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국어교육을 바꾸는 새힘,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43개 한글문화단체와 교육단체들은 25일 세종문화회관 옆 조선어학회한말글수호기념탑 앞에서 정부의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초등학교 한자병기 정책 반대 기자회견하는 한글.교육단체들 © 은동기 | |
이날 기자회견에서 첫 발언자로 나선 국어문화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은 기자회견 취지 설명에서 “정부는 초등학교교사에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미리 정해놓고 그 순서를 밟고 있다.”면서 “그것은 한자검증 단체가 돈벌이하고 있는 한자능력검증시험을 돕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회장은 이 자리는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시다가 일제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서 돌아가시고 모진 고문을 당하신 조선어학회한말글수호기념탑 앞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한글을 광복 70주년이 되는 시기에 더럽히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기자회견 츼지를 설명하는 국어문화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 © 은동기 | |
이회장은 이어 “오늘 이후 우리는 교육, 한글단체들과 함께 ‘초등학교한자병기 반대국민위원회’를 구성, 초등학교 한자병기 정책을 막겠다.”면서 “그래도 강행한다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이 정부의 반대 투쟁에 나서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정부 정책에 대한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그는 이어 “일찍이 박정희대통령은 1964년부터 5년 동안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정책을 시도했으나 그 결과 부작용이 많아 다시 1970년부터 지금까지 한글 전용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면서 “그런데 박근혜대통령이 다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것은 한글뿐 아니라 나라를 망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그대로 둘 수 없다.”고 격렬히 반발했다.
참가자들은 ‘교육부는 시대흐름 거스르는 한자 병기 즉각 폐기하라’, ‘교육부는 한자급수시험으로 장사하는 한자파의 요구를 거부하라’, ‘대한민국 나라글자는 한글이다. 한자를 우리나라 글자라고 하는 인사는 자숙하라’, '교육부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한자병기방침을 당장 폐기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대통령, ‘초등학교 한자병기정책으로 부끄러운 역사 남기지 말아야’참가단체 대표 발언에서 한글학회 김종택회장은 “참으로 한심하고 개탄스럽다. 박정희대통령이 70년에 학교 담장마다 ‘국어사랑이 나라사랑’이라고 한글 전용을 주장한 후, 지금은 한글전용이 자연스럽게 되었는데, 그 따님이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두 가지 문자를 쓰자고 한다.”면서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공식적인 글자는 한가지 글자만 쓴다. 박근혜대통령이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자 않으려면 즉각 한자병기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초등학교 한자병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최기호 상임대표도 “조선시대에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 썼다. 지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기하자는데 괄호 속에 있는 글자를 누가 읽는가?”라고 반문하고 “문자는 그 민족의 모든 정신과 얼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그릇이다. 때문에 조선어학회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켰다. 외솔 최현배선생은 ‘한글은 목숨이다’라면서 우리글을 지켰다.”고 한글을 지켰던 선배들의 치열했던 국어사랑을 상기시켰다.
헌국인 보다 한글을 더 사랑했었다는 헐버트박사를 기리기 위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회장은 우리나라 최소의 순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가지고 나와 설명했다.
▲ 초등학교 한자병기를 반대하는 각종 구호들 © 은동기 | |
이 책은 1890년에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자만 쓰던 시대에 처음으로 한글로 만든 것으로 주시경선생이 배제학당에 들어가기 4년 전이고, 독립신문이 탄생하기 6년 전이다. 한글 책이 나왔는데도 5년 후인 1895년에 조선의 문부에서는 ‘책의 내용은 좋은데 양반들이 보면 체면이 상한다’면서 한자로 다시 번역한 ‘한자사민필지’가 나왔다.
김회장은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 말을 잃고 모진 고생을 했다.”고 지적하고 “한글로 어린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키우며 잘하고 있는데 또 다시 1895년에 ‘사민필지’를 한자로 만드는 격이 되고 있다.”고 거꾸로 가는 정부의 정책을 거세게 비판했다.
한글을 사랑했던 헐버트박사, ‘한자는 암기교육 조장하고 편견 부추겨’김회장은 “우리 한글은 어문학적으로도 훌륭하고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도 가장 중요한 글이다. 초등학생들이 사고력을 넓히고 열린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글로 공부해야 한다. 한자가 필요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면서 헐버트박사는 ‘한자는 암기교육만 조장시키고 편견을 부추긴다’고 말했음을 상기시켰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대표는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하고 있지만, 한자를 배우는 일이 창의적이지 못하고 강제적인 암기에 치우치고 있다.”면서 “한자파들이 생각하는 만큼 국민들이 한자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이제 아이들에게 강제로 한자를 가르치고 배우게 하려는 것이 바로 한자병기 정책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정책은 자칫하면 한자급수시험 패거리들의 장사를 돕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한자병기 정책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고문인 윤창규 동아시아센터 회장도 “1945년 해방이후 한글전용정책을 쓴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앞섰는데 그 이유가 국민들 간의 소통과 정신수준의 평준화에 의해서였다.”면서 “한자를 병기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이제 우리 한글을 중국에 수출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윤회장은 “소리글자의 시대, 즉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거리와 시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글만이 소리글자로써 우수성이 증명되었다. 한자 병기로 어린이들을 정서적으로 혼란케 하고 발전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회 김형태 전 교육의원도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은 외모로써 잘 구분이 안되지만, 우리말과 글자로써 비로소 우리가 한국인임과 민족과 얼을 나타낸다.”면서 “이것을 어떻게 잘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중앙정부가 거꾸로 퇴행하는데 대해 한글단체뿐만 아니라 교육단체들도 이 문제를 그대로 묵과하지 않겠다. 한글이 일본도 이겼다. 이 말을 새기고 힘을 합쳐 우리 교육단체들도 같이 하겠다.”고 결이를 다졌다.
전교조 박옥주 수석부위원장은 “초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말인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고 그 소중함과 가치를 알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영어 몰입교육의 적극 추진으로 한글교육이 상당히 훼손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다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 한다는데 통탄할 일이다. 초등학생의 상당수가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한글교육에 집중하고 한글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초등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현 정부가 한자병기를 추진한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교육부에서는 사교육이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지만, 초등교사 경험으로 보면 한자병기나 영어몰입 교육이 추진된다고 말만 나오면 바로 학교현장에서는 사교육이 발호한다.”면서 “교육부의 그 같은 말은 교육현장을 전혀 모르는 후안무치한 일이며 한자병기 교육을 계속 추진한다면 교육부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차재경 부회장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인성교육이다. 밥술이나 먹고 사는 집에서는 애들에게 말을 가르칠 때, ‘엄마, 아빠’보다 ‘마마 굿모닝’을 먼저 배우게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나? 초등학교 교육은 가장 중요한 교육이다. 한글 열심히 가르치고 인성교육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말과 글 지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독립운동.’이오덕선생이 만든 단체로 어린이들에게 우리 글로 우리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는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이주영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지도하자는 안에 대해 1천만 명 반대 서명했을 때 썼던 글을 회상하며 인용했다.
‘제나라 말과 글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모르고 남의 글자나 말을 쳐다보고 얼빠진 사람이 되니 중국 글자든 일본말이든 영어든 간에 밖에서 들어온 것은 무슨 말이나 글자든 하늘같이 떠받드는 버릇이 들었다. 우리글과 말을 살리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독립운동이다.’
이회장은 그러면서 “초등학교에서 한자병기 교육을 한다는 것은 우리 겨레의 자주와 독립을 해치는 일이며 이일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 1천만 서명운동 같은 더 큰 운동으로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는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 © 은동기 | |
한글학회 박용규 연구위원이 낭독한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단체들은 교육부가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학교 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는 ‘교육과정 총론’에 대해 “모든 출판물이 한글로 나오고 대학 논문도 한글로 쓰는 한글시대에 이런 엉뚱한 발표로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고 교육부를 비난했다.
단체들은 교육부가 이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관련단체와 전문가들에게 찬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일본식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일부 단체의 말만 듣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한자병기를 전제로 연구를 수행하도록 한 사실이 4월 27일 언로보도를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글, 교육단체들이 한자병기정책을 따지자 교육부가 4월 29일 설명자료를 통해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2011.9)에 한자병기 허용지침이 수록되어 있어 한자병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면서 교육부가 광복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글 쓰기 정책을 반대한 한자 단체들 말만 듣고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광복 뒤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끈질기게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꾀했으나 지난 날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들어준 일이 없다면서 이들이 박근혜정권으로 하여금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도록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단체들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애 일본이 바라고 좋아하는 한자 혼용, 병기를 주장하는 한자단체의 손을 들어주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둘수 없다.”면서 “정부가 한자검정능력시험을 주관, 엄청난 돈벌이를 하고 있는 단체들의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면서 “한글전용정책으로 온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났고 민주화와 산업화도 성공했다.”면서 “문맹을 조장하고 소통을 방해하여 대한민국을 망치는 한자혼용 주장자들의 손을 들어주면 이 정권은 한글을 짓밟은 연산군 꼴이 되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글단체들은 다음 주 중,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과 합동으로 ‘교과서한자병기반대국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거리 서명운동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