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31보> - 별 걸 다 경험해 보네
이번 학기에 상하이 온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매일같이 하루에 두 번, 두 시간씩 공부하느라 심신이 약간 지쳐가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중국어 실력은 초급 그대로인 느낌이다.
게다가 처음에 즐겼던 재미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 몸살이라도 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은근히 되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수업을 마쳤을 때였다.
옆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노트북 컴퓨터로 다시 듣기 연습하는 들어가는 벗씨한테 살짝 건의를 했다.
“우리 이러다 몸살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과외공부 두 주 정도 쉬는 게 어떨까?”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뜬금없는 나의 제의에 벗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목소리 톤을 약간 높이며 대답을 했다.
“그럼, 두 주 동안 심심해서 어떻게 살라고? 안 그래도 이런 생활이 심심하고 재미없어 죽겠는데···.”
나는 이왕 이런 말을 꺼낸 이상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래. 말하기, 듣기 등 중국어 진도도 잘 안 나가고···. 가슴도 갑자기 답답해지는 것 같고···.”
이쯤 되면 20년 이상을 같이 산 벗씨로서는 더 이상 내 고집을 꺾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뭐. 마음대로 해. 건강이 최고지. 우리가 뭐가 다급하다고 중국어 공부에만 목을 매어야만 하겠어?”
이렇게 갑작스럽게 몇 마디 주고받고는 싱겁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과외선생님께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은 항상 이상한 데로 머리를 굴리게 되는데 우리가 딱 그 꼴이었다.
왜냐하면 과외 선생님 두 분도 나름대로의 계획된 생활이 있을 텐데 갑자기 두 주 동안 쉰다고 하면 모든 스케줄이 다 틀어질 테니깐.
하는 수 없이 가장 흔한 방법인 건강 핑계를 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또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안면 안 받히는 문자가 최고일 터.
“두 분 과외 선생님, 그 동안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살도 빠지고 식욕도 없고 건강이 별로 안 좋아요. 두 주 간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합시다. 뿌하오이스(不好意思,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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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1층에 있는 양약 파는 현대식 약국. 손님은 없고 직원 네 명만 덩그러니...)
다음날 토요일이 되었다.
해방된 마음에 시내에 있는 난징루(南京路)도 쏘다니고 런민공원(人民公园)에 있는 상친회도 참관하고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밤이 되자 피곤에 겹쳐 잠이 들려는데 벗씨가 인상을 쓰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갑자기 왼쪽 눈이 아파 죽겠다. 다래끼가 나려나 봐. 한 번 봐봐. 눈이 충혈 되었지?”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찮을 거야. 오늘 바람을 너무 많이 쐬어서 그럴 거야.”
“눈도 눈이지만 왼쪽 이마 위 머리에도 뭔가 욱신거리는 것이 아픈 것 같아.”
“공부에서 해방되니 신경이 그리로 다 쏠리는 모양이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아픔을 호소하는 벗씨를 뒤로하면서 같이 잠이 들었다.
이튿날이었다.
벗씨는 눈도 못 뜰 정도로 아프다고 하고 간밤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호소를 해 왔다.
왼쪽 머리에는 좁쌀만 한 물집이 오롱조롱 솟아 있었다.
이마 윗부분과 머리카락 있는 곳 등 두 곳에나 나 있었다.
“아이, 참. 왜 이런 것이 다 나지? 지난주에 사다 쓴 중국 린스 때문인감? 당신도 지난 학기 초에 물 때문에 피부병이 나서 한 달간 고생했잖아.”
“무조건 참을 게 아니고. 1층에 있는 약방에나 한 번 가 보자.”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약방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눈을 콕콕 쑤시듯이 아프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머리에 난 물집이 혹시 대상포진이 아닌지를 뭐라고 해야 하나.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라면 어떻게 상담해야 하나 하는 문제 말이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우리 건물 1층에 있는 약국 안은 큼직하고 조용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분은 남자 한 분을 포함해서 총 네 분이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약들은 대부분 양약이었다.
중국제 한약은 믿음이 안 갔으므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진열대에 전시 되어 있는 물품은 의약품 외에도 약간의 화장품, 치약, 칫솔, 심지어 콜라 같은 음료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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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깨끗한 병원. 여기서 일단 경험해 보니 중국 병원 믿을 만 해요.)
우리는 약사 앞에 왔으므로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약한 모습부터 보였다.
“저···. 한국인인데요. 눈도 아프고, 머리에 종기 같은 것도 나서 간밤에 한 잠도 못 잤어요.”
“아, 한국에서 왔어요? 그런데 중국말 참 잘 하시네요. 어디 함 봅시다. 아, 네. 아무 것도 아니네요. 안약 좀 넣고 머리에 연고 바르면 금방 나을 겁니다.”
“혹시 대상포진 아니에요?”
“대상포진은 지금보다 훨씬 아파서 참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이틀 지나면 금세 좋아질 겁니다.”
안심이었다.
몇 마디 주고받지도 못 했지만 걱정을 확 덜어주는 말을 들으니 모든 근심걱정이 확 달아나 버렸다.
우리 둘은 눈을 맞추며 시시덕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루 종일 머리에 약을 바르고 눈에 안약을 넣어도 아픔과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10초마다 반복되는 눈의 통증은 참을 수가 없었고, 머리와 이마에 나 있던 물집은 이제 눈썹에도 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정말 최대의 악몽이었다.
옆에서 잠을 못 자 끙끙대는 벗씨가 안쓰러워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러다 더 심해지면 안 되니까 빨리 병원에 가 보든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다짐만 몇 번이나 하곤 말았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병원 갈 차비를 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어느 병원에 어떻게 알고 찾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곳 병원 시스템을 알 수가 없다.
지난 학기에 한국인 학생이 팔을 다쳐서 병원에 갔더니 50여만 원이나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 한 학생은 감기몸살로 병원에 다녔는데 한 달이 다 되어도 안 나아서 결국 치료차 한국에 다녀왔다고도 했다.
이러한즉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중국 의료제도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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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의약분업이 안 되어 있어서 병원에서 모든 약을 받았어요. 왼쪽 아래가 병력기록부.)
결국 남자 과외선생한테 에스오에스를 날리고 1층에 있는 경비아저씨의 도움도 받아서 병원을 찾아갔다.
택시비 기본요금 비용의 거리에 중국인민군에서 운영하는 상하이창하이병원이었다(上海长海医院).
규모로 보아 대구의료원 규모쯤 되는 것 같았다.
먼저 병원 대청으로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있는 안내데스크로 갔다.
피부과를 가고 싶다고 했다.
수십 종류의 진료과 중에서 피부과라고 적힌 메모 쪽지를 주면서 먼저 등록부터 하란다.
등록 창구는 1층에 1번부터 12번까지 있었는데 이미 각 창구마다 인산인해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 등록비 15위안에 플라스틱 등록카드와 병력기록부(病历本)를 받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 병력기록부는 개인이 갖고 다녀야 했다.
의사선생님이 환자를 진단한 후 컴퓨터에도 기록하지만 이 병력기록부에도 병력을 기록해서 개인이 항상 소지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그러고 나서 5층에 있는 피부과로 갔다.
5층 피부과 대기실 정면 벽 스크린에는 이미 벗씨 이름이 등재되어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대기 환자는 별로 없었다.
잠시 후 2호실로 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우리 둘은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 앞에 앉았다.
쉰이 넘어 보이는 여의사였다.
“우리는 중국어 배우러 온 한국인인데요. 머리에 이렇게 종기도 나고, 눈도 아파서 잠도 한 잠도 못 잤어요.”
“아, 한국인이세요? 어디 봅시다. 이건 대상포진입니다. 너무 무리하셨군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네? 대상포진이라고요? 그건 너무 아프고 잘 낫지도 않는다는 병이잖아요? 약사는 아니라고 하던데···.”
“네, 대상포진 맞아요. 한 열흘 간 치료하면 나을 겁니다. 무조건 슈시슈시(休息休息, 휴식) 하세요.”
대상포진이란 말에 날벼락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열흘만 치료하면 괜찮다는 말에 위로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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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에 피부과. 먼저 등록 후 5층으로 가란 문구가... 오른쪽 아래는 피부과대기실 스크린)
우리는 눈에 바르는 약, 머리에 바르는 약, 먹는 약, 그리고 주사약이 적힌 처방전을 들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돈은 내야 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용은 총 377위안(우리 돈 약 64,090원).
의료보험이 안 되었으므로 예상했던 대로 비싼 편이었다.
금액을 납부하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약창구 9번으로 가란다.
거기에는 이미 벗씨 이름으로 약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동작도 참 빠르지···.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는 참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연결되어 있어서 각 창구마다 가기만 하면 착착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이번엔 주사를 맞아야 할 차례였다.
주사 맞는 방법은 주사액 열흘 분을 환자가 미리 받아서 갖고 있다가, 주사 맞을 때마다 주사실에 약을 직접 들고 가서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주사약을 들고 동네에 있는 의원이나 보건소에 가서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작은 의원조차도 없었으므로 매일같이 비타민B1과 비타민B12라고 적힌 주사액을 들고는 이 병원까지 드나들어야 했다.
이제 5일 정도 지나고 나니 물집은 다 없어졌고 눈의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그렇게나 불안해하면서 죽을 것 같이 아프다고 호소하던 벗씨의 얼굴에 어느 정도 화색이 돌아왔다.
“그러게 봐. 수업을 계속해야 하는 거였는데···. 괜히 건강 안 좋다는 구실을 만들어 과외선생님께 문자 보내는 바람에 결국 아프고 말았잖아.”
나는 딱히 뭐라고 변명할 것이 없었다. 그저 기죽은 목소리로 웃어넘길 수밖에는.
“이렇게 해서라도 한 번 아파 봐야 중국의 약국, 병원 시스템도 경험해 보게 되고, 글 쓸 소재거리라도 생길 거 아니야? 히히.”
“뭐라고? 내가 참···.”
2010년 12월 12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김지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 문자 주세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그러셧구나~ 대상포진 그것 엄청 아픈데.....
자상한 멋진욱님이 곁에 계셔서 간호는 잘 하실것으로 믿고^^
낯선 생할이 좀 버거우셨나 보네요.
우리들 몸도 이제,예전 같지 않으니 좀 조심해야겠지요.
멋진욱 님! 벗씨게 간호 잘 해주시고요,이 기회에 점수 많이 따놓으세염~~~ㅎ
나이가 들건 안 들건 간엔 자기 몸은 스스로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건데... 히히.
으..대상포진 걸린 직원들 정말 아프다고 호소하던뎅..진짜 고생하셨겠어요~^^ 건강 잘 챙기세요~^^
그때 우리 직원들 고생하는 것 보고 퍼뜩 알아차렸어요. 정말 아프답니당. 그리고 오래 가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