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1907년 평양대부흥이 있었다면 미국에서는 이보다 1년 앞서 아주사 대부흥이 있었다.
1906년, 아주사 거리 312 번지의 한 허름한 창고 안. 오순절 신앙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신앙의 핍박을 피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1906년 4월9일, 무명의 흑인 노예 가문 출신인 목사 윌리엄 시무어 (William Joseph Seymour) 가 인도하고 10명도 채 안 되는 성도들이 국가와 인종, 교파를 초월하여 기도하던 이 집회에 시작된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아주사 거리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기도하며 찬양하던 이들은 방언을 하며 심령이 변화됐고 병을 치유 받았다.
주님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죄, 용서, 성화, 성령세례, 그리고 신유를 갈구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강단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단상으로 몰려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선포되었고 성령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여 사람들이 고꾸라졌다. 집회장에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 도시가 요동쳤다.”
이것이 아주사 부흥의 한 모습이었다.”
아주사 거리 교회에서 흘러나온 방언은 로스앤젤레스 전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곧 수천명이 부흥회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3년동안 매일 부흥회가 일어났다. 은혜를 사모하던 작은 사람들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전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20세기 초의 부흥운동, 바로 아주사 대부흥운동으로 발전했다.
아주사 부흥은 근대 오순절 운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오순절 운동은 오늘날처럼 수많은 나라로 확산되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사 성령운동 100년 세계 기독교계 판도 바꿨다
미국 신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00년 전 아주사 거리 교회에서 불붙었던 ‘성령 운동’을 이같이 회고했다
“1906년 미국 캘리포니아 지진이 일어났던 것처럼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기독교계를 바꿔 놓은 다른 종류의 지진이 일어났다.”
아주사 부흥은 체험적 신앙, 성령의 은사를 갈구하는, 영적으로 굶주린 수많은 영혼들에게 대단한 자극을 주었다.
1906년 9월에 행해진 ‘값진 구속’이라는 설교가 보여주듯 시무어의 설교는 매우 단순했다.
우리는 첫째,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죄 용서를 받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성화됐으며,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구속을 통해 육체의 치유를 받았고 넷째,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메시지는 놀라운 영향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오순절 지도자 로스웰 플라워가 증언한 대로 오순절 운동은 ‘영적 폭탄’과 같았다.
짧은 시간에 인근 인디애나폴리스는 물론 미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체험하였다.
노르웨이 감리교 목사 바렛을 통해 아주사 부흥은 노르웨이에 전파돼 유럽에도 오순절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1906년 4월9일 시작된 아주사 부흥은 전광석화처럼 주변으로, 다시 미 전역으로, 그리고 미국을 넘어 유럽과 남미,아프리카,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아주사 부흥은 부흥 운동과 성령의 역동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과거의 신앙적 유산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구현된 부흥 운동이었으며 이 때문에 이전에 구축된 토대 위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아주사 부흥은 감리교 웨슬리의 제2의 축복, 성결운동,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방언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여 역사적으로 웨슬리-성결운동의 전통에서 기원된 강력한 성령 운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확실히 근대 오순절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오순절 운동은 지난 1세기 동안 이 땅에 잠자는 수많은 교회들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지나친 은사주의,정통 교리에서의 이탈, 지나친 열광주의와 주관주의 현상 등 극복해야 할 과제를 부여 받았다.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듯 말씀의 객관성을 잃어버린 성령의 역사,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부흥은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아주사 부흥은 곧 캘리포니아주 에서 오리건 워싱턴 일리노이 인디애나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테네시 플로리다주와 캐나다로 번져갔다.
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