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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책(Aggression in Personality Disorder and Perversions)을 번역해서 출간했다. 저 웬수의 악질같은 년/놈(주#1)을 쌔려 잡고 싶다, 이 벌레만도 못한 못난 년/놈(주#1)을 밟아 으깨 버리고 싶다, 또는 바보천치같은 내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다,…이런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 권씩 사보면 좋겠다. 값은 2만천원인데, 택배비가 추가된다. “맛 보기”로 한 부분(제13장: 증오라는 쾌락과 그 변천과정)을 첨부한다. 내년에는 “정신병의 핵심(Psychotic Core)”을 번역해서 출간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곱게 미치느냐” 또는 “어떻게 하면, 미치지 않으면서도, 생기발랄하게 사느냐” 가 주제이다. 안 미치려고 너무 버티기만 하면, 죽어 있는 듯이 살게 된다. 벼랑 끝에 매달려 있지만 손을 놓을 수 있어야(주#2), 생기발랄하게 살 수 있다. 기대하시라!
주#1: 년/놈 외에도 부부/가족/집단/사회/자연/신,...도 포함될 수 있다. 주#2: 일상적 표현으로 "마음을 비워야", 정신분석 표현으로 "어린애 같아야", 심리학적 표현으로 "미칠 수 있어야", 종교적 표현으로 "無心해야", 생기발랄하게 살 수 있다.
==== 맛보기 부분 ====
제13장. 증오라는 쾌락과 그 변천
이 장에서는, 특별히 전이에서 증오에 대한 이차적 방어에 강조점을 두면서, 원시적 증오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쾌락에 대해서 임상사례를 탐색하겠다. 내 경험으로는, 원시적 증오는 분노라는 정동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지속되고, 그리고 성격적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구별된다(제2장 증오의 정신병리 참조). 그 원천이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또한 증오가 포함하고 있는 구체적인 무의식적 환상들과 상관없이, 증오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비온(1970)이 지적했던 바와 같이, 환자가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원시적인 증오에 지배되고 있는 환자에게는 이상한 과정이 일어난다. 증오에 대한 공통적인 방어는 증오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행동화, 투사적 동일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인지과정 자체를 파편화시킴을 통해서, 환자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환자의 마음은 어떤 하나의 정서에 대한 이해를 더 이상 담아 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방어는 동시에 그 방어하고자 하는 그 충동의 표현이 된다.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적 현실인 자기를 그리고 증오하는 대상을 증오하는 것이 된다.
자기에 대한 증오는, 예를 들면, 자기-훼손 또는 자살적 행동과 같은 자기-파괴적 충동에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또는 피학적 변태에서도 나타난다. 심리적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환자의 인지적 기능을 자기-지향적으로 공격하여서, 환자가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와 추리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또는 치료자가 하는 그러한 사고와 추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강렬한 증오가 흔들거릴 때, 환자는, 비온(1957)이 기술했던 것처럼, 집중적인 호기심, 교만, 그리고 가식적 바보라는 혼합적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환자는 증오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없애 버리기 위해서, 자신과 치료자 사이 의사소통 방법을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덧 붙여서, 대상을 수용하지 못 한다는 것은, 환자가 박해자라고 인식되는 분석가를 강렬히 무서워하고 미워한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것이 전이에서 편집적 발달로 이끌어 가는데, 환자가 투사적 동일시를 필사적으로 하여서, 정신병적 전이에 이를 정도로 많이 발달할 수도 있다. 투사적 동일시라는 방어를 통해서, 치료자가 약이 오르고 화를 내게끔 행동하여, 투사, 전능통제, 그리고 분석가의 어떠한 분석도 수용하지 않는 것이 강화되고, 환자는 자신의 공격성을 치료자 속에 담아 두려 한다.
편집적 메커니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치료자가 잠재적으로 좋은 대상이라고 인식될 때에는, 환자가 매우 탐욕적으로 차료자의 주의, 시간, 그리고 해석적 코멘트를 이끌어 내고는, 곧 자신이 받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파괴한다. 치료자가 기여한 어떠한 것들도 환자는 부적절한 것으로 경험한다. 탐욕은 더 계속된다.
중요한 질문은 왜 환자가 자신의 분노가 이토록 강렬하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수용할 수 없을까 이다. 왜 환자는 지속적이고, 항상 존재하고, 압도적인 자신의 증오를 부정해야만 하는가? 내가 믿기에는, 이 부정은, 원천적으로는 환자의 증오에 의해서 파괴될 위험에 처해서 있는 좋은 엄마라는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 버린다라는 가장 깊은 공포심의 표현이다. 자신의 증오를 수용하지 못한 결과로, 환자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파괴심이라는 환상에 의해서 위협받게 되는데, 병리적인 투사 메커니즘에 의해서, 좌절을 주고 증오하는 대상(나쁜 엄마)이 환자를 멸절시킬지도 모르는 강력하고 위험한 적군으로 변환된다. 신체적 파괴와 정신적 파괴라는 환상적인 멸절위협이 즉각적인 동기가 되어서, 대상의 영향력에 대항해서 싸우고, 증오 속에 있는 자기에 대한 이해에 대항해서 싸우게 된다.
환자의 투사적 동일시와 전능적 통제의 결과로서, 또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환자의 끊임없고 일관적인 약 올리는 행동 그리고 치료적 친밀한 관계 속에서 환자가 받는 모든 것들과 그 의미를 환자가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이것에 대한 자연적 결과로서, 치료자는 역전이로서 증오를 느끼게 되고, 세션에 침입해 온 미친 상태를 짤라 버리고, 세션 시간 중 환자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망쳐 버리는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말다툼 속에 끌려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해방되서, 이 파괴적인 친밀한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된다.
환자가 자기와 대상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 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의사소통 과정을 파괴하는 것 중에서 얼만큼 정도가 원시적 증오에 대한 방어일까? 내가 믿기에는, 전형적으로 방어되고 있는 것은 정동으로서 증오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방어되고 있는데, 이 직접적인 정동은 원시적 증오보다 이차적 정동으로서 기뻐 날 뛰면서 가학적으로 대상을 파괴하는 정동이고, 대상에 대한 혐오, 경멸, 잔인, 그리고 모욕을 즐기는 정동이다. 증오를 담아 두기를 하는 첫 단계가 성취되는 것은, 오직 환자가 전이에서 가학적 즐거움이라는 경험을 의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될 때이다. 이 단계에서는, 환자는 자신의 공격성이 갖는 파괴적 영향들을 현격하게 덜 무서워 하게 된다. 공격성을 투사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 들고, 치료자를 나쁜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줄어 든다. 환자는 자신의 사랑 대상과 증오 대상이 하나의 대상이라는 것을 어렴픗이 깨닫게 된다.
이자적 친밀한 관계에서 증오는 항상 사랑과 같이 존재한다. 증오는 과거의 한 대상에게 또는 잠재적인 사랑으로서 가끔은 깊이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강렬하게 몰두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증오는 무엇보다도 좌절을 주는 대상에 대한 증오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대상에 대한 증오이며, 그로부터는 사랑이 올 것이라고 기대되지만 반드시 좌절을 주는 대상에 대한 증오이다. 원천적으로는, 증오는 분노를 통해서 좌절을 없애 버리지 못한 무능력의 결과이지만, 증오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대상을 없애 버리려는 항구적 필요로 변환된다.
그러나 증오는 대상과의 분화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만일 사랑이 융합되거나 병합되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면, 증오는 자기를 대상으로부터 분화시키려는 노력이다. 증오가 수용되지 못하고 자기 밖으로 투사된다는 범위 내에서는, 증오는 자기를 대상으로부터 분화시키고 병합하려는 충동을 거역하는데 기여한다. 이렇게 보면, 증오는, 분화, 인격적 힘에 대한 경험과 시험, 자기-확신, 그리고 자율성에 기여할 수 있다. 증오는 건강한 자기-확신으로서 공격성의 승화적 기능들을 지지할 수 있다. 분노의 강렬함이 극도에 달할 때(극한 정동 상태) 대상과 융합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오직 가장 강렬한 원시적 수준의 분노 상태일 때뿐이다.
그러나 강렬한 수준에서 원시적 증오가 지속되면, 자기-증폭적 순환적 반응이 일어나서, 증오가 계속 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으로 증오 그 자체가 증가하게 된다. 투사적 메커니즘에 의해서, 특히 투사적 동일시에 의해서, 좌절을 주는 대상에 대한 분노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인식이 왜곡 변형되고, 좌절은 고의적인 공격이라고 해석된다. 전에는 필요로 했고 사랑했었던 대상에 의해서 공격받는다는 느낌은, 배신 받은 사랑에 대한 가장 원시적인 경험이 되고, 전-외디프스적 발달단계와 외디프스적 발달단계 전체를 통해서 강력한 공명현상을 일으킨다.
배신 받은 사랑의 경험 때문에 증오는 더욱 커져서,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증오가 훨씬 더 크게 증폭된다. 이제 대상은 잔인하고 가학적이라고 인식된다. 이렇게 왜곡 변형된 대상관계가 내재화되면, 화가 나고, 경멸받고, 평가 절하된 자기와 잔인하고, 가학적이고, 경멸하는 대상이라는 대상관계 경험이 영구화된다. 이에 부응하며 이차적으로 자아와 초자아가 동일시되면, 내재화된 대상관계가 전반적으로 왜곡된다.
이 이자관계 속에 있는 공격적이고 승리감에 가득 찬 대상과 동일시하면, 대상을 향한 증오를 표현하면서 잔인성과 경멸감이 촉발되고, 그와 반면에 수용할 수 없고, 평가 절하된 자기 개념은 대상에게 투사되며, 그리고 대상을 동일시하는 중에 자기에 대한 공격성도 마찬가지로 동일시된다.
이제 좀 전에 기술하였던 상태가 된다. 증오는 외적 대상관계와 내적 대상관계를 파괴한다. 고통과 위험한 증오 모두를 없애 버리기 위해서, 인식하는 자기를 파괴하는 방어적 과정이 환자의 방어 조직 속에 중요한 힘이 된다. 투사적 동일시 대신 분열 메커니즘을 한층 더 악화시켜서, 정동적 경험과 인지적 과정을 파편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발달을 비온(1959)이 기술했다. 약간 덜한 분열 메커니즘이 지속되면, 이상화된 대상과 박해적 대상, 이상화된 자기와 나쁜 자기, 그리고 이 두 상태를 번갈아 하는 행동 패턴이라는 라는 양분된 세계가 나타나고, 임상적으로는 파괴적인 행동화와 자기-파괴적 행동화 속에서 무질서한 친밀한 관계와 방어적으로 이상화된 친밀한 관계가 번갈아 나타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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