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詩(시)의 창>
수녀원 뒷산에 오를 때마다 보물을 줍듯 주워온
솔방울들이 가득한 방에서 산과 숲의 이야길 듣는 동그란 기쁨이여.
*********************************
기차 안에서
기차 안에서 세상을 보면
늘 가슴이 두근거려요
차창 밖으로 산과 하늘이
언덕과 길들이 지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지나가는 것임을
길다란 기차는
연기를 뿜어내며 길게 말하지요
행복과 사랑
근심과 걱정
미움과 분노
모두 다 지나가는 것이니
마음을 비우라고
큰소리로 기적을 울립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낯선 이들과의 인사도
새삼 정겨운 기차 안의 시간들
사랑은 서로의짐을 져주는 것
서로에게 길이 되어 함께 떠나는 아픔이라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많은 얼굴들을 보며 배웁니다
어느날 진정
가벼워지기 위해
오늘은 무겁게 살아도 좋다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38쪽~ 39쪽)
***************************
아픈 날의 노래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지만
몸이 아프니 마음도 따라 아프네요
아프다 아프다 아무리 호소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은
그 아픔 알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당연하니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왜 이리 서운한 걸까요
오래 숨겨둔 눈물마저
나오려 하는 이 순간
나는 애써 웃으며
하늘의 별을 봅니다
친한 사람들이 많아도
삶의 바다에 서면
결국 외딴 섬인 거라고
고독을 두려워하면
죽어서도 별이 되지 못하는 거라고
열심히 나를 위로하는
별 하나의 엷은 미소
잠시 밝아진 마음으로
나의 아픔을 길들이는데
오래 침묵하던 하느님이
바람 속에 걸어와
나의 손을 잡으십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기는
왠지 죄송해서
그냥 함께 별을 보자고 했답니다
(40쪽~41쪽)
********************************
부끄러운 고백
"이러면 안되는데!" 늘 이렇게 말하다가
한생애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
나 자신과의 곡선의 관계
시원하고 투명하길 바라지만
살아갈수록 메마르고 복잡하고
그래서 부끄러워요
좀더 높이 비상할 순 없는지
좀더 넓게 트일 수는 없는지
좀더 밝게 웃을 수는 없는지
나는 스스로 답답하여
자주 한숨 쉬고
남몰래 운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기도의 일부로 받아들어주신다면
부끄러운 중에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치는 이 시간은
눈물 속에도 행복하다고 바람 속에 홀로 서서
하늘을 봅니다
(42쪽~43쪽)
*************************
시월
첫번째
월요일
이른아침
제가요
가을여행을
떠나요
오늘 동이
트면
출발합니다
2박3일
잘 다녀올께요
2010년 10월4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조
윤
주
첫댓글 가을 여행 잘 다녀오세요. 물론 수녀님의 시집 한권쯤은 챙기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