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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속의 우리를 발견하는 즐거움 - 황호택 기자의 특별한 만남 ‘생각의 리더 10인’에 붙여
박성희(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인간 세상이란, 이런 파장들의 덩어리다. 만남은 그래서 즐거움이기도 하다. 주목하고 음미할 만한 파장의 색과 떨림을 찾아내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있다는 사실은 고 마운 일이다. 황호택 기자(정확히는 논설위원)가 안내하는 10개의 파장은 좀 특별하다. 소위 유명인사 (Personality)들을 집중 탐구해 들어간 인물탐구형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 보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누구나 그 인물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여기는 건 오산이다. 이름이 클수록 궁금증도 크고, 알려진 정보와 실제 모 습 사이의 거리도 멀다. 그 거리를 좁혀주는 글을 만날 때 사람들은 반가워하고, 자신들 의 파장과 주파수가 통할 때 비로소 감동받는다.
이 책은 결코 ?! 熾霞舊? 않은 그 여정의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J.T. 허바드(Hubbard)가 말했듯, 퍼스널리티 인터뷰는 큰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부터 초점 을 맞춰 풀어나간다. 영웅을 영웅으로 다루는 것은 신화(神話)이지 기사가 아니다. 언론 인들은 일상 속에서 일탈을, 평범함 속에 깃든 특별함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자면 세상의 기준에서 출발해야 한다.
방송 기자의 취재 현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리틀 빅 히어로(Little Big Hero)’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보통 사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 에 영웅이 자리 잡고 있는데, 때와 장소가 필요로 하면 그 영웅이 밖으로 나온다고. 마찬 가지로 모든 영웅도 파고들면 보통사람이다. 우리 안에 영웅이 있듯, 모든 영웅의 안에 는 또 우리가 있다. 영웅의 이야기는 이렇게 보통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서 풀어갈 때 비 로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황호택 기자는 이를 잘 갈파하고 있는 노련한 인터뷰어이다. ‘생각의 리더 10인’이라 는 제목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파장의 소유자 들이다. ‘생각 의 리더’가 되고 싶어 ‘목수론’을 펴면서 한국에 들어온 SK 텔레콤 윤송이 상무?! ? ‘천재소녀’ ‘최연소 MIT 박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비범한 ? 墟隙渼?. 그런 그에게 황호택 기자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늙다리 꼰대’를 자처하며 용돈 씀씀이나 남 자친구, 결혼 같은 일상의 화제를 파고든다. 울어본 적은 있는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 은 무엇인지, 폭탄주는 먹어 보았는지를 시시콜콜 물어본다. 스스로도 ‘나이어린 사람한 테 사생활에 가까운 사항에 관해 미주알 고주알 질문하지니까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 다’고 쓰면서도, 그런 질문들이 윤상무의 인간적인 측면들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기 에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휘자 정명훈은 ‘마에스트로(거장)’ 칭호를 받는 우리 세대의 대표적 음악가이며, 요 리를 수준급으로 즐기며, 세 아들을 둔 매우 가정적인 가장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집 사람이 틀린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 할 정도로 연상의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내는 그에게 우문인줄 알면서도 이혼할 일은 없겠다며 우회적으로 확인한다.
박중 훈, 강우석, 강제규는 장인정신과 피나는 노력, 지능과 재능으로 뭉쳐진 한국 영화의 상 징이다. 그들에게 황호택 기자는 “어느 여배우가 좋아했습니까. 실명으로 거론해봐요. 아니면 이니셜로라도”라며 제법 민감한! 질문을 밉지 않게 던지거나, “황산벌 에서는 얼 마나 받았나요? 3억에서 5억 수준이겠죠?” 라고 떠보기도 하고, “좀 거북살스런 질문 같지만 감독으로서 한국에서 역량있는 감독 몇 명을 꼽아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옐 로우 페이퍼에 떠도는 스캔들을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시키기도 하고, 대마초 배우로 구속 되었을 때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도록 하기도 한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 조금 거 북살스러워도 그런 질문이 독자를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마찬가지로 경기도 지사 손학규, 감사원장 전윤철, 민주노총 위원장 이수호는 각기 다른 직능을 수행하지만 한국사회의 당면한 이슈들을 다루며 현대 한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사 람들이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노회찬은 타고난 입심 못지않게 독특한 경력으로 우리사 회의 탄력성을 웅변한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은 한국에서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는 ‘수학의 정석’의 저자이다. 이들에게도 황호택 기자는 날카롭고 천연덕스러운 질문 던지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렸지만, 오히려 화려한 이름 때문에 본래 모 습이 가려져 있는 경! 우를 종종 본다. 퍼스널리티 인터뷰의 어려움도 바로 두꺼운 이름의 벽에 ? 獵?. 유명인 스스로 창조해 낸 장벽일수도 있고, 사회가 입혀놓은 환상과 추측의 벽 일수도 있다. 어찌됐건 그 딱딱한 껍질을 깨고 그 안의 말랑말랑한 인간의 모습을 찾 아내는 것이 눈 밝은 기자의 몫이다.
황호택 기자는 질문을 연장 삼아 벽 속의 인물에 다 가가는 데 성공하고 있다. 대개는 꼼꼼하게 사전에 준비한 질문으로 인터뷰의 흐름을 이 끌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주력하지만, 독자가 알고자 하는 문제라면 상대방이 다소 당혹스러워 하더라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인터뷰가 탄력을 잃어가자 이 노련한 인터뷰어는 이렇게 상황을 타개한다. “공자님 말씀 만 적어놓으면 독자들이 지루해 책장을 덮습니다. 재밌는 예기도 물어보겠습니다. 골프 를 좋아한다면서요.” 그리고 자꾸 끼어드는 공보관에게는 이렇게 일갈한다. “이러면 인 터뷰 못합니다. 대통령비서실장 경제부총리 장관을 지낸 분이 어련히 알아서 답변 할텐 데 자꾸 끼어들면 인터뷰를 망칩니다.”
노회찬 총장에게는 “약간 촌스러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뭡 니까”고 묻는다. 독자들은 안다. 그 질문이 결코 촌스러운 것이 아니며, 비유법을 능! 란 하게 구사하며 탁월한 언어 감각을 보이는 노회찬 어록의 연원을 캐기 위한 시도라는 사 실을. 그 질문이 아니었으면 어디서 그가 ‘토지’와 ‘장길산’을 스무번씩 읽었다는 정 보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자기는 촌스러워지고 무식해 보이더라도 독자들이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을 대신 던져주는 것이 인터뷰어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황호택 기자는 인터 뷰어의 소임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눈이 밝고 귀가 열린 인터뷰어는 고스란히 독자들의 눈과 귀도 열어준다.
황호택 기자의 눈과 귀를 통해 독자들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집 응접실 벽에 ‘霜松常靑(서리를 맞아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시련과 어려움이 닥쳐도 절개를 굽히지 말라는 뜻)’을 보았고, 그 글이 한 서예가가 그의 사주를 보고 써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황호택 기자의 눈을 통해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장 접견실에 걸린 박문수의 마패와 암행어사와 관련된 유물들 을 보았고, 감사원장 자리 바로 뒷면에 ‘淸權立國(권력을 맑게 하여 나라를 세운다는 뜻)’이라는 글이 써있는 것도 보았다. 정명훈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아침에 식구들에게 ‘오늘은 아 메리?! ?으로 할래, 한식으로 할래’라고 주문을 받아, 치즈 오믈렛과 소시지로 구 성된 아 메리칸 조찬을 만들어 식탁을 차릴 정도로 봉사 정신을 갖춘 숙련된 요리사라는 것을 독 자들은 몰랐을 것이다. 정명훈이 대체로 가정적이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으나 ‘하나부 터 아홉까지가 가족이고 음악은 열 번째’라고 말할 정도로 끔찍하게 가족을 아끼는 줄 도 몰랐을 것이다.
황호택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감독실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청바지에 양가죽 점퍼 차림으로 일하며, 캘러웨이 빅버사 골프채 일습을 두고 도 10년 동안 연습장을 딱 세 번 갔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무슨 수로 알까. 강우석 감독 의 어머니가 지금도 아들이 만든 영화를 혹독하게 비평하는 영화 마니아이며, 강우석 감 독이 초등학교때 주산 암산을 익혀 3단까지 땄으며, 전국 암산왕을 차지했다는 사실, 전 화번호를 300개 정도 외운다는 사실, 그래서 그런 숫자 감각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사 실을 독자들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사소해도 모든 사실은 말을 한다. 퍼스널 리티 인터뷰에서 그런 디테일은 매우 중요하다.
황호택 기자의 호기심은 독자들이 접할 정보의 지평과 직결된다. 노회찬 총장의 삶의 이 력과 ?! 晥?, ‘온라인과 오프라인 자료들을 뒤져봐도 그의 성장기와 관련된 기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며 그 빈 곳을 채우는 일에 나선다. 노총장의 어린시절, 중학시절, 재 수시절, 삼수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결혼 이야기 등, 여지껏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꼼 꼼히 취재해 기록했는데, 그 자체로서 뉴스 가치가 있다. 노회찬 총장의 가용 양복이 세 벌에 불과하고, 차를 사본 적이 없으며, 중고 티코를 얻어 망가질 때까지 썼으며, 의원 이 되면서 산타페를 사려고 한다는 것 역시 사소하지만 인간 노회찬을 말해주는 사실들이 다.
한국에서 입시를 치른 학생이라면 눈에 못이 박히도록 보았을 수학정석의 저자 홍성대가 지금은 후학들을 위한 상산고 이사장이 되어 있다. 딸과 사위가 나란히 수학과를 나와 대 를 이어 수학교육의 길을 걷고 있다. 밀리언셀러 참고서의 저자이면서 서울대 총동창회 부회장인 그가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철학은 귀 기울여 볼 만 하다. 윤송이 박사의 ‘익 스프로레이션’과 ‘익스플로이테이션’은 두고두고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다.
손학규 경 기 지사가 최형우 전 의원으로부터 배웠다는 정치인의 꿈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 향후 정 치 행로를 가늠할 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영어마을 조성계획? ? 판교신도시 개발 계 획등 생활과 밀접한 그의 비전도 빼놓을 수 없다. 황호택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은 정명훈이 한국어 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영어 다음으로 이탈리아어, 불어, 독어 이런 순으로 구사하며, 한국어는 독일어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윤송이 박사가 '되게‘라는 부사를 많이 사용하는 버릇 이 있는 것과, 강우석 감독의 말이 무척 빨라 어미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듣 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인터뷰어의 귀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마샬 맥루한이 일찍이 미디어를 ‘인간 신체의 연장(extension of human body)’이라고 표현한 것도 바로 이런 영감에서일 터이다. ^미디어의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제한적 일수 밖에 없는 개인 의 직접 경험의 세계에 간접 경험의 세계를 보태주어 세상과의 접합면을 몇 배로 늘려준 다.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보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듣지 못한 것을 들려준다. 뉴스와 논 평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와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픽션과 논픽션이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는 실제 세계를 때로는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를 발 견하도록 ?! 동皐娩?. 실제로 우리는 직접 보고 듣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얼마나 명확한 견해를 피력하는가. 사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의견은 왜 또 그리 분명하고 논리 정연한가. 악 수 한번 하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개인적으로 부딪힌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유 있는 분노를 느낄 때가 비일 비재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미디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 이다.
수많은 미디어 중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읽는 즐거움이란 바로 나의 신체가 연장되어 오감 이 확장되는 희열이다. 실제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나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내밀한 속내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독 자들은 황호택 인터뷰와 만나며 동시에 황호택 기자가 가진 매우 특별한 만남들의 대상 이 된 우리 사회의 걸출한 인물들과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생각의 리더’는 황호택 기자의 세 번째 인터뷰 책이다. 2001년 5월부터 신동아에 연재 를 시작했으니, 벌써 만난 사람만도 38명(2004년 9월 현재)에 달한다. 연세대학교 언론홍 보대학원에서 ‘인물탐구 인터뷰’로 석사 학위도 수여했다. 이만큼 인터뷰에 대해 이론 과 ?! 퓜タ【? 탄탄하게 실력을 갖춘 기자도 드물지 싶다. 그의 인터뷰 기사의 일 독을 권하 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황호택 기자의 인터뷰에는 간결하고 핵심적인 질문이 골간을 이루고, 그에 대한 인터뷰이의 답변이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문체는 군더더기 가 없고, 질문과 답변에는 상호작용이 있다. 인터뷰어로서 가져야 할 절대적인 미덕, 즉 잘 듣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 등의 기본기에 충실하다. 그의 관 찰은 건조하지 않고, 추론은 건강하다. 인터뷰 기사로 고민하는 하는 기자나 기자 지망생, 우리시대를 이끄는 ‘생각의 리더’ 와 만나고 싶은 독자들, 그리고 스스로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 고 싶다. UPI 통신의 전설적인 여기자 헬렌 토마스가 40여년간의 기자생활 끝에 한 말, ‘I'm the sum of all of whom I met(나는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합이다)'처럼, 만남 은 결국 스스로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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