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앞 마당에 작품 하나가 쓰러져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던 한 중년 남자, 화난 목소리로 말합니다.
“ 여기 관리하는 사람 누구야 ? 작품이 쓰러져 있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다니, 일으켜 세워야 할 것 아니야 !”
그러나 그 남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이 작품은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쓰러뜨린 것이니까 틀린 말이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그 말은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 됩니다.
가로 1.8m 세로 1.6m 높이 1.3m, 작품의 재료인 철이 녹슬까봐 아연을 입혔고,
“쓰러진” 이 작품을 놓고, 영국의 작가 앨링턴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작품의 주제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보호받지 못하는 두개의 단편조각들을 서로 대비시키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고물 자동차의 차체도 그러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모든 것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잊혀지고 또 버려지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2010년 1월의 어느 날 새벽 4시, 서울 지하철 시청역 지하통로,
영하 13도로 떨어진 최악의 한파가 밀어닥쳐 얼음장 같은 바닥에서 노숙자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습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종이 상자를 세워놓기도 했지만 동장군의 기세에 비하면 초라해 보입니다.
바닥에 종이 상자를 깔고 신문지만 덮은 채 잠든 노숙자도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밤을 지샌다는 노숙자,
“작년에 영등포 역에서 두 사람 죽었고, 서울역에서도 세 사람이 죽었어요.
추운 것도 있고. 뭔가 만사가 귀찮고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의지하는 게 술 뿐이 없는 거예요.
(술) 먹더라도 잠 금방 자지 말아라. 여름에는 자도 괜찮은데, 겨울에는 금방 자지 말아라, 하지만 소용 없어요.“
“세상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작품의 주제와 노숙자의 말은 일치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면 노숙자가 연상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추위를 잊기 위해 마신 술이 화[禍]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노숙자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버팀대>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 모든 것들이 잊혀지고 버림 받고 있다”는 주제와 동떨어진 제목 같아 보입니다.
차라리 <노숙자>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이해하기 쉽고, <버림 받은 사람> 하면 훨씬 더 이 작품에 가까워 질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노숙자에게 아무 이유없이 발길질을 해댄 중학생들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올라,
사회에 큰 충격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재미로 그랬다,’는 철 없는 그 아이들의 동기였습니다.
연민과 동정의 대상에서 냉소와 무시, 심지어 경멸의 대상으로 버림 받는 ‘약자들’.
작가는 이 작품 앞에 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나 봅니다.
“ 쓰러지는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당신이 ‘버팀대’가 되어 주시오.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 주시오.“
시인 안도현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