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요한 16장 20-23절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안녕, 아빠’를 보고>
가정의 달을 맞아 ‘사랑’이란 주제로 MBC TV에서 특별기획한 프로그램이 요즘(15-20일 밤 11시대) 매일 방영되고 있습니다. 휴먼 다큐멘터리 형식인데, 가족들이 함께 보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안녕, 아빠’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었습니다. 손수건을 두세 장 준비해야 되겠더군요. 말기 대장암 환자인 41세 가장과 그 가족 간에 흐르는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물이었습니다.
2006년 11월, 부인 은희씨는 남편 준호씨의 담당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습니다.
“한 달을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암 가운데서도 대장암은 통증이 심하기로 정평이 나있지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려오는 극심한 통증, 하루 1000mg의 모르핀 투여로도 참아낼 수 없는 고통, 어쩔 수 없이 통증 신경을 차단하는 수술까지 받습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남편, 점점 떠나가는 사랑이 아쉽고 야속했지만, 아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시동생 수사님을 통해 형에게 죽음이 거의 가까웠음을 알립니다.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너무나도 당혹스런 현실 앞에 준호씨는 절규합니다. 더 살고 싶다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갈수 없다고...
준호씨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데...아내는 캠코더를 작동시키기 전에 남편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줍니다. 머리도 예쁘게 빗어줍니다. 이윽고 남편은 아이들에게 남겨줄 마지막 메시지를 남깁니다.
“애들아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사랑한다. 고맙다. 먼저 떠나 미안하다...”
첫눈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드디어 떠날 때가 온 것입니다. 점점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준호씨, 그런 아빠를 위해 아이들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준호씨 부부와 두 아이의 모습 앞에서 가슴 찢어지는 슬픔과 동시에 참사랑의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떠나가는 사랑 앞에 최선을 다하는 은희씨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도 끔찍이 가족들을 챙기는 준호씨의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매일 아침 준호씨는 자신을 끔찍이도 챙겨주는 아내, 자기 때문에 ‘쌩고생’인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내 사랑!”
남편은 떠났지만 은희씨는 남편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아직 지우지 않습니다. 힘들 때 마다 문자 메시지를 바라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 가족 안에 흐르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솔직히 너무나 암담한 것이었습니다. 오랜 남편의 투병생활,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 부인에게 지워진 무거운 십자가...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짜증을 냈을 것입니다. 귀찮아했을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멀리 도망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족 구성원들은 특별했습니다. 고통이 커져갈수록 더욱 똘똘 뭉쳤습니다. 힘에 부칠수록 더 자주 ‘사랑한다’고 외쳤습니다.
남겨진 아이들, 어떻게 보면 부인에게는 짐이며 혹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부인은 떠나간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더군요.
“이렇게 소중한 아이들을 내게 남겨준 당신,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토록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이별, 그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다름 아닌 부활신앙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잠시 헤어지지만 언젠가 주님 나라에서 기쁜 얼굴로 다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던 가족이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시는 예수님께서도 비록 지금은 당신께서 떠나가시지만 언젠가 다시 기쁜 얼굴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철저하게도 꿈꾸는 종교입니다. 희망의 종교입니다.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비록 지금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비록 지금은 섭섭하고 허전하지만, 비록 지금은 힘겹고 숨 막히지만, 언젠가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 모든 고통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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