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漁樵問答)
객이 주인에게 물었다.
“정치의 방도로써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인이 답하였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께 정치의 방도를 묻자,
공자께서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도가 책 속에 다 있으니,
그것을 읽으면 정치의 방법을 알 수 있을것입니다.’라고 답하셨으니
우리가 무엇을 더 묻고, 무엇을 더 답하겠소”?
객이 대꾸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환경도 변화하는
법이니, 그래서 정치의 방법도 삼대가 각각 달랐습니다.
하나라는 충실함을 추구하였고,
은나라는 질박함을숭상하였으며,
주나라는 화려함을 강조하였으니,
이와 같이 삼대가 정치의 방법은 달랐어도 모두 다 다스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춘추시대의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BC697~BC628)은
인의仁義를 빌려다가 패업霸業을 이루었고,
인의(仁義)
한나라문종文宗과 당종唐宗도 근검과 절약을 몸소 실천하여
태평한 세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돌아가는
세상 꼴을 보면 온갖 법도가 모두 무너져서 떨쳐 일어날 수 없고,
정의[공과 사]가 바닥까지 떨어져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어서,
참으로 위태롭고근심만 깊어가는 때인데, 이런 급박한 병세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쓴다면 어떤 처방이좋겠습니까?”주인이 답하였다.
“옛날 선조宣祖 때에 법도와 민심이 땅에 떨어져서 정치의 급선무를
강구할 때, 향약을 실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율곡 선생이
‘ 백성을 양육하는 일이 우선이고, 가르치는 일은 그 다음입니다.
백성들이 괴롭고 고달픈 것이 오늘날보다 더 심한적이 없었습니다.
폐단을 빨리 구제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거꾸로 매달린 백성들을 풀어
주고 나서야 향약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향약의 시행을
반대하였습니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수백 년이 흘렀지만 선조의 시대와
마찬가지로백성들이괴롭고 병들기는 매한가지이니,
백성을 양육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객이 말하였다. “백성을 양육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주인이 답하였다. “순임금이 12주의 목牧들과 의논하며
‘농사는 때가 중요하오.’라고 말씀하셨고, 이어 기棄에게
“제때에 백곡을 파종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맹자께서도
제나라와 양나라의 임금들에게 모두 농사지을 제때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왕정王政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령이 지켜야 할 7가지 일[수령칠사守令七事]’ 중에서 농상農桑를 성대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첫 번째로 쳤으니,
오늘날의 급선무는 바로 농사를 권장하는 일입니다.
농사를 권장하는 데에는 근면하고 검소하여 씀씀이를 줄이게 하는 일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애초에 천하의 여러 나라들은 중국과 오랑캐를
막론하고, 모두 형정刑政을실시하여 관대함과 가혹함 속에서 백성들의
풍속을 좇아 교화시켜 자기 나라를 보존할수 있었습니다. 근면하고 검소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사치하고 게으르면 어지러워지는 것은
어느 나라나 모두 똑같습니다.
성주成周가 성대하고 화려하게 되어 질박함을 숭상하는 구습을 한 순간에
변화시키자,빈邠과 기岐 지방의 근검하였던 습속도 점차 변화하고 덕교德敎도
쇠퇴해져서 세상사람들은 모두들 게으르고 화려한 풍속에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자管子(?~BC645)와 안자晏子(?~BC500)가 제나라를
다스릴 적에 검소함을 숭상하고 실질에 힘쓰는 정치를 우선 시행하여 패업을
이룰 수 있었고, 한문제漢文帝와 당문제唐文帝의 소강小康 정치도 모두
근검을 추구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대의제왕이나 자사·목사·태수 중에서 훌륭한 정치로 유명한 사람들도 모두
근검을 바탕으로삼았습니다. 나아가 농상農桑에 부지런히 힘쓰고 물자를
아껴 쓰며,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습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한 뒤라야 크게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작게는 한 고을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니, 이것은 먼 옛날부터 역사책에 모두 실려 있는 것으로,
분명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우하영의 천일록 - 어초문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