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사항에 대해 검토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전에 차씨들이 대승공의 휘 車達을 왜 ‘거달’로 읽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린 적이 있어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에 車得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 대한 학자들의 글들을 검토하면 ‘거득공’ 혹은 ‘차득공’으로 읽고 통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이름에 대한 전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승공의 경우 ‘거달’로 내려오지 않고 ‘차달’로 내려왔습니다. 한자로는 발음이 표기되었을 가능성이 없으며, 한글표기가 문헌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것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족보 자체도 모두 한자로만 쓰였기 때문에 그런 문헌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車씨가 ‘차’로 읽히는 것도 관습입니다. 金씨는 원래 ‘금’이었는데 조선 초기에 ‘김’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 관습이며 존중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이름에 車가 들어 있는 경우를 잠깐 찾아보았는데, 우리나라 대표인물의 자와 호가 정리되어 있는 한 자료에서는 없었습니다. (字에 한 사람 있는데 한글 발음은 주어지지 않았음). 金車弘이라는 의병이 있었는데 ‘김차홍’으로 읽히고, 현대 인물들은 金車利, 金車中, 金車英 등이 보이는데, 모두 ‘차’로 읽고 있습니다.
한자의 상황에서는 지나어 자체에 현재 chē(츠어), jū(쥐)의 발음이 있습니다. 앞의 것이 대부분 사용되며, 뒤의 것은 주로 장기나 체스의 말에 대한 명칭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강희자전에 보면 발음이 九(jiǔ)魚切, 斤(jīn)於切 등으로 주어져 있고, 설문해자에는 尺(chǐ)遮切로 주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발음이 다르고 그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경향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 한자의 경우에는, ‘차’와 ‘거’음이 제시되어 있고, 낱말에 따라서는 둘 중 하나로 굳어진 것도 있고 적당히 둘을 통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략 ‘거’가 ‘수레’라는 좁은 의미를 갖는 경향이 있고 ‘차’가 그보다는 넓은 뉘앙스를 갖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인명에 들어 있는 車의 발음의 판단에 증거를 줄 수는 없습니다. 고유명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대승공의 경우는 수레와 이름의 연관이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문화류씨 최고의 족보는 가정보(1562년)인데, 그곳에 ...公多出車乘...(공께서 많은 수레를 내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공다출거승’으로 읽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좁은 의미의 수레에 가까울 것이고, 그럴 때는 좁은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의 발음인 ‘거’가 적당하게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도 동일하게 ‘수레’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더 넓은 뉘앙스를 갖기 때문에 ‘차’로 읽어도 전혀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자들도 乘車를 때로는 ‘승거’ 때로는 ‘승차’로 번역했습니다. “다닐 적에 승차(乘車)가 있게 되고 싸울 적에는 융차(戎車)가 있게 되고...” (정조 7년)
현재는 乘車는 ‘승차’로 읽으며 지나(china)의 경우도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車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chē(츠어)로 읽기 때문에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車裂(가장 중한 형벌 중 하나)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대부분 ‘거열’로 읽지만 ‘차열’로 읽기도 하며, 그렇게 읽는다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실록에서도 그렇게 읽은 예가 있었습니다.
결론은 자명합니다. 대승공의 휘는 ‘차달’로 읽어야 하며,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로 읽어야 하는 당위성이 없으며, 더욱이 집안에서 지금까지 그렇게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가능한 독음인 ‘거달’로 읽어야 할 절대적인 이유도 없고, 그렇게 읽어서도 안 됩니다.
2014. 2. 13. 류주환
첫댓글 한해를 지나서야 인사드리네요
너무도 상세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