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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등불
몸의 등불은 눈이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병들었으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루가복음 11, 34
사람들이 선의와 관용을 좀더 키우기만 하면 세계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이에요. 세계를 구원할 것은 사람의 선의나 관용이 아니라 맑은 생각(clear thinking)입니다. 당신이 옳고 당신한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글 렀다고 확신하면서 남에게 너그러운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건 겸손한 척하는 태도는 될지언정 관용은 아니에요. 그렇게 자 기를 추켜세우면서 남을 끌어내리는 행위로는 통일이 아니라 분열을 초래할 따름입니다. 당신에게는 우월감만 품게 하고 다른 사 람에게는 앙심만 안겨주는 그런 마음자세라면 관용은커녕 오히려 더욱 편협한 세계를 키울 따름이지요.
진실(truth)에 연관된 이상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오직 무지할 뿐임을 날카롭게 깨치는 데서만 참된 관용은 생겨납니다. 진실은 본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mind)이 그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파악하지는 못해요. 어떤 틀에 넣어 정형화하는(formulate) 일 은 더욱 못합니다. 인간의 신조들이 그것을 가리킬 수는 있지만 몇 마디 말에 담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쁘게 진행 되면 자기의 옳음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려 하는 위장된 시도에 불과하고 잘 돼봤자 자기 우물이 세상의 유일한 우물인 줄 아는 개구리가 되는 것을 막아줄 정도인 ‘대화’의 가치를 열렬하게 옹호하지요.
서로 다른 우물에 사는 개구리들이 저마다 자신의 확신과 경험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자 모인다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요? 자기 우물 말고 다른 우물들도 있음을 인정할 정도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우물의 벽에 가두어질 수 없는 진실의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련한 개구리들은 서로 편을 갈라 내 말이니 네 말이니, 내 경험이니 네 경험이니, 내 생각이니 네 생각이니 하면서 ‘대화’를 계속하는 겁니다. 틀들(formulas)을 서로 교환해봤 자 그것으로는 어느 쪽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가없는 바다만이 모든 것을 하나로 되게 하지요. 그러나 어떤 형식에도 제한되지 않는 이 진실의 바다에 도달하려면 맑은 생각을 선물로 받아야 해요.
맑은 생각이란 무엇이고, 사람이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을까요? 당신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뭘 많이 배 워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열 살배기 아이도 미칠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단순합니다. 필요한 일은 뭘 새로 배우는 것(learning)이 아니라 배운 바를 버리는 것(unlearning)이고, 재능이 아니라 용기예요. 못생긴 유모 품에 안긴 젖먹이를 생각하 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아이는 너무 어려서 어른들이 지니고 있는 선입견이라는 게 아직 없어요. 그러므로 유모 품에 안겨있을 때 그녀 머리에 붙어있는 찌지를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인여자, 흑인여자, 못생긴 여자, 예쁜 여자, 늙은 이, 젊은이, 어머니, 하녀, 유모 따위 찌지들이 아니라 그냥 지금 자기 앞에 있는 그대로의 상대에게 반응할 따름이에요. 여자는 사 랑을 받아야 하는 한 아이를 지금 품에 안았고, 그게 아이가 대면하고 있는 실체입니다. 여자의 이름, 모습, 종교, 인종, 민족 따위 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것들은 전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젖먹이는 아직 신념도 없고 선입견도 없습니다. 이것이 그 안에서 맑은 생각이 태어나는 환경이에요. 누구든지 이 경지에 이르려면 그동안 배운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 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온갖 경험과 습관들로부터 결백한 젖먹이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상황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의 반응들 뒤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 선입견과 편견들이 보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반응하고 있는 대상은 거의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나 사물이 아니에요. 당신이 지닌 원칙, 이념, 경 제적 정치적 종교적 심리적 신념체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리 정해진 생각과 편견들에 의하여 일그러진 대상에 반응하고 있 는 겁니다. 그 모든 사람과 사물과 상황들을 한번에 하나씩, 당신의 편견들이 어떻게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상대를 일그러뜨리고 있 는지를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보세요. 이 연습으로, 성경의 어느 구절에 못지않을 만큼 신성한 계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맑은 생각을 가로막는 적(敵)은 편견과 신념만이 아니에요.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한 쌍의 적이 또 있습니다. 욕망과 두려움과 자 기-이익추구라는 감정(emotion)에 오염되지 않는 생각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엄청난 고행을 선택하기도 하거니와, 사람들 은 대개 생각이 머리(head)에서 이루어지는 줄로 잘못 알고 있지요. 먼저 가슴(heart)이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옹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머리가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즉 여기 또 다른 신성한 계시의 근원이 있습니다. 당신이 내린 결론들을 조 사하여, 그것들이 당신의 자기-이익추구에 의하여 어떻게 오염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당신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닌 이 상, 당신이 내린 모든 결론에는 당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견해가 섞여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인물들에 대한 당신의 결론이 얼마나 견고하고 단호한지를 성찰해보세요. 과연 당신의 그 판단들에 당신의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생각된다면, 아마도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민족이나 개인들 사이에 분열과 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이해관계가 내 것과 일치되지 않고 그 래서 당신의 생각과 결론이 내 것과 맞지 않는 거예요. 자기 이익에 반대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결론내리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 습니까? 당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결론내린 적이 몇 번이나 있지요? 가슴을 어지럽히는 욕망 및 두려움과 당신 머리의 생각 사이를 든든한 벽으로 가로막는 일에 몇 번이나 성공했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당신은, 맑은 생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능(intelligence)이 아니라 두려움과 욕망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용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 인가를 욕망하거나 두려워하는 바로 그 순간 당신 가슴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당신 생각을 간섭할 테니까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정신적 거인들한테서 발견되는 삶의 모습이요 자세올시다. 그들은 진실을 위해서 생각을 할 때마다, 교리적 틀이 아니라, 자기-이익에 대한 관심과 습관화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여읜 가슴, 꼭 지켜야 할 것도 없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야망도 없 고 그래서 족쇄에 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겁 없는 마음으로 진실을 찾아 유랑하게 하는 가슴, 언제든지 새로운 증거들을 받아들이 고 그로써 자기 견해를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 가슴이 필요함을 깨달은 이들이지요. 바로 그 가슴이 인류를 덮고 있는 어둠을 밝히 는 등불이 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런 가슴으로 산다면 더 이상 아무도 자기를 공산주의자, 자본주의자, 기독교인, 무 슬림, 불교신자라는 이름에 가두지 않겠지요. 사람들의 생각, 개념, 신조들이 자기네 무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어둠으로 가득 찬 등 잔이라는 사실을, 티 없이 맑은 생각이 보여줄 것입니다. 나아가, 그 깨달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갈라놓는 장벽들이 무너지면 바야 흐로 모든 것을 하나인 진실로 하나 되게 하는 큰 바다에 잠겨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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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요즘 제 마음을 울리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
예..
감사합니다....^^
갑자기 영화 '그랑프루'가 떠오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요.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