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후는 技創主義
허신행 박사(한몸사회포럼 대표, 전 농림부장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에겐 핵심가치와 중심사상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학에서는 인간행동의 기본이 되는 이같은 중심사상을 이데올로기라 칭한다.
가령 원시인들은 천연자원의 가치를 제일로 치고 채집과 수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모든 사상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마치 아프리카 대초원의 야생동물들처럼 계절 따라 채집과 수렵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지역을 이동해가며 유목생활을 했다. 그러기에 원시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자원주의’라 한다.
농경사회의 핵심가치는 농경지에 모아졌다. 농경지 면적의 크기가 바로 부(富)의 전부이고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가정, 부족과 봉건영주에게도 농지의 확보는 생존의 문제였다. 토지로 쌓아올린 봉건제도와 전제군주, 농지를 가꾸기 위한 노비와 농노 그리고 노예제도의 탄생, 토지확보 쟁탈전 등은 농경사회의 일관된 특징이다. 이 시대의 중심사상 역시 농지로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농경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농지주의’였다.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다. 인간이 만든 모든 생산요소, 즉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계와 기구, 장비와 생산자재 등을 통틀어 자본이라 부른다. 공장은 자본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기에 자본의 축적이 부(富)의 축적이오, 자본의 규모가 바로 부의 크기와 마찬가지다. 그런 자본주의도 산업사회의 쇠퇴와 함께 선진국으로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관심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에 모아진다. 이것은 산업사회 이후에 등장하게 될 새로운 문명사회와 직결되어 있지만 우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흥망성쇠만 눈여겨봐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자동차, 기차, 선박, 비행기, 가전제품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의 몰락 내지 축소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소프트웨어업체들은 나날이 사업규모를 늘리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판매경쟁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스마트폰 업체들, 구글과 같은 인터넷업체들, 소통의 속도를 단축시키는 반도체업체들, 3D⁃콘텐츠⁃미디어와 IPTV 등의 다양한 생산업체들, 신재생 에너지, IT(정보기술)⁃NT(나노기술)⁃BT(바이오기술) 등의 첨단기술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여기에 140자 지저귐의 트위터(Twitter)가 선거문화를 바꾸고, 구글에 클릭만 하면 인류가 쌓아온 모든 지식에 접근 가능해지며, 스마트폰에 터치만 하면 무선 인터넷의 우주가 열리고,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글로벌 인터넷 인맥을 구축하는 등 세상은 미지의 창조의 세계로 달리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는 이들 업종의 성장동력을 압축해보면 첨단기술과 창의력으로 모아진다. 이 둘을 줄여서 필자는 오랜 연구 끝에 ‘기창주의(技創主義)’란 이데올로기로 규정했다.
기창주의 아래서는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첨단기술 및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를 선도하면서 부(富)를 크게 이룬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일본의 손정의, 중국의 마윈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창의력과 첨단기술로 세상을 바꾸면서 부(富)를 쌓게 될 것이다.
정부정책도 쇠퇴해가고 있는 산업사회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새롭게 부상한 기창주의에 맞춰 전면적인 조정을 받아야 할 때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정책의 환골탈퇴다. 자본주의 하의 주입식 획일교육에서 벗어나 기창주의를 향한 창조적 맞춤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또한 여러 부처에 분산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IT, NT, BT, ET 등의 첨단기술 담당부서를 통합, 새로운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