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32보> - 내 눈엔 모두가 쨔더(가짜)로 보여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컴퓨터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벗씨가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또 한국 드라마 보고 웃는 거야?”
요사이 내가 해석이 잘 되지도 않는 새 책을 들고 씨름하고 있으면, 벗씨는 심심하다며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보곤 했다.
그런데 그 중 주인공 현빈과 하지원이 하는 대화로 인해 매번 혼자서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그래서 또 그것 때문인 줄 알고 물어봤던 것이다.
“아니야. 중국 드라마인데 정말 웃기는 대화다. 함 들어 볼래?”
이렇게 시작하더니 드라마 중 웃기는 대목을 이야기해 줬다.
중국인 마누라가 아파트 한 채 사려고 모델하우스에 갔다.
그런데 집값이 너무나 비싸서 살 엄두가 안 났다.
더욱이 집 사러 온 사모님들은 모두가 명품 옷에, 명품 가방에, 그리고 명품 액세서리에 값비싼 것들로만 치장들을 하고 왔다.
결국 돈이 부족해서 집으로 돌아온 마누라가 남편한테 불평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여보, 집값이 너무 비싸 도저히 못 사겠어요. 그런데 거기 온 사람들은 왜 그리도 명품들로만 치장을 하고 왔는지,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벌었는지 참 부러웠어요.”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도리어 마누라한테 기도 하나 죽지 않고 떳떳하게 대꾸를 했다.
“그건 모두 쨔더(假的, 가짜)야! 쨔더!”
이 말을 들은 마누라는 하도 기가 막혀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럼, 거기에 올 때 타고 온 고급 승용차들은 다 뭔데요? 그게 모두 쨔더야?”
남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바로 이 건물... 상하이엔 이런 쨔더시장 건물이 대여섯 군데 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벗씨의 웃음보가 그만 터지고 만 것이었다.
벗씨의 웃음보를 터뜨린 그 쨔더란 말, 여기 상하이에서 너무나 많이 들어온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 남자 과외 선생님은 그 쨔더란 말을 입에 달고 있는 듯했다.
공부하는 책 내용 중에 중국의 옛날 전설이나 고사가 나오면 바로 ‘에이, 이거 쨔더야, 쨔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주 전 인터넷 상에 중국 어느 도시에서 6일만에 15층 호텔건물을 다 지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또 ‘쨔더야, 쨔더!’라고 외쳤다.
심지어 올해 연초에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대표팀한테 3대1로 진 적이 있는데, 이것 보고도 하는 말이 ‘그거 쨔더입니다. 쨔더!’ 라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것은 분명 중국 축구협회에서 한국 축구팀한테 져 달라고 뇌물 줬을 겁니다.’라고 했다.
아마 그 축구 경기 이후에 중국 축구협회 간부 대부분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저녁에 수업하는 여자 과외 선생님도 어느 날 참한 새 옷을 입고 왔다.
오리털 겨울 파카인 리바이스 제품이었다.
너무나 예뻐서 옷값을 물어봤더니, 인터넷에서 샀는데 259위안(약 45,000원 정도) 줬다고 했다.
“와, 정말 잘 샀네요. 우리도 한 벌 사야겠어요.”
“아니에요. 이거 쨔더예요. 쨔더!”
중국 시장 전체가 쨔더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처음 상하이 왔을 때는 먹는 것, 마시는 것에 너무 신경 쓰느라 어지간히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상하이 생활 1년이 다 되어감에 따라 어느 것이 쨔더이고 어느 것이 쪈더(真的, 진짜)인지 구분이 안 간다.
처음에는 걸핏하면 ‘쩌거 쪈더마(이거 진짜예요)?’를 입에 달고 다녔는데···.
(문이 살짝 열린 것이 보이죠? 저 안으로 들어가면 진짜 같은 가짜 명품들이 즐비합니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그 쨔더시장(짝퉁시장)을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일본 관광객이 오면 서울의 어느 뒷골목이나 부산의 어느 뒷골목으로 안내한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가.
사실 여기서 이런 쨔더시장에 대해 얘기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 중국 상인들을 따라 가 볼 수가 없었다.
그런 곳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야 용기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일단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50여 분이나 걸려서 쨔더시장으로 유명한 민챠오(闵桥)시장 건물로 갔다.
건물 입구에는 개인영업용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 삼륜차 등이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은 4층 규모인 것 같았고 손님들도 그리 북적대지는 않았다.
거기에 온 한국 손님 말에 따르면, 옛날엔 정말 번창했는데 지금은 단속이 심해서 상권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칸칸이 마련되어 있는 가게마다 여행용 가방, 등산가방, 책가방, 속옷, 등산복, 모자, 신발, 허리띠, 시계, 액세서리, 그리고 인형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곳저곳을 구경하려고 이동할 때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총각, 아주머니 할 것 없이 성가실 정도로 따라다니며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한국말로.
“시계 있어요. 까르띠에 시계···. 가방 있어요. 구찌나 루이비통 가방···. 벨트 있어요. 페레가모 벨트···.”
참으로 신기했다.
저 사람들은 언제 저렇게 한국말을 다 배웠을까.
한 번 둘러보기 위해 아무런 대꾸도 안 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다음 가게로 옮기면 언제 또 따라왔는지 다른 사람이 또 달라붙었다.
하는 수 없이 떨리는 마음으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원하는 상품 말만 하면 건물 전체를 뒤져서라도 가져 옵니다. 한 가방 들고온 명품 벨트들)
우리를 안내한 곳은 2층의 한 조용한 가게였다.
두세 평 되는 가게 진열대에는 각종 가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가씨 같은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말을 걸었다.
“여기, 구찌 가방 있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깐만요’ 라고 하더니 가방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대를 안쪽으로 살짝 밀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
마치 공상 영화에서나 있을 듯한 광경이 벌어졌다.
한쪽 진열대 벽면이 45도 각도로 열리더니 또 다른 공간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 진열대에는 층층이 쌓인 진열대마다 구찌, 루이비통 외에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전 세계 유명 상품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아마 단속 때문에 숨겨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구찌 손지갑은 얼마에요? 페레가모 벨트는 얼마에요? 루이비통 큰 가방은요? 까르띠에 시계는요?”
아가씨 같은 아주머니는 우리가 물을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또 땅바닥에 달린 서랍을 열었다가, 그리고 또 밖에 나가서는 한 가방 가득 시계와 벨트를 들고 왔다가 하는 등, 별 수단을 다 쓰며 물건을 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동구라파 사람 같은 젊은 남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그네들까지 겹치니 이젠 좁은 공간이 왁자지껄해지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난 뒤 다시 조용해지자 가게 주인은 또 우리한테 상품 소개를 하느라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큰 가방은 진짜 가죽인데요. 1,800위안이고요. 장지갑은 800위안, 시계는 1,500위안, 허리띠는 1,000위안입니다. 진짜 싸요. 진짜 싸!”
허걱.
이건 뭐 자기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냥, 대충 가격을 부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값이면 한국 짝퉁시장보다 더 비싼 것이었으니까.
(어휴, 진짜로 명품이 뭔지. 알아야 진짜 가짜 상품을 사지. 내 눈에 다 똑같은 명품들...)
너무 비싸서 그냥 돌아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을 열어 주지를 않았다.
좁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처음에 여기 들어올 때부터 약간 불안하기는 했는데 결국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나가려고 하고 주인은 못 나가게 막았다.
지금까지 설명하느라 물건을 꺼내고 퍼들치고 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그냥 가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가격 흥정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그냥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끝까지 버텼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한 바퀴 돌아보고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엄청 살살 웃으면서 - 일단 탈출하고 봐야 하니깐···.
좁은 공간의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사지를 벗어난 듯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그 쨔더시장 건물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누가 뒤따라와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싶어 지하철을 타고는 집까지 바로 직행하고 말았다.
그런데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가씨 같은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을 또 만났다.
우리는 머쓱한 나머지 인사를 건넸다.
한국인 같았기 때문이다.
“몇 층에 사세요?”
“20층에 살아요. 한국인이세요? 대학교 교수인 모양이죠?”
그러나 그 사람은 중국인이었다.
어떻게 한국인 같았냐고?
그 사람 어깨에 걸쳐진 가방을 봤기 때문이었다.
쨔더 가방.
루이비통 큰 가방.
쨔더시장에서 지금까지 흥정하다가 겨우 도망쳐 나온 바로 그 쨔더 가방 말이다.
어휴!
내 눈엔 모두가 쨔더로 보여···.
2010년 12월 19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멋진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 문자 주세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ㅋㅋ..이걸 보니 예전에 이사님 중국 가셔서 3개 만원인가 하는 명품(?) 시계 사오신 거 기억나네요. 하나는 올 때부터 고장났고 또 하나는 다음날인가 고장났고....하하하.....저도 베이징 올림픽 갔다가 쨔더시장에 들렀는데 완전 대단해요! 거기서 벨트 하나 사왔는데.....쩝~~너무 허접해서 버렸어요..ㅋㅋ...그래도 구경할 땐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었는데...ㅋㅋ
잘만 찾으면 정말 좋은 것 많은데, 우리 둘은 그런 것 구분하는 눈이 없어용.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