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10월27일 다듬은 말입니다.
우리말 다듬기 회원님께
안녕하십니까? 국립국어원입니다.
국립국어원(원장 남기심)은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 사이트를 개설, 일반 국민을 참여시켜 함부로 쓰이고 있는 외래어,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을 매주 하나씩 공모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외래어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의 다듬은 말로 ‘맛보기프로그램’ 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방송가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프로그램 개편을 단행하곤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데에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정규 방송으로 확정하기 전에 시청자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 시험 삼아서 내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때 반응이나 평가가 좋으면 정규 방송으로 편성하게 되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가리켜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시제품과 같은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비행기 조종사’로 낯익은 ‘파일럿(pilot)’에는 ‘시험적인, 예비의’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험 삼아 내보내는 프로그램’ 또는 ‘시험 방송’으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일럿’에 이런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혹 많다고 하더라도 이 말은 영어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지 우리말에서는 쓸 필요도 없는, 써서도 안 되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방송계는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프로듀서(producer)’, ‘엠시(MC←Master of Ceremonies)’, ‘오프닝 멘트(←opening comment)’, ‘스페셜 게스트(special guest)’, ‘뮤직 스타트(music start)’ 등과 같은 말을 방송 진행자들이 서슴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프로그램들 제목에서도 영어가 없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뉴스데스크(news desk)’ ,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머니 투데이(money today)’, 세대 공감 올드 앤드 뉴(old & new)’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세대 공감 올드 앤드 뉴’는 내용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없는 제목을 써서 못내 아쉽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을 다듬어 쓸 말로 선정하여 지난 10월 12일부터 10월 17일까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다듬은 말을 공모하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모두 643건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 가운데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이 ‘본 방송에 앞서 내보내는 시험 방송으로서 시청자의 반응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라는 점을 특별히 고려하여 ‘선뵈기방송’, ‘초다짐방송’, ‘똘기방송’, ‘가늠꼭지’, ‘맛보기프로그램’ 등 다섯을 투표 후보로 골라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주(2005.10.19.~10.24.) 일주일 동안 다시 투표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총 931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선뵈기방송’은 230명(24%), ‘초다짐방송’은 83명(8%), ‘똘기방송’은 77(8%), ‘가늠꼭지’는 78명(8%), ‘맛보기프로그램’은 463명(49%)이 지지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맛보기프로그램’이 ‘파일럿 프로그램’의 다듬은 말로 결정되었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시청자가 본 방송에 앞서 미리 볼 수 있도록 내보내는 방송 프로그램이므로 ‘맛보기프로그램’으로 바꿔 쓰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앞으로 이 말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회원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