 특별히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모스트 다리를 우산을 쓰고 건넜다. 다리의 바닥 돌은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이 다리는 오스만터키 시절 9년에 걸쳐 건설하였다고 한다. 건너편은 이슬람의 모스크가 서 있다. 이스람타운의 거리 상점가를 산책하였다. 다리 정경이 잘 나오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니 과연 다리모습이 예쁘다. 모스트라는 말은 오래된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크지는 않지만 깊고 진한 쪽빛의 레아르바강에 걸쳐 있는 모스트 다리는 높이 24m , 길이가 30m이고 폭이 5m이다. 건너편 세르비아(동방)정교는 검소한 자태를 보인다. 모든 교회가 화려함을 피한다. 한시간 반 가량 구시가지를 거닌후 6시나 되어서야 드브로니크로 향했다.
드브로니크까지는 135km라고 하니 아마도 두시간30분은 걸릴 것이다. 오늘밤도 늦기 마련- 꼬불꼬불한 산길과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섬을 보며 차는 달린다. 붉은 저녁노을이 한층 풍광을 멋있게 꾸민다. 늦은 대신 반짝이는 드브로니크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여행작가 권삼윤씨의 이태리와 발칸여행 책의 제목이 "드브로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이다. 드브로니크가 여행가들에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를 이로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로-
모스타르 구도시에 도착. 왠 양산이냐고? 부슬비가 내려 우산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모스트 다리
다리위 바닥돌도 예쁘다. 전부 조각난 다리를 완전 복구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리 밑 쪽빛의 강물이 빛난다. 다리 건너는 터키식의 모스크가 보인다.
반대로 이쪽은 서부유럽풍의 주택들이 즐비하다.
장식 소품 완구점
멀리서 보는 아취형 다리가 더 예쁘다.
길바닥 장식돌도 예술적이다.
모스크 앞의 우물/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닦는다.
모스크 전경
모스트 다리를 다시 밟아본다.
모스트 다리와 양쪽 대결의 마을이 이제 평화와 상생의 상징으로 더욱 값을 발한다.
<5월25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니크는 오늘도 빛나고-- 발칸여행의 핵심 두부로니크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여의날과 같이 바닷가로 산보를 나갔다. 일행 중에도 늘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쳐 아침인사를 나눈다. 두브로니크는 호텔에서 불과 30분 거리이다.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구시가지 중심 필레게이트 앞에서 현지가이드를 만났다.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에는 벌써 만차이다. 높은 성벽이 바다에 면해 우뚝 서 있다. 마치 영화 빠삐용의 감옥을 보는 것 같다. 두브로니크궁은 7세기부터 구축하기 시작했다. 2km에 걸쳐 구축된 이 성의 안쪽이 구 두브로니크 시가지이다. 높은 성은 11세기 베네치아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채이다. 7세기 이후부터 구시가지는 두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라구라공화국과 민치타 지역으로 분리되었다. 두브로니크라는 이름은 '두부라바'라는 오크(oak)나무의 일종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성채의 가장 중요한 필레게이트를 들어섰다. 출입문 조각에 세인트브레즈의 조각상이 시선을 끈다. 두브로니크는 라구라 공화국시 베네치아에 대항할 정도로 큰 도시를 이루고 자유무역이 번성했던 도시이다. 결국에는 베네치아에 점령되었지만--두브로니크는 아드리아 해안 중 가장 큰 도시였다. 7세기 베네치아에 대항,세금을 철폐한 자유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가죽,금,은 등을 전유럽에 수출입했다. 지중해까지 모든 지역에 무역을 전개하여 15~16세기에는 가장 번창한 시기였었다. 스페인 폴투갈과 함꼐 무역의 중심역할을 했었다. 스페인 폴투갈 처럼 진취적이지 못해 결국 패망하기에 이른다
가장 메인스트리트인 플라차거리(닉네임: 스트라툰)를 중심으로 하고 292m의 긴 스트리트를 좌우로 비잔틴과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양쪽의 건축 양식이 다른 특이한 모습이다. 거리의 오른쪽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왼쪽은 크로아티아 식으로 식당과 쇼핑가가 늘어서 있는 것이다. 라이벌 의식으로 전혀 협조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관리,운영된다고 한다. 주요 건물로는 대성당,수도원이 있고 거리 끝에는 성블레즈 성당과 렉터 궁전이 위치해 있다. 종루 시계탑은 정시가 되면 두명의 군인이 나타나 종을 친다.
18세기에 재건된 로마카토릭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바로크 양식으로 내부 건축양식과 이콘이 매우호화롭다. 이탈리아 조각가가 설계하였으며 교회내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회가 열리며 특히 금년 여름축제 때 한국관연악단과 공연을 한다고 한다. 일행들은 그때 다시 오자고 하며 흐뭇해 한다.
둥근 돔 형태의 분수대 "오노프리오 분수"가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다. 원래 분수 개념은 이런 것이었다. 물을 가득 담은 이 분수는 기온을 낮추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1324년에 최초로 건축되었으나 유고내전 때 총탄의 자국을 내기도 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약국이 있었다. 1391년열린 이 약국은 당시 수도원 내에서 수도사를 치료하기 위해 지으졌으며 지금도 약국 기능을 하고 있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을 들여다 보면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 부억이 항상 맨 윗층에 위치하는데 이는 주방요리시 연기를 위로 빠지게 함이고 또 화재시 불끄기가 쉽도록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란다. 음식물을 아래로 내릴 때 줄을 이용하는 방법이 이 때 처음으로 생겼다고 한다. 1272년부터 이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골목 끝 높은 곳으로 성벽문이 있다. 위급시 성벽 밖으로 나가기 위함이다.
구 성곽 내에는 2천명이 살고 있으나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17,000명이나 된다. 루시아광장 국기 게양대 아래 기둥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동상은 올란드 기사상으로 이 곳을 지켜달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두브로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레즈 대성당은 10세기 베네치아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켜낸 성블르즈를 기념해 지은 교회로 대성당 내 보물실에 아직도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손에 도시 모형을 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건물은 건물 위는 고딕식이고 아래 부분은 루네상스식으로 조화를 이루며 건축되었다. 거리는 모두 바로크 양식이며 건물 발코니 부분에 커피를 마시는 제복입은 여인이 있어 사진을 찍었더니 이곳이 두브로니크 시청이란다. 시청앞에는 마린드리시(성직자이며 희극작가)의 동상이 서 있었다.
렉터궁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달마치아 건축의 최고걸작이라는 아케이드가 달려 있다. 렉터궁 안으로 들어갔다. 두브로니크 행정책임자가 재임기간인 한달동안 이 렉터궁에 살면서 모든 업무를 보았다. 지붕은 17세기초 루네상스식으로 지은 것이 전쟁으로 파괴되어 최근 보수된 것이다. 내부는 14세기 유행했던 금분기법으로 화려하게 꾸몄고 접견실은 로코코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블레이스(성블레즈)가 성곽을 들고 있는 조각이 이채로웠다. 1백7십만불의 금괴를 보관하는 금고도 시선을 끌었다. 남을 속이는 죄가 가장 큰 죄로 취급되던 당시의 감옥도 볼 수 있었다. 2층 집무실은 로코코 양식의 의자.가구가 보이는데 이태리로부터 도입하여 발전시킨 것이라 한다.
원자구조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인 루더보스코비치의 300주년 전시회 포스타가 곳곳에 붙어 있다. 그는 음악당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세인트메리 대성당 입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하고 있었다. 이 성당은 12세기 무너진 것을 재건하였으며 이 성당을 지은후 전쟁이 더이상 없기를 바랬으나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여 세인트블레즈 성을 지은 것이라 한다.
성벽 밖으로 나오니 구 항구가 나왔다. 성벽의 길이가 2km나 되는데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 성루와 성벽은 1991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전쟁으로 집중포격을 받아 파괴되었으나 97년 서유럽의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성 밖도 아름답고 양쪽 옆의 집들 모두가 아름답게 보인다. 두브로니크를 떠나면서 언덕위 차길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내려다 보이는 두브로니크는 어떤 사진 보다도 예쁜 한폭의 그림이다. 몇장이고 카메라 샷다를 누른다. 노란 유채꽃이 배경으로 어우러져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역시 두므로니크는 '클로아티아의 진주'라는 말이 실감난다. 일찌기 영국의 극작가이며 노벨문학상을 탄 조지버나드쇼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찾는 자는 두브로니크를 가라"고 했다. 여행가 권삼윤씨도 그의 여행기 제목에서 "두브로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고 했나보다. 나는말하고 싶다. "두브로니크는 오늘도 역시 눈부시다"고--
오늘아침도 해변 산책을 마치고--
두브로니크 주차장엔 벌써 만차를 이루고-
두브로니크 외곽 성곽/마치 영화 빠삐용을 생각케 한다.
필레문으로 통해 들어가야 한다.
필레문
돔모양의 분수대
항상 꼭지에선 물이 흐른다.
로만카토릭교회
메인 스트리트 플라차 거리
국기 게양대 아래 이 성을 지키려는 듯 올란드 기사상이 칼을 들고 서 있다. 좁은 골목의 집들은 언제나 맨 위층에 부억이 있다고-그리고 음식을 오르내리는 줄이 메어져 있다. 아래 윗층이 건축양식이 다르다. 카페가 있는 이 건물이 시청청사라고-
제복입은 아가씨를 배경으로
성직자이며 희곡작가 마린드리치 동상
미카엘 플라자또 동상
렉터궁
궁내의 화려한 천정
대리석으로 예쁘게 장식한 천정
베네치아 공격시 성을 지켜낸 성블래즈가 성 모형도를 들고 있다. 전시관 내의 금고/건축가이며 과학자인 루더보스코비치 300주년 기념 전시회 포스타
세인트메리 대성당
좁은 골목에도 카페가 있어 멋이 있어 보인다.
바깥은 항구로 연결된다.
두브로니크는 2km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언덕 위에서 본 두브로니크
오늘도 두브로니크는 빛나고 있다.
두브로니크를 배경으로 필자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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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니크 구경 잘 합니다. 한 번 가서 옛날 북아프리카 이슬람 해적들의
약탈을 방어한 현장을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