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의 빌뱅이 언덕을 읽고
권정생 선생의 <빌뱅이 언덕>을 읽는다. 처음 시작부터 눈물 찔끔거리게 한다.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은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했고, 식민지와 육이오를 겪으면서 정신적 외상을 입고 살아온 세대지만 권정생 선생의 삶은 더 힘들었고, 더 아팠다. 그분에게 읽을 책이 없고, 쓸 시가 없고 동화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하나님의 힘만으로 살기엔 참으로 지난한 삶이었지 싶다.
권정생 선생이 죽을 때까지 묻혀 살았던 빌뱅이 언덕, 그 오두막의 온기가 새삼스럽게 그립다. 그 곳이나 내가 사는 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농촌 살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살고 자연의 숨결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농촌도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는 개탄은 나 역시 깊이 느끼는 점이다. 돈 없어도 살아질 수 있었던 농촌이 때로는 그리운 것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가 햇살이 환하게 난 마당을 본다. 풋풋하게 치솟던 기운을 잃어가는 마당의 잔디지만 아직 많은 것을 안고 있다. 빌뱅이 언덕에는 사라졌다는 참새와 딱새, 오목눈이, 까치와 까마귀가 수시로 내려앉고, 나비와 벌은 아직 윙윙댄다. 늦 매미가 우는 것을 보니 아직 숲에는 굴밤 주우러 온 손님이 없나보다. 굴밤이 떨어지고, 밤이 익어 터지는 계절, 마당가에 한 포기 무성한 코스모스가 가을임을 알려준다.
숲을 본다. 반짝거리는 상수리 나뭇잎이 유난히 눈부시다. 가끔 툭툭 터지는 소리는 굴밤 떨어지는 소리일까. 깔다구는 여전히 피를 빨고, 가분다리는 새끼를 치고, 거미집은 알이 부화했다. 줄을 따라 점점이 내려오는 거미 새끼들, 빗자루로 싹 쓸어버리려다가 그만 둔다. 그래, 같이 살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잘 사는 길이다. 올해는 별나게 가분다리와 지네에 집착을 했다. 죄 없는 생명을 여럿 죽였다. 내 피를 빨 것이라는 두려움이 낳은 결과다. 좀 물리면 어때, 산속에 산 지 이십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물것과의 전쟁이다.
마룻바닥에 뽈뽈 기는 가분다리를 볼 때나 지네를 볼 때는 구석에 놓인 에프킬라 통을 본다. 축협에서 갖다 준 파리모기 전용이지만 창고 외엔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만 자꾸 그것이 유혹한다. 집안 구석구석 쳐 놓고 문 꼭 닫아 놨다가 깨끗이 닦아 내면 돼. 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브를 유혹한 뱀의 혓바닥처럼 내 머릿속의 유혹에 지고 싶어 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권정생 선생이 개탄해 마지않던 수필 한 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살충제, 제초제가 죄 없는 생명까지 다 죽이는 농촌이 되었다고.
권정생 선생은 천국으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동화와 수필은 세세생생 살아남아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바꿀 것이다. <우리들의 하나님>, <몽실언니>, <강아지 똥>, <빌뱅이 언덕> 등등 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은 바로 농촌의 현실이 담긴 삶의 글이다. 가슴 아프기도 하고, 환하게 웃음 돌기도 하는 책, <빌뱅이 언덕>은 선생이 떠나신 후 지면에 발표한 작품을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