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法無我 諸行無常
지난 번에는 생명체에 대한 상의상대의 연기를 주로 살펴 보았다.
생명체란 어디까지가 생명체인지
그 공간적 경계도 확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인연의 복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어서
오로지 연기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제 그 생명체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여 보자.
쉬운 예로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우선 사회적인 면을 살펴보자.
‘나’는 작게는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혹은 남편에게는 아내이다.
또한 어버이에게는 자식이요, 자식에게는 어버이이다.
사회에서는 직장 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에 속해 있으면서,
저마다 자기가 맡은 위치와 역할이 있다.
크게는 한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고,
인류라는 종족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 모두가 관계일 뿐이다.
내 몸을 이루는 것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난 이후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을 만들어 왔다.
어버이에게서 몸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좀 더 따지고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인연의 고리에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 어떤 면을 살펴 보아도 ‘나’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다른 존재와 구분하여 정의해 줄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다른 모든 요소와의 관계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그런 요소가 변하게 되면 ‘나’ 역시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를 나에게서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생명체가 아닌 다른 사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물체도
영원 불변의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가령 눈앞에 놓여 있는 책상의 경우,
그 쓰임새가 책을 놓고 공부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평범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드러누워 잠자는 것으로 쓸 수도 있고
단순히 물건을 쌓아 두는 것으로 쓸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물체는 생명체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정된 불변의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 주변의 물체 뿐이 아니다.
밤하늘을 수놓는 우주의 모든 천체들도
예외없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가고 있다.
가령 항성의 경우에는
외계로 에너지를 내 보내면서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어 간다.
또한 수소로 이루어진 희미한 성간 물질이 모여 별을 이루기도 하고
별이 생명이 다하여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원자는 고정된 실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는
다시 수없이 많은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소립자들은 서로 간의 관련 위에서 끊임없이 생멸하면서 존재한다.
이들 소립자 간의 관계는 고정된 실체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는 역동적인 인과 관계를 보여 준다.
우리의 세계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립자들이 모여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고,
그들이 모여 원자를 이룬다.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그 분자들이 모여 생명체를 포함한 갖가지 물체를 이룬다.
그런 것들이 모여 천체를 이루고
천체가 모여 우리의 우주가 된다.
이렇듯 여러 단계가 있고,
각 단계마다 실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불변하는 고정된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으므로
부처님은 이를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셨다.
범어로 Anatman인 무아는 곧 불멸하는 실체인 atman과 같은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렇듯 현상에 드러나는 모든 것이
무아이니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제법과 제행이란
현상으로 드러나는 모든 사물을 일컫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제법이 우주 만물을 공간상으로 파악한 것이라면
제행은 이를 시간상으로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체 만유는 공간적으로 무아요,
시간적으로 무상이니,
이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알게 한다.
양형진교수 <고려대 교수·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