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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원리(4) : 행복한 삶을 이루는 원리, 수수작용 |
<모든 존재는 주체와 대상으로 존재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주체와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체와 대상이 만유원력을 중심하고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으면,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 , 즉 생존과 번식과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힘을 발생케 하는 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모든 것들은 수수작용의 힘을 통해서 존재하고 번식하고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유원력과 수수작용의 힘은 어떤 관계일까요? 앞의 강좌에서 말씀드린 만유원력과 수수작용의 힘의 관계는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으로서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유원력이 종적인 힘이라면, 수수작용의 힘은 횡적인 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힘의 근본적인 힘 즉 원인적인 힘은 만유원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존하실 수 있는 이유> 이런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영존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 내에 영존하는 이성성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체 내에 영존하는 이성성상이 만유원력에 의하여 영원한 상대기준을 이루어서 영원한 수수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수작용의 힘에 의해서 그 이성성상은 영원한 상대기대를 조성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기대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은 영존하시며, 또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기 위한 모든 힘을 발휘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법칙은 수수작용> 한편 피조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그 자체를 이루고 있는 이성성상이 만유원력에 의하여 상대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수수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수수작용의 힘에 의하여 그 이성은 상대기대를 조성하여 그 개성체의 존재기대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그 개성체는 하나님의 대상으로 서게 되며, 또 스스로가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도 발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양자와 전자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원자가 존재하게 되고, 그의 융합작용 등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양과 음의 두 이온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분자가 존재하게 되며, 또 화학작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식물에게 있어서는 도관과 사관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식물체의 기능이 유지되며, 그의 유기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암술과 수술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번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도 수컷과 암컷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그의 생을 유지하며 또한 번식합니다. 그리고 동식물간에 있어서도 산소와 탄산가스의 교환, 벌과 꽃의 수수작용 등에 의하여 그들은 공존하고 있습니다. 천체를 보아도 태양과 혹성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태양계가 존재하면서 우주형성을 위한 운행을 하고 있으며, 또 지구와 달도 서로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면서 공전과 자전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동맥과 정맥의 순환작용과 숨을 내 쉬고 들이쉬는 호흡작용, 음식의 섭취와 배설 ,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의 수수작용으로써 그 생을 유지하고 있고, 그 개성체는 몸과 마음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존재하면서 그의 목적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람은 수수작용이 잘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도 수수작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가 참사랑을 잘 주고 잘 받을 때 가정의 행복이 시작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형제자매가 서로 잘 주고 잘 받는 가정이 될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있어서는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국가에 있어서는 정부와 백성이, 더 나아가서 세계에 있어서는 국가와 국가가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서 공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총재님께서는 "악은 투쟁과 분열로 망하고 선은 화합과 통일로 흥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각자 자기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만유원력을 따라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혈기가 솟아오를 때는 차라리 수수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낳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명상을 하면서 화평한 마음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혈기가 용광로처럼 솟아오를 때 수수작용을 하다보면 원치 않는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속담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작용은 하나님과 인간의 수수작용의 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른 것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그 양심의 힘만은 뚜렷이 그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으로서, 자기도 모르게 강력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악을 행할 때에는 즉각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타락인간에게 이러한 양심의 작용이 없다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양심작용의 힘은 어떻게 되어 생기는 것인가요? 모든 힘이 수수작용에 의해서면 생기는 것이라면, 양심도 역시 독자적으로 그 작용의 힘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양심도 어떠한 주체에 대한 대상으로 서서 그의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양심의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타락은 사탄과 수수관계를 맺은 것> 타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수수의 관계가 끊어짐으로써 서로 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과 수수의 관계를 맺어 그와 일체를 이루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수수작용을 위한 주체나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에게나 상대기준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뜻을 중심하고, 정(正)을 중심하고 수수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지금도 사탄과의 수수관계를 지속하면서 횡적으로는 타락한 인간을 주체 혹은 대상으로 상대기준을 맺어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온갖 범죄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이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수수의 관계를 끊어야 했던 것입니다. 악한 수수관계의 인연을 청산하고 새로운 수수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새로운 수수관계의 주인공으로 오신 분이 바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한 수수관계를 이루신 분>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한 수수의 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룬 오직 한 분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누구든지 예수님과 완전한 수수의 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루게 되면 창조본성을 하여 하나님과도 수수의 관계를 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타락인간의 중보가 되는 동시에 길이 되고 진리가 되며 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생명을 바쳐 사랑과 희생으로 모든 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앞에 믿음으로 돌려드리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3/16) 기독교는 사랑과 희생에 의하여 예수님을 중심하고 인간 사이의 횡적인 수수의 회로를 회복함으로써, 하나님과 종적인 수수의 회로를 복귀시키려고 하는 사랑의 종교인 것입니다. <수수작용으로 본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은 모두 이 목적으로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7/1-2)라고 말씀하셨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고도 하셨으며, 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1)라고 말씀하셨고,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고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수작용을 아는 사람은 먼저 주어야 한다> 수수작용(授受作用)은 줄 수(授)가 먼저요 받을 수(受)가 다음입니다. 그러므로 수수작용을 아는 사람은 먼저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먼저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받으려고 낳지 않습니다. 낳아 놓고 먹여주고 닦아주고 입혀주고 보살펴 주면서 기뻐하는 그 기쁨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가장 큰 고통은 주고 또 주고 싶은 대상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통해 볼 때에 존재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먼저 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주시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찬란한 햇빛과 공기와 단비를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먼저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먼저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 말에 적선지가는 필유여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집안이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문총재님 가훈과도 같은 말입니다. 문총재님 가문은 증조부 되시는 문정흘 선생 때부터 거지와 손님 대접의 가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에는 '팔도강산에서 우리 집 찾아오는 사람은 후히 대접해 보내라'라는 가훈을 가지고 영남과 호남지방에서 북간도와 만주를 향해 정처없이 걸어가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합니다. 신세를 진 사람들은 문을 나서면서 고마운 인사를 하고 동구박을 나서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동네가 보이지 않을 때 또 손을 모아 복을 받으라고 축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지가 찾아와서 "밥 좀 주시오" 하는 소리가 세 번만 나면 조부께서는 당신의 밥상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 거지를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문이었기 때문에 문총재님같은 위대한 분이 탄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으려거든 먼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호흡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호흡도 호(呼)를 먼저 해야 합니다. 숨을 내 쉬는 것만큼 들이쉴 수가 있습니다. 먼저 주는 것만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도 수수작용의 법칙입니다. 땅속에 귀한 씨를 심었을 때 그 땅에서 더 많은 것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는 생활을 하면 산새와도 친구가 됩니다> 강원도 춘천의 삼악산 등선폭포 입구에서 20여 년 째 휴게소를 운영하는 김용운(65)씨는 겨울이 되면 매일같이 산새들을 위한 아침밥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잘게 부순 땅콩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김씨가 휘파람을 몇 번 불면 곤줄박이 새 여러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김씨 손에 놓인 땅콩을 물고 날아간다고 합니다.
김씨가 산새들의 아침밥 주기를 시작한 이유는 겨울에 숲속에서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진 산새들이 휴게소 있는 곳까지 내려와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씨가 바깥에만 나오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어 보채는 산새들 때문에 김씨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몇 번이고 장갑을 벗은 채 손바닥 위에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땅콩을 올려놓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주는 생활을 하면 원수와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삭의 두아들 에서와 야곱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 돌아가시는 날이 동생 야곱의 초상날이 될 것이라고 별렀습니다. 형님의 칼날을 피해 외삼촌댁으로 피난가서 21년을 살다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에 에서형님을 만나러 갈 때에 야곱은 아무 조건없이 형님에게 먼저 암소와 황소와 낙타와 양과 염소를 떼로 보내주니 형님의 마음이 풀리고 둘은 얼싸안고 통곡을 하면서 화해하였던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는 주체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문총재님께서는 수수작용은 주체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체는 먼저 주는 위치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체는 대상보다 더 나은 위치나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뭐냐? 주체는 대상보다 좀 더 가진 것, 좀 더 큰 것, 좀 더 내용이 있는 것, 좀 더 힘 있는 것, 좀 더 넓은 것, 좀 더 높은 것, 좀 더 진리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127권 235쪽)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입장에 있는 사람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주체라면 남편은 아내보다 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더 가지고 있던지, 신앙을 더 가지고 있던지, 말씀을 더 가지고 있던지,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것이 없다보니 어떤 남편은 힘이 더 세니까 폭력으로 아내를 다스리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창조목적과 배치되는 수수작용의 방법입니다. 교회에서도 주체입장에 있는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식구들보다 더 가지고 있어야 주체가 됩니다. 사랑이나 말씀이나 인격이나 심정이나 신령한 기운이나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입장에 서 있지 못하면 신앙세계에서 주체의 자리가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체는 대상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서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수준 높은 것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체의 수준에 따라 대상이 받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수준 높은 주체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수준 높은 주체는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대상이 따라갑니다. 사람의 심리는 누구나 수준 높은 주체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문총재님으로부터 축복결혼을 받을 때에 약혼수련을 하면서 상대자의 이름을 써내도록 하던 때가 있었는데 희망하는 주체나 대상을 확인해 보니 거의 모두가 수준 높은 몇 사람의 신랑과 신부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똑 같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좋고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수준이 높은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서 수준 높은 행복을 이루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수준 높은 선생님을 통해서 배우고 싶어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수준 높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합니다. 수준 낮은 주체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노래를 들어도 수준 높은 가수의 노래를 들으려고 합니다. 수준 높은 가수가 공연을 하면 소낙비를 맞으면서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수수작용에는 대상도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대상이 없으면 아무리 수준 높은 주체라고 하더라도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대상의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대상에 따라 수수작용의 힘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수준이 낮으면 수준 낮은 수수작용을 하게 되고 대상의 수준이 높으면 수준 높은 수수작용을 하게 됩니다. 수준 높은 주체는 수준 높은 대상을 통해서 차원 높은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삶의 원리 수수작용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 봅시다>
원문보기 cheonil.tongil.or.kr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통일교, 문선명 총재, 문형진, 문현진, 가정연합, 가정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