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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
2007년 10월 1일(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1-6 *찬양: 30장, 82장
* 제 목 : 복음 안에서 누리는 기쁜 교제
가을 특새를 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미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벽마다 단비처럼 우리에게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모하십시오. 새벽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소위 ‘기쁨의 서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넘치는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교회에도 여러 가지 아픔과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들은 바울을 생각한다고 모처럼 약간의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바로 빌립보교회의 어려움을 진단하고 치료해주는 이 편지였습니다.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의 병을 치료하는 바울의 진단서이자 처방약이었습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 시대 교회에 뿌리박힌 중병을 치료해주는 서신서라고 생각합니다. 새벽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치유하심과 어루만지심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의 인사(1-2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왜 그리스도인들의 인사가 중요합니까? 하나님 말씀만 있으면 되지 인간적인 인사나 문안이 무슨 소용일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인간적 관계가 신적 내용(은혜)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질서 속에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동시에 은혜는 우리의 인간관계속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절바른 언행과 인사성이 복음이 전달되는 통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의 현재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춥고 외롭고 험악한 감옥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사말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종은 하인 정도가 아니라 노예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비록 감옥에 있지만 로마의 노예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모든 평안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2. 늘 기도하게 되는 교회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쁨으로 기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지역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전도자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행16:6-10 /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됨: “마게도냐(유럽, 빌립보지역)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16:11-15 / 빌립보에서 첫 기도처: 그곳에서 예비된 영혼(일꾼)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남.
14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행16:16-40 /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줌- 그 결과 감옥에 갇힘 -기도와 찬송 가운데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경험- 간수가 자살하려는 순간 바울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게 함 -간수 가정이 구원받음 ...........루디아, 감옥에서 전도한 사람들, 간수및 가족들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됨.
30-32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 교회가 세워지기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입니다.
3. 복음 안에서 누리는 기쁜 교제
바울이 감옥에서 이토록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감옥 안으로 전달된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의 선물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보낸 헌금을 대하면서 금전적 가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바울이 감옥이라는 좋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선물 때문이었습니다. 그 헌금은 바울에게 두 가지 의미를 줍니다. 하나는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인간입니다. 감옥이 좋을 리 없습니다. 바울이라고 고통이 좋거나 괴로움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이렇게 고생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감옥 생활이 힘들고 영적으로 침체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에바브로디도 편에 빌립보 교인들의 작은 선물이 도착하자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의 영이 흥분되며 기뻐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 헌금이 단지 그들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작은 성의가 단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 뒤에 계신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중요한 이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룰 때라고 생각합니다. 성격도 다르고, 배움도 다르고, 학력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교제를 나눈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초월하여 만남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교제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서로의 만남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셀가족 모임을 한 주간 삶의 우선 순위에 두십시오. 셀가족과의 만남을 사모하고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바울은 우울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때 우리가 모든 시름을 물리치고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도 사이의 교제입니다. 세상적 교제가 아니라 복음의 교제입니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모든 고통을 이기고 기뻐했다면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빌립보서를 기록해 봅시다. 작은 관심으로 내 어려움에 동참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쁨의 편지를 쓰거나 전화합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빌립보 교인들처럼 먼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찾아갑시다. 격려의 전화를 걸든지, 혹은 작은 물질로 도웁시다. 그것을 통해 그의 뒤에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착한 일을 시작하셨음을 깨닫게 하십시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오늘 주님이 내 안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착한 일은 무엇인가? 작은 실천부터 해 보십시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2)
2007년 10월 2일(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7-11 *찬양: 403장, 409장
* 제 목 : 잊을 수 없는 성도의 사랑
어린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공급되어야 합니다. 편식하는 어린이나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한 아이들은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거나 허약한 체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들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기형적인 신앙으로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영양 실조에 걸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들의 도움에 감사하면서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이토록 무서운 환란과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찾아와 주었고 믿어 주었으며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들의 작은 사랑과 관심과 섬김은 바울에게 너무나 큰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한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라”는 최고의 표현을 동원해 빌립보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7절)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은 이들이 바울의 마음을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마음속에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도장을 찍어 놓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복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을 찾아가 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것은 완전히 그들의 마음을 차지해버리는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려울 때 믿어주고 가장 힘들어 할 때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 ‘변명하다’: 잘못에 대한 핑계가 아님, 법정에서의 진술 [복음의 변명]
: 복음을 전혀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가장 어려운 설교]
- ‘확정함’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순히 복음만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서 이기는 것.
: 자기 능력 이상이 나와 복음을 모르는 자들의 마음을 비상하게 눌러 말씀을 경청하게 할 뿐 아니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 체험/ 열린 모임 현장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죄인들의 교만을 이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 사랑에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8절)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집니다. 혹시 길을 가다가도 그곳으로 가는 열차나 고속버스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서 그를 만나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더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얼마나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은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서 심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것을 맹세할 때 우리는 심장 위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받는 것을 볼 때 심장이 터질 거 같다고 표현합니다.
& 묵상: 십자가 위에서 고통 중에 죽어 가실 때 예수님의 심장은 어떠했을까?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간절한 사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바쳐서 다른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오늘 이 시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크게 아멘 해 봅시다!
3.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9-10절)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찾아갈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가 한 것처럼 그들을 위해 기도한 후 기도 내용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마음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위해 소원한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신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움 받아서 더욱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1) 성경적 지혜가 풍성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균형잡힌 신앙]
교회에서 봉사나 섬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리에 더 든든히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너무나 많은 열심과 헌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이 자꾸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식과 모든 총명,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말씀으로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영적 총명(분별력)이 넘쳐나길 기도했습니다.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다’는 것은 무엇이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공부하는 핵생은 결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공부에도 중요한 순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지혜롭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결과는 실패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것이 영적 총명이요 분별력입니다. 이것은 지적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번 특새 기간 우리에게 영적 총명(분별력)의 은사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3)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신앙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진실하고 허물없는 믿음도 그리스도의 날가지 이르기 바란다고 합니다.
우리의 복음 사역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시작하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끝까지 사용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차음부터 바른 동기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진실하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열매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결어) 우리의 신앙은 아직도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거나 진실하지 못합니다. 기도에 열심히 있는 사람은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 전도에 치우쳐 있는 사람은 공동체로 자라는데 부족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모든 부분에서 골고루 균형있게 자라야 큰 힘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나는 바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있는가?(9절-10절 참조) 실천 해 봅시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게 사랑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3)
2007년 10월 3일(수)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12-18 *찬양: 383장 395장
* 제 목 :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 바울의 매임[감옥생활]
남자들은 군에 입대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마음껏 누리던 자유를 박탈당하고 복무를 마칠 때까지 꼼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복무하는 동안 공부를 중단하고 단순한 생활만 하느라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군대에서 3년 동안(지금은 2년) ‘썩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썩을 수 없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성령이 임하셔서 그를 능력 있게 하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썩는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최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 가운데 정성균, 김승겸 형제가 지금 군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군 생활이 썩는 것이 아니라 인생최고의 시간으로 누리길 기도해 주십시오.
바울은 지금 악명 높은 시위대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매임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고백합니다. 더욱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1. 시위대 안에서 맺은 열매(12-13절)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로마에 끌려온 뒤 상당 기간 죄수이기는 해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정이 바뀌어 악명 높은 시위대 안의 감옥으로 이감되었습니다. 매일 밤 쇠사슬을 차고 잠들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이 컸을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 때 자신의 삶과 죽음 문제를 놓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시위대 안의 감옥 생활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비적인 기적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생각의 전환만으로 그렇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적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완전하려고 하는 경향,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기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 완벽주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교만과 프라이드, 바로 이것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자존심과 자기 생각을 벗어 버렸을 때 그는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의 찬란한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변화입니다.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바울의 영적 대차대조표
-그가 시위대 감옥으로 옮겨짐으로 받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실감
-그가 감옥에 들어옴으로 얻게 된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
----그는 시위대 감옥 안에 들어와 고통 받는 것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즉 ‘복음을 위해 더 유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나의 영적 대차대조표 만들기(적용)
내 자신의 삶을 복음의 진보 기준에 맞추어 정리해 보십시오.
&시위대 안에서 열매 맺은 비결?
바울은 어떻게 험악한 시위대 감옥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기왕에 들어온 이상 철저히 적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 대한 좋은 소문이 퍼짐.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죄수의 소문은 금방 온 시위대 안에 퍼졌고 다른 사람들도 이 죄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두 유익하다”- 고통의 쓴 잔도 결국 유익하다.
2. 다른 믿음의 형제들의 반응(14절)
바울이 갑자기 시위대 감옥에 갇히자 그동안 바울이 전도하여 양육한 성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직 신앙이 흔들리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염려와는 정반대였습니다.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바울의 매임을 보고 더 주님을 신뢰하고 겁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기 발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맡겼더니 자신이 맡고 있었던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완벽주의는 주님의 일하심을 방해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없으면 형제들이 매우 흔들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형제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 안에서 외롭게 복음을 붙들고 믿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그들 모두 자기 발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충분히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장 염려하던 것을 주님께 맡겼을 때 주님은 이들을 양육하셨고 그것은 바울 자신이 붙들고 있던 때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잘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우뚝 서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는가?
3.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15-17)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본문을 보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솔직한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부끄럽게도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중에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단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경쟁상대로 여기며 복음사역을 했던 사람들 같습니다.
-복음 사역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방법이 다 옳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십니다. 때로는 불편한 관계를 통해서도 복음은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 포용력입니다. 용납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우리의 고정관념이 복음 사역에 방해가 될수도 있습니다.
-복음 사역을 하다보면 사역자들끼리 갈등도 올 수 있습니다.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갈등은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결어)
바울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입니다. 시위대 감옥에 갇힌 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실감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끝까지 의지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도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스렸습니다. 가장 무서운 원수는 바로 자신 안에 있습니다. 바울처럼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은 끝까지 지키십시오. 현실과 상황은 그대로지만 생각의 전환으로 우리는 날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두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웁시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4)
2007년 10월 4일(목)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19-21 *찬양: 456장, 458장
* 제 목 : 불안과 염려에서 탈출하는 방법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태도는 두 종류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애써 그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에 큰 어려움이 닥쳤는데도 술이나 마시고 밖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잠시는 편안할지 몰라도 결국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경우를 미리 예측해서 스스로 두려움과 절망에 빠집니다. 만일 믿음의 사람들이 이렇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쓴다면 믿음이 얼어 버려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자동차 엔진 같은 것인데 엔진이 어려버렸으니 차가 어떻게 앞으로 나가겠습니까? 어려움이 닥칠 때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연상해서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로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뜻을 발견하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바울의 현재 상태: 사형 판결을 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심정.
바울이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도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도 역시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불안한 상황과 싸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순간도 견딜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바울을 지탱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1.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붙잡아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19절)
바울은 감옥이라는 정신적으로 힘겨운 태풍 속에서 자신보다 강한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에 자신을 붙잡아줄 수 있는 강한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그가 붙들고 있던 구원관입니다.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바울은 지금의 어려움이 다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구원은 “감옥에서 놓이든 그냥 죽든 여하튼 자신의 마지막이 비참하게 끝나지 않도록 주님이 붙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고 태풍이 밀어닥치면 그동안 열심히 봉사한 것이나 훈련받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모두 날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진리 가운데 한 가지만 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결코 나를 어려움 중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시험당할 때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시며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을 묵상해 보십시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실천, 섬김) 지체 중에 누가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약이 없습니다.
2. 자신이 죽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20절)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만일 바울이 감옥 안에서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는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살든지 죽든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체념의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 떤 경우든 준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 불임여성: 반드시 임신해야하다고 생각? -임신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용납하기 어렵게 됨.
&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만일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믿음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리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예)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여 낳은 자식이 죽을 때 어떤 행동?
오직 한 가지 길만 제시하며 하나님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영적 침체와 불안이 우리를 상하게 하고 불신앙의 자리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는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는가? 그렇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3. 지금까지 주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21)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것은 바울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아마 성경에 있는 신앙고백 중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 그리스도, 죽는 것, 유익!”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다음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십시오.
1> 바울이 사는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4:8)
2> 지금까지 산 것은 자기 힘으로 산 것이 아니고 주님이 그 삶을 끌고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죽는다면 그것도 주님이 하시는 것이며 주님은 그 죽음을 통해서도 엄청난 유익을 주실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바울의 본심과 가깝겠습니까?
첫 번째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진수는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오셔서 우리 삶을 운전하시는 것입니다.
&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님을 조수석에 태우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음주까지 했으면서 핸들을 고수합니다. 음주 운전자가 얼마나 끔찍합니까? 우리는 마치 음주 운전자처럼 스스로 인생을 운전하며 여기도 박고 저기도 박으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운전석에서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토록 엄청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힘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그 삶을 운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원하고 바라는데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좋은 것을 바라보라는 뜻이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거나 능력이 없으셔가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바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내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5)
2007년 10월 5일(금)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22-26 *찬양: 340, 344장
* 제 목 :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인생에서 죽음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큰 시련이요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실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나 미련을 적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가지는 엄청난 매력 때문에 거의 그 안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죽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 삶에 너무 환멸을 느꼈거나 죽음 자체에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죽음 뒤에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축복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죽음 후에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다시 이 세상으로 끌어내린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들이 생각났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강렬한 것을 보며 하나님이 자신을 다시 살리시리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 삶에 대한 생각(22절)
하루하루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면서 삶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갖기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을 통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배우기 원합니다.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세상에 사는 것을 “자기 일의 열매”라고 합니다. 열매는 식물이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는 가장 맛있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삶을 열매라고 한 것은 자기 안에 놀라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엄청난 것을 결합해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만들어 냈다는 뜻입니다.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바울은 세상에 사는 것을 주님이 자기 안에 뿌려 놓으신 거룩한 능력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갈수록 주님이 자기 안에서 많은 일을 행하실 줄 믿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내 일의 열매’는 바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목자가 양을 생각하듯이 이방인들만 보면 마음이 끌렸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거룩한 능력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가고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 적용, 실천) 바울처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일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죽음에 대한 생각(20절)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바울은 지금 자기가 삶과 죽음 사이에 꽉 끼여 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의 마음을 결정해야 합니다. 마치 바울이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죽음 예찬론자가 아닙니다. 바울도 사실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두려워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조건 죽음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죽음을 거쳐야 한다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납니까? 죽음의 고통입니다. 죽음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예) 목베임, 화형, 고문......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나’라는 존재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 바울이 죽음을 극복한 방법?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주십니다.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는 성령을 부어 주셔서 어려움 중에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직접 눈으로 뵙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의 고통은 잠깐이고 그 뒤에 있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물로 s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은 성령으로 나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이 성령으로 축복해주실 것을 확신한다면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믿는 자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죽음은 믿음의 마지막 헌신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영혼을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자신을 다시 살릴 것을 믿고 마지막 순간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물로 죽음의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로 그 후에 주님을 뵙게 됩니다. [예, 죽음: 수영장에서 미끄럼 타는 것과 같다]
- 세상사는 것이 믿음의 연주라면 죽는 것은 그 연주 후에 받는 갈채입니다.
아무리 연주가 뛰어나도 평생 연주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갈채가 목표일 수 있습니다.
3. 죽음보다 뛰어난 것(24-26)
바울이 죽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들은 바로 빌립보 교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절망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은 바울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한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믿었습니다. “결코 바울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죽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나와 다시 우리에게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갈 것을 생각하면 좋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믿음으로 살아도 결국 죄짓게 되어 있기에 주님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빌립보교인들의 사랑과 믿음이었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지금 바울의 마음속에 강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신을 보내어 그들의 수고와 기도가 헛되지 않음을 확인시키시리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바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 그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과 생각과 체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진지하게, 도 가장 깊이 나누고 있습니다. 편지를 통해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과 같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바울을 만져주셨듯이 편지를 통해 주님은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도 만져주실 것입니다.
결론)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아름다운 나눔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도 그에게서 빌립보 교인들을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더욱이 바울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를 믿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외로워할 때 그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며 지금 하나님이 자기에게 다시 한번 사역의 기회를 주셔서 그들을 축복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주 안에서 많은 형제자매들과 삶을 나누는 것은 그들의 처지가 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가장 위대한 삶도 경험하고 수많은 사람의 경험을 우리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나는 담임목사를 얼마나 신뢰하고 지지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봅시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6)
2007년 10월 6일(토)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제 목 :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화상(동지의식)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이고 빌립보 교인들은 그리스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로 강하게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빌립보 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식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이런 핍박이나 비난에 담대히 대처하지 못하고 대단히 부끄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주의 사람들의 비난과 핍박을 자신들의 인격과 처신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핍박이나 비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에 위축되거나 스스로 책망하지 말고 감옥에 있는 자신처럼 담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처세술을 갖고 살아야 할지를 교훈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바른 인식을 갖자!(27절)
요즘 우리 사회에 잊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점점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무관심과 소외 속에서 현대인들은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세상 풍속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합당하게 생활하다’는 아주 특별한 하나의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어느 나라 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무슨 뜻입니까?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대되는 행동양식을 저버리지 말고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라는 인식
& 적용, 실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2. 개인의 인격과 신앙의 핍박(29절)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인격적으로 완전한 성자가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평신도를 그렇게 여기니 저 같은 목사는 거의 예수님 수준에 와 있는 줄 알것입니다. 그런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전혀 성자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도덕가보다 못한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사실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성자처럼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던지는 희생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과 겪는 갈등은 인격적인 미숙함과 진리 자체의 특성이 함께 결부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인격적인 미숙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책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칫 우리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정죄감, 죄책감으로 유도하는 마귀의 술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아직 덜 성숙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 과정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덜 경직될 수 있습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복음에는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던 모든 것과 분리되는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분리되는 아픔이 없으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다 완성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겸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자신의 인격적 미숙함이라고만 탓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존심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이것을 당연시할 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3.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27-28,30)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왜 바울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라고 말합니까? ‘일심으로’는 ‘한 영으로’라는 뜻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골문을 두드립니다. 모두 한 영이고 한 뜻입니다. 그런데 적은 약한 쪽을 치고 들어옵니다. 결국 한 쪽이 무너지면 아무리 잘 해도 결국은 지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울 때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일단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풀리게 됩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받습니다.
2)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이것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침체될 때가 바로 어려움은 내게만 닥치고 나만 재수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 생각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어던 사람은 자기보도 훨씬 더 기막힌 상태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은 다른 성도들의 기도로 나를 어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이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일단 누가 내 사정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어려움에서 건져 주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교통입니다.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입니다. 만일 통신이 두절되면 군인들은 고립되어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적들이 에워싸고 있어도 통신만 살아 있으면 본부에서도 도울 수 있고 자신들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통신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교적 서로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통신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서욱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대단히 상세한 지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나는 주의 종과 어느 정도 통신(의사소통)을 주고받고 있는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빛을 발하기까지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6)
2007년 10월 6일(토)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1:27-30 *찬양: 471, 473장
* 제 목 :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화상(동지의식)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이고 빌립보 교인들은 그리스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로 강하게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빌립보 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식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이런 핍박이나 비난에 담대히 대처하지 못하고 대단히 부끄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주의 사람들의 비난과 핍박을 자신들의 인격과 처신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핍박이나 비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에 위축되거나 스스로 책망하지 말고 감옥에 있는 자신처럼 담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처세술을 갖고 살아야 할지를 교훈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바른 인식을 갖자!(27절)
요즘 우리 사회에 잊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점점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무관심과 소외 속에서 현대인들은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세상 풍속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합당하게 생활하다’는 아주 특별한 하나의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어느 나라 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무슨 뜻입니까?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대되는 행동양식을 저버리지 말고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라는 인식
& 적용, 실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2. 개인의 인격과 신앙의 핍박(29절)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인격적으로 완전한 성자가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평신도를 그렇게 여기니 저 같은 목사는 거의 예수님 수준에 와 있는 줄 알것입니다. 그런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전혀 성자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도덕가보다 못한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사실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성자처럼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던지는 희생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과 겪는 갈등은 인격적인 미숙함과 진리 자체의 특성이 함께 결부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인격적인 미숙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책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칫 우리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정죄감, 죄책감으로 유도하는 마귀의 술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아직 덜 성숙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 과정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덜 경직될 수 있습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복음에는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던 모든 것과 분리되는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분리되는 아픔이 없으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다 완성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겸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자신의 인격적 미숙함이라고만 탓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존심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이것을 당연시할 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3.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27-28,30)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왜 바울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라고 말합니까? ‘일심으로’는 ‘한 영으로’라는 뜻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골문을 두드립니다. 모두 한 영이고 한 뜻입니다. 그런데 적은 약한 쪽을 치고 들어옵니다. 결국 한 쪽이 무너지면 아무리 잘 해도 결국은 지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울 때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일단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풀리게 됩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받습니다.
2)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이것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침체될 때가 바로 어려움은 내게만 닥치고 나만 재수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 생각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어던 사람은 자기보도 훨씬 더 기막힌 상태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은 다른 성도들의 기도로 나를 어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이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일단 누가 내 사정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어려움에서 건져 주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교통입니다.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입니다. 만일 통신이 두절되면 군인들은 고립되어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적들이 에워싸고 있어도 통신만 살아 있으면 본부에서도 도울 수 있고 자신들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통신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교적 서로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통신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서욱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대단히 상세한 지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나는 주의 종과 어느 정도 통신(의사소통)을 주고받고 있는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 1
-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빛을 발하기까지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7)
2007년 10월 7일(주일)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제 목 : 하나 되는 교회를 위한 관계 해결사(1)
교회는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이되 진리만으로 교인들을 강하게 결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요소가 필요한데 그것은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즉 교회 안에 진리가 풍성하고 공동체도 강하게 결속되어야 급속도로 부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리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생각을 달리하면 시한폭탄을 장착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며 그것으로 어떻게 상처를 줄지 모르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진리에는 별로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자체가 약해서 한두 사람의 입김으로도 교회가 상처 입을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흔히 당하는 문제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교회를 더욱 하나 되게 하는 것?(1절)
-구약교회의 특징: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을 중앙성소로 정하는 것. 예배드리는 위해 한 으로 모이는 구조
-신약교회의 특징: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구조[지역적으로 분산]
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하면 교회가 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➁ 또 다른 특징은 하나 됨입니다.
#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인가 또 교회 안에서 다른 개성과 기질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 안에 다음과 같은 4가지가 갖추어질 때 가능합니다.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1) 권면이 있어야 합니다.[열림 모임 메시지]
‘권면’은 설교입니다. 요즘 같은 설교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감동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언제가 교인들을 복음으로 다져 하나 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복음이 지속적으로 선포만 되면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생명력이 넘쳐납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권면의 역사가 더욱 나타나길 기도합시다.
2)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돌봄]
교인들의 사정은 매우 다양하고 언제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에게 생기는 어려움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끈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통해 관심을 나타냄으로써 멀었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가깝지 않던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회가 왔다’ 하며 발이 닳도록 찾아다녀야 합니다. 더욱 하나 되라고 그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나눔]
성령의 교제는 ‘내게 남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 내게 남는 돈이 있다면 어떻게? - 기도, 이 돈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만남을 통해
우리는 이런 일을 통해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게 되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하는 것? 겸손입니다.
먼저 된 자가 겸손하지 않으면 교회는 절대로 하나 되지 않습니다. 먼저 된 사람이 겸손할 때 그 뒤에 믿는 사람들도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4)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섬김]
그리스도인은 서로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화를 내면서 불순종하는 것은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불쌍히 여겨야지,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피차 깊은 상처를 입게 되고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교회에서 상처 받아 신앙생활을 멈춘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제대로 배워 순종하며 사셔야 합니다.
& 적용, 실천) 나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섬기고(봉사하고) 있는가?
2. 마음을 합하라(2절)
바울은 하나 되지 못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아주 강한 표현으로 하나되라고 권면합니다.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같이하라’, ‘합하라’ 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본질적이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서로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서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함께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모든 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십시오. 배움도 다르고, 성격도 다릅니다. 환경도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미 우리는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십시오.
-다른 그리스도인이 하는 이야기가 내게는 시시하게 들려도 그에게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주고 눈을 맞추어 주고 마음으로 인정해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훌륭한 일꾼 한 명을 얻게 됩니다.
사실 인격적 교감은 시시한 소리를 얼마나 잘 받아 주고 격려해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게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한없이 기다려 주고 귀 기울여 줄 때 완전히 한 사람을 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 교회 건축 현장 소장 이주성씨와 식사를 나눔.
2) 우리는 서로를 통해 다듬어지고 완성되어가는 연약한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자신만 실현한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것을 할 때 자아실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자아실현을 돕거나 아이를 돕는 것으로도 자신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 뒤에는 항상 그 사람을 뒷바라지해 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이 더욱 위대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남을 행복하게 해 주면 복을 받습니다. 남을 붙잡아 주면 자신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성도들을 위해 목회하며 섬기며 양육하며 열심히 뛰는 것은 사실 저 자신이 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서로를 완성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교회의 하나 됨은 성도간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 교제를 통해 옵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8)
2007년 10월 8일(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제 목 : 하나 되는 교회를 위한 관계 해결사(2)
축구나 야구 같은 단체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선수 각자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팀 전체의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이혼하는 가정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이혼할 정도입니다. 가정이 이렇게 많이 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부의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소중한 인격을 가지고 있고 얼마든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쉽게 가정이 깨지거나 팀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팀이 커지는 것보다 팀원들의 생각이 하나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다양한 죄인들을 훈련시켜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야 말로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남는 관건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이 양육 시스템을 통해 더욱 하나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능력이 살아있어 성도들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넘쳐납니다. 살아있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건강한 셀교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겸손하게 순종함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1. 교회를 더욱 하나 되게 하는 것?(1절)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1) 권면이 있어야 합니다.[열림 모임 메시지]
2)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돌봄]
3) 성령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나눔]
4)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셀가족 모임-섬김]
2. 마음을 합하라(2절)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1)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함께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2) 우리는 서로를 통해 다듬어지고 완성되어가는 연약한 지체들입니다.
3.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려면(3절)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주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1)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잘난 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일은 잘 댈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물론 그 일로 유익을 얻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영적으로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그 일로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해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없이 일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이 참으로 겸손하고 부족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붙들고 있다면 그 일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겸손하고 온유하며 서로를 낫게 여긴다면 그것은 분명 주님이 함께 계신 모임입니다. 주님이 그냥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인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주십니다. 그들의 영혼을 기쁘게 하시고 치료할 자를 치료하시며 위로할 자를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겸손이 중요한 것입니다. 남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서로를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셀가족은 셀리더를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셀리더는 셀가족을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성도들은 교회에 새로 온 분들을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장애인들을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노인들을 예수님처럼 대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이곳에 우리만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능력과 풍성함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겸손한 자들 안에는 반드시 주님이 계십니다.
4.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라(4절)
몇 년 전에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들 간에 ‘빅딜’을 했습니다. 이것은 대기업의 내부 구조를 조정하라는 요구입니다. 수십개의 계열사를 정리하고 전문화된 몇 개의 회사만 크게 키워달라는 주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나라가 어려우니까 같이 살기 위해서 나라 전체의 효율성을 살리는 쪽으로 조정하자는 뜻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효율성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교회 구성원은 각자의 일을 충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 전체적으로 교회를 균형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는 말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지 말고 전체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내 중심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불필요한 정력과 수고를 거둘 수 있는데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불필요한 정력과 수고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상처를 받지 입지 않으려면 공동체 자체가 성숙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진리에 더 가까워지고 더 정직해지며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됨을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충만한 역사가 우리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예수님을 닮은 교회는 서로를 세워주고 위로하며 겸손히 섬기는 교회입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게 사랑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9)
2007년 10월 9일(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5-8 *찬양: 347장, 507장
* 제 목 :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재수 없다고 느끼며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마음의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미워하셔서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누가 도우려 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런 어려움에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열리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자기보다 훨씬 심한 상태에서도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억울하다 해도 예수님보다 더 억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예수님보다 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맛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은 예수님을 본 순간 해결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내 문제에서 벗어나 능히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영원히 품어야 할 이 마음(5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품으라고 한 마음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으로 이어지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성경 중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짧은 본문 속에서 이토록 핵심을 찌르며 명확히 설명하는 부분은 달리 없을 것입니다. 본문의 이 짧은 몇 절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놀라운 진수를 잘 요약해서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언제 알았다고 하나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서로 알 필요도 없고 알 이유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서로 알게 하셨고 단지 어느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입니다.
2. 하나님의 본체에 대한 이해(6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에서 ‘본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보통 이 뜻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본체’를 나타내는 단어 ‘몰페’는 7절에 나오는 ‘종의 형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의 본질을 보리고 사람의 본질을 취했다고 번역하기 쉽습니다.
-‘본체’를 영어로 가장 잘 번역한 것이 ‘fashion'(패션) 입니다. ’fashion'은 존재 양식을 말합니다.
예) 연극을 연상하라.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육군, 혹은 해군 장교 옷. 장군의 역할을 함
그러나 이들이 진정 장교나 장군은 아닙니다. 잠시 그 옷을 흉내 내는 것뿐임.
-처음부터 훈련받고 정말 장교가 되어 장교 옷을 입는 것이 ‘몰페’입니다.
즉 바울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패션’을 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분의 자격과 신분을 의미합니다. 한번 어쩌다가 하나님 역을 맡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셨고 하나님 신분에 맞는 존재 양식을 가지셨습니다. ??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십니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취한다’입니다. ‘탈취한다, 움켜쥔다’
예수님은 그 영광의 지위를 빼앗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찬처럼 무슨 죄를 지었거나 잘못해서 영광을 빼앗긴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그 영광의 신분과 지위를 버리신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 우리를 향한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신 것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서도 천사보다 훨씬 못한 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2) 또 아들 자신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그 영광의 지위와 신분을 버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낮아지심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이요 모욕이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이 새벽에 깊이 묵상하십시오.
3.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7절)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이 어디까지 ‘자기를 비어’ 버리신 걸까요?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이단 중에는 예수님이 신성까지 버리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비운다 해도 비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신성입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아니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자신의 영광이나 능력이나 지위 등을 버리신 것입니다.
-‘종의 형체’에서 ‘형체’도 ‘몰페’입니다. ‘fashion'(패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을 입으신 것은 배우들이 하듯 일시적으로 사람의 모양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몸만 입어서는 안 되고 출생과 성장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출생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른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그 키로 자랐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사람이 되신 것이며 사람의 ‘몰페’를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제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인 것이 답답하지 않습니까?
1) 코로 숨을 쉽니다. 2)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2) 사람은 배설해야 합니다. 4) 사람은 아픕니다.
5) 사람은 잘못하면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이 종의 형체입니다.
잘못 들으면 이것이 우리 몸을 무시하고나 욕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몸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몰페’에 비해 우리 ‘몰페’가 연약하고 제한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잘 참아 내셨습니다. 모든 지각을 다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살면서 때대로 모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프기도 했고 침체되거나 배고프셨습니다.
4.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8절)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겸손하셨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분이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산 죄 값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가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상된 의는 회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충족되어야 하나님이 우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용되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버릴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남의 필요를 알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시각)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만 가질 수 있다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친구 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마음입니까?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갈2:20)
2) 순간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마16:24)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로 아신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의심이 사라지면서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믿어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서로 믿음이 없어 힘들게 살아가는 때는 먼저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신앙생활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부인하는 할 때 가장 아름답게, 향기롭게 드러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0)
2007년 10월 10일(수)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9-11 *찬양: 85장, 499장
* 제 목 : 높아짐의 비결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만큼 존경받을 수 있고, 그만큼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출세의 사닥다리를 남보다 한 계단이라도 빨리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런 문제는 올라갈수록 자리가 너무 좁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고 다툽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서로 다투다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질 대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버리고 낮아지신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1. 모든 존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9절)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사람의 운명은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고 한번 망쳐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이미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을 다시 존귀한 자리에 오르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이 가장 큰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모든 존귀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19:11 “위에서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 것이며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가정에 부모님에게 주신 권위-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 약한 아버지상의 문제?
-세상의 영광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퇴색되는 영광입니다.
2.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심(10절)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사람은 한번 죽으면 끝장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를 높이셨는데, 그냥도 아니고 지극히 높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지옥 밑바닥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런 분을 하나님은 모든 권력자나 천사장보다 높은 최고 위치까지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끝난 인생인 예수님을 그토록 높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소중한지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가장 많이 자신의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가장 많은 것을 버리고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한 사람이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높이십니다.
예) 귀에 구멍을 뚫은 노예이야기[구약] -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3. 낮아지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것(11절)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심.
예수님이 그토록 낮아진 결과 얻은 새로운 이름은 바로 ‘주’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변하셨습니다. 전에 그분이 누구셨습니까?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여호와였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었으나,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출생하시고 성장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죽는 영원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많은 죄인들이 구원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성자가 사람으로 변하셨습니다. 전에는 신성만 가지셨는데 이제 영원한 몸을 가지셨고 그 몸으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천국에는 분명히 몸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당에 어머니의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맹수 우리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나마 세상에 사랑이 있고 기본적인 애정이 있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서 자식을 키운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어머니’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물론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움으로써 여자는 위대해지기 시작합니다. 병아리를 까서 품고 있는 암탉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법입니다. 심지어는 매도 병아리를 품고 있는 암탉을 낚아채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에 신비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우리를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신앙적으로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왜 ‘주’라는 이름이 그토록 위대합니까?
가장 위대한 희생으로 가장 절망적인 사람을 구원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주’라는 이름에는 반드시 성도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자식들이 따라 오는 것과 같습니다.
‘주’는 우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책임질 정도가 아니라 암탉이 병아리를 보호하듯이 우리를 지키며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한 몸이시기에 우리의 고통을 느끼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주님도 행복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풍성해지는 것이 주님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 온 세상의 왕이 되셨습니다.(심판 주)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지금 같은 무질서한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치되고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모든 조화와 질서를 깨뜨리고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무질서 혼돈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다시 아들 중심으로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문제없었습니다. 피조세계는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아끼셨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하면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온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어 구원할 자는 구원하고 하나님의 대적하는 원수의 세력을 멸망시켜 다시 온 우주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 우주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하고 온전해질 것입니다.
#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1> 아직 하나님께 돌아올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은 우리와 함께 세상 죄와 맞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 우리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허락하신 존귀와 권세를 인정해야 합니다. 또 할 수 있으면 그런 권세나 존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위대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버려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되찾게 하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하나님은 큰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한 사람, 가장 위대한 희생을 한 사람을 그리스도 보자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하십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1)
2007년 10월 11일(목)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12-14 *찬양: 492장,502장
* 제 목 : 복종의 이유
가정교육이 잘된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가정교육이 잘된 집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손님 앞에서 조심할 줄 압니다. 그러나 가정교육이 잘되지 못한 집은 어른도 몰라보고 손님도 아랑곳없이 떠들고 소란을 피웁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항상 조심하고 긴장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임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나 전화 통화조차도 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 대화를 듣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조심하고 큰 소리 내지 않으며 서로 복종하는 모습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지금 빌립보 교회는 어떤 상태입니까? 교인들마다 자기가 옳고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상태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자기 몸을 마음대로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자기 자신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자신도 살고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1. 항상 복종해야 할 이유(12절)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 예수님께서 먼저 복종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복종해야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는 ‘복종하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셔서 아버지 말씀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죽어야 아버지가 일하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은 자신을 철저하게 죽이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이 자세를 요구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만 생각한다. 너희가 그렇게 있는 동안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너희 자신을 철저히 죽이고 복종시킬 때 하나님 나라가 살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공동체인 우리가 서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한 사람씩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구원된 후에는 혼자가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이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광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종하라’고 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나만이 아닐뿐더러 이제 나 개인은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복수형) 각자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뜻이 아니라 모두 마음을 합하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함께 이루어 나가라는 뜻입니다. 마치 배에 있는 많은 선원들이 힘을 합하여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 안에는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이 주신 임무를 최선을 다해 이룰 때 모두 안전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3)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때 우리는 더욱 복종훈련을 하게 됩니다.
이는 구원을 쉽게 생각하거나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다른 형제나 자매의 말에 복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 분별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기본적인 훈련은 다른 그리스도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면 자기 마음에 맞지 않아도 복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은 공동체를 통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기에 복종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무단 탈영자나 낙오병과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있고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전혀 하나님의 듯을 이룰 수 없는 사람입니다.
2.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13절)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 교인들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냥 게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행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행하다’(operating) 는 헬라어로 ‘에네르곤’입니다.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힘을 공급하셔서 어떤 일을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은 쉬고 싶고 먹고 싶고 놀고 싶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 듣고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을 위해 몸을 쓰게 하는 것이 ‘에네르곤’입니다. 게다가 나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연결된 기계들처럼 각자 영역에서 돌아가게 합니다. 한 군데 고장이 나면 다른 모든 일도 중단됩니다. 교회 안에서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에네르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잠재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실현시키고 완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1) 의로운 것 ? 남의 인격이나 삶을 귀하게 생각해 감히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즉 의로운 것은 남의 삶을 귀히 여기고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2) 선한 것 ? 한 걸은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삶이 너무나도 존귀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쉽게 말해 나는 망하고 다른 사람은 내 희생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맨 정신에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고 큰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3. 원망과 시비없이 하라(11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기서 ‘원망과 시비’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직후에 한 것이 바로 원망과 시비였습니다. 그들은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자기 생각대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글어가려 했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반역 행위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원망과 시비가 생깁니까? 자기만 똑똑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만함
-광야 40년 동안 그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군사로 길들이는데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그들은 광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나보다 더 똑똑하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대부터 그들의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빨리 항복하면 할수록 더 유리합니다. 광야 40년 훈련의 결과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여리고성을 점령한 사건입니다. 원망과 시비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그 입이 다물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게 됩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자신을 낮추고 오직 공동체(교회) 유익을 위해서 섬기는 자에게 드러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2)
2007년 10월 12일(금)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15-18 *찬양: 88장, 219장
* 제 목 : 신앙생활의 기준
운동선수가 운동을 할 때 그 기준을 잘 준수해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기준과 원칙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운동을 잘한다 하더라도 경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아무리 우리 체질에 맞고 오랫동안 이루어진 관행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엉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돈도 많이 쓰고 헌신도 하고 열심히 했지만 심판대 앞에 가 보니까 인정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는 주님의 기준을 생각지도 않고 자기 혼자 열심을 낸 것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현실이 너무나도 자신에게 만족스럽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도 미래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평가받을 기준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수고 중 많은 부분이 주님의 평강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고통스럽게 수정할 것은 새롭게 수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바울이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진심으로 하는 충고가 무엇입니까? 지금 신앙생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바꾸어야 할 기준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얼마나 정직하고 순결한가?(15절)
바울은 주님이 시판 때 성도들을 평가하시는 기준은 얼마나 바쁘게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순결하게 살았고 깨끗하게 일 했는지 라고 말합니다.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 이 세상은 어그러진 세상입니다.
‘어그러지다’는 것은 뒤틀려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뒤틀려 있으면 바로 잡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가치 기준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은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바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것과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인정받는 것은 도저히 일치할 수 없습니다.
2) 이 세상은 거스리는 세상입니다.
‘거스리다’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가 바로 잡으려 해도 싫어하고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바로 잡는 것은 아주 싫어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적다한 것을 좋아하지 철저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른 기준을 제시하면 빙빙 돕니다. 그러다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면 반격을 가합니다.
3) 이런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흠이 없고 순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순전하다’는 포도주나 금에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세상에서 전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예) 다니엘.- 사람의 편을 따르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 편을 따름.
2. 생명의 빛을 밝히는가?(15-16)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빛’이나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는 표현에서 염두에 둔 개념이 무엇일까요? 바로 바다 항해입니다. 당시 바울은 바다 항해로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무엇을 보며 항해합니까? 밤하늘의 별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변해도 변만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가치 기준이 범벅된 채 위험천만한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무서운 암초들이 수없이 널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변함없는 자세입니다. 지조 있는 신앙입니다.
-사람이 파산하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때 그리스도인이 한마디 합니다.
“두려워 마, 넌 다시 일어날 거야.” 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그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습니까?
-우리도 똑같이 어려운 처지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지켜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살 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절망적인 때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주님이 어려움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항해 도중-유라굴로 태풍을 만남.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밝히는 빛이 하늘의 별과 같이 변함없는 것이라면, 바다 항해에서 연상되는 다른 하나의 ‘빛’은 등대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밝히는 생명의 빛입니다. 오늘날 이 위험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입니까? 진리가 증거되는 교회입니다. 바로 이곳이 선지자들이 고대했던 시온이고 예루살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중적인 성령의 축복이 있습니다.
➀ 각 사람 안에 빛이 있어서 어떤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빛을 발하는 곳이 교회임.
➁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공동체로, 개인이 내는 빛보다 더 강력한 빛을 내며 모든 실패를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곳입니다. 이것이 ‘생명을 밝히는’ 것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는 교회를 찾았을 때 사람들은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이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고, 불안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바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3가지 ?
1) 이방지역에 복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2) 그 교회가 제대로 진리의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진리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3) 충만하게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는가?(17-18)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기름을 어디에 쏟기를 원했습니까? 바로 빌립보 교인들의 제물과 봉사였습니다. 물론 ‘제물과 봉사’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생활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처럼 순종하고 있다면 바울은 그 위에 자기 생명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제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제물이 살아서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바쳐진 곳에 조용히 묶여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죽여 교회가 진리를 밝히게 하고 다른 형제나 자매들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이 믿음의 제물인 것입니다. 봉사도 자신을 죽여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끝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 잘 죽은 것입니다. 관제는 바울의 순교보다도 마지막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남은 삶을 어디에 쏟을 지 생각하다가 바로 이방인 교회들이 더 환한 진리의 빛을 비추는 데 남은 삶을 바치겠노라고 엄숙히 밝히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우리 각자가 삶의 터전에서 빛을 발하며 살 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내 삶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남을 위해 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3)
2007년 10월 13일(토)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19-24 *찬양: 395장, 393장
* 제 목 : 교회안의 갈등을 대처하는 방법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안에 문제가 있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다 어려움을 키웁니다. 경영 컨설턴트 회사가 왜 있겠습니까? 어려운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겨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거보다 시간이나 돈이 훨씬 절약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성경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교인들 스스로 성경을 잘 모를 뿐 아니라 감정적인 앙금이 있어서 시야가 좁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성숙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고 교회’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가 갈려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갈 수 없는 처지를 잘 알기에 디모데를 보내어 그들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디모데를 통해 빌립보 교인들의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빌립보 교회 안의 갈등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빌립보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등장한 자주 장사 루디아는 돈 많은 부자였고 열심히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귀신들린 여자 노예가 나오는데, 그가 예수를 믿었다는 말은 없지만 바울이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니 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바울이 갇혔던 감옥의 간수장이 있습니다. 감옥 문에 열리자 죄수가 도망친 줄 알고 자살하려는 그를 바울이 말렸고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았습니다. 간수는 일종의 관리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빌립보 교회의 구성원은 옷 장수 자 여인, 점치던 여자 노예, 간수 출신 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이 주 안에서 하나 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만들어지고, 또 변화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게 됩니다. 자신은 언제나 잘못하면서 다른 사람은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한 교회는 문제가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크고 작은 갈등이나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갈등을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가길 기대하십니다. 갈등은 오히려 성숙의 기회입니다.
2.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19-24)
빌립보 교인들은 모이기는 모여도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편함이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 같습니다. 사람은 속에 불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병들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밖으로 표출해서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고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풀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로는 쉬워도 감정 문제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마 빌립보 교회 내 불만도 여러 경로를 통해 바울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입장마다 내용이 달라서 장확히 진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직접 가보면 좋겠지만 감옥에 갇혀 있으니 도저히 갈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대신 디모데를 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바울이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내는 것은 사사로이 교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인 임무를 띠고 가는 것이므로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은 바울과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갈등 가운데서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교회가 은혜롭게 다시 연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디모데가 가장 공정하게 그들의 문제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며 디모데가 가는 것은 바울 자신이 가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문가가 된 디모데
지금가지 디모데는 바울이 복음을 전한 지역에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마치 바울의 친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붙들어 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 왔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하고 난 후 모든 교회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곳들이 있었고 대로는 몸이 묶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항상 문제가 있는 곳에 갔고 그런 일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선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디모데 같은 해결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딤후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군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분쟁이 있는 곳에 투입되어 싸움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자기 생활에 매이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어려운 곳에 투입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부르신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열어 놓고 자기 것 없이 주님이 명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일종의 해병대나 공수부대입니다. 디모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디모데와 같은 영적 군사가 더욱 많이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바울은 자기 신상이 대단히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빌립보 교인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나 불편한 감정을 풀고 사랑으로 연합되기를 돕고자 했습니다. 그가 사는 목적은 교회에 있었고 그래서 교회가 잘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3. 교회 성장의 어려움
교회도 온전히 세워지기까지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는 멤버십이 약해서 교회 자체가 해체되기 쉽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교인들이 있다 해도 워낙 약해서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뛰쳐나가기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때로는 은사 문제로 교회가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특히 신비주의 바람이 불면 교회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신비주의는 교회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직통하려는 경향입니다. 신비주의적인 사람은 교회나 목회자를 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교회 자체가 큰 상처를 입습니다. 자신은 교회에서 용납되지 못해 상처입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비의 체험이 없다고 무시당해 상처 입습니다.
-그래서 마태 사도는 교회의 치리권을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결정에 불복하면 개인적으로 찾아가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함께 찾아가고,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교회에서 결정하고 이방인으로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빌립보교회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의 갈등이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장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납득시켰을 것입니다. 또 서로 완전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교만이며 자신이 부족한 만큼 상대방도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교회의 아픔을 큰 상처 없이 해결하려면 바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대로 해 버리면 그때는 ‘사사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작은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 총회가 소집되고 결국은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이 내전 상태에 돌입한 것은 바른 말씀의 권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문제들을 가장 지혜롭게 해결하는 길이 무엇일까요?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감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은혜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바른 복음의 선포야말로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교회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길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신앙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부딪히고 그 속에서 자신을 복종시킬 때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4)
2007년 10월 14일(주일)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25-30 *찬양: 56장, 204장
* 제 목 : 에바브로디도의 진심
에바브로는 빌립보 교회 출신입니다. 그런데 굳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바울에게 온 에바브로디도에게 빌립보 교인들이 상당히 오해할 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오해는 에바브로디도의 병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병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가 그런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에 대해 옆에서 경험한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적어 보내 빌립보 교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 거부하지 말고 참으로 존경해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빌립보 교인들이 얼마나 어린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병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겉으로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할 만큼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1. 에바브로디도의 질병(25-26)
이 병이 어떤 병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고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에바브로디도의 질병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를 조금도 무시하고나 업신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를 ‘자기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바울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가가운지 알게 해 주는 표현입니다. 또한 그는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였고 대표자격으로 바울에게 왔습니다. [‘사자’라고 표현함]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오게 된 사정?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중요성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영광을 알았고 교회에 바울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빌립보교회를 지키는 것보다 바울에게 가서 돕는 것이 복음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교회를 사임하고 교인들을 설득해서 바울에게 필요한 물건과 헌금을 거두어 바울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교인들 중에 이제 더는 에바브로디도가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자들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서 몹쓸 질병에 걸렸습니다. 이병에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던 자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로마로 갔으며 하나님이 그 불순종을 징계하셨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는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근심했을 것입니다.
& 바울같은 능력있는 종이 왜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기도로 낫게 하지 못했을까요?
-바울에게 성령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어떤 공식 안에 집어넣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반드시 병이 나아야 한다고나, 앉은뱅이가 일어나야 한다고나, 방언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공식을 정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복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증거로,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로 병이 낫거나 특별한 체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실 때는 언제나 그렇게 표적이 나타나야 한다는 식으로 공식을 정해버리면 바울이 에바브로디로의 병 때문에 근심 위에 근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 에바브로디도의 수고(30)
어떻게 해서 빌립보 교회의 사자가 로마와 와서 바울과 함께 있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의 투옥이었습니다. 아마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보고 빌립보 교회보다 복음의 사도인 바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원해서 왔고 빌립보 교인들을 설득해서 바울의 쓸 물건과 돈을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 바울과 함께 감옥생활을 함.
-‘그는 나의 형제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심적이어서 자기에게 더 관심을 가져 주고 자기 필요를 채워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복음의 첫 감격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새 언제나 복음 때문에 고난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말씀 전하는 자가 병들면 어떤 어려운 일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형제’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수고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늙은 사도가 빌립보 교회 몇 개를 합친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대신해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주님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이며 단지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무엇이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불꽃이 지금 꺼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돕다가 그만 몹쓸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인들 중에도 이런 군사들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3. 바울의 부탁(28-29절)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세상적으로 볼 때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맡은 일도 재대로 못하고 공연히 로마에서 병을 얻어 죽을 뻔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그는 바울도 제대로 돕지 못했고 빌립보 교인들도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병까지 얻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엇을 부탁하고 있습니까?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이런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일은 반드시 결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음 속 감동을 소멸하지 않고 로마까지 뛰어온 에바브로디도의 앞뒤를 재지 않는 믿음의 용기가 바른 복음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브로디도처럼 옳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고 행동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생은 아름답습니다.
고생하는 사람들이 싫어진다면 그 신앙은 교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에 걸려 자주 화내는 분들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를 살리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신앙은 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붙들고 수고하는 하나님의 군사들과 그것을 볼 수 있는 신실한 눈이 필요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4)
2007년 10월 14일(주일)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2:25-30 *찬양: 56장, 204장
* 제 목 : 에바브로디도의 진심
에바브로는 빌립보 교회 출신입니다. 그런데 굳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바울에게 온 에바브로디도에게 빌립보 교인들이 상당히 오해할 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오해는 에바브로디도의 병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병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가 그런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에 대해 옆에서 경험한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적어 보내 빌립보 교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 거부하지 말고 참으로 존경해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빌립보 교인들이 얼마나 어린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병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겉으로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할 만큼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1. 에바브로디도의 질병(25-26)
이 병이 어떤 병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고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에바브로디도의 질병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를 조금도 무시하고나 업신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를 ‘자기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바울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가가운지 알게 해 주는 표현입니다. 또한 그는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였고 대표자격으로 바울에게 왔습니다. [‘사자’라고 표현함]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오게 된 사정?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중요성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영광을 알았고 교회에 바울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빌립보교회를 지키는 것보다 바울에게 가서 돕는 것이 복음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교회를 사임하고 교인들을 설득해서 바울에게 필요한 물건과 헌금을 거두어 바울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교인들 중에 이제 더는 에바브로디도가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자들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서 몹쓸 질병에 걸렸습니다. 이병에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던 자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로마로 갔으며 하나님이 그 불순종을 징계하셨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는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근심했을 것입니다.
& 바울같은 능력있는 종이 왜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기도로 낫게 하지 못했을까요?
-바울에게 성령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어떤 공식 안에 집어넣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반드시 병이 나아야 한다고나, 앉은뱅이가 일어나야 한다고나, 방언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공식을 정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복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증거로,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로 병이 낫거나 특별한 체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실 때는 언제나 그렇게 표적이 나타나야 한다는 식으로 공식을 정해버리면 바울이 에바브로디로의 병 때문에 근심 위에 근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 에바브로디도의 수고(30)
어떻게 해서 빌립보 교회의 사자가 로마와 와서 바울과 함께 있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의 투옥이었습니다. 아마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보고 빌립보 교회보다 복음의 사도인 바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원해서 왔고 빌립보 교인들을 설득해서 바울의 쓸 물건과 돈을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 바울과 함께 감옥생활을 함.
-‘그는 나의 형제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심적이어서 자기에게 더 관심을 가져 주고 자기 필요를 채워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복음의 첫 감격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새 언제나 복음 때문에 고난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말씀 전하는 자가 병들면 어떤 어려운 일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형제’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수고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늙은 사도가 빌립보 교회 몇 개를 합친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대신해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주님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이며 단지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무엇이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불꽃이 지금 꺼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돕다가 그만 몹쓸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인들 중에도 이런 군사들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3. 바울의 부탁(28-29절)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세상적으로 볼 때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맡은 일도 재대로 못하고 공연히 로마에서 병을 얻어 죽을 뻔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그는 바울도 제대로 돕지 못했고 빌립보 교인들도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병까지 얻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엇을 부탁하고 있습니까?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이런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일은 반드시 결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음 속 감동을 소멸하지 않고 로마까지 뛰어온 에바브로디도의 앞뒤를 재지 않는 믿음의 용기가 바른 복음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브로디도처럼 옳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고 행동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생은 아름답습니다.
고생하는 사람들이 싫어진다면 그 신앙은 교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에 걸려 자주 화내는 분들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를 살리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신앙은 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붙들고 수고하는 하나님의 군사들과 그것을 볼 수 있는 신실한 눈이 필요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5)
2007년 10월 15일(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1-3 *찬양: 82장, 89장
* 제 목 : 교회의 동맥 경화증(1)
제법 건강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갑자기 뇌졸중이나 동맥경화증으로 스러져 돌아가시거나 반신불수가 더ㅚ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병들은 어떻게 걸립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 안에 작은 찌꺼기들이 조금씩 쌓이며 혈관을 막아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증상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일인데 한순간에 교회를 마비시켜 큰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 공중 분해시키는 것입니다. 교회에 지속적으로 복음이 증거 되지 않으면 신앙 없는 분들이 인간적인 열심히 중요한 부서와 여러 가지 일들을 맡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성경적인 것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 생각의 차이로 불만이 불거지며 교회는 상처를 입고 맙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와 다른 교인들의 신앙에 치명적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본문을 통해 오늘 교회에도 이런 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의합시다.
1. 교회에 파고드는 병(2절)
바울이 걱정하는 것은 ‘손할례당’이라 불리는 일당이었습니다.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바울은 이들을 세 가지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 해석 중에는 이들이 각각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개는 동일한 사람들로 봅니다.
1) ‘개들’은 누구인가?
여기서 개는 귀여운 애완견이 아닙니다. 예방 주사도 맞지 않고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를 말합니다. 이런 개는 광견병이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나워서 아무나 물어뜯을 위험도 큽니다. 그래서 이런 개가 나타나면 몽둥이로 때려죽이든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멀리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개들’은 누구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즉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찾아가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면 바른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입니다.
‘삼가고’라고 한 것은 이들을 아주 주의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유대교를 분별하지 못하고 유대주의자도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해서 의심 없이 교회 안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이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하례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인 행세를 하던 사람들입니다.
-‘개들’은 크게 짖습니다. 교회는 양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누군가 크게 떠들기 시작하면 대단히 위축됩니다.
-‘개들’은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교회는 죄를 치료하는 곳입니다.
&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교회 안에 복음이 살아 있으면 이런 사람들은 저절로 정리되기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되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압니다. ‘아, 나는 이 설교와 전혀 맞지 않구나!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있을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복음이 선포되면 온 교회가 힘을 얻게 됩니다. 또 세상적인 사람은 이상하게 힘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그를 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이 자신의 양떼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일입니다.
& 목회자가 가져야 할 두 음성이론[존 칼빈]
1>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부드러운 음성입니다.
2> 전혀 중심이 변화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양들을 물어뜯으려 하는 늑대나 사나운 개들을 내쫓는 음성.
2) ‘행악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빌립보 교인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도교회 안에서 이성을 건드린다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짓을 했던 자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자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좇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전혀 불쌍히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교회는 죄인들이 들어오는 곳이지만 자기 죄를 인종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과감하게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안에서 돈을 빌려 주거나 빌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급하다 보면 가까운 사람이 교인이니까 돈을 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급할 때는 서로 도와줄 수는 있지만 교회 안에서 계를 한다거나, 이자를 목적으로 돈을 빌려 주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이유로도 이익을 위해 거래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관계가 나빠지고 교회가 큰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일체 이해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오로지 교회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죄사함 받는 곳이어야 하며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제사의 편의를 위해서라며 성전 뜰 안에서 양이나 소나 비둘기를 팔고 돈 바꾸던 자들을 예수님이 채찍으로 내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오직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죄 용서받고 은혜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3) ‘손 할례당’은 누구인가?
바울은 의도적으로 ‘할례’에 해당하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할례’는 헬라어오 ‘페리토메’인데 여기에서 바울은 ‘카타토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할례’를 행하기는 했지만 전혀 신앙적 의미 없이 행한 경우를 말합니다. 결국 이것은 할례가 아니고 단순히 ‘포경수술’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빌립보교인들 중에는 유대인도 아니면서 할례를 행하고 할례 받은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포경수술당’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할례를 받았어도 신앙적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신앙적 의미 없이 기도원에 가서 방언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생활은 엉망인데 방언 받은 것만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그의 방언 가치 없는 중얼거림이 될 것입니다. ‘중얼거림당’, ‘헛소리당’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은사는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게 만들며 공동체를 튼튼하게 합니다.
성령의 운동인지, 개인의 욕심에서 나온 열정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그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느냐, 교회를 분열시키느냐 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이상한 소리나 하고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적하며 내쫓아야 합니다.
# 오늘 말씀 핵심 키워드
- 복음으로 무장된 교회는 교회에 파고드는 온갖 질병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6)
2007년 10월 16일(화)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1-3 *찬양: 30장, 245장
* 제 목 : 건강한 교회회복을 위해
건강한 교회는 거룩과 추수를 함께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추수꾼을 찾고 계십니다. 교회의 본질은 거룩과 추수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시켜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뜻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중요합니다. 그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길 주님은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이 두 가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할 때 교회는 분열을 가져오면 온갖 세상 것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 교회가 두 가지를 추구하고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빌립보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으로 겸손하게 청종하시기를 바랍니다.
1. 교회에 파고드는 병(2절)
바울이 걱정하는 것은 ‘손할례당’이라 불리는 일당이었습니다.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바울은 이들을 세 가지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 해석 중에는 이들이 각각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개는 동일한 사람들로 봅니다.
2. 건강한 교회의 지표(1절): 기쁨
1: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여기서 ‘종말로’는 편지를 끝맺으려 했는데 성령이 더 강력하게 말하게 하셔서 편지가 길어졌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설교자: 설교중 누리는 기쁨]
-바울이 끝으로 강조하고 마치려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건강을 스스로 진단하는 방법입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로 그쳤더라면 늘상 바울이 쓰던 상투적인 권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분문 전체 방향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교회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분명한 지표는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기뻐할 수 있느냐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침체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
2) 말씀은 있는데 상황이 비정상적이어서 기쁨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쁨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 병에 걸리는데, 그것이 ‘신경성’이라 불리는 질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식은 기쁨인데 그것을 섭취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일은 축제여야 합니다. 하루 종일 기뻐하고도 저녁에는 기쁨이 충만해 견딜 수 없어야 정상입니다. 교회는 말씀이 충만하게 흘러 나오는데 자기 욕심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하고 기쁨이 없다면 그는 혼자 병들게 될 것입니다.
&각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습니까? 세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정도의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까? 고난이 없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환히 밝히시고 치료하시기 때문에 오는 기쁨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만일 기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굶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되찾아야 합니다. 기쁨은 교회의 영적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가장 분명한 척도입니다.
3.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려면(3절)
바울은 교회 문제만 꼬집지 않습니다.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할례당’이라고 되어 있는 구절은 원어로는 ‘할례’입니다. 진정한 할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할례당이나 무할례당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할례의 의미를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즉 진짜 할례는 단지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에서 ‘봉사’는 ‘예배’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누가 진정으로 할례를 받은 자입니까?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성령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설교를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고통스럽지만 내 안에 들어 있는 죄를 끄집어 내 하나님 앞에 진열하고 불태우는 것입니다. 나를 철저히 죽이는 것이 영적 예배요 성령의 예배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 속에 있는 교만을 철저히 끄집어내야 합니다. 말씀이 폐부를 찔러 말씀을 듣는 가운데 고통스러워 비명이라도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생각하고 기쁨과 감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전혀 변하지 않고 똑같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이 중심 되고 예수님이 주인 되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예수님 때문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이 내게 삶을 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멸망당해야 마땅한 자인데 주님이 두 번째 삶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멋대로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예수님의 삶이요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아들아(내 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7)
2007년 10월 17일(수)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4-8 *찬양: 25장, 93장
* 제 목 : 성령 안에서 오직 주님만 자랑하자!
바울은 한 때 그토록 자랑했던 것이 그리스도 앞에 얼마나 의미 없는지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붙들고 있는 것을 주님 앞에서 재평가해,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 앞에 의롭게 서지 못하리라는 경고입니다. 내가 무엇을 주시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님 앞에서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 실제로 다른 영혼을 살리는 데 능력을 나타내느냐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1. 세상에서의 자랑거리(4-6절)
예수님을 알기 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자랑거리 때문에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아마 빌립보 교회 안에도 바울과 비슷한 자랑거리들을 가지고 교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예수 믿기 전 자랑거리들을 열거하며 그것의 무익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바울은 이스라엘 최고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 바울의 자랑거리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리새파 -
3)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도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자랑으로 붙들고 있습니까?
-세상 경력, 명문대학 출신, 학위, 부유한 재산, 가진 권세,.........
#바울이 이 모든 자랑거리를 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이들이 정말 배설물보다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의미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통하는 자랑거리들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장이면 교회에서도 사장이고 세상에서 박사이면 교회 안에서도 박사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들로는 하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2. 신앙 안에서의 자랑거리(7-8절)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고상하다’는 단순히 철학적 지고함의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상업적인 개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모든 손실을 갚고도 남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혈통도, 전도유망한 엘리트의 특권도, 명망 있는 랍비가 될 수 있는 기회도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이 모든 손실을 갚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왜 그토록 가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한 분 안에 당신이 주실 축복을 모두 담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알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알면 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신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름다운 자신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세상에 없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명은 불씨가 꺼진 불처럼 미지근하다가 결국 싸늘히 식고 말지만 성령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의 불씨가 있어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내 몸을 주장하셔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행하심: 에네르겐) 그리스도인에게 자랑이 되어야 할 것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고 악한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선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을 했더라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 같은 죄인을 사용하신 주님을 자랑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 자기 자랑이 없을 때 주님은 우리를 마음껏 쓰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이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을 낙심시키고 하나 되지 못하게 했는지 생각하며 가슴아파합니다. 만일 자랑할 것이 있다면 우리 안에 게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게 사랑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8)
2007년 10월 18일(목)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9-14 *찬양: 217장, 219장
* 제 목 :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가져야 할 목표(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잘 아는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대개 무관심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목표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지적하는 이유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 중 잘못된 것을 목표로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완전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위해 금식하겠다고 작정한 날짜를 채웠다거나, 헌금하겠다고 작정한 액수를 다 낸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잘못된 목표들이 교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가진 후에는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 반드시 걸쳐야 할 과정이라고 봅니다.
1.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격(9절)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바울은 두 가지 의, 즉 율법에서 난 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난 의에 대해 말합니다.
율법에서 난 의는 한 마디로 하나님과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 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것뿐입니다. 오직 그 사실을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의’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죄 지은 사람은 경찰을 보면 도망치지만, 죄 짓지 않은 사람은 경찰을 만나도 도망칠 이유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구약: 제사를 통한 임시적으로 준 의인의 자격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그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천국은 확정되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더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격을 얻었으면 이제 그 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오직 예수님만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주님을 느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겸손할 때입니다. 겸손하면서도 진지할 때, 또 이해할 수 없는 능력으로 충만해질 때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것을 원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은 단지 시작임을 알았기에 예수 믿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의로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비밀을 알기 원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기 자신과 싸우기 위해 매일 두 두시간씩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쓰실 때 겸손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입만 벌리면 자기 자랑이 나오려 합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바울은 바로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죽여야 끝까지 주님께 사용될 수 있습니다.
2. 사도바울의 목표(12-14절)
빌립보 교인들 중에는 이미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더는 노력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음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두 가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의 목표 달성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과거에 비하면 물론 좋아졌지만 아직도 주님께 드리지 못한 추한 영역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다 된 것처럼 취급하면 질겁하며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님이 끝까지 나를 붙잡고 버리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주여,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이 저를 버리시면 저는 끝장입니다. 제가 남을 구원한 후 저 자신은 버림받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붙들어 주소서”
12...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은 다 확실히 주님께 잡히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예 내 것이라고는 없어지고 주님이 마음껏 나를 쓰시게 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이 쓰시려 해도 자기 생각과 계획이 많은 사람은 잡아 쓰실 수가 없습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율법으로는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잘한 것과 잘못한 것 모두입니다. 과거는 우리는 잡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잘했다고 교만하거나 우쭐거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과거에 잘못했다 해도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과거는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완벽주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과거의 실패에 매인 채 실수할까 두려워 아무 것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런 완벽주의 영이 바로 노예의 영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하십시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19)
2007년 10월 19일(금)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9-14 *찬양: 347장, 351장
* 제 목 :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가져야 할 목표(2)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주님에 대한 진리를 더 많이 구체적으로, 풍성히 아는 것입니다. 어른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훈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께 더 확실히 붙잡혀야 합니다. 이것은 내 것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내 계획이나 야망을 버려야 주님이 나를 잡으실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거나, 고통 받는 것은 그만큼 주님과 가까운 증거입니다. 주님은 멀리 있는 자에게 그런 고통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닙니다. 주님의 자녀입니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과 진리를 더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밝히는 공동체가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약한 자를 돌아보아 온전케 하며 각자의 삶에서 주님이 더욱 주인 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때 교회는 주님 안에서 그분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주님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목표가 나오기까지는 근원과 에너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격(9절)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2. 사도바울의 목표(12-14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3.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10-11절)
바울도 과거에 자기 자랑이나 자기 의에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본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 그분은 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그렇게 똑똑한 한 줄 알았던 자신이 그 분 앞에서 죽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자신의 열심이나 지금까지 해 온 노력들이 아무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가 받았던 충격은 무엇입니까? 과연 부활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이 알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와 보고를 알고자 했습니다.
1) 바울은 그리스도를 살린 부활의 능력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두 가지 능력을 알고 싶었습니다.
바로 사람을 살리는 능력과 죽어도 사는 능력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부활의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2)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모방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에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께 드리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지만 나를 포기할수록 엄청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목표에 따라 무한히 풍성해질 수도 있고 거의 신앙이 없는 불신자처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것으로 부자가 되기보다 하늘의 것으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 많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을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안에 계십니다.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엄청난 지식은 혼자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와 함께 배우며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함께 해석하고 적용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 수 있었습니다.
&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바른 목표는 성경 속 진리를 더 깊이 더 철저히 더 많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치 거대한 밀림과 같아서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함부로 들어왔다가는 발로 길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그 안에 진의 노다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목표로 가져야 할 것은 함께 힘을 다해 풍성한 진리를 캐내어 우리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보다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가 우주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규칙을 찾듯이 우리는 구원의 진리 안에서 사랑과 저주와 심판과 용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생 진리를 더 깊이 바로 아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 삶이 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삶 속에서 운동하십니다.(에네르곤)
어디에 가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병자를 일으키십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교회가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모임 가운데 강한 성령의 역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며 주님이 우리를 치료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어떤 좋은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와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치료하러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혼을 치료하는 곳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넘쳐흐를 때는 늦게 온 자들도 은혜를 받게 되고 심지어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도 주님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가정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너무나 귀하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때문에 욕먹고 주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과 가까운 사이임을 확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편안할 때는 주님이 어디 계신지 잘 모릅니다. 주님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약간이라도 어려움을 겪을 때면 주님을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육신의 석은 유혹과 정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몸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유혹과 정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육체의 욕구와 싸우고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몸이 훈련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길들여지지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은 얼마든지 유리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1.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2.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20)
2007년 10월 20일(토)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3:16-21 *찬양: 138장, 144장
* 제 목 : 십자가의 수호자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는 아주 중요한 구성단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 무서운 암적 요소가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십자가의 원수’라고까지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원수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빌립보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하고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파괴하는 아주 심각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거대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기독교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기초를 흔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인의 완전(15-16절)
그리스도인들은 모순된 준재입니다. 완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살려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강박관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의 뿌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의 완전하게 죄 없이 살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우리 모두 불완전한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든지 완전하게 믿음 생활을 해보려고 애쓰는 자들이 아니냐는 뜻으로 ‘우리’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은 완전한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다른 연약한 신자들과 다르며 교회 안에서 차등을 두었던 것입니다. 완전주의자들이 누구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
1) 특별한 체험 : 성령의 어떤 특별한 체험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이 온전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특별한 체험들은 우리 신앙을 성숙시키고 더 깊이 주님을 알게 하지만 이런 체험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무슨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일 뿐입니다.
2) 율법적인 완전주의 : 완전히 흠 없는 생활을 해야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 존 웨슬레
3) 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 : 실제로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첫째 우리가 부족해도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하다는 사실을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 구원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구원은 혹시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에는 반드시 ‘이미’와 ‘아직’의 긴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얻었지만 ‘아직’ 완전히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정리: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무엇인가?
“주님은 승리하셨지만 나는 완전히 헌신하거나 충성하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도덕적으로 실패했을 때도 하나님 앞에 자격이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엄청나게 성공했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나쁜 마음이 남아 있다며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약간의 믿음과 거의 대부분의 성령의 능력으로 완전해지는 거룩입니다.
1퍼센트의 믿음과 99퍼센트의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해지는 거룩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바울 자신의 신앙이 전혀 흠 없이 완전하므로 표본을 삼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오직 성령을 의지하는 신앙이 보다 성숙한 신앙임을 깨달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힘쓰라는 뜻입니다.
2. 십자가의 원수(18-19)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강한 표현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이탈해 다른 쪽으로 나아가는 자들 같습니다. 즉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열심히 따라오다가 시간이 지나자 다른 교훈을 따라가 결국 복음을 배신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원수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신 것은 우리 안에 죄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인데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죄 된 생황과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즐기며 산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 당시 로마의 두 사상: 1> 스토아 학파(금욕주의) 2> 에피쿠로스 학파(쾌락주의)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배가 신이다’가 무슨 뜻입니까? 배가 절대적 요구이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이 사는 목적은 먹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사는 목적이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모두 배가 신이 되는 경우입니다. 왜 십자가의 원수입니까? 이들은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 후는 열심히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입니다.
3. 영적긴장을 되찾자(20-21절)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직 완전한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남의 땅에 일시적으로 거류하며 더 완전한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할 사람입니다.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 시민권은 여기에 없습니다. 즉 세상에서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인정해주면 다행이지만 인정해주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두 나라의 소속된 자의 특징은 바로 긴장입니다.
바울은 우리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서 너무 세상에 잘 적응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너무 잘 적응된 사람은 하늘나라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세상의 불의를 물리치시고 정의와 공평을 회복시키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가을 특별 새벽기도회(21)
2007년 10월 21일(주일)
* 주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립보서]
* 말 씀 : 빌4:1-7 *찬양: 57장, 511장
* 제 목 : 화해의 메신저가 되자.
빌립보 교회에는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부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부녀는 믿음도 좋고 대단히 적극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 구성원들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편저편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두 사람이 불화한다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또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이 동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두 부녀를 화해시키고 다른 동역자를 도우라는 특명을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툼과 분쟁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보다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화해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며 기도해야 합니다.
1. 대립하는 두 부녀(2절)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빌립보 교회에서 두 여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둘의 불화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실명을 사용하며 직접으로 화해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공개적이면서 징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반목은 오래 되었고 그동안 얼마든지 화해해서 하나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에 하나 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공개적으로 두 사람이 화해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반목한다면 그들을 치리할 계획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인 전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보 교인들에게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라는 권면입니다.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과 ‘멍에를 같이한 자’는 누구일까요? 교회 내에 바울의 동역자라 할 만한 아주 신실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두 부녀의 갈등을 해결하라는 책임을 줍니다. 또 글레멘드와 다른 동역자도 도우라고 말합니다. 아마 이들은 빌립보 교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채 불화의 소용돌이에 말려 빌립보 교회를 떠났거나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두 부녀가 심하게 다투고 불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1)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자기 스타일로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아했던 만큼 실망하고 미워합니다. 형제나 자매가 귀하게 보이는 것은 그 안에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이지 형제나 자매 자체가 그렇게 귀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그의 악한 본성을 억제하시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고상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깨닫고 사랑의 감정이나 표현이 서로에게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2) 그들의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한 채, 단지 내 상태에 따라 좋게 보기도 하고 나쁘게 보기도 합니다. 내가 성령이 충만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평소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던 것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상태가 아니라 내 상태 때문에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밉고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보다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미워지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 안에 성령이 고갈되어 있음을 고백하고 은혜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될 것입니다.
2. 기뻐하라는 명령(4-5)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왜 이렇게 강조합니까? 그것은 항상 기뻐하느냐 기뻐하지 않느냐가 신앙의 영적 판단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내게 기쁨이 없고 불만과 불평이 가득할 때는 내 영적 상태가 대단히 좋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쁨이 없을 때 그래도 되는 것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서 기쁨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만일 죄를 지어서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고백함으로써 기쁨을 되찾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상태가 좋지 않으면 좋아질 때까지 다른 사람과 만남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왜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합니까?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기만 하면 바로 치료되어 기쁘고 은혜롭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굳이 피하려고 합니까?
이것은 그 사람의 고집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부 경우에는 이런 지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미처 회복하기도 전에 상대방을 만나야 할 때는 지금 상태가 좋지 못해 표정이 어둡거나 말이 곱지 않은 것이지 당신 탓이 아니라고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용납하기 싫어도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용납하지 못하면 그 후에도 자꾸 마음이 좁아져 더욱 용납하기 어려워집니다. 한 번 사과할 기회가 있을 때 해 버리면 좋은데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에 그냥 있으면 다음에는 더 어려워집니다.
# 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합니까?
자기 안에 있는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려면 기꺼이 다른 사람의 발밑에 들어가 그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처가 있는 사람은 또 상처를 받을까봐 결코 남의 발밑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아서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한계는 바로 그 상처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렘30: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12-17절참고)
3. 자기 정신 지키기(6-7절)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기독교보다 인간의 심리를 중요하게 다루는 종교나 사상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죄로 인해 타락해서 마치 시궁창처럼 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궁창을 작대기 같은 것으로 저어 보십시오. 아마 온갖 것들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시궁창을 분석해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아무리 연구해도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죄로 타락해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죄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복잡한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려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보다 큰 축복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자신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너무나도 연약해서 작은 일이라도 닥치면 전적으로 거기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염려가 생기면 주님께 말씀드리고 맡기라고 하십니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고하십시오.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모든 불안한 마음이나 잡생각을 믿음으로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말씀 적용과 실천)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2.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구체적인 실천)
찬양/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첫댓글 좋은 자료입니다. 우리는 지금 14일간 특새 하면서 골로새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다 끝나면 공개할께요. 이 자료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