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모르는 바나나 이야기
내가 바나나라는 것을 안 것은 아마 TV에서 방송한 “타잔”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후라 기억된다. 타잔의 용맹스런 활약과 거침없이 악어와 싸워서 항상 이기는 “타잔”은 그 시기에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의 프로그램이었다. 항상 타잔을
쫓아 다니면서 웃음을 주던 놈이 치타다. 그 치타란 놈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바나나였다. 물론 그 시기는 TV가 집집마다 없어 잘사는 집에 눈치를 보면서
시청해야 했던 시기다.
70년대는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유신의 시기였고, 달라의 부족으로 소비재 등 달러를 소비하는 행위의 수입이 금지되던 시기이니 바나나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꽤 부유한 고모네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고모님께서 주신 바나나 한 송이를 먹고는(비싸서 절대 두 송이는 먹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었구나’고 감탄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그 바나나를 시식할 수는 없었다.
인생사 塞翁之馬라 했던가!
그 비싸던 바나나는 가장 흔하고 싼 과일로 마트에서 팔리고 있고, 이젠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과일로 변했으니….
우리는 흔히 말하길 바나나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고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아주 큰 풀이 겹겹이 둘러싸여 하나의 대를 이루고 있으며 꽃이 한번 피고
바나나를 다 맺으면 생장이 끝나므로 베 버린다. 그러면 뿌리에서 또 다른 바나나 줄기가 피어 오른다. 뿌리 줄기만 훼손되지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증식하는 것이 바나나다.

잘린 대 옆으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앙증맞게 올라온 바나나는 성장하면서 맨 마지막 잎 대에서 새로운 잎이 신문지를 돌돌 말은 것처럼 올라온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엔가 말린 잎이 펴지면서 크나큰 바나나 잎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대는 굵어지고 오래된 잎은 누렇게 변하면서 늘어진다.

가운데 새 잎이 돌돌 말려있다.

돌돌 말린 잎이 펴지려고
하는 중
바나나 꽃은 대의 맨 꼭대기에 럭비공 같은 모양으로 꽃이 피는데 성장과 함께 꽃잎이 하나씩 벌어지면서 층층이
피는 꽃 수술은 그대로 열매로 변한다. 하지만 그 많은 꽃잎이 벌어지는 족족 열매로 변하지는 않는다. 일정 부분만 열리고 밑의 부분 꽃잎은 벌어지지만 바나나는 없고 꽃 수술만 있어서 열매를 실하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 어느 순간 잘라야 한다. 이 꽃은 라오스에서 식용으로 사용되는데 위장에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꽃 잎이 열리고 있네요

드디어 꽃 잎 속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바나나

하루에 한 잎씩 벌어지면서
바나나가 나옵니다.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옆에서 찍음.

이제부터 벌어지는 꽃 잎에는 바나나가 안 열립니다. 꽃 수술만 보이죠?

그래서 짤랐습니다.

잘린 꽃 잎을 열어보니 꽃
수술만 그득합니다.
줄기 하나에 50~150개의 바나나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 무게는 성인
혼자서 들기 버거울 정도의 무게다. 그래서 바나나만 채취하기는 위험해서 아예 바나나 대의 밑 둥을 잘라
쓰러트리면서 수확한다. 어차피 뿌리가 훼손되어도 작은 뿌리라도 남아있으면 새순이 돋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나나는 나무에서 다 익어도 노랗게 익지 않고 껍질 색은 녹색을 유지한다. 허나
바나나를 따서 놓으면 빠르게 노란색으로 변하고 곧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동남아 여행을 다니면 과일
가게에서 바나나를 매달아 놓고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면 바나나를 매달아 놓으면 바나나가 아직 자신이 바나나
대에 매달려 있다고 착각해서 노랗게 변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빨리 익어야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