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계획으로 밀양시 일원의 생태 ,역사 문화 탐방을 다녀 왔습니다.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리의 염려 덕분에 그의 비가 오지 않아서 시원하게 잘 다녀 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밀양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와 문화와 인물과 여러 신비로움이 많은 옛고을 입니다.
-이 번 기회에 참석하지 못하신분은 방학 때 가족들과 투어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적극 권합니다.
-영남루 입구 입니다. 진주에 촉석루, 평양에 부벽루 등으로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 입니다.
-밀양 8경의 제 1경으로 야경이 아름답습니다..
-밀양 문화유산 해설사님으로 부터 열심히 해설을 듣고 있습니다.
-3대 누각 중 격조가 최고라 평가 받고 있는 영남루, 마침 배롱나무가 활짝 피어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상추반 최은현 선생님
-가지반 박종은 선생님
-루의 마루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현판풀이> : 밖에서 본 현판 글씨 풀이
-고남명루 : 문경세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경상도를 통털어 교남지방이라 했슴)
-강좌웅부 : 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 큰 고을
-용금루 : 높은 절벽에 우둑 솟아 있는 아름다운 누각
-현창관 : 영남루에 오르니 사방이 높고 넓게 나타난다는 뜻
-강성여화 : 강과 밀양 읍성이 한데 어우려져 마치 그림과 같다
<안에서 본 현판 글씨의 해설>
-영남제일루와 영남루의 현판은1843년 당시 인인재 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와 이현석(7세) 형제가 쓴 글씨 임..
-그외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의 글씨가 있다.
-영남루 일원에는 천진궁, 아랑사당, 무봉사 등이 있다. 시간이 나면 찬찬히 돌아 보면 문화유적지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루바닥에 낮아서 편안하게 우리의 문화 유적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어린이와 학부모님들
-그래도 어린이는 여기서도 스마트 폰 놀이를
-오늘 처음 참석하신 박경선(수성형외과)원장님과 김준휘 어린이
-열심히 메모도하시고(가지반 홍지민 어머님), 경청하시는 김행정 선생님---
-맛있는 도시락을 각자 준비하여, 밀양강 야외 음악당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막걸리도 한잔
-부산꿈틀어린이 텃밭학교를 위하여!!!!
-바나나 막걸도 준비---
-넓은 잔디 밭에서 어린이들은 원없이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야외 음악당에서 다시 바라본 밀양 영남루 입니다.
-우리의 고귀한 문화 유산 입니다. 우리의 현명한 조상들이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울리게 이렇게 아름다운 누각을 짓고 자연을 즐길 줄 알았습니다.
-때마침 간간히 보슬비가 오는 아주 시원한 날씨 덕분에 우리의 생태 문화 탐방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점심을 강변에서 맛있게 먹고 밀양 부북 연꽃 마을로 가서 연꽃을 한없이 보았습니다.
-연꽃 끝 자락에 여러 중류의 관상용 호박과 박 ,수세미도 보았습니다.
-홍지민이가 뱀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홍연이 한창 피고 있습니다.
-연 꽃은 조선 초기에 강희맹선생님이 중국에서 연씨를 가져와 경기도 시흥군의 관곡지(연못)에 제일 처음 심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 시흥시에서 그 주변을 연꽃 테마공원을 조성 하여 수도권지역에 최대, 최고의 연 꽃 단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강희맹 선생은 정치가이면서 농업학자였습니다.시흥 처가집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시면서 <금양잡록>이라는 최초의 민간 농업교과서를 쓰신 분입니다. 후 일 이 책자가 일본의 농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세종께서 쓰신 <농사직설>이 최초의 국립농업 교과서 이지요. 금양 잡록은 농사직설에 없는 내용을 기록 된 책입니다.
-강희맹 선생님은 양화소록(최초의 원예교과서)를 쓴 강희안 선생님의 동생입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독조도>란 유명한 그림을 남겨셨는데, 현재 일본 동경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문화를 도둑질해간 것이지요. 시흥시에서 반환 운동 중인 그림입니다.
-연 씨가 맺혀져 있는 연밥입니다.
-연 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꽃 이상의 꽃으로 즐겼던 꽃입니다. 겨울에 대나무에 흰눈이 올 때 친구를 불어서 시회를 하였고, 봄에 매화 필 때, 여름에 연 꽃이 필 때, 가을에 국화가 필 때 기본적으로, 일년에 4번은 시회를 하였습니다.
-휼륭한 선비의 시회에 초청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였지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18년의 강진 다산 초당의 유배지에서도 꼭 6번의 시회를 하였답니다. 위 4번에다가 참외가 익을 때, 살구 꽃이 필 때 두번을 더 했답니다. 유배지에 음식을 장만할 여유가 없기에 주변의 명사들에게 각자 자기가 먹을 술과 음식과 집필묵은 지참하여 시회에 참석하였답니다.
***멋 있는 선비들을 둔 한민족 입니다. 비록 오늘 날 연 꽃이 필 때, 시회로 친구를 초청 할 수 없지만 오늘 처럼 텃밭이 인연이 된 좋은 분들과 연 꽃을 함께 보면서 즐거움을 갖는 것이 시회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도 해 봅니다...
-예림서원 게시판-
-밀양 부북 연극촌 주변의 연밭을 돌아보고 약 10분 거리에 있는 예림서원의 구영당에 편안히 앉았서 예림서원에 배양 된 점필재 김종직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원은 요즘의 사립대학교 입니다.
-고려가 불교가 국교로 불교의 패단이 심하여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조선이 창립 됩니다. 조선은 도학, 주자학, 성리학을 치국의 이념으로 표방하면서 신흥 사대부 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건국 됩니다. 불교 국가인 고려왕조와 완전히 이념을 달리한 조선 왕조는 정치,사회 교육, 의례 까지도 성리학을 근본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성리학은 완전히 조선의 것으로 꽃피워가기 시작 합니다.
-성리학의 중심에 사람파가 있고 사람파의 중심에 서원이 있었습니다. 서원은 가장 기본이 공부(강학)하는 곳이고 차츰 시대가 지나면서 제향의 장소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소수 서원 입니다.1550녀(명종 54년)에 사액서원으로 국가가 인가 해주는 최초의 서원이 됩니다. 여기에 안향선생과 주세봉, 퇴계 선생님과 관계가 깊습니다.
-한 때는 서원이 난립하여 대원군 때 전국에 1,000여개의 서원이 있었습니다. 대원군의 서원 철패령(1865년)으로 전국에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패했습니다.
-서원이 난립하다보니 서원의 부작용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성리학과 사림파의 중심에 서원의 역할은 대단하였습니다.
-모두들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서원을 설립하고 서원에서 공부하였기 때문 입니다.
-동방 5현은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회제 이언적, 정암조관조, 퇴계 이황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선비라는 말입니다. 광해군 때 나라에서 국법으로 정했습니다. 김굉필과 정여창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님이 함양 군수로 있을 때 직접 찾아가서 배웠습니다.
-정암 조광조 선생님은 김굉필 성샌님이 유배 중일 때 찾아가서 3년간 공부를 합니다. 회제 이언적 선생님은 스승이 손중돈 외삼 촌 입니다. 손중돈 선생의 스승도 점필재 김종직 선생님이십니다. 퇴계 선생님의 학문은 회재 이언적 선생님의 학통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님은 아버지 김숙선생님께서 공부를 배웠습니다. 아버지 김숙자 선생님의 학통은 길재 선생님으로 부터 배웠습니다. 길재 선생님의 학통은 정몽주 선생님으로 부터 배웠습니다.
-사림파의 학통은 크게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손중돈-이언적-이황 등의 학통으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즉 조선의 성리학의 종조가 김종직선생으로 평가 받는 이유 입니다.
-다만 김종직 선생은 세조 때 과거에 합격하여 세조의 녹을 먹었기 때문에 한 때는 제자인 김굉필 선생님과 돌아서기도 하고 동방 5현에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김종직 선생님의 모든 제자들은 귀양가고 사약을 받고 김종직선생은 부관참시를 당하면서 선생의 문집은 모두 불타고 집안은 초토화 됩니다.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의 갑자 사화에서 다시 한번 더 사림파의 씨를 말립니다.
-이 두 사화의 원인 제공에 이극돈과 유자광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연산군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원인 제공자가 없었다면, 그 당시 휼륭한 사람파가 희생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이 조선의 성리학, 사람파를 이끌었다면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임진 왜란, 일제 식민지, 6.25 등을 격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을 평가 입니다.
-오늘 날 대한 민국에 위대한 스승이 누군가? 많은 국민들로 부터 존경 받는 지도자가 있는가?
-왜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로 부터 존경 받는 스승과 지도자가 없는가? 이것이 이번 밀양의 탐방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림선원과 김종직 선생님에 대해서 공부 할 때 어린이들은 서원 풀밭에서 방아개비,메뚜기를 잡고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이 서원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서 먼 훗날 이나라의 큰 기둥이 되기를 빌 뿐 입니다.
-기념 찰영
-아래 소나무는 제가 20여년전에 심은 나무 입니다.
-임진왜란 때 승려로서 의병, 승병을 모아 나라를 위해 애쓰신 유정 사명대사를 모신 홍제사와 사명대사 비긱 앞
-사명대사 비각 앞에서 밀양의 물가사이 중 하나인 사명대사의 땀나는 비각에 대해서 자세히 해설을 들음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비각에서 땀이 나는 비각
-음각으로 쓰진 글자에는 땀이 나지 않고 돌에서만 땀이 남, 많이 날 때는 1말 이상 땀이 났다고 함...
<밀양은 4대 신비>
-사명대사의 땀나는 비
-어음골의 여름 얼음
-만어사 어산불영경석의 부처 영상
-무봉사의 태극 나비
-사명대사 비각을 세울 때 기념식수로 심어진 향나무라고 추정
-관리비만 1년에 1천만원 정도 든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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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생태 문화 탐방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준비해 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학부님들 중에는 해와 출장을 갔다와서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가운데 참석하신 학부모님도 계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 잘 보내시고 1박 2일 캠프 잘 준비하겠습니다.
첫댓글 기획하시고 준비해 주시고 기록물 까지 완벽하게
올려주신 선생님 감사드리구요
바쁜 와중에 함께 해주신 친구들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리구요
하루 좋은 코스로 편안하게 잘 다녀 왔습니다.
모두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비도 참더라구요~^^
올듯말듯한 비여서 오히려 선선했답니다.
그간 밀양을 너무 몰랐네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