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매일 1개 도시를 방문하여 드디어 29일째인 오늘,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모두 마무리하게 됩니다.
▲ 에든버러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
새벽6시30분 숙소를 나와서 아침8시 에든버러 공항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 담당자인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오민씨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다가 아일랜드인 남편을 만나서 자녀 둘을 낳고 이곳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행복해져서 지난번 한국에 와서는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봉사자 38명을 모집하여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었습니다. 허윤진씨 부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유일한 천일결사자 부부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한 후 지난 8차 천일결사 때부터 남편과 함께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 공항 마중을 나와 준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
오늘 숙소인 오민씨 부부의 집에 짐을 모두 풀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부엌 한 켠에서는 저녁에 먹을 김밥을 부지런히 싸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더블린 강연 준비팀은 봉사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각 팀별로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바라지팀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파리지회 정토회 분들이 결합하셔서 나물과 김밥 재료 셋팅 등 거의 밤새다시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 하루 종일 봉사자 38인분의 김밥을 싸 준 봉사자들.
스님께서는 어젯 밤에도 공항에서, 오민씨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편두통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점심만 드시고 휴식을 취했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마침 오민씨 남편인 가빈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가빈씨를 통해 스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민씨의 간절한 요청과 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후6시에는 주 더블린 한국대사관에서 박해윤 대사님 부부와 김보연 한인회장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목헌 트리니티 대학 교수님을 비롯한 교민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오셔서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 오른쪽부터 트리니티 대학 목헌 교수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박해윤 주 더블린 한국대사님 부부, 김보연 한인회장님, 김경희님 외 교민 1명
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더블린 교민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 행사에는 교민이 안 오고, 교민들 행사에는 학생들이 안 오고 그랬는데, 오늘 강연은 학생들과 교민들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이라면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목헌 교수님은 더블린의 명문대학인 트리니티 대학 최초의 한국인 남성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위해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대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편두통이 계속 있으셨지만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시면서 저녁 7시에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Trinity College Dublin Arts Building의 인문사회관을 가득 메운 300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영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모두 메우고도 부족해 측면 계단에도 빼곡이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경청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오늘이 유럽 29개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더블린이라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나에게 희망세상이란 무엇인지’를 인터뷰한 특별영상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
▲ 더블린 강연 봉사자들이 만든 특별 영상.
봉사자들은 처음에 스님께 희망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미의 영상을 제작하려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희망세상은 누구에게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번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를 깨닫게 되어 영상 내용도 우리가 희망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유럽 29회 강연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희망세상’을 한지로 덧붙여 만든 연등과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소망 노트를 선물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유럽 강연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열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예상 밖의 환영에 감사드린다” 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곁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요구하지만 본인은 고생을 통해 내공을 얻고자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 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청혼과 새롭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겨 두 사람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 아일랜드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원에서 사기를 당해서 화가 난다는 분,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비하를 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외국 생활하며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을 여행하며 종교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지금 더블린에 여행하러 와 있습니다.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지금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과 터키, 로마를 거쳐 지금 더블린에 와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3가지 종교를 만났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불교를 만났고, 이란과 터키에서 이슬람을 만났고, 서유럽에서 카톨릭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쟁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종교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가르치는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거나 하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든 질문자가 징벌을 하든 징벌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었다는 것은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역할이잖아요.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교는 다 이런 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없고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다 남녀 평등 실현하고, 인종 평등, 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이라든지 전생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다 죽이고, 성을 점령하면 어린 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병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다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에서는 신이 다 세상을 움직였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신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신의 소리 악마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부정입학이 다 없어졌잖아요. 있더라도 다 몰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종교는 공공연히 하잖아요. 교회나 사찰 앞에서 ‘기도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선전하는데, 이건 부정입학 했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29일 동안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크셨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으로는 ‘지금 행복’ 할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은 괴롭게 보내고 유학생활이 끝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자세로, 직장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젊을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임하세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살아라’ 이런 얘기도 아닙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가 인생에서 몇 년 되겠습니까? 그런 시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부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면, 애인과 같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도 하고 술도 먹고 싶다면, 술집에서 공부 토론을 하면 됩니다. 자꾸 분리하지 마세요.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고, 술을 먹으면서 공부 얘기를 하면 안 될까요? 공부를 하는 유학생은 공부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것은 곁들어서 같이 하면 됩니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런 자세로 자기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지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욕심 부리는 것을 도와줄까요? 가난한 나라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할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곳에 할 일이 많겠지요.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고, 부처님. 저는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저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자세가 신앙입니다. 욕심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난에 처할 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또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을 얻어 나가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봉사자들과 다같이 소감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만 찍었습니다.
특히 오늘 강연 장소인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빌리는 등 목헌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목헌 교수님을 비롯하여 38명이나 되는 자워봉사자가 함께 뜻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고 목헌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
▲ 오늘 더블린 강연 총괄을 맡아준 오민씨 부부
오민씨네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럽 29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독일, 영국, 파리에서 각각 강연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평가회 겸 소감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평가회 및 소감나누기
유럽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선희 유럽지구장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었다”며 보람있어 했고, 직장을 한달 휴가 내고 강연 전체를 담당한 이희정님은 “바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볍다”며 기뻐했고, 파리 강연을 담당한 박지현님은 “스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아직 70일이나 남은 100회 강연 일정을 걱정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담당한 신재숙님은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해왔지만, 런던, 더블린은 정토회를 처음 알게된 봉사자가 많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진행으로 봉사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 기뻐했고, 추희숙님은 “유럽 강연은 참석자가 10명 남짓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씨앗을 심는 것임을 깨닫고 1명을 위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단체가 꼭 필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평가회 겸 나누기를 모두 마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달 동안 수고한 책임자들을 위해 거듭 격려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도시별로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거든요.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원만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교민들이나 학생들이 해외에 살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격려를 받거나 자극을 받은 것들이 그 분들의 인생에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스텝진들도 모두 공항으로 가서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유럽 순회 강연 소식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스님께서는 오전11시50분 비행기로 보스톤으로 가십니다. 보스톤을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다시 펼쳐집니다. 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의 원만 성취를 기원해 주세요.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