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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능력이 있는 이유
1. 지난 과에서 말의 능력에 대해 살펴 보았다. 우리는 말의 능력을 알게 되면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것은 말이 지닌 이 능력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도 말의 능력에 대해서는 어렴픗이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이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나타내는 지는 깨닫지 못했다. 철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언어가 창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음까지 발견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철학자들도 언어가 지닌 능력의 근원에 대해서는 말하질 못했다. 이것이 어쩌면 언어철학을 비롯한 일반 학문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다. 성경에는 우리가 알아야할 인생의 모든 답이 들어 있다.
2. 민수기 13장 25절부터 14장 38절까지를 3번 이상 읽고 내용이 무엇인지 다섯 줄 정도로 적어보라.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던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열두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다. 열두명의 정탐꾼들은 40일동안 부여 받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돌아왔다. 정탐꾼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모인 백성들의 시선은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열두명에게 고정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실과를 보며 그들은 흥분 했다. 포도 한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왔으니 그 열매가 얼마나 탐스럽게 보였겠는가. 그들의 첫 보고가 시작되었다. 그 내용을 적어보라(민 13:27-29).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민 13:27-29)
4.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가나안 땅에 이미 강한 거민들이 견고한 성읍을 쌓고 살고 있다는 보고가 그들을 동요시킨 것이다. 열두명의 정탐꾼 중 한사람인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며 외쳤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민 13:30)
5. 백성들은 좀 진정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엔 함께 정탐에 나섰던 사람들이 그 땅을 악평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했는가(민 13:31-33)?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1-33)
6. 이 열두명은 같은 기간 동안 같은 땅을 보고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그룹으로 나뉜 그들의 말은 전혀 달랐다. 이 차이는 무엇의 차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에게 말 배우기반 학생 1의 리포트 중에서>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은 '육신의 눈'--보이는 현실에 의거해서 평가를 내린 것이고, 뒤의 두 사람은 '신앙의 눈‘--’보이지 않는 현실'--으로 상황을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성경에는 끊임없이 이 두가지 상반된 인식--‘육신의 눈’과 ‘믿음의 눈’이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된다.
7.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재연되고 있다. 한 가지 사건을 같이 보고도 그 말이 전혀 다른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한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본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마음대로 보고 마음대로 말하느냐고 다른 사람을 꾸짖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사람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보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존재다. 마음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 보는 세상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은 마음대로 보고 마음대로 말한다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에게 말 배우기반 학생 1의 리포트 중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삶의 ‘경험’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의 색안경--고정되어진 해석의 틀--을 끼고 살아가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는 자신의 경험이나 해석이 상대적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틀이 ‘객관적’ 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틀을 다른 사람들도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를 범한다. 인간간의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바로 이 '내 틀'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싶어하는, '내 틀'로 상황을 통일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가 '기준'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는 유일한 ‘객관적’ 기준과 해석의 틀은 예수님 한분이시오,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다. 오직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대성/자의성--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이라는 참 거울에 비춰질 때에만,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 눈에 덧입혀진 색안경을 깨닫고, 그것을 벗어 내려놓을 용기를 얻게 되고, 그 분의 눈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8.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과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귀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만 들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만약 현장에 있었다면 당신은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은가?
9. 밤새도록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외친 말은 무엇인가(민 14:2-4)?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민 14:2-4)
10.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향해 외쳤다.
"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러나 흥분한 백성들에게 그들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했다.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11.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려는 말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다. 이들이 이 말을 할 때 그들의 마음은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다.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의 새 삶에 기대가 부풀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가나안 땅에 강한 족속이 자리를 잡고 있어 들어갈 수 없다는 열명의 말을 들은 것이다. 이들이 정말 죽고 싶었을까?
12. '우리가 애굽 땅에서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그들의 본심일까? 사람 속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 이 때 이들 마음은 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입으로 나온 말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흥분하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마음의 소원과는 상관없는 말들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때론 흥분하지 않고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마음의 소원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살고 싶으면서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든지,
정신차리고 살고 싶으면서도 미치겠다고 말한다든지,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망했다고 말한다든지,
자녀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자녀를 향해 싹이 노랗다고 말한다든지,
시집가고 싶으면서도 혼자 살겠다고 말한다든지,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갈라서자고 말한다든지...
당신은 어떤가? 혹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면 그 때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예수님에게 말 배우기반 학생 1의 리포트 중에서>
이 본문에서 나는 육에 속한 사람들의 또 한가지 흥미로운 속성을 읽는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불평하고 원망을 해야’--즉, 내게 복주시는 자를 이런 식으로 push해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생각한다. 또 실제로 우리의 의사소통 중에는 이렇게 진짜로 원하는 것은 A인데, 말로는 그 반대를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체면문화’라는 것이 이런 식의 어법을 더 조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상대를 욕하거나 비난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필요를 강제적으로 채워주게 만들려는 것--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가장 진노케 하는 어리석은 대화방식이고 존재방식이라고 하겠다.
13. 여기까지가 민수기 13장 1절부터 14장 10절까지의 내용이다. 여기서 열다섯절을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말,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고 전제하신 후에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8)
14.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당신에게 이 하나님의 대답은 어떻게 들리는가? 이 하나님의 대답에 대한 당신의 느낌을 적어보라.
15. 이제 다시 정리해 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세 그룹의 말을 들었다. 이들의 말을 다시 정리해 보자.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민 13:30, 14:7-9)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열명의 정탐꾼의 말(민 13:31-33)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민 14:2-3)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6. 이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이다. 과연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대로 이루어졌는지 이제 확인 해보자.
17. 뒤에서 부터 확인해 보자.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그들이 한 말과 되어진 일을 대비해 보라(민 14:29-35).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민 14:29-35).
18. 열명의 정탐꾼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라. 그들이 한 말과 되어진 결과를 역시 대비해 보라(민 14:36-37).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민 14:36-37)
19. 여호수아와 갈렙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라.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민 14:38, 14:30, 여호수아 14:13)?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 14:38)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30)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여호수아 14:13)
20.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대로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 때를 기준으로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중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이 마음에 품었던 살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온 말대로 되었다. 그들의 시체는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 엎드러졌다. 그들은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서 다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였다. 이 사실을 통해 당신이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21.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더 주목하려고 한다. 이들이 한 말은 누구를 향해 한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내가 들었다고 하셨다. 사람을 향해 한 말인데 그걸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그 말에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당신이 사람을 향해 하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말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참고 민 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 14:27)
22. 하나님은 무조건 사람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시는 분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분명히 들으신다. 들으신 후에 어떻게 하실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다. 들으신 후에 그대로 시행하시기도 한다. 그대로 시행하지 않으시기도 한다. 또 들은 것을 바꾸어 이루시기도 한다.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모세의 말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대로 개구리가 집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나와서 죽게하셨다. 또 파리를 바로와 그 신하와 그 백성에게 몰수히 떠나게도 하셨다.
성경은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고(잠 10:31) 궤사한 자의 말은 여호와께서 패하게 하신다(잠 22:12)고 선언하고 있다. 이 말씀은 거짓말 하는 자의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고 신의가 없는 자의 말은 하나님께서 뒤엎으신다는 의미이다. 허풍떨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이루어 주시지 않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진실이 결여된 사기꾼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의 말과 반대로 이루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신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독한 말을 들어도 해를 받지 않는 것은 그 독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이 계시기에 예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 곧 복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하셨다.
이 사실이 당신으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가?
23. 기쁜 소식이 있다. 당신이 예수를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된 당신의 말을 들으시고 가장 좋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지난 날 당신이 말에 대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모르고 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모든 말들을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다 그대로 당신에게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지난 날 당신이 했던 말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흐르고 있다. 당신이 오늘 말에 대해 처음으로 알았거나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았다면 지난 날 세상에서 배운 대로 말한 죄를 자백하면 된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당신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음이다. 세상에서 배운대로 말한 잘 못을 깨닫고 고백한 당신이 지난 날 당신이 했던 말의 쓴 열매를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 그 분으로 인한 은혜다. 이 은혜에 대한 감격을 함께 나누라.
<예수님에게 말 배우기반 학생 1의 리포트 중에서>
앞 과에서 나는 말의 전염성, 특히 세대간에 전수되어지는 파괴적인 말의 위력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세대로 이어지는 말의 그런 파괴적인 힘은 바로 죄의 ‘유전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예이다. 그런 파괴적인 말의 위력을 파하시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죄의 유전성의 사슬을 끊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다. 오직 그분의 희생적인 사랑과 피흘리심을 통해서만, 지금까지의 삶속에서 내가 주고받은 모든 그릇된 말, 저주의 열매들로부터 우리 각자를 깨끗케 하시고, 자유케 하실 수 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말의 위력과 그 파괴적인 능력을 숙고하면 할수록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24. 이 공과를 통해 당신이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라.
<예수님에게 말 배우기반 학생 1의 리포트 중에서>
이과는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삶을, 특히 좌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의 내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 나의 마음은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조금의 감사나 긍휼이 없었다. 이 과의 본문에서 나오는 이스라엘과 별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심령을 지닌 존재였다. 내 마음은 분노와 원한, 복수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 바로 지옥에서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나 싶다. 이처럼 흑암에 떨어진 나의 상한 심령속에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셨다. 그분은 무앗보다도 내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심으로써 나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셨다. 내자신이 정말 오랜 시간 많은 가슴아픔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없이 신음하는 영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예수님를 통해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평화임을 확신한다. 오늘 이 ‘평화’를 나처럼 신음하는 영혼들에게 전하라고 나를 어둠속에서 건지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가슴깊이 찬송하고 찬양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