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파노라마
주제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성도들의 의로운 삶
데살로니가후서의 중심점은,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 그런데 재림 전에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을 깨닫게 하여 건전한 재림신앙을 세워주려는데 있습니다.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먼저 보낸 전서(前書)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형제들에게 소망을 주고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를 곡해하여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를 바로잡아주기 위한 것이 본서를 기록하게 된 주된 동기입니다.
본서는 세 장으로 되어있는데 논리전개(論理展開)와, 말씀하는 순서(順序) 등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절묘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를 등한히 여긴다면
본서의 생명력과 재림신앙에 대한 확고함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제1장,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1장의 중심점은 “주님은 분명히 강림하신다”는 점을 강조함에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신다”(1:7)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는 목적은 광신적(狂信的)인 재림사상을 시정해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또다시 “주 예수께서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중에 나타나신다”고 말씀한다면, 불붙는데 기름을 뿌리는 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기에 본서의 영광스러움이 있고 바울의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1장에는 “하나님의 공의”(公義)라는 말이 두 번(5, 7)강조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공의와 결부된 문제로 확고부동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재림이 없으면 심판도 없고, 심판이 없으면 하나님의 공의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중에 강림하셔서,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1:6-7)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함으로 여전히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그리스도는 심판하시기 위해서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하신 대로 믿는 자들을 영접하러 오십니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10) 합니다.
그러므로 1장에는 “환난”이라는 말이 세 번(6, 6, 7)나오는 반면, “영광”도 4번(9, 10, 12, 12)이나 등장합니다.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10),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12)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이(奇異)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하는 것입니다. 반면 환난 받게 하던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9)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러 오시는 그리스도
이점에서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12) 한 “주의 이름”입니다. 구원계획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한 구원계획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이 되게 되는데, 만일 재림이 없다면 구원계획은 미완성에 끝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는 어찌 된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고하다는 것이 바울의 논증입니다.
바울은,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본 사람이다” 하고,
자기 경험에 의존하여 말씀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또한 저들을 감상적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입각해서 위로와 격려와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제2장, 재림 전에 있을 징조
1장을 말씀한 후에 2장에서는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1)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라”(2) 경계합니다.
㉡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3) 합니다.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고 있다”는 것과,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게 되고”,
㉥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 합니다.
주의 재림 전에 적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또한 “악한 자의 임함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9)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계로 여겨지는데,
이 때에 진리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자들이 미혹을 당하게 되리라 경고합니다.
이 때에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 합니다.
바울은 1장에서 재림의 확고함을 말씀한 후에,
2장에서 바른 재림관을 세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1장을 말씀하지 않고 2장으로 직행을 했다면 재림신앙을 약화시키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3장, 승천으로부터 재림까지 교회가 지켜야할 일들
3장은, 1-2장을 통해서 말씀한 바를 적용하는 부분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1) 하고 우리들이 해야할 책임을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지켜야할 일들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1) 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이 복음전파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2) 합니다. 이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아노라”(4) 합니다. 이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말씀대로 교회를 섬겨야할 것을 의미합니다.
㉣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6) 합니다. 이는 교회가 성별(聖別)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 “순종치 아니하거든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14) 합니다.
이는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징계가 불가피함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이 일차적으로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행해야할 일이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상의 모든 교회가 준행해야 할 일입니다.
1장의 핵심은 “하나님의 공의”에 있고,
2장의 핵심은 “불법”에 있고,
3장의 핵심은 “규모”, 즉 책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불법을 묵과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공의로운 심판” 곧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고합니다.
그리하여 결론은 “영원한 멸망”(1:9)과, “영원한 위로”(2:16)
곧 영생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규모 있는 삶, 즉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