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와 나라
January 23, 2017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음악대학원장, 한국작곡가회 회장)
오케스트라(Orchestra)란 용어는 그리스어 오르케스트라(orkhēstra)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 무대와 관람석 사이에 마련된 넓은 장소를 뜻하였다. 그곳은 코러스(무용수)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악기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는 장소이었다. 그리스 말기에는 무대를, 16세기에는 무용을 일컬었으며, 18세기에는 극장에서 악기가 위치한 장소를 가리켰다. 지금의 용어와 같은 ‘여러 가지 악기의 집합체’라는 정의는 J. J. Rousseau의 음악사전(1767)에서 처음으로 쓰였다.
지금의 서양 오케스트라의 최초의 형태는 1600년경, 이탈리아의 작곡가 C. Monteverdi의 오페라에서 사용한 기악 합주였다. 17세기말, 프랑스 작곡가 J. B. Lully의 작품은 대부분 현악기의 합주 형태로 이루어져있지만, Oboe와 Bassoon 등의 목관악기들, 때로는 거기에 Flute와 Horn까지 포함하는 관현악을 위한 작품들도 왕실을 위해 작곡하였다. 18세기 독일, 만하임악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J. Stamitz의 작품은 목관악기(Flute· Oboe· Bassoon), 금관악기(Horn· Trumpet), 타악기(2대의 Timpani), 현악기(제1Violin· 제2Violin· Viola· Violoncello· Contrabass)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통 이를 근대 오케스트라의 기초로 생각하고 있다. 이 형태의 작품을 가장 많이 남긴 작곡가는 아마 F. J. Haydn으로 그의 수많은 교향곡을 통하여 지금의 오케스트라가 정착되었다. 이후 Oboe의 수에 따라 2관, 3관, 4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발전되었으며, 그 규모는 약 80명에서 120명 정도 이다.
며칠 전 어느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다녀왔다. 그 속에서 청중으로 함께 호흡하며, 느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벅찬 감동을 안고 돌아왔다.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도 이런 감동을 주는 오케스트라처럼 운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감동이 우리 정치판에도 있어야 할 텐데’, 정치가 실종된 작금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워 어떻게 하면 다시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그 동안 생각하여 왔던 몇 가지를 오케스트라와 비교하며 이 글을 쓴다.
첫째,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려면 악보가 필요하다. 많은 연습을 통하여 악보 전체를 외워서 연주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면 적어도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총악보를, 단원은 각자가 맡은 파트의 개인악보를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일이,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실종된 것 같다. 지도자와 국민 모두, 같이 공유하여야 할 원대한 비전과 계획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야 우리 대한민국을 위한 그 어떤 곡도 연주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하루속히 우리의 가치관, 미래의 꿈과 비전, 그것을 담아낼 계획,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국민이 하나로 합하여 뜨겁게 울 수 있는 통합의 악보가 지도자와 모든 국민의 보면대 위에 놓여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오케스트라가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조율이 꼭 필요하다. 모든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연주장에 착석하고 난 후, 악장이 나중에 입장하여 제1Oboe 주자로 하여금 A음을 불게하고, 그 음에 따라 목관악기 금관악기 현악기 순으로 모든 악기를 조율한다. 그 후 지휘자가 입장하여 그 날 선정된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사전에 조율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래서야 어떤 연주가 이루어질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상식적인 일을 우리 정치판에서는 왜 하지 않는지,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두렵다. 매 사안마다 지도자와 국민이, 행정부와 입법부가, 여당과 야당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사전 조율을 꼭 해야 한다. 그래야 조율된 음에 맞게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야 한다. 현악기가 목관악기를 보고 왜 우리같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연주법이 왜 다르냐고, 비난한다면 그 오케스트라가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겠는가? Violin이 Contrabass를 보고 왜 그렇게 크냐고, Trumpet이 Trombone을 보고 왜 주법이 그러냐고, 우롱한다면 그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이상하게도 모양이 다르다고,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오케스트라에서 Violin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여 보라. 음악이 제대로 되겠는가? 얼마나 단조롭겠는가? 세상에는 Violin과 같이 고음을 담당하는 악기도 필요하지만 Contrabass와 같이 그 밑에서 그들이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저음악기도 필요하다. 음색이 비교적 비슷한 현악기도 필요하지만, 각양각색의 소리를 가진 목관악기도, 음량이 큰 금관악기도, 때에 따라서는 극적인 효과를 표현하기 위한 타악기도 필요하다. 그 다름 때문에 서로의 약점은 보완되어지고, 더욱 빛나게 되고, 멋있어지고, 화려하게 되어,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사회도, 우리국가도, 이제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그래야 음악은 감동을, 세상은 살맛나는 신바람을 일으키지 아니하겠는가?
넷째, 지휘자는 소통의 아이콘이 되어야 한다. 지휘자는 단원들과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하여, 팔의 길이로는 부족해서 팔을 더욱 길게 할 목적으로 지휘봉을 쓴다. 대화를 하는 대신, 그 지휘봉으로 곡의 모든 것을 소통한다. 보통 지휘봉을 잡지 않는 왼손으로는 보조적으로 곡의 악상 등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지휘봉이 모든 소통의 주체가 된다. 지휘봉을 통하여 단원과 지휘자 상호간에, 혹은 단원과 단원 간에, 곡의 모든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소통이 없다면 무슨 곡인들 제대로 연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그 누구와도 소통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소통을 하면 꼭 손해를 보는 것처럼 국민과 혹은 다른 지도자와 담을 쌓고 산다. 이제 하루 속히 지휘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체되지 않는 고속도로처럼, 우리 몸속의 피처럼, 원활하게 흘러가는 건강한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다섯째, 악곡을 연주할 때 같은 템포로 연주해야한다. 합주를 할 때 개인마다 연주하는 템포가 다르다면 아마 그 연주는 온전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니 그 순간 연주는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다양성 속에는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잘 드러나서, 각양각색의 빛깔로 섞여있어 오히려 화려한 단풍의 가을 산처럼, 훨씬 더 사회가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그 다양성이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같은 템포로 연주하여야만 한다. 가정의 부부가, 회사의 사장과 사원이, 서로의 템포가 다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가정이, 그 회사가, 온전히 굴러가겠는가? 우리도 지도자와 국민이 같은 템포로 전진할 때, 나라는 비로소 안정을 찾을 것이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여섯째, 악곡을 연주할 때 그 곡의 모든 메시지를 함께 나누어 서로 공감하여야 한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연습이란 개인연습도 있지만, 보통은 지휘자가 단원에게 혹은 단원 상호간에, 음악의 강약, 악상, 등을 왜 그렇게 하여야 하는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설득하는 자리이다. 그렇게 하여 음악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매우 소홀히 여기고 있다. 국민을 한번이라도 설득하여 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목소리만 크면 장땡이라고 여기저기서 자기소리만 낸다. 상대방 소리는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 투성이인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 가겠는가? 음악에서도 누구의 소리가 일방적으로 크면, 음악의 균형은 급격히 깨어지고 만다.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상대방의 소리를 듣고, 서로가 서로를 억누르지 않고, 존중하며, 또 배려하여, 음악의 내용과 더 나아가 철학까지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을 세계의 무대에 올리기 위하여 함께 나누어 서로 공감하는 나라로 만들어야겠다.
일곱째, 훌륭한 연주를 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실력이 뛰어나야한다. 지휘자도 단원도 실력을 쌓아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며,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자와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도 국민도 열심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 최고가 되기는 어렵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선일 것이다. 이 최선이 모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한 개인도 한 나라도 최고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최고보다는 최선이 더욱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여덟째, 곡을 연주할 때는 끝까지 연주하여야만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출중하다 해도, 끝까지 연주하지 않고 도중에 중단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난관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참고 끝까지 함께 한다면 분명 아름다운 결실을 이룰 것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도 시련 속에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나아간다면 세상이 우러러보는 멋진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나라를 꿈꾼다. 이런 오케스트라와 같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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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환시인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