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뻥튀기 기계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얼마 전 제가 구독하고 있는 일간지의 전면을 가득채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이 가져다주는 삶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저는 신문 한 장을 통째로 책상 앞 벽에 붙여 좋고 가끔 거기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 사진에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만야라 마을에 가지가 축 늘어진 나무 밑에서 먼 한국에서 온 뻥튀기 아저씨가 밀짚모자를 쓰고 옥수수를 넣은 뻥튀기 기계를 가열하여 한 손으로 줄을 잡아당기자 부풀려진 옥수수가 쏟아져 나오고 하얀 뭉게구름 같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자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20여명 가까운 피부색이 까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귀를 틀어막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린이 커다란 목을 내밀고 재미있는 일이 있는가 보다하고 쳐다보는 앞에서 초원을 가로질러 어떤 아이들은 옥수수가 든 바구니를 들고,또 다른 아이들은 머리에 이고 조금 후에 있을 그 즐거움을 상상하며 달려오는 그 한 장의 사진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강원도에는 있는 것이라고는 옥수수와 감자였지만 내가 어릴 적 살던 고향에는 옥수수가 참 귀한 식량이었기 때문에 나의 친구들이 보리쌀을 가지고 오면 이 동네 저 동네 순회하면서 뻥튀기를 해 주던 아저씨가 사카린(인공 감미료)을 물에 타서 보리쌀에 뿌려 뻥튀기를 해 주곤 하였습니다. 약 40 가구가 살고 있던 우리 동네에서 아버님이 중학교 교장이시고 농사를 많이 짓던 우리 집은 아버님의 까다로운 식습관이 집에서 뻥튀기 한다고 보리쌀을 가져 나오는 것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우리 집보다 훨씬 부유하지 못한 친구들이 집에서 가져 나온 보리쌀, 때로는 희귀하게 옥수수, 한약방을 하는 집의 외동 장손이 가져온 하얀 쌀을 뻥튀기하면 운이 좋은 날은 한 줌 얻어먹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때론 뻥튀기 망을 삐져나와서 흙 위에 흩어져 있는 그 것을 주워 먹느라 친구들 사이에 머리가 부딪치곤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원주 풍물 시장에서도 가끔 뻥튀기 아저씨를 볼 수 있습니다만 요즘 뻥튀기 기계는 제가 어렸을 때 보던 것보다 아주 많이 개량된 것 같았습니다.
우선 화력도 가스 또는 전기식이고(아마 제가 어렸을 때는 장작이나 숯으로 불을 지펴서 했겠지요) 부풀려진 옥수수를 도망가지 않게 가두어주는 망도 아주 작은 크기였습니다. 원주 천을 거닐 던 어느 날 저는 그 아저씨가 뻥튀기 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기계가 옥수수, 보리 또는 쌀을 볶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아저씨의 말로는 때론 가져오는 다른 곡물도 많이 볶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계를 보고 저는 커피콩을 볶아보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를 건네 보았습니다. 커피콩을 볶는 기계는 자동화된 기계로서 가스 불로 볶게 되는데 약 1킬로그램을 볶을 수 있는 기계가 최근에 개발된 국산이 500만원, 일본제는 1,000만원, 독일제는 2,300만원이나 되는 고가입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실험실에는 1,000만원과 300만원 되는 기계가 두 대 비치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어릴 적 그 때를 회상하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 기계를 가지고 커피콩을 볶아보고 싶었습니다만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탄자니아는 케냐와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커피가 많이 재배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탄자니아 커피는 동양인들이 좋아하는 커피라고 유럽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작품을 일본 사람들이 읽고 탄자니아 커피에서 소설의 배경을 상상하며 커피를 음미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본에서 탄자니아 커피를 ‘킬리만자로 커피’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는 춘천에서 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미스타 페오’에서 1킬로그램의 탄자니아 커피를 볶았습니다. 1주일 후에 다시 그 곳에 가서 제가 볶아 둔 그 커피 12그램을 분쇄하여 칼리타 드립퍼로 내려서 음미한 그 맛은 부드럽고 상큼한 과일 맛이 느껴졌습니다. 만족스러운 탄자니아 커피 맛의 재현이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이번 기회에 뻥튀기 기계로 커피콩을 볶아 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어버이날에 어렸을 적 그 때의 일들이 회상됩니다. 언젠가는 사진에서 보았던 그 뻥튀기 기계로 탄자니아에서 커피콩을 볶아 보고 싶습니다. 그 때가 기다려집니다. (예술이 흐르는 강, 2007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