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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의 새벽
여행의 재미는 낯선 곳을 찾아가 새로운 풍광을 구경하며, 부딪히는 낯선 이것 저것 들을 직접 겪어 보는 것이다. 미리 남들의 여행기를 읽어 보는 것은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켜 줄 수가 있다. 남들의 경험이기는 하지만 몰라서 못 해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때론 그런 것이 없더라도 우연히 혹은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야 할 때가 더 많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 호도협 트레킹에 대한 이것 저것 글들을 읽어보면서 걷는 재미 외에 객잔에서의 재미 Key Word를 두 개 더 찾았다. 닭백숙 맛 보기와 밤하늘의 별 감상하기.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닭을 놓아 키운다. 마을에 들어서면 옛 우리 시골처럼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우르르 몰고 사방으로 돌아다닌다. 야! 토종닭이네! 먹어 봐야지! 하지만 정작 닭을 주문하면 대부분 적당한 크기로 토막쳐서 갖가지 채소와 양념을 넣고는 요리를 해 나온다. 중국 요리의 향에 적응을 못하거나 한국과는 다른 이질적인 맛에 기대감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그냥 삶은 백숙이 나은데....할 때가 많다.
근래 호도협을 찾는 한국의 트레커들이 많이 늘어나고 리장이나 대리에 거주하고 있는 몇몇 한국 사람들이 트레커들을 이끌고 자주 이곳을 찾으면서 우리나라의 백숙요리를 이들에게 가르쳤다. 호도협을 트레킹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행기에 '감동 닭 백숙' 이야기를 남겼다. 이곳의 닭은 어떤 맛이기에 '감동'이란 단어가 붙었을까?
체크인 하자마자 저녁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닭 백숙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므로..... 주인에게 닭 백숙 요리법을 한 참 설명하는데, 주인이 우리나라 말로 불쑥 '한국 백숙?' 이라 한다. 음! 여기에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그래! 한국 백숙! 그거! 맞아!" 하고는 '에이! 안되는 중국 말로 백숙 조리법 설명하느라 입만 아팠네' 툴툴대며 돌아서는데 바로 옆에 있던 중국 사람 두 명이 식사를 같이 하잖다. 바로 대답이 나갔다. "환잉! 환잉!" 중국에서 한 두 명이 여행을 하면 이러 저러 요리를 주문하기 힘들다. 이럴 때 여럿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 여러가지 요리를 주문할 수 있으므로 음식 낭비도 안하면서 다양한 중국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나중에 계산은 1/n 하면 된다. 같은 값으로도 다홍치마를 입을수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기왕이라고 산채 나물 몇 가지를 더 추가하였다. 이 두 명도 옆에서 듣다가 닭에 흥미를 느꼈나 보다. 사실 닭 한 마리 값이 꽤 되는데 다가 중국식으로 조리하면 두명이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낭비가 되니... 테라스에서 감동적인 석양의 포토 타임이 지나 식사시간이 되었다. 테이블에는 우리 여섯명 외에 아까의 두 중국인, 그리고 중국 소주에서 왔다는 젊은 한국인 부부, 두 번째 호도협을 찾는다는 한국 청년 한 명 모두 11명이나 되었다. 주문한 두 마리의 닭은 꽤 컸다. 손으로 대충 북북 뜯어 놓았는데 뼈가 검은색이다. 매우 질길 줄 알았는데 압력솥에 삶았는지 살도 적당히 쫄깃하고 맛이 그만이다. 함께 온 일행들은 이런 닭은 근래에 못 먹어 보았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중국인들은 한 사람은 대만에서 한 사람은 북경에서 온 사람이다. 이들도 닭 백숙은 처음이지만 매우 맛있다고 한다. '감동'이란 단어가 붙을 만 하였다. 비록 고산 등반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안주가 좋은데 술 한 잔 안 할수 없다. 술을 주문하였더니 옥수수로 빚은 고량주를 가져온다. 고급술은 아니었지만 닭고기와 어울리고 분위기와 어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뭐를 더할 것이 없는 유쾌하고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밤하늘의 별을 봐야지. 해발고도 2100미터, 그것도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간이다. 저녁에는 구름이 끼었지만 새벽에는 개이려나? 새벽에 일어나야 된다 긴장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서너번 잠에서 깨었다.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가 보았지만 구름이 끼었는지 전혀 별을 볼 수 없었다. 에이~! 다음에 한 번 더 오라나 보다. 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러다 문득 눈이 떠졌는데 창밖으로 비치는 하늘 색이 심상치 않다. 후다닥 카메라 챙겨서는 마당으로 나섰다. 그래 꿩 대신 닭이라고 밤 하늘의 별 대신 새벽 노을이나 보자. 근데~~어라! 이거 일출이 장난이 아니네...... 옥룡설산에 사는 불새 한마리..... 산 저편에서는 우주 전쟁이라도 벌어졌나보다. 하늘에는 레이저 광선 줄기들이 난무한다.
저녁 노을과는 달리 새벽의 노을은 찰나의 순간으로 화려한 빛의 전쟁을 접었다. 하마터면 아침 노을의 풍광을 놓칠 뻔했다. 이번 호도협 트레킹은 운이 정말 좋구나... 이렇게 강렬하고 화려한 아침 새벽 노을은 평생 처음이다. 이층에 방을 잡았던 다른 일행들도 새벽 노을을 카메라에 담았나 보다. 다들 방금 전의 일출이 카메라에 잘 잡혔는지 싸늘한 새벽 아침에 한 동안 모두 카메라만 들여다 보았다. <나시객잔 출발에 앞서 단체 기념 샷 한 장> 어제 저녁 토종닭 백숙을 하고 남은 죽으로 아침을 하고 객잔을 나선다. 나시객잔을 나서면 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난 길을 걸어 오르다 보니 산길에 건물 몇채가 나온다. 'Gain energy to tackle the 28 bends!' - 28拐“加油"栈! 본래 기름을 넣는 주유소-加油站-으로 써야 할 것을 끝자 '站'자를 '栈' 으로 바꾸어 썼다. '站', '栈'의 발음이 'zhan'으로 똑 같다. '栈' 은 숙소라는 뜻이 있다. 중국어 '加油'는 '기름을 더하다' 뜻으로 말 그대로의 뜻 외에 'Fighting!'이라는 의미가 함께 있다. '加油'栈- 간결하지만 절묘한 번역이다. '28밴드 오르기 위한 Energy 비축 숙소' 하지만 비 시즌이고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문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문구를 보니 호도협 High Path 구간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구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Tackle을 해야 할 정도니..... <28밴드 Tackle에 앞서 Fighting! - 加油! 를 한 번 하고...> 28拐 중국에서 꼬불꼬불 구절 양장으로 올라가는 험한 산길을 '盘路' 라고 한다. ' 盘-소반 반' 자는 그 뜻에 '둘둘 감다', '빙빙 돌다'라는 뜻이 있다. 이런 꼬부랑 산길 중 가장 유명한 길이 '泰山18盘'이다. 여기에서 태산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에 나오는 산인 중국 산동성의 태산(泰山)이다. 그리고 '18盘'은 이 태산의 정상에 오르는 중,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게 힘든 마지막 깔딱길 구간을 말한다. 태산 말고도 중국의 산 중에서 굽이굽이 힘든 산길에는 흔히 '18盘'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곳이 많다.
중국에서 9는 완전수이다. 9가 두 개 겹치는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重阳节), 일년 중 양기가 가장 으뜸인 날로 중국의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이다. 또한 99칸, 9,999칸 등 아무리 큰 집도 이 칸 수를 넘지 못한다. 또한 구중궁궐, 구룡벽 등 9라는 숫자는 대부분 황제의 숫자로 자금성, 천단 등에 그 코드가 많이 숨어 있다. 9의 배수인 '18' 도 중요한 숫자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노래방에서 '이 노래가 내 18번이야'하며 쓰는 18번도 일본의 가부끼에서 온 18번이지만 숨어 있는 함의는 중국에서 온 숫자 개념이다. 중국 무술의 으뜸인 소림무술이 18班 무예로 18가지 병장기를 쓰는 무예를 말한다. 유명한 손자병법의 계책은 모두 '36计'이다. '18', '36' 모두 '9'의 배수이다. '18'이라는 숫자는 '완벽한', '매우', '아주' 등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결국 '18盘' 은 열여덟번을 꼬불거리며 오르는 길이 아니라 '매우 힘든 산 길'이라는 뜻이다. '人生18盘'이라 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18盘'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근데 여기 길은 왜 '28'일까? 18도 아니고 27도 아니고 36도 아니고....28이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너무 힘든 길이라 욕이라고 해석을 했을텐데.....^^
'28拐'에서 '拐'는 '굽어지다'라는 뜻이므로 결국 '28 굽이 길'이라는 말이된다. 길이 28번 꼬불거리며 꺾어진다는 뜻인데 ...진짜루? 중국에서 조금 오래 살아 본 나로서는 '28拐'라는 단어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내가 아는 중국 문화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단어고 숫자이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서양문화라면 이해가 되는데......28번 딱 정확하게 굽이지는 길....!
궁금해졌다. 궁굼해지면 방법은 없다. 검증을 해 봐야지. 요즘 유행어로'궁금하면 500원'이라지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어디서부터가 시작일까? 아무런 표지도 없었지만 조금 걷다 보니 감이 오는 곳이 있었다. 아! 여기서부터겠구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하나! (한 10여 미터쯤 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서) 둘!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셋! : : "뭘 세는 거야~! " "그냥~! 28이 맞는지 헤아려 보는 거야!" "그걸 왜 세는데? " "재밋잖아? 돈 드는 것도 아니고.....얼마쯤 올라왔나 알 수도 있고...." "그래? 그럼 여기가 몇 번째야?" "조금 전이 일곱번째 였어" "그럼 이번이 여덟번째네? 여덟!" :
: : "열 넷! 애고 헉헉! 천천히 가자고~~! " "휴~~~! 그려 좀 쉬자고! 경치 쥐긴다! " : : "헥헥! 열 일곱! 야! 근데 저기에도 길이 있네" "글쎄. 저쪽 길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도 안 나와 있던데....저 길도 대단한 걸~!" "다음에 오면 저쪽으로 한 번 가 보자고....... 열 아홉!" "아! 왜 그래! 열 여덟!...처음부터 다시?" "컥! 열 여덟이야? 그런가? " : : : "스물 하나!" "왜 스물 하나!야, 스물 둘!" "아, 이번 거는 빼자고 꺾어진 길 길이가 너무 짧잖아!" "아! 왜 그리 사람이 쪼잔해! 팍팍 좀 써!" "쓸 때가 있고 안 쓸때가 있고...꺾여져서 2미터 이하로 걷는 구빗길은 빼자고.....스물 하나!" : : "이번 거 셀까 말까!" "까짓 것! 세지 뭐. 스물 넷!" "오케이! 스물 넷!" : : "음! 이번 구빗길은 좀 기네......스물 여섯!" "어라! 저기 벽에 뭔가 숫자가 적혀 있는데....." "우리가 센 숫자가 맞나 봐! 26이야!"
그럼 그렇지. '28拐'라는 말은 외국 사람들이 이곳 오르막 길을 '28 Bends’로 해 놓은 것을 최근의 중국인들이 중국말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결코 이런 산굽이가 몇번 있나 세어 놓지 않는다. "그럼 다 왔네! 휘유~!" "여기 별거 아닌데 왜 그리 사람들이 힘들다고 한 거야?" "여기가 해발 2600m가 넘어. 산에 다니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여기에 와서 이 고개를 걸어 올라오려고 해봐 안 힘들겠나?" "그렇기는 하겠네! 근데 와! 여기 경치 죽이네."
<27번째 구빗점에 있는 전망대 표지> 티격태격, 우왕좌왕 숫자 놀이에 경치 구경하며 오르다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어느새 다 올라와 버렸다. 전망대20미터 내려가서 사진찍고 오는데 8원이라 써 있지만 비수기라 다행이 '봉 잡는 왕서방'이 없다. 횡재다! 6명이 8원씩 48원 굳었다.....얼른 찍고 와야지! "와! 여기서 사진 찍다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겠지 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상도협> < 28밴드 정상부에서 나시객잔이 있던 마을을 내려다 본 모습. 2100m에서 약 2600m까지를 짧게 치고 올라와야 한다 성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말을 타고 오른다. 여행기를 검색해 보면 말 비용은 거리에 따라 100~150원 이다. 이 곳을 걷다가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과 만나면 될수록이면 계곡의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 말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좁은 산길에 극히 위험하다.> 28밴드를 지나면 평탄한 산 길의 연속이다. 소나무 숲도 지나고.....산길에는 한참 아래 상도협의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멀리 우리가 가야 할 하도협의 모습도 보이고..... 산 굽이를 돌자 차마객잔이 있는 마을이 나온다. 호도협 트레킹코스의 중간 지점이다. ============================================================ 2012년 11월 호도협 트레킹과 하바설산 등정 여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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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닭백숙, 일출, 여러 여행객들과의 식사. .
멋진 풍경..
나도 할수있을런지... 언젠가는...
바램이 마음속에 간절함을 입고 잠자고 있다보면 언젠가는 자유라는 날개를 가진 바람이 되어 깨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