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25보> - 강석호 교수님을 따라 상하이대학을···
“벗씨야, 또 기쁜 소식이다. 기쁜 소식!”
“무슨 일인데?”
“방금 전화 받았는데 한국에서 강석호 교수님이 오신단다.”
“그런데? 그게 무슨 기쁜 소식?”
“아이, 참···. 우리, 중국어 수업 안 해도 되잖아. 또 놀 수 있단 말이야.”
“난 또···.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이번 학기는 대학에 적을 두지 않고 공부하다 보니 꽤나 지루했다.
평일에 매일같이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공부하면 얼핏 쉬울 것 같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때때로 어린애마냥 땡땡이 치고 싶을 때가 결코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한국의 영남대학교 명예교수인 응용화학공학부 강석호 교수님께서 상하이 온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난징의 난징대학을 견학하고 돌아오는 길에, 상하이의 상하이대학에서 강연을 한다는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가 하기 싫어 핑계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던 중이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소냐.
그리하여 나보다 더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벗씨와 의기투합해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또 난징으로 배웅도 해 드렸다.
그리고 난징에서 상하이로 들어올 때도 다시 마중 나가서는 상하이 대학까지 그만 따라나서고 말았다.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나고 보내고 한다는 것이 이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하이 중심의 북서쪽에 위치한 상하이대학은 푸단대학(复旦大学)이나 상하이자오통대학(交通大学)만큼 유명한 대학은 아니었다.
하지만 12년 전에 새로 옮겼다는 캠퍼스는 약 30만 평이나 될 만큼 규모가 크고 시설도 훌륭했다.
그 대학의 환경화공학과 천지에(陈捷) 교수님께서 강 교수님과 우리 부부를 승용차에 태우고는 학교 캠퍼스와 환경화공학과 연구동 관련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시 중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국 학생들은 별로 없다고도 했다.
(무슨 대학이 이렇게 좋아요? 학교 안에 엄청나게 큰 호수가... 멀리 중앙도서관이 보인다.)
내 전공이 경제학이다 보니 그 동안 이공계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이공계 분야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실험실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이공계 연구실을 견학해 보고 나서 확실히 이해의 폭을 높일 수가 있었다.
내가 보아온 한국의 경제학과 연구실은 교수 연구실 안에 조교 자리와 각종 자료들로 꽉 차 있다.
즉 대학원생 혹은 학부생이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문 입구 쪽에 있고, 그 주위로 각종 문헌 등 자료들이 들어있는 책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여기 환경화공학과 교수 연구실은 -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가 없지만 - 교수 연구실과 실험실이 따로 있었다.
교수 연구실은 일반적으로 행정 업무만 볼 수 있도록 우리네 연구실보다 작은 방이 있었다.
즉 자료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층에 또 하나의 연구실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딸린 방이 수없이 많았다.
각종 비커, 약병 등의 실험기기들과 실험시약들로 가득 차 있는 방들이 아래위층으로 나누어 수없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곳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고, 어떤 곳은 실험을 하고 있는지 한 연구원이 컴퓨터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견학하고 있는 와중에 간간히 강 교수님께서는 우리 부부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보충 설명까지 해 주었다.
“나도 중국어를 좀 공부해 봐서 중국어가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어로 된 각종 화학원소와 전문용어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여기 이 병 한 번 보세요. 겉면에 화학원소 이름이 적혀 있죠? 공기 기(气)자 밑에 뭐라고 이상한 기호가 들어가 있죠? 그 기호가 달라짐에 따라서 같은 기(气)자라도 원소이름이 모두 달라져요. 그러니 얼마나 어렵겠어요?”
(각종 실험실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이 강석호 교수, 오른쪽이 상하이대학 천지에 교수)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수소(氢), 산소(氧), 질소(氮), 염소(氯), 불소(氟), 아르곤(氩), 네온(氖), 헬륨(氦)에다가, 생소한 라돈(氡), 크립톤(氪), 크세논(氙) 등에도 공기 기자 밑에 각각 다른 기호가 들어가 있었다.
이건 어렵다기보다 어쩌면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와, 정말 어렵고도 신기하네요. 중국말 자체도 어려운데 중국어로 된 화학을 공부하려면 엄청 어렵겠는데요. 원소 기호가 이러할 진데 이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각종 화합물 이름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이었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중국어도 일상생활 회화는 조금만 공부하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경제나 사회 등의 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바로 용어가 어려워지고 머리가 아파진다.
예컨대 물가상승, 취업난, 재정수지, 저임금, 상실감, 행복지수, 범죄율, 소득격차, 그리고 빈곤문제 등의 용어가 나오기만 하면 그만 발음이 막히고 마는 것과 같다 라고나 할까.
어쨌든 여기저기에 있는 각종 실험실을 두루 견학하고 6층 세미나 장소로 갔다.
이번에는 강 교수님이 발표할 차례였다.
각종 연구실에서 공부하던 남녀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대체로 어려 보였다.
아마 우리나라와는 달리 군에 다녀오지 않아도 되므로 대학원생이라 하더라도 많이 어린 학생들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낯선 풍경이라 어색해 했지만 눈에는 총기가 흐르고 있었다.
강 교수님은 영어로 강의를 했다.
제목은 <Importance of Particle Size Analysis in Particulate Systems and Processes>.
미리 준비해 간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보여주며 한 시간 동안이나 차근차근 강의를 해 나갔다.
학생들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이 젊고 유능한 학생들이었으므로 다 알아들었으리라.
나는 내 전공도 아니고, 그것도 영어로 강의를 했으므로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상하이대학 대학원생과 일부 교수님 앞에서 강의하고 있는 강석호 교수님... 영어로 발표.)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부터 약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 대학원 시절에도 나는 최용호 지도교수님을 따라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인터세미나를 했던 적이 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원생들끼리 여러 경제문제를 토론하는 생소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아마 그때 익숙해진 세계화의 분위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전공이 다르고, 내용도 잘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나는 이런 의미 있는 경험을 또 다시 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지 벌써 4~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세계를 여행하면서 공부하고 강의하고 계시는 강 교수님이 존경스럽다.
특히 교수님의 말씀 중 외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내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건 영어와 독일어뿐이에요. 중국어, 일어, 러시아어는 그저 조금밖에 못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서 일본어 위성방송을 듣고, 연구소에 출근해서는 인터넷으로 중국어 방송을, 다시 퇴근해서는 인터넷으로 러시아 방송을 듣고 있지요.”
강 교수님은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어느덧 열의에 찬 다짐을 굳게 하고 있었다.
강 교수님은 7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20년 이상이나 젊은 나는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하고 반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어 공부가 하기 싫어서 강 교수님 따라 놀려고 했던 마음이, 어느새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무사히 귀국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교수님 여행 일정에 도움도 못 드리고 제가 오히려 도움만 받아서 죄송합니다. 중국어 공부 제대로 해서 교수님 모시고 중국 오지로 여행할 수 있는 능력 키워 놓겠습니다.”
2010년 10월 31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김지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 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 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 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 문자 주세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제주위에도 이처럼 늘 공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을 보면서 배우고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실천은 더딜뿐이지요. ㅎㅎ 요즘 대구는 만산홍엽입니다. 어제 팔공산다녀왔는데 순환도로 단풍나무가 절정이더군요. 상하이에서도 이좋은 계절,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만산홍엽이라... 우리나라에만 어울릴 단어네요. 여긴 산을 보려면 두 시간을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저 우리나라 산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면 각종 섬에 있는 산을 돌아볼까 하고 다시 계획하고 있습니다. 글고 최소한 3개 국어는 마스터 해야겠다고도 다짐해 봅니다. 시간과 돈이 그만큼 도와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히히.
들렀다가 할말을 잃고 나갑니다... 이사님~ 난 뭐야 대체 ㅋㅋ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시간이니 지금부터 많이 활용하세용. 히히.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시간이니...' => 아~정말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찰라 ...이 말에 힘을 얻어서 나갑니다~^^
아, 제가 실수 했군요. 우리보다 많이 가진 것은 또 있죠? 미모와 인기...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