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깊은 산에 오래 수도한 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어느날 젊은 수행자가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슴이 옹달샘을 바라보듯 살면 어떨까?"
"참 좋군요,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옹달샘이 사슴을 바라보듯 살면 어떨까요?"
"좋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네."
x x x
수월은 그의 삶의 모든 순간을 통해 옹달샘처럼 내가 없는 맑은눈으로
나와 너를 바라보는 삼매에 통달한 이였다.
수월은 천장암에서 이런 삼매의 힘을 얻은 뒤로 한 번도 잠자리에 누워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잠에 떨어져본 적이 없엇다고 한다.
수월에게는 "단잠삼매"라든지 "휴식삼매"같은 말이 발붙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어디 잠뿐이었겠는가. 수월의 삼매 속에서는 삶도 죽음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삼매를 온전히 이룬 사람에게는 깊은 휴식이 있을 뿐 잠이 영영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자리에 누우신 시간은 하루에 삼십분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님처럼 잠이 사라진 수월은 화엄사 시절에도 밤새 짚신을 삼거나 돌부처가 되어 어두운 밤을 밝혔다.
수월이 쓰던 방은 겨우 한 두사람이 누울 만한 작은 방이었다.
벽에는 낡은 가사 장삼과 누더기 한 벌,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모신 작은 액자가 하나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손수 만든 굵은 나무 단주 하나와 방석, 그리고 바깥에 다닐때 쓰는 염주와
가냘픈 지팡이가 전부였다고 한다.
수월의 방에는 과일 깍는 칼 한 자루, 책 한 권, 주먹만한 꿀단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종일 들이나 산에 나가 일만 했고, 주먹밥과 짚신을 들판과 길목에 내다두는 일도 한결 같았다.
수월은 종일 일을 하되 아무도 일하는 줄 모르게 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일 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화엄사에 살던 젊은 스님들은 일거리를 찾으려 해도 좀체로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밭일, 나무하는 일, 물 긷는 일, 짚신 삼는 일, 그리고 이백팔십여리 떨어진 수분하에 가서
장을 보아 오는일까지 칠십 노인의 몸으로 아주 말끔하게 해냈다.
그리고 혹시 수월을 도우려고 일터에 나오는 젊은 스님이 있으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진이나 햐. 지발 들어가 공부나 햐"
어떤 분은 수월의 손을 두고 이렇게 증언했다.
"하두 고생을 많이 해서 사람 손같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그 손 모양이 늘 단정하고 공손해서 거룩한 느낌을 받았지요."
참으로 보살의 손이 있다면 이런 손일 것이다.
언제나 주기만 하고 받기를 사양 하는 손, 어떤 것도 놓아버릴 뿐 움켜쥐지 않는 손,
비단보다는 상처를 더 사랑하는 손, 죽이지 않고 살리기만 하는 손,
아무리 멀고 어려운 길이라도 친절하고 바르게 가르쳐주는 손 ....
당시 나자구에 살던 조선 사람들은 모두 화엄사에 다녔다.
또한 중국 사람이든 만주 사람이든 수월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수월과 나자구 사람들은 가까운 사이였다.
수월은 마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때를 가리지 않았고,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않고
바로 달려가 환자를 낫게 해 주었다.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는 힘, 그것은 수월이 천장암에서 대비주삼매를 이룰 때 절로 생겨난 현상이었다.
수월의 눈과 손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리 뿌리 깊은 슬픔과 한이라도 봄날의 눈덩이처럼 녹아버리고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면 숨이 넘어가던 사람도 봄풀처럼 살아 일어섰다.
그래서 수월의 손길에서 숨을 되살린 사람들은 다시 수월의 눈빛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되살린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거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삿된 행위로 여겨왔다. 수월이 이것을 몰랐을리 없다.
덧없는 몸뚱이를 살려내는 일이 몇 푼어치 되지 않는 일임을 천하의 수월이 몰랐을리 없다.
어찌 몸 뿐이겠는가,. 마음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삶의 진실에 눈뜨려고 몸도 목숨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이리라
하지만그런 몸, 그런 마음을 통해 덧없음의 참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면 덧없는 몸과
마음이야말로 다시없는 보배일 것이다.
더구나 그때 나자구에는 조선 사람이 경영하는 약방이 한 군데도 없었다.
"덧 없음"과 "나 없음"의 진실을 전혀 모르고 맞는 죽음과 그것을 밝게 깨닫고 맞는 죽음은
그 뜻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
수월은 그런 진실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불행과 아픔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고 절하던 저 상불경보살 처럼 수월은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어쩔 수 없이 부처님일 뿐인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웃들에게 눈길을 공양 올리고
손길을 공양 올리고 밥이며 신발을 공양해 올린 것이다.
그렇게 많은 부처님을 볼 수 있고, 그렇게 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음이
수월에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행복했던 것이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 - 학고재
첫댓글 수월스님의 능력이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