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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가 있는 한자고사성어를 알기쉽게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고 관련된 당시(唐詩) 들의 이야기를 겯드려 기존 고사성어 보다 폭넓고 재미있게연재를 할려고 합니다. -농월-
★佳人薄命(가인박명)
용모가 너무 빼어나면 운명이 기박하다.
<佳아름다운 가><人사람 인><薄엷은 박><命목숨 명>
☞ 소식(蘇軾)은 그의 시 『박명가인(薄命佳人)』에서 자신이 항주(杭州), 양주(楊州) 등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본 어여쁜 젊은 여승(女僧)의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 시절을 생각해 보니 미인의 운수가 기박한 것 같다고 읊은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지니고 있어서 능히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처지의 사람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도 기구한 길을 걷게 되는 경우를 가리켜 말한다. 미인박명(美人薄命)도 같은 말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刻새길 각><舟배 주><求구할 구><劍칼 검>
칼이 물에 빠지자 나중에 배가 움직일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해 두었다가 칼자국을 기준으로 뱃전 부근에서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시세의 흐름에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 초나라 사람이 칼을 껴안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옆의 사람들이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을 팔다가 배가 강 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껴안고 있던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앗, 큰일났다!”
사나이는 외치며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칼은 이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한 사나이는 주머니칼을 꺼내 떨어진 방향으로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여기에서 떨어졌거든. 하지만 표시를 해 놓았으니까 이제 안심이야.”
잠시 후 배가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 곧 표시해 놓은 뱃전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칼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으려 한다(刻舟求劍).”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肝膽相照(간담상조)
<肝간 간><膽쓸개 담><相서로 상><照비출 조>
간과 쓸개를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격의 없이 친하게 사귐을 일컫는 말이다.
☞ 궂은 일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의 신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서로 의 쓸개와 간을 꺼내 보일 정도로 터놓고 이야기하며 언제까지나 우의를 지키자고 약속하지만 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모른척하는 사람이 많다. 한유(韓 愈)는 평생 맹교(孟郊)나 가도(賈島)와 같은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아마도 여러 번 직면했던 곤경 덕택에 참된 우정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익힌 결과일 것이다.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地銘)에서는 먼저 유종원(柳宗元)의 선조의 사적부터 설명하고, 그 사람됨과 재능과 정치가로서의 업적을 칭찬하고 나중에는 그 우의가 두터움을 찬양하였다.
★改過遷善(개과천선)
<改고칠 개><過허물 과><遷옮길 천><善착할 선>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새롭게 착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 주처(周處)의 아버지 주방(周紡)은 동오(東吳)와 파양(鄱陽)의 태수를 지냈으나 불행히도 주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은 뒤부터 점점 외곬으로 빠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 사람들은 대적하지 못할 정도여서 걸핏하면 남을 두들겨 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주처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쳐서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 통개전비 중신주인)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들 의식주에 대한 걱정없이 사는데, 왜 여러분들은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오?”
이 때 어느 대담한 마을 사람이 대답했다.
“세 가지 해로움도 제거하지 못했는데 어찌 태평을 논할 수 있겠나?” “세 가지 해로움이라니요?” 주처는 이상히 여겨서 물었다. “남산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 장교(長橋)에 있는 교룡(蛟龍), 그리고 주처 자네를 합하여 세 가지 해로움이라 하는 걸세.” 주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더욱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굳혔 다. 이때부터 주처는 뜻을 세우고 글을 배웠다. 그 후 십여 년간 덕과 학문을 닦고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乾坤一擲(건곤일척)
<乾하늘 건><坤땅 곤> <一한 일> <擲던질 척>
하늘과 땅을 향해 한번에 내던진다는 뜻으로 천하를 잃느냐 얻느냐, 또는 죽느냐 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등 사생 결단하는 최후의 한판 승부를 일컫는다.
☞ 진(秦)이 멸망한 뒤 천하가 통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초(楚)의 항우(項羽)와 한(漢)의 유방(劉邦)이 이곳에 선을 긋고 천하를 나누어 가졌다. 이시는 당시를 추억한 것이다.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피로하고 호랑이는 곤하여 천원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보존하였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군가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길 권하며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실로 천하를 건 한판의 도박을 벌였구나.
항우와 유방은 진의 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하였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천하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되었다. 항우가 반란군을 토벌하고 있는 틈에 유방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 땅을 병합해 버렸다.
★結草報恩(결초보은)
<結맺을 결><草풀 초><報갚을 보><恩은혜 은>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 즉,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얘기다.
☞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첩이 있었으나 그 사이에 자식은 두지 않았다. 그래서 위무자는 병이 들자 아들인 과(顆)를 불러 말했다.
“반드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병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죽여서 함께 묻어 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魏顆)는 그녀를 다른곳으로 시집보내면서 말했다. “병이 심해질 적에는 머리가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나는 병세가 악화되 기 전의 아버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그 후 선공(宣公) 15년에 진(秦)의 환공(桓公)이 전쟁을 일으켜 군대를 보씨(輔氏)에 주둔시켰다. 이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는 진(秦)의 이름난 장수 두회를 사로잡았다.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에 있는 풀을 엮어 걸려 넘어지게 해서 잡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傾國之色(경국지색)
<傾기울 경><國나라 국><之갈 지> <色빛 색>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색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한무제(漢武帝)를 모시고 있는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자가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므로 무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절세로 단 한 사람뿐
일고(一顧)하면 성(城)을 기울게 하고
재고(再顧)하면 나라를 기울게 했다.
어찌 경성(傾城) 경국(傾國)을 모르리요마는
가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니.
무제는 노래를 듣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세상에 그런 여인이 정말 있을까?”
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연년에게는 누이동생이 있거든요.”
무제는 곧 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 했다. 무제는 곧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인에게 빠져서 나라가 망해도 모를 만큼 된다는 뜻이다.
★鷄肋(계륵)
<鷄닭 계><肋갈비 륵>
닭의 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물을 이르는 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뜻한다.
☞ 조조(曹操)와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유비는 익주(益州)를 근거지로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배치하여 한중을 평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보급이 충분하지 못하여 유비의 군대를 공격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지키고 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조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부하들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조조에게 찾아왔다. 이때 조조는 닭갈비를 뜯고 있다가 혼자 “계륵 계륵.” 하더니 아무말이 없 었다.
부하들은 아무도 조조의 말뜻을 몰랐다. 오직 양수(揚修)만이, “닭갈비는 먹을 만한 것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한중을 포기하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철수를 결정하실 것이다.”라고 조조의 생각을 미리 짐작하였다.
다음날 조조는 양수의 말대로 한중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양수는 혼자 예견하고 짐을 꾸렸지만 조조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鷄鳴狗盜(계명구도)
<鷄닭 계><鳴울 명> <狗개 구><盜훔칠 도>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서 좀도둑 질을 잘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기술에 능한 비천한 사람을 말한다. 또는 천한 재주나 기능도 훌륭하게 쓰일 때가 있음을 말한다.
☞제(濟)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식객(食客)으로 맞아들이니, 그 수가 3천명을 넘었다. 진(秦)나라의 소왕(素王)은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가자, 소왕은 그가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억류하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소왕의 애첩은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털로 만든 아주 귀한 털옷인데, 맹상군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이미 소왕에게 이 것을 바쳤기 때문에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 맹상군을 따라간 식객 중의 한 사람이 진나라 대궐에 들어가 개 흉내를 내며 호백구를 훔쳐 와서 소왕의 애첩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호백구를 받은 애첩이 소왕에게 그를 풀어 줄 것을 애원하니, 소왕은 맹상군을 제나라로 돌아 가도록 허락했다. 맹산군은 곧 말을 달려 한밤중에 국경 근처인 함곡관(涵谷關)에 이르렀다.
얼마 후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한 소왕이 군사를 보내 맹상군을 잡아오 도록 하였다. 맹상군이 급히 관문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곳의 법에 관문은 첫닭이 울기 전에는 열 수가 없었다.
이때 식객 중의 한 사람이 닭의 울음소리를 내자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이에 관문이 열리고 맹상군은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행이 탈출한 직후 추격대가 관문에 도착했으나, 이미 떠나간 뒤였으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股肱之臣(고굉지신)
<股다리 고><肱팔뚝 굉><之갈 지> <臣신하 신>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가까이하며 신임하는 중신(重臣)을 일컫는 말이 다.
☞ 臣作朕股肱耳目 予慾左友有民汝翼 汝慾宣力四方汝爲
신작짐고굉이목 여욕좌우유민여익 여욕선력사방여위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이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들을 돕고자 하니 그대들도 힘써 도와 달라. 내가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려 하거든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
순임금이 신하들에게 자신을 잘 보좌하여 나랏일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 말이다.
★鼓腹擊壤(고복격양)
<鼓북 고><腹배 복><擊칠 격><壤흙 양>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격양놀이를 한다는 뜻 으로, 백성들이 그처럼 태평할 만큼 그 시절이 평화스럽다는 뜻이다.
☞백발 노인 한 사람이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격양놀이(옛날 중국에서 하던 유희의 하나)를 하는데,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즐겁게 하고 있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들며
일출이작 일입이식
鑿井而飮 町田而食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나니
착정이음 정전이식
帝力何有珍我哉 임금의 덕 따위야 무엇하리요
제력하유진아재
그 옆을 지나던 요(堯) 임금은 이 노래를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나. 백성들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배를 두드리며 격양놀이 등으로 자기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하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古稀(고희)
<古옛 고><稀드물 희>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으로 70세를 고희라고 한다.
☞두보(杜甫)의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시에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온다.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을 입고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하루같이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술빚은 예사로 도처에 있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릉(少陵)이 호이다. 전란으로 가족을 잃는 등 개인적으로는 불행이 잇달았지만, 일생을 통하여 뛰어난 명시를 많이 남겼다. ‘고희’라는 말은 이 시의 ‘인생칠십고래희’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로부터 드물다(稀)는 뜻에서 보기 드물 나이에 도달함을 축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보통 70세를 가리켜 ‘고희’라고 한다.
★曲學阿世(곡학아세)
<曲굽을 곡><學배울 학><阿아첨할 아><世세대 세>
평소에 자기 신조나 소신, 철학 등을 굽혀 시세에 아첨함을 말한다.
☞원고생(轅固生)은 전한(前漢) 경제(景帝)때의 학자였는데, 무제(武帝) 때에도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엉터리 학자들이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되돌 리려고 원고생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무제는 그 중상모략을 물리치고 원고생을 등용하였다. 원고생과 함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도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어빠진 영감이라고 무시하는 눈초리로 원고생을 대했으나 원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공손자는 부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구부려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 나(公孫子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절조를 굽히지 않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空中樓閣(공중누각)
<空빌 공><中가운데 중><樓다락 루><閣누각 각>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현실성이 없는 일 이나 근본이 없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성어이다.
☞심괄(沈括)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登州四面臨海春夏時遙見空際有城市樓臺之狀士人謂之海市
등주사면임해춘하시요견공제유성시누대지장사인위지해시
(등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멀리 수평선 위로 누각들이 줄을 이은 도시가 보인다. 지방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한다)
그 후 청(靑)나라의 학자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今稱言行虛構者曰空中樓閣用此事
금칭언행허구자왈공중누각용차사
(지금 말과 행동이 허황된 사람을 가리켜 궁중누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역시 겉모양은 번드르하지만 기초가 약하여 오래 가지 못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 등에 빗대어 사용한다.
★管鮑之交(관포지교)
<管대롱 관><鮑절인고기 포><之갈 지><交사귈 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처럼 서로 믿고 이해하는 친밀하고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 관계를 뜻 한다.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지우였다. 처음에 둘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누는데 언제나 관중이 많은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에 여러번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무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전쟁터에 나아가 세 번 모두 도망쳐 왔을 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제(齊)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관중이 모시고 있던 규(糾)와 포숙아가 모시던 소백(小白)이라는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포숙아가 모시던 소백이 승리하였으나 그가 바로 유명한 제나라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왕위에 오른 후 규(糾)를 죽이고, 관중의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설득으로 그를 용서해 주고 재상에 임명하였다.
그 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였다.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제나라를 부국강병한 국가로 만들어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관중은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아의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였다고 한다.
★刮目相對(괄목상대)
<刮비빌 괄><目눈 목><相서로 상><對상대 대>
얼마 동안 못 보는 사이에 상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매우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쟁에서 공이 많아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를 하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손권의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노숙이 여몽을 찾아갔다. 노숙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여몽의 박삭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가? 이제 학식이 대단하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군.”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일세.”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狡교활할 교><兎토끼 토><死죽을 사> <良어질 양><狗개 구><烹삶을 팽>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충실한 사냥개도 쓸 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소용이 없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없애 버 림을 가리킨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도 함.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때, 항우의 부하였던 종리매(鐘離昧)라는 장수가 옛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보 고가 들었다.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친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도리어 그를 숨겨 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었으므로 유방은 진평(陳平)의 책략에 따라 제후들의 군대를 소집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 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약삭빠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폐하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보인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는 정말 한심한 일을 생각했군. 내가 자네를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 이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그 주인에게 먹히듯이, 온 힘을 다해 섬긴 내가 이번에는 유방의 손에 죽는구나.”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초왕(楚王)에서 회음후(澮陰 候)로 좌천시켰기 때문에 이후로는 회음후로 불리게 되었다.
★群鷄一鶴(군계일학)
<群무리 군><鷄닭 계><一한 일><鶴학 학>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혜소(嵇紹)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죽은 후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고 있었으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우이며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당시 무제(武帝)에게 상주하였다.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시대의 극결(郤缺)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관직에 오 르게 해주십시오.” 황제는 그를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紹)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 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한 게 학 한 마리가 닭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녜(野鶴如在鷄群 야학여재계군).”
★君子三樂(군자삼락)
<君군자 군><子아들 자><三석 삼><樂즐거울 락>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在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군자유삼락이와천하불여재언 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仰不愧於天府不炸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이락야 득천하영재교육지삼락야
「孟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이 세가지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
★捲土重來(권토중래)
<捲말 권><土흙 토><重다시 중><來올 래>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분발하여 세력을 되찾아서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이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할 수 없는 것
승패병가불가기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을 수 있음이 바로 남아라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俊才 강동의 자제에는 준재가 많으니
강동자제다준재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으면 승패를 알
권토중래미가지 수 없을 터인데
위의 시는 두목(杜牧)이 항우(項羽)에 대하여 읊은 시 중의 하나이다. 항우가 죽은 지 천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두목이 나루터에서 항우의 인품을 그리며 젊은 나이(31세)로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목의 시에는, ‘강동에 계시는 부모 형제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고 견디었더 라면 우수한 자제가 많은 곳이므로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고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정이 배어 있다.
★錦上添花(금상첨화)
<錦비단 금><上위 상><添더할 첨><花꽃 화>
비단옷을 입은 데다가 꽃을 가진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진다는 말이다.
☞다음 시는 왕안석(王安石)이 만년에 정계를 떠나 은거해 살 때 지은 즉흥시이다.
河流南苑岸西斜 강은 남원을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하류남원안서사
風有晶光露有華 바람엔 맑은 빛이 있고 이슬에는 꽃이 있다
풍유정광로유화
門柳故人陶令宅 문 앞의 버들은 옛사람 도령의 집이요
문류고인도령댁
井桐前日總持家 우물가의 오동은 전날 총지의 집이다
정동전일총지가
嘉招欲覆盃中淥 좋은 모임에서 잔 속의 술을 비우려 하는데
가초욕복배중록
麗唱仍添錦上花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여창잉첨금상화
便作武陵樽俎客 문득 무릉의 술과 안주를 즐기는 손님이 되어
편작무릉준조객
川源應未少紅霞 내의 근원에 응당 붉은 노을이 적지 않으리라
천원응미소홍하
★錦衣夜行(금의야행)
<錦비단 금><衣옷 의><夜밤 야><行갈 행>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말로 아무리 출세해도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항우(項羽)가 함양(咸陽)에서 입성에 성공한 후 사정에 의해 고향에 돌아기지 못함을 한탄해서 한 말이다.
富貴不歸故鄕如衣錦夜行 誰知文者
부귀불귀고향여의금야행 수지문자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다. 이것을 누가 알쏘냐!)
★杞人之憂(기인지우)
<杞나라이름 기><人사람 인><之갈 지><憂근심 우>
기우(杞憂)라고도 함.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이란 뜻으로, 공연히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나라의 한 사람이 만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여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이므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그리고 땅도 흙덩이가 쌓인 것뿐이라네. 그것이 사방에 꽉차서 흙이 없는 곳은 없지. 왜 땅이 꺼지는 것을 걱정하나?” 그러자 비로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洛陽紙價貴(낙양지가귀)
<洛물이름 락><陽볕 양><紙종이 지><價값 가><貴귀할 귀>
책이 세상에 널리 많이 읽힘을 일컫는 말. 진(晉)나라 좌사(左思)가 10년이나 걸려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그 글을 배꼈으므로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삼도(三都)란 삼국시대의 세 도음, 즉 위나라의 업, 오나라의 건업, 촉나라의 성도를 말한다.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좀처럼 뜻하는 지위에 나갈 수 없어서 부(賦)의 형식으로 이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자 생각했다.10년 후 마침내 삼도지부(三都之賦)가 완성되었 다. 우수한 작품인데다가 유명한 시인이 서문을 썼기 때문에 귀족이나 부자들 이 서로 다투어 삼도지부를 복사했다. 결국 마침내는 도읍지인 낙양의 종이 값이 올라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難兄難弟(난형난제)
<難어려울 난><兄맏 형><難어려울 난><弟아우 제>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 으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世說新話」
☞후한(後漢)의 진식(陳寔)은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함께 삼군(三君)으로 불릴 정도로 부자간의 덕망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기의 아들인 진군(陳群)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 때 재상을 역임한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다.
진군이 어릴 때,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자랑하며 논쟁을 벌였다. 두 사촌끼리 서로 자신의 부친이 훌륭하다고 주장을 해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 진식에게 가서 판정을 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진식은 두 손자에게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 말하기를, “형인 진기도 형 되기가 어렵고, 아우도 훌륭한 형의 동생 되기가 어렵다.”고 답하였다.
즉,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못한 지 가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원방난위형 계방난위제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
★南柯一夢(남가일몽)
<南남녘 남><柯가지 가><一한 일><夢꿈 몽>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밑에서 꾼 잠깐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한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다고 하여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때의 일이다.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사람은 협객(俠客)으로 유명한 데, 술을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장군과 충돌한 끝에 낙향하게 되었다.
순우분의 집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날마다 친구들과 그 그늘에서 술을 마시며 지냈다.
어느 날 순우분은 만취하여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임금 앞으로 안내되었다. 임금은 매우 반가워하며 그를 부마로 맞이할 뜻을 비쳤다.
이윽고 순우분은 출세에 출세를 거듭하여 고관으로 임명되었고 20년 동안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은 그를 하늘처럼 우러러보았다. 그 사이에 다섯 아들과 두딸을 얻었는데, 아들들은 다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王家)에 시집을 가서 잘 살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 크게 패하고 아내마저 병사하자 그는 벼슬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그의 명성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귀족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고 나날이 그의 세력이 커졌다. 그러자 이를 시기하여 그가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투서를 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근신하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눈을 뜨고는 모두가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꿈으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술과 여자를 멀리하며 도술(道術)에 전념하게 되었다.
★囊中之錐(낭중지추)
<囊주머니 낭><中가운데 중><之갈 지><錐송곳 추>
주머니 속에 송곳이 들어 있으면 뾰족하여 밖으로 뚫고 나오는 것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재능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今先生處勝之 三年於此矣 勝末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
금선생처승지 삼년어차의 승말유소문시선생무소유야
「史記」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으면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그 끝이 즉시 나타나는 법이오. 그대는 나의 문하에 있은 지 3년이 되었지만, 내 좌우의 근신이 아직도 그대를 칭찬한 적이 없으며, 나도 그대에 관해서 들은 바가 없소)
모수(茅蒐)라는 사람이 찾아와 평원군(平原君)에게 자청했다.
“인사를 뽑았으나 아직 한 사람이 모자란다고 하니 제발 제가 수행원 속에 끼어 가게 해주십시오.”
평원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의 문하에 몇 해 동안이나 있었소?”
“3년쯤 되었습니다.”
“3년이 되어도 그대를 칭찬한 소문을 들은 적이 없소. 그대는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으니 단념하시오.”
모수가 대답했다.
“저는 오늘 비로소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를 청했을 뿐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사람은 모수를 경멸하여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비웃었다. 초에 이르는 동안 모수는 열아홉 사람과 얘기를 나눈 끝에 모두를 복종시키고야 말았다. 마침내 평원군은 모수에게서 결정적인 도움을 입어 초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累卵之危(누란지위)
<포갤 루><계란 란><갈 지><위험할 위>
높이 쌓아올린 계란이란 뜻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무 너지고 마는 상태. 즉, 아주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말한다.
☞秦王之國 危於累卵 得臣則安 然不可以書傳也 臣故載來
진왕지국 위어누란 득신즉안 연불가이서전야 신고재래
「史記」
(“진나라는 지금 계란을 쌓아 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 나를 얻으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글로는 전할 수 없다.”고 하는 터라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억울한 죄명으로 죽을 고비에서 천행으로 살아난 범저(范雎)는 장록(長祿)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다가 마침 위나라를 다녀가는 진(秦)나라 사신 왕계(王季)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왕계는 진왕에게 위와 같이 장록이 한 말을 전하고 이렇게 간하였다.
“위나라에 장록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천하의 뛰어난 변사(辯士)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범저는 진왕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대외정책을 진언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多多益善(다다익선)
<多많을 다><多많을 다><益더할 익><善착할 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한고조(漢高祖)인 유방(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다음, 당시 초왕(楚王)이 있던 한신(韓信)에게 반란의 기미가 있다고 하여, 붙잡아서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澮陰候)로 좌천시켜 도읍에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유방은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대하여 한신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는데, 한신에게,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는 장군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이 대답했다.
“글쎄요, 폐하께서는 그저 10만 정도가 아닌가 봅니다.”
“그래, 그럼 귀공은 어떤가?”
그러자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는 대답이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고조가 웃으면서, “그 <다다익선>이란 사람이, 어째서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는가?”하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별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군노릇은 별로 잘하시지 못하지만, 장군의 장군다운 점에 있어서는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로 로가 된 이유입니다. 더구나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재능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斷機之敎(단기지교)
<끊을 단><기계 기><의 지><가르칠 교>
짜던 베도 도중에 자르면 쓸모가 없듯이, 학업도 도중에 중단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말이다. 단기지계(斷機之戒)라고도 함. 「後漢書․烈女傳-후한서․열녀전」
☞맹자가 어렸을 때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짜다가 “공부가 어느 정도에 이러렀느냐?”고 물었다. 맹자가 “그만 저만 합니다.”라고 대답하니, 맹자의 어머니가 칼로 베를 끊어 버렸다. 맹자가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으니, “네가 학업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학문을 닦지 않으면 남의 심부름꾼밖에 될 것이 없다.”며 타일러 보냈다고 한다. 맹자는 느낀 바 있어 아침 저녁으로 쉬지 않고 부지럼히 배워서, 나중에 천하의 이름난 학자가 되었다.
★大器晩成(대기만성)
<大큰 대> <器그릇 기><晩늦을 만><成이룰 성>
큰 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생 끝에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 목소리가 유연 하고 모습은 한층 눈에 띄며 수염이 4척이나 되는 이 장수를 무제(武帝)는 누구 보다도 신임하고 친근히 여겼다.
최염에게는 사촌인 최림(崔林)이 있었는데 친척들에게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을 보고, “동생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인물됨을 평했다.
얼마후 과연 최림은 천자의 고문이 되었다고 한다.
「老子」
☞『노자(老子)』는 제41장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등의 선비는 도(道)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있 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하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웃지 아니하면 족히 써 도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세운 말에 이런 게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고, 평 탄한 도는 험한 것 같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와 같고, 너무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 같고, 세운 덕은 변하는 것 같고, 변함없는 덕은 변 하는 것 같고, 큰 네모에는 구석이 없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大器晩成,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상이 없다. 도(道)는 숨겨져서 이름이 없 다. 대저 오직 도는 잘 빌려 주어 또 이룬다.>
여기에서 말한 <대기만성>의 만성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되며, 또 < 큰인물은 늦게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塗炭之苦(도탄지고)
<塗칠할 도><炭숯 탄><之의 지><苦괴로울 고>
석탄 속에 빠진 온몸의 괴로움을 나타낸 말로서, 심한 고통속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대군을 대파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탕왕의 서사(誓詞)는 서경(書經)의 탕서편(湯誓篇)으로 남아 있었는데, 걸왕과 싸워 대승하고 개선했을 때 탕왕은 제후들에게 걸왕의 무도함을 공격하여 말하되, “하늘은 재앙을 하나라에 내려 이로써 그 죄를 밝혔다.”고 했다.
걸왕의 학정을 비난한 말은 고전에 많이 보이나 그중에서도 서경의 중훼지고 (仲虺之誥)에서는 “유하혼덕(有夏昏德)하여 백성이 도탄(塗炭)에 떨어지다.”라고 했다. 걸왕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받는 고난을 ‘백성이 도탄에 떨어지다.’라고 비유한 것이다.
★同病相憐(동병상련)
<同같은 동><病앓을 병><相서로 상><憐불쌍히 여길 련>
같은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말이다.
☞ 오(吳)나라의 강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따온 말이다.
同病相憐 同憂相救 같은 병자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
동병상련 동우상구 심은 서로를 구제한다
驚翔之鳥 相隨而飛 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 날고
경상지조 상수이비
瀨下之水 因復俱流 여울 아래 물은 다시 함께 흐른다
뇌하지수 인부구류
「吳越春秋」
★登高自卑(등고자비)
<登오를 등><高높을 고><自스스로 자><卑낮을 비>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야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中庸」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군자지도 벽여행원필자이 벽여등고필자비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시왈 처자 호합 여고슬금 형제기흡
和樂且耽 宣爾室家 樂爾妻孥 子曰 父母其順矣乎
하탁차람 선이실가 낙이처노 자왈 부모기순의호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 하고 일찍부터 형제의 뜻이 맞아 즐겁고도 즐겁나니,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읊고서 “부모는 참 안락하겠다.”고 말했다)
★登龍門(등용문)
<登오를 등><龍용 룡><門문 문>
어려운 고비를 돌파하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문 이다.
입신출세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진(河津)은 용문(龍門)이라고 해서 물실이 매우 험한 곳이었는데 웬만한 물고기들은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곳을 통하여 하늘에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보통 입신양명의 길로 나서게 되는 큰 시혐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세력 있는 인물과의 만남에도 종종 쓰이는 말이다. 반면에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로서 점액(點額)이라는 말이 있는데,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뜻한다.
★馬耳東風(마이동풍)
<말 마><귀 이><동녘 동><바람 풍>
말의 귀를 스치는 동쪽 바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충고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 읽기)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王去一寒夜獨酌有懷
왕거일한야독작유회
‘왕거일이 추운 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회포에 잠기다.’
라는 시에 나온다. 귀족 사이에는 사치가 만연되어 있는데 서민들의 고충을 진술해도 상대하지 않고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輓歌(만가)
<輓끌 만><歌노래 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한고조(漢高祖)는 즉위한 후, 전횡(田橫)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여 회유책을 쓰기로 하였다. 죄를 용서하는 대신에 낙양으로 들어와 신하 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낙양성 밖 30리까지 왔던 전횡은 절개를 굽히고 한고조의 부하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하고 말았다. 남은 가족과 부하들도 그를 좇아 모두 자결하였는데, 사람들은 전횡의 높은 절개를 사모하는 마음에 상가(喪歌)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麥秀之嘆(맥수지탄)
<麥보리 맥><秀빼어날 수><之의 지> <嘆탄식할 탄>
맥수(麥穗)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뜻으로, 옛날 번영 하던 도읍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고국의 멸망을 탄식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기자(箕子)는 주왕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殷)의 옛성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전에는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건만 이제는 옛날과 너무나 변해 버린 모습에서글퍼져서 맥수지시(麥秀之詩)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麥秀漸漸兮 禾麥油油兮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 무성하고 벼와 기
맥수점점혜 화맥유유혜 장들도 잎이 기름지도다
彼狡僮兮 不興我好兮 저 교동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음이
피교동혜 불흥아호혜 슬프구나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孟맏맹><母어미모><三석삼><遷옮길천><之의지><敎가르칠교>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됐 다.「後漢書․烈女傳」
☞맹자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했는데, 공동 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놀이도 상여를 메고 가는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는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 못 되 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 맹자 어머니는 곧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행동하는 광경을 흉내내며 노는 것이었다. 그 후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盲人摸象(맹인모상)
<盲소경맹><人사람인> <摸더듬어찾을모><象코끼리상>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사물의 일부만을 알면서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명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오시오. 그리고 장님들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시오.”
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만져 보고 느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져 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고 큰 무와 같습니다.”
귀를 만져 본 다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쌀을 까부는 키 같습니다.”
발을 만져 본 장님과 코끼리의 뱃가죽을 만져 본 장님도 저마다 의견을 내놓 았다.
“코끼리의 형상은 절구통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배가 툭 튀어나온 옹기와 같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이 큰소리로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은 밧줄과 꼭 같습니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것은 장님들은 코끼리 전체를 만져 보지 않고 코끼리의 일부만 만져 보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毛遂自薦(모수자천)
<毛털모><遂드디어수><自스스로자><薦천거할천>
모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남이 추천해 주지 않으니까 기다리다 못 해 스스로 자청해서 나서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
어 쓰는 말이다. 「史記․平原君列傳」
☞조(調)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초(楚)나라의 협조를 얻고 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3천명 가운데 20명을 뽑아서 초나라에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이 끼기를 청하였다.
평원군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내가 3년 동안 데리고 있었으나 장점을 하나도 발견 못했노라.”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뾰족이 나오는 송곳처럼 나타날 것이니 일을 맡겨 주십시오.”
결국 모수를 데리고 가서 회담이 성공하였다.
초왕은 모수의 위엄과 설득에 굴복하여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낼 것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귀국하자 모수는 상객(上客)으로 대접받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矛盾(모순)
<창 모><방패 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楚人(초인)에 有賣盾與矛者(유매순여모자)러니 譽之曰(예지왈) 吾盾之堅(오순지견)은 莫能陷也(막능함야)라 하고
又譽其矛曰(우예기모왈) 吾矛之利(오모지리)는 於物無不陷也(어물무불함야)니라 하니 或曰(혹왈) 以子之矛(이자지모)로 陷子之盾(함자지순)이면 何如(하여)요 하니 其人(기인)이 不能應也(불능응야)러라. 「韓非子」
초(楚)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패에 대해 말하기를 “나의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에 대해 말하기를 “이 날카로운 창이면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쩌겠소?”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히 도구를 챙겨 가지고 슬그머니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숨기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어떤 말이나 행동의 이치가 서로 상반되어 조리에 닿지 않는 경우, 또는 어떤 상태나 판단이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빗대어 쓰이는 말이다.
★武陵桃源(무릉도원)
<武군사무><陵언덕릉><桃복숭아도><源근원원>
속세와 동떨어진 별천지. 즉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桃花源記」
☞진태원(晉太元)때 무릉인(武陵人)이라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 는데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문득 복사꽃나무 숲을 만나 바라보니 양 언덕으로 수백 보에 이르도록 다른 나무는 없고 복사꽃나무만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걸 어나가 그 숲이 다한 곳까지 이르자, 어느 산속에 물이 솟아나는 골짜기가 나왔다. 조그마한 굴이 있었는데 꼭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문득 배를 버리고 굴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접아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는데 다시 수십 보를 걸어가니까 공간이 넓어지면서 땅이 평평하고 집들이 높게 서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이 언덕에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며, 사람들이 왕래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 크게 놀라 오게 된 경우를 묻자 사실대로 대답하고 수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어부가 돌아가게 되자 “절대 밖의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돌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남기고 마을에 도착하여 태수(太守)에게 보고하니 태수가 곧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하였지만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巫山之夢(무산지몽)
<巫무당 무><山뫼 산><之의 지><夢꿈 몽>
무산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밀회나 정교를 일컫는 말이다.
☞옛날 선왕이 향연을 즐기다 피로해서 잠시 낮잠을 잤다. 잠이 들자 곧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누구일까?’생각하고 있을 때 그 여자가 왕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는 무산(巫山)에 삽니다만 왕께서 이곳에 계사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모쪼록 동침하게 해주십시오.”
왕은 굼에서나마 잠시 그 여자와 동침하였다.
얼마 후 작별할 때가 되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저는 무산 남쪽 험준한 곳에 삽니다만,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산에 걸리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산을 내려와 아침 저녁으로 양대(陽臺) 기슭에 있습니다.”
이상한 꿈에서 깬 왕이 이튿날 아침 일찍 무산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선녀가 말한 대로 무산에 아름다운 빛을 받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왕은 그 선녀를 생각하고 묘를 세워 조운(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남녀의은 밀한 사귐을 지칭할 때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성어이다.
★刎頸之交(문경지교)
<刎목마를 문><頸목 경><之의 지><交사귈 교>
목이 잘려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친밀한 사귐을 일컫는 말로서 깊은 우정을 뜻한다. [史記]
☞인상여(藺相如)는 일개 식객에 지나지 않는 신분이었으나 조왕(趙王)이 수치를 당할 때 구해 준 공으로 상경(上卿)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 하여 말했다.
“나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상여는 적은 공으로 나보다 위가 되었다. 그 사람은 원래 천한 놈이다. 그런 놈 밑에 있다는 것은 욕된 일이다. 상여를 만나게 되면 욕을 보여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상여는 염파와 만나는 것을 피했다. 상여의 부하 한 명이 비취가 거슬려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은 염장군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겁해서 나는 떠나겠습니다.”
상여는 그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염 장군과 진왕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운가?”
“물론 진왕이죠.”
“나는 그런 진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정에서 진왕을 질책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군신들을 욕보였소. 이러한 내가 왜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소. 강국인 진이 조를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잉오.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그 어는 한쪽은 쓰러지게 마련이 아니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염파는 이 밀을 전해 듣고 크게 반성했다. 그래서 염파는 상반신을 벗고 가시 막대를 짐으로써 알몸에 그 매를 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상여의 집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후 두사람은 친구가 되어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한다.
★門前成市(문전성시)
<門문 문><前앞 전><成이룰 성><市시가 시>
세력 있는 사람의 집 앞이 시장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는 뜻으로, 세상 인심의 덧없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漢書의 孫寶傳」
☞정숭(鄭崇)은 와과 인척이 되는 명문 출신이다. 외척들의 횡포를 보다못해 여러번 애제(哀帝)에게 직언했다. 애제도 그의 간언(諫言)에 귀를 기울였다. 정숭은 애제가 동현(董賢)을 지나치게 믿는 것을 재삼 간언했으나 애제도 그 무렵에는 이미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죄를 얻어 힐책당할 정도였다.
당시 조창(趙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을 고자질하여 아첨하는 인물로 정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정승이 애제에게서 소원되고 있는 것을 무척 좋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정숭이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앙실의 여러 사람들과 내통하고 있습니다.”하고 애제에게 이간질했다. 애제는 곧 정숭을 불러들여 문책했다.
“그대의 집 앞은 시장터와 같다고 하더군.”
힐책하는 애제의 말을 받아 정숭이 말했다.
“신의 문은 시장 같아도 신의 마음은 문과 같습니다. 다시 한 번조사해 보옵소서.”
하지만 애제는 노해서 정숭을 옥사시키고 말았다.
★尾生之信(미생지신)
<尾꼬리 미><生날 생><之의 지><信믿을 신>
고지식한 미생이란 사람의 믿음으란 뜻으로, 쓸데없는 구애된 나머지 임기응변이 모자라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을 말한다.
☞노(魯)나라에서 미생(味生)이라는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나이가 개울 다리 밑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는 약속 시각에 도착해서 애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는 동안에 비가 많이 와서 개울물이 불어나 그는 물에 잠기게 되었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익사해 버리고 말았다. 쓸데없는 약속에 구애되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拔本塞源(발본색원)
<拔뽑을 발><本근본 본><塞막을 색><源근원 원>
뿌리를 뽑아 근본을 막는다는 뜻으로, 나쁜 폐단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말한다.
☞我在伯父 有衣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아재백부 유의지유관면 목수지유본원 미인지유모주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戒狄其何有余一人
백부약렬관훼면 발본색원 전기모주 수계적기하유여일인
(나는 백부에게 있어서 마치 옷에 갓이 있고, 나무와 물에 부리와 근원이 있고, 백성들 에게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백부가 만일 갓을 찢어 벌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 지도자를 아주 버린다면 비록 저 오랑캐들이라도 나를 우습게 볼 것이 다)「春秋左氏傳」
★傍若無人(방약무인)
<傍곁 방><若같은 약><無없을 무><人사람 인>
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재주가 출중했으나 조국을 떠나 다른 여러 나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연(燕)나라에 갔을 때 악기를 잘 다루는 고점리(高漸離)라는 인물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서로 뜻이 잘 맞아 매일같이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취흥이 돌면 고점리는 악기를 꺼내어 멋지게 곡조를 뽑았고 형가도 이에 답하여 노래를 불렀다고한다. 그러다가 심정이 처연해지면 울기도 하였는데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여기에서 뱡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背水之陣(배수지진)
<背등 배> <水물 수><之의 지><陣진칠 진>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대처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史記]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은 위(魏)나라를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조(趙)나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조나라에서는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튼튼하게 진지를 구축 하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한신은 조나라 군사들이 유리한 곳을 점령하고 있으므로 싸워서는 이길수 없다고 생각해서 기발한 전략을 세웠다. 그는 기마병 2천명을 조나라진지 가까운 산기슭에 매복시겨 놓고, 전투가 시작되어 조나라 군사들이 출동하여 성 안이 텅비게 되면 성안에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내리고 한나라 깃발을 올리도록 하였 다. 그리고 만 명의 군사들에게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했다.
조나라 군사들은 이것을 보고 병법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다음날 한신이 조나라 진지를 공격하자, 조나라 군대는 성문을 열고 응전해 왔다. 한신은 거짓으로 퇴각하여 배수진을 친 군사들과 합류했다.
한신이 배수진을 친 곳으로 듥어간 것을 본 조나라 군사들은 성을 비워놓고 일제히 공격해 왔다. 한신의 군사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므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매복해 있던 한나라 깃발을 내걸었다.
이렇게 해서 한신의 군사들은 조나라를 망하게 했다.
★百年河淸(백년하청)
<百일백 백><年해 년><河물 하><淸맑을 청>
중국의 황하는 물이 언제나 누렇게 흐려 있으며 백년
에 한 번 물이 깨끗해 질까 말까 한다고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 兆云詢多 職競作羅
주시유지왈 대하지청 인수기하 조운순다 직경작라
(주나라의 시에 이르기를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한이 없어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도저히 부족하다. 점쳐서 꾀하는 일이 많으면 새가 그물에 억힌 듯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말은 초(楚)나라가 정(鄭)나라로 쳐들어오자, 정나라의 지도자들이 전(晉)나라의 구원을 기다리는 동안 저항을 해야 한다는 측과 싸움을 해도 패하는 것은 뻔하니까 항복하자는 측이 맞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이때 항복을 주장하는 측의 자사(子駟)가 나서며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즉, 어느 세월에 진나라 의 구원병이 오길 기다리겠느냐는 뜻으로 황하가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나라는 초나라에게 항복하여 전쟁을 면했다고 한다.
★白眉(백미)
<白흰 백><眉눈썹 미>
양 눈썹 가운데 흰 털을 지닌 사람은 여러 사람 중에서도 뛰어 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촉한(蜀漢) 때의 사람인 마량(馬良)의 자는 계상(季常)이었는데 형제 다섯 사람이 모두 상(常) 자를 사용하여 자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들 형제를 마씨 오상(馬氏五常)이라고 불렀다. 이 다섯 형제는 한결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소문이 자자했지만, 이들 중 마량의 기량이 가장 뛰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마씨의 오상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 흰 눈썹(白眉)을 지닌 마량이 가장 훌륭하다.”라고 하였다.
그 후 같은 형제뿐만 아니라, 같은 연배나 분야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가르켜 ‘백미(白眉)’라고 부르게 되었다.
★伯牙絶絃(백아절현)
<伯맏 백><牙상아 아><絶끊을 절><絃줄 현>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때 백아(伯牙)라는 거문고의 명수가 있었다. 친구인 종자기(種子期)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좋구나, 거문고 소리여! 강물처럼 일렁이는구나.”하고 기뻐해 주었다. 백아는 크게 감격하여 “아아, 정말 자네의 듣는 귀는 대단하군. 자네의 마음은 내 맘 그대로가 아닌가. 자네 앞에 나오면 거문고 소리를 속일 수가 없네.”두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불행하게도 종자기가 병을 얻어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죽는 날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자기처럼 백아의 음악을 이해 하고 알아주는 진정한 우정을 지음(知音)이라고 한다.「呂覽」
★焚書坑儒(분서갱유)
<焚불사를 분><書글 서><坑구덩이 갱><儒선비 유>
서적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한다는 말로, 백성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뜻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주연을 베풀었다. 이때 주청신(周靑臣)과 순우월(淳于越)리 진시황 앞에서 대립된 의견을 놓고 싸웠다. 이런 태도는 임금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당파를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이를 금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안이 만들어졌다.
시서(詩書)를 바치게 해서 태워 없애고 구태여 시서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끌어내다 죽였다. 또 옛날의 것을 가지고 지금의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다 처형시킨다는 내용의 안을 채택하여 실시케 했다. 이것이 분서(焚書)이다. 또 정부를 비난하는 학자들은 5백 명이나 구덩이를 파묻어 죽였다. 이것이 갱유(坑儒)이다.
★不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
<아닐 불><함께 구><받들 대><하늘 천><의 지><원수 수>
함께 하늘을 같이 받들 수 없는 사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원수인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父之讐 弗與共戴天 兄弟之讐 不反兵 交遊之讐 不同國
부지수 불여공대천 형제지수 불반병 교유지수 부동국
(어버이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받들 수 없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가서 무기를 가져올 여유가 없다. 언제나 무기를 휴대하고 있다가 즉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하고 살 수 없다. 역시 죽여야 한다)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하나의 윤리관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鵬程萬里(붕정만리)
<鵬큰새 붕><程거리 정><萬일만 만><里이수 리>
상상 속의 매우 큰 새로 붕의 갈 길은 수만 리라는 뜻
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도 못하는 원대한 희망이
나 사업 계획을 비유하는 말이다.
☞북해(北海)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산다는 얘기가 있다.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크며 곤이 변해서 붕(鵬)이란 이름의 새가 되는데 이 새가 날면 하늘 전체를 뒤덮는 듯했고, 바람을 타고 북해 끝에서 남해 끝까지 난다고 한다.
작은 물새들은 9만 리나 나는 붕을 비웃으며 “저 붕이란 녀석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걸까? 우리들은 멀리 날지 못해도 충분히 즐겁게 날아다니며 사는데 저 붕은 어디까지 날아갈 작정이지?”하고 말했다.
결국 소인은 군자의 위대한 마음이나 행동을 알 턱이 없다.
이것이 대인과 소인의 다른 점이다. 「莊子」
★肥肉之嘆(비육지탄)
<肥넓적다리비><肉고기육><之의 지><嘆탄식할 탄>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살이 쪘다는 탄식
이다. 영웅이 부질없이 세월을 보내며 공을 세우비
못함을 탄식한 말이다.
☞常時身不離鞍 肥肉皆焇 今不復騎 脾裏肉生
상시신불리안 비육개소 금불부기 비리육생
日月如流 老將至 而功業不津 是以悲耳
일월여류 노장지 이공업부진 시이비이
(전에는 하루도 몸이 말 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도무지 살이 없더니, 이제는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으니 살이 올랐구나. 세월은 덧없이 가건만 이제껏 공업을 쌓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슬프도다) [三國志의 蜀志]
유비(劉備)는 조조(曹操)에게 쫓겨 전전하다가 끝내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 에게 몸을 의탁하고 살았다.
어느 날 유표가 술자리를 마련하여 유비를 불렀다. 유비는 술을 마시다가 변소를 갔는데 무심코 넓적다리를 보니까 살이 많이 쪘다. 그러자 자신의 신세가 한심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유표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눈물은 흘렸소?”
그러자 앞에 있는 글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四面楚歌(사면초가)
<四넉사><面겉면><楚초나라 초><歌노래 가>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적에게
완전히 포위당하여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빠진 것을 말한다. [史記]
☞초(楚)왕 항우(項羽)는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漢)나라 군사에게 포위당했다. 항우의 진영은 식량도 떨어지고 군사들도 사기가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한나라 장량(張良)이 꾀를 내어 한밤중에 초날 노래를 부르게 했다. 전쟁터에서 고향의 노래를 들은 초나라 군사들은 더욱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항우는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리자 크게 놀랐다.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다 차지했는가? 어찌 이렇게도 많은 초나라 사람이 있단 말이냐?’ 이제는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결별연을 열었다.
항우에게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총희(寵姬)가 있었는데 그림자같이 언제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슬픈 감정을 누를 길이 없어 사랑하는 우미인과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力拔山今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세상을 덮는다
역발산금기개세
時不利今騅不逝 때는 불리하고 추(말 이름)는 가지 않는다
시불리금추불서
騅不逝今可奈何 추는 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추불서금가나하
虞今虞今奈若何 우(虞)야 우야 너는 어찌할 것인가
우금우금나약하
반복해서 몇 번 노래하자 우미인도 이별의 슬픔을 가득 담고 애절하게 따라 불렀다.
“한나라 병사들은 이미 땅을 차지해 사방은 초나라 노랫소리뿐 대왕의 의기도 다되니, 천첩이 어찌 살아 남으리요.”
귀신일도 꺾을 듯했던 항우의 얼굴에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밤 항우는 간신히 한나라 군사들의 포위를 뚫고 탈출에 성공했지만 이미 천하의 대세는 한나라의 유방에게 기울어졌고, 항우는 고향이 그리워 일당 오강(烏江)까지 달려가긴 했으나 패군지장으로서 돌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결했다.
★蛇足(사족)
<蛇뱀 사><足다리 족>
화사첨족(畫蛇添足)의 준말로, 뱀을 그리는데 발까지 그려 넣는 다는 뜻으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스레 하는 것, 또는 필요 이상의 일을 함을 일컫는다. [史記, 戰國策]
☞초(楚)나라의 재상인 소양(昭陽)은 위(魏)나라를 쳐서 승리하자 군대를 이동시 켜 다시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제나라는 진진(陳軫)을 초나라에 보내 다음과 같이 소양을 설득했다.
“초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뱀을 먼저 그린 사람이 모두 마시기로 내기를 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제일 먼저 뱀을 그려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술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계속 뱀의 발을 그리며, 자신은 뱀의 발도 그릴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 나서 그의 술잔을 빼앗으며, ‘뱀은 원래 발이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발을 그리는가.’하고 술을 마셔 버렸습니다. 뱀의 발을 그린 사람은 끝내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재상께서는 지금 위나라를 공격하여 장군들을 죽이고 여러 성을 빼앗아 명성이 이미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또 군사를 이동시켜 제를 공격하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어도 관직은 현재 이상으로는 오르지 못합니다. 만약 패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며 이러쿵저러쿵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래서는 뱀을 그리고 다리까지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을 중지하고 제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얻고, 또 잃는 것이 없는 술책입니다.”
마침내 소양은 그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군대를 철수해 돌아갔다.
★殺身成人(살신성인)
<殺죽일 살><身몸 신><成이룰 성><人사람 인>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룩한다는 뜻으로, 몸
을 바쳐 올바른 도리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論語]
☞子曰 志士仁人無求生以害人 有殺身以成仁
자왈 지사인인무구생이해인 유살신이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있는 선비와 인자(仁者)는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일은 있느니라.”고 하였다)
지사(志士)는 굳은 뜻을 지닌 선비요, 인인(仁人)은 덕을 이룬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항상 인(仁 )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三顧草廬(삼고초려) 려
<三석 삼><顧돌아볼 고><草풀 초><廬오두막집 려>
유비(劉備)가 세 번이나 오두막집으로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서 참을성 있게 교섭하고 마음쓰는 것을 말한다. [三國演義]
☞한(漢)나라 말기에 천하가 매우 어지러웠다. 난세(亂世)였다. 유비(劉備)는 이 일을 함께 상의하고 지도를 구할 만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서서(徐庶)와 사마휘(司馬徽)가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나며 덕망이 높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추천했다.
유비는 예물을 들고 참모들과 와룡강(臥龍江)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공명을 찾아가 자기를 도와 한나라 왕실의 부흥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마침 제갈공명은 외출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유비는 다시 제갈공명을 찾아갔으나 역시 집에 없었다. 유비는 할 수 없이 편지를 남겨 놓고 발길을 돌렸다.
세번째로 유비는 다시 제갈공명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마침 제갈공명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잠에서 깰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유비를 만난 제갈공명은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유비의 뜻에 따라 한나라 부흥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桑田碧海(상전벽해)
<桑뽕나무 상><田밭 전><碧푸른 벽><海바다 해>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니, 곧 세상모습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말한다.
☞유정지(劉廷芝)의 대비백발옹(代悲白髮翁)이라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이
낙양성동도리화
飛來飛去落誰家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
비래비거낙수가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의 계집은 제 얼굴이 스스로도 아까운지
낙양여아석안색
行逢女兒長嘆息 가다가 계집이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다
행봉여아장탄식
今年花落顔色改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
금년화락안색개
明年花開復誰在 내년에 피는 꽃은 그 누가 보려는가
명년화개부수재
景聞桑田變成海 뽕나무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경문상전변성해 말이다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로 쓰고 있지만 보통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쓰인다.
★塞翁之馬(새옹지마)
<塞변방 새><翁할아버지 옹><之의 지><馬말 마>
인간 만사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무쌍하여 예측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淮南子 人間熏]
☞옛날 중국 북방 오랑캐들이 사는 호지(胡地)의 국경에 점술에 능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이유 없이 오랑캐 땅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복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몇 달 뒤 그 말은 오랑캐의 좋은 말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화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노인의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여 오랑캐 땅에서 온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복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과연 일년 뒤 오랑캐가 변방으로 쳐들어오자 젊은이들이 병사로 뽑혀 가서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음을 당했지만, 이 노인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宋襄之仁(송양지인)
<宋송나라 송><襄도울 양><之의 지><仁어질 인>
송나라 양공(襄公)이 베푼 자애라는 뜻으로, 필요 없는 동정을
비유하여 쓴다. [春秋 左氏傳]
☞춘추시대 송(宋)나라에서 양공(襄公)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즉 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천재지변이 계속되고 전쟁이 일어났다. 양공이 인솔하는 송군(宋軍)은 초군(楚軍)과 홍수(泓水) 근처에서 싸우게 되었다. 미처 포진(布陣)을 못한 초군이 겨우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재상 목이(目夷)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적은 우세하고 아군은 열세이니 정면으로 충돌하면 승부가 되지 않습니다.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 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공은 상대하지 않았다. 그 틈에 초군은 강을 건너서 진형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목이가 공격을 진언했으나 양공은 좀처럼 공격을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전투를 해도 비겁하게 싸우지는 않겠다는 것이 양공의 생각이기 때문 이었다.
결국 적의 싸울 준비가 완료된 다음 송군은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화살이 꽂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죽고 말았다.
★首邱初心(수구초심)
<首머리 수><邱언덕 구><初처음 초><心마음 심>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禮記 檀弓上篇]
☞古之人有言曰狐死正丘首仁也
고지인우언왈호사정구수인야
(옛사람이 이르길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여우는 구릉(丘陵)에 굴을 파고 산다고 한다. 그러다 외지에서 죽음을 맞게 되면 항상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 쪽으로 두고 죽는다.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회귀(回歸)하려는 것이 동물의 본성이지만, 특히 여우의 경우를 들어서 이런 성어가 생겼다.
★漱石枕流(수석침류)
<漱양치질 수><石돌 석><枕베개 침><流흐를 류>
침석수류(枕石漱流 , 돌을 베개로 하고 냇물로 양치질함)이라고 할 것을 수석침류(漱石枕流)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이를 단단하게 하고 귀를 씻기 위함이라는 뜻으로 억지 변명을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晋書 孫楚傳]
☞진(晋)나라 초기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속세를 떠나 산중에 은신하기로 작정하고 친구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때 ‘돌을 베개 삼 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흐름을 베개 삼는다(漱石枕流).’라고 했다.
친구가 그 말을 듣고 따지자 손초는 재빨리 억지 변명을 했다.
“흐름을 베개로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고 하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
★水魚之交(수어지교)
<水물 수><魚고기 어><之의 지><交사귈 교>
물고기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서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사이를 뜻한다. 깊은 교우 관계를 말하다.
[三國志 蜀志 諸葛亮傳]
☞先主與諸葛亮(선주여제갈량)으로 計事(계사)에 善之(선지)
라 情好日密(정호일밀)하니 관우(關羽)와 張飛等(장비등)이
不悅(불열)이어늘 先生曰(선생왈) 孤之有孔明(고지유공명)은 猶魚之有水(유어지유수)하니 願勿復言(원물부언)이어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과 일을 꾀하여서 정분이 날로 더 두터워졌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 등이 이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내게 제갈공명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 원컨대 그대들은 다시는 말을 하지 말 라.”고 하였다.)
★守株待兎(수주대토)
<守지킬 수><株그루터기 주><待기다릴대><兎토끼토>
밭에 있는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나오기만을 기
다린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집착하여 융통성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韓非子]
☞한 송(宋) 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밭 갈던 쟁기를 놓아 버리고,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잡으려고 했으나 다시는 토끼를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세사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자(韓非子)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법가(法家)의 이론을 정립했으며,
특히 탁월한 비유로 유명하다.
★脣亡齒寒(순망치한)
<입술 순><없을 망><이 치><추울 한>
사람의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한쪽이 망하면 한쪽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됨을 비유해서 일 컫는다.
[春秋左氏 僖公]
☞춘추시대 진헌공(晋獻公)은 전부터 괵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그러려면 우(虞)나라를 지나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뇌물을 보내어 진(晋)나라와 우(虞)나라의 우의를 약속하며 길을 비켜 줄 것을
청했다.
우공은 많은 뇌물과 감언에 솔깃하여 청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러자 궁지기(宮之奇)라는 현명한 신하가 이를 말리며 우공에게 충고했다.
“괵나라는 우리 우나라와 한몸과 같으므로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도 망할것입니다.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가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원수라 고도 생각할 수 있는 진(晋)나라 군사들이 우리 나라를 통과하게 해서는 안 됩니 다.”
이렇게 설득을 해도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공은 듣지 않았다. 결국 궁지기는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일족을 이끌고 우나라에서 떠났다. 과연 얼마 안 되어 진나라는 괵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나중에는 우나라까지 공격해 들어왔다. 우공은 포로 신셋가 되었고 궁지기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羊頭狗肉(양두구육)
<羊양 양><頭머리 두><狗개 구><肉고기 육>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것
으로, 겉은 그럴 듯하고 보기 좋으나 속은 허술한 경
우에 사용한다.「恒言錄 晏子春秋-항언록 안자춘추」
☞춘추시대의 제영공(齊靈公)은 묘령의 여자에게 남장을 시켜 놓고 즐기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민간에까지 남장을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제영공은 백성들이 임금의 흉내를 낸다고 해서 남장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엄하게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유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제영공은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께서 그러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데 백성들에게 금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양의 머리를 문에다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영공은 곧 궁중에서도 남장을 금했다. 그랬더니 즉시 제나라 전체에 남장한 여자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쇠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말고기를 판다고 해도 같은 뜻이다.
★梁上君子(양상군자)
<대들보 양><위 상><군자 군><아들 자>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일컫는 말이다. 또 천장의 쥐를 말할 때도 사용한다. [後漢書 陳寔傳]
☞진식(陳寔)의 자는 중궁(仲弓)이었다. 일찍이 현리(縣吏)의 자리에 있었는데 뜻이 있어 글을 좋아하므로 현령(縣令)이 이를 기특하게 여기어 태학(太學)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나중에는 태구장(太丘長)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에 들어와서 들보 위에 앉아 있었다. 진식이 슬쩍 눈치채고는 자손들을 불러 놓고 이를 훈계하여 말하되, “무릇 착하지 못한 사람은 본래 악한 것이 아니라,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다. 양상 군자가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도둑이 크게 놀라 제발로 내려와서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비니, “그대의 모습을 보니 약한 사람 같지 않다. 분명 가난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비단 두 필을 주었다.
★漁父之利(어부지리)
<고기잡을 어><아버지 부><의 지><이로울 리>
황새와 조개가 서로 싸우는 바람에 어부가 둘 다 잡아
이익을 보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이해 관계로 서로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득을 보는 경우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戰國策」
☞전국시대의 연(燕)은 중국 북동부에 위치하면서 서쪽으로는 조(趙), 남쪽으로는 제(齊)와 접하고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침략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 하자 소대(蘇代)가 연나라를 위하여 존라의 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오늘 제가 오다가 역수(易水 )를 지나려니 조개가 마침 나와서 볕을 쬐는데 황새가 그 조개를 쪼았습니다. 조개가 입을 다물어 황새의 부리를 물자 황새가 말하기를, ‘오늘도 빅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니, 조개도 황새에게 ‘오늘도 못 빼내고 내일도 못 빼내면, 황새 너에게도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이 서로 놓으려 하지 않으니 어부가 둘을 함께 잡아갔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존라와 연나라가 서로 오랫동안 싸우다가 백성들이 피폐하게 되면, 저는 강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될까 걱정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혜왕은 이 말을 듣고 연나라 침공을 포기했다.
★緣木求魚(연목구어)
<緣인연 연><木나무 목><求구할 구><魚고기 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孟子 梁惠王上]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제의 환공(桓公)과 진(晋)의 문공(文公)의 패엄을 듣고 싶어하자 맹자가 물었
다.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날와 원한을 맺는 것이 좋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자 맹자가 말했다.
然則王之所大欲 可知己 欲辟土地朝秦楚 莅中國而撫四夷也
연즉왕지소대욕 가지기 욕벽토지조진초 이중국이무사이야
以若所爲 求芣所欲 猶緣木而求魚也
이약소위 구부소욕 유연목이구어야
(그래서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이미 다 알겠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秦)이나 초(楚)같은 대국이 인사를 드리러 오게 하고, 중국 진토를 지배해서 사방의 오랑캐들을 그런 무력적인 방법으로 거느리려고 하신는 것이지요. 하나, 그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놀라며 물었다.
“그토록 무리란 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예,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보다 더 무리입니다.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다섯 오><열 십><걸음 보><일백 백><걸음 보>
오십 보를 도망친 자나 백 보를 도망친 자나 모두 비겁한 것은 같다. 외면상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
「孟子 梁惠王篇」
☞양혜왕(梁惠王)이 맹자(孟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저는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에 흉년이 들면 하동(河東)의 곡식을 옮겨다 줍니다. 그리고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다른 날는 저처럼 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우리 나라의 백성이 더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서로 격전을 벌이고자 개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고 합시다. 싸움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병사가 겁을 먹고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창을 끌면서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백 보쯤 가서 섰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도망쳤던 자가 오십 보에서 멈춰 서더니 백 보를 도망친 자에게 겁쟁이라며 비웃었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왕께서 그것을 아신다면 인접 국가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결국 인접국의 정치나 양혜왕의 정치나 맹자의 왕도(王道)에서 보면 아무리 백성을 생각한다 해도 역시 오십 보 백 보의 차이라고 말한 것이다.
★吳越同舟(오월동주)
<吳오나라 오><越월나라 월><同같을 동><舟배 주>
①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이 한자리에 동석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②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한 배에 탄 이상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협력하게 된다 는 뜻이다. [孫子]
☞손자(孫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게 되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돕는 것이 마치 좌우의 손이 서로 협력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원수처럼 서로 미원하는 사람들도 죽음 직전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서로 힘을 합해 같이 노력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이런 본뜻과는 달리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한자리에 있는 경우에 더 많이 쓰인다.
★烏合之衆(오합지중)
<烏까마귀 오><合모일 합><之의 지><衆무리 중>
까마귀가 모인 것같이 질서가 없고 규칙이 없는 군중을 일컫는다. 어중이 떠중이의 모임을 가리키며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고도 한다.
☞전한(前漢) 말엽 유수(劉秀)가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을 몰아내고 경제(景帝)의 자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삼아 다시 한(漢)의 세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중 왕랑이란 자가 스스로 천자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으므로 다음해 유수는 군대를 이끌고 정벌에 나섰다.
그러자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왕랑을 두둔하고 나섰다. 유수의 인격을 흠모해서 부하가 된 경감(耿龕)이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왕랑이란 본래 이름도 없는 도적인데 황제의 이름을 사칭하여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장안에 들어가 군대를 이끌고 태원(太原), 대군(大郡)방면으로 나아가 오합지중인 왕랑의 군사를 친다면 썩은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왕랑을 포로로 잡게 될 것입니다.” 경감은 유수를 도와 많은 무공을 세우고 후에 건의대장군(建儀大將軍)에 임명 되었다고 한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따뜻할 온><옛 고><말 이을 이><알 지><새 신>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줄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論語 爲政]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옛것을 되새길 줄 알고 새것을 살필 줄 알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됨직하다)
고전의 근본 정신을 잘 알아서 새 지식을 바르게 인식하면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학문을 그런 방법으로 섭취해야 참다운 학문을 닦을 수 있다는 말이다.
★臥薪嘗膽(와신상담)
<臥누울 와><薪섶 신><嘗맛볼상><膽쓸개 담>
섶에 누워서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하여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심신을 단련함을 비유한 말이다.
[十八史 ]
☞주경왕(周敬王) 24년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군사를 이끌고 월(越)나라로 쳐들어 갔다가, 월나라 왕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죽었다. 그는 죽기 직전 아들 이 부차(夫差)에게 복수를 부탁하였다. 그 후 부차는 땔나무 위에서 자며, 자기 방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부차야! 월나라 사람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의 결심을 듣고 기선을 제압하려고 오나라에 쳐들어 갔으나 부차에게 패했다. 그는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간신히 회계산으로 달아났지만, 부차에게 신하가 되기로 약조하고 굴욕적으로 항복을 하게 되었다.
온갖 모욕을 겪고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옆에 항상 곰의 쓸개를 달아 두었다. 그리고 이 쓸개를 핥으며,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하고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짐했다.
그후 월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구츤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자만에 빠진 오나라 왕 부차는 결국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자살했다. 이렇게 하여 구천은 오를 대신해서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와신상담은 오나라 왕 부차의 와신(臥薪)과 월나라 왕 구천의 상담(嘗膽)이 합쳐진 것이다.
★龍頭蛇尾(용두사미)
<龍용 룡><頭머리 두><蛇뱀 사><尾꼬리 미>
제대로 완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는 경우를 가르킨다.
[碧巖集]
☞진존자는 도를 깨친 중이었는데 여기저기 유랑하다가 어떤 중을 만나 서로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상대가 “예잇!”하고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그 중의 재치 있는 태도와 말재간은 제법 도를 닦은 도승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존자는 ‘이 중이 얼른 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이기는 한데 역시 참으로 도를 깨우치지는 못한 것 같다. 모르긴 해도 한갓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이기 쉬울 것 같다(似則似 是則未是 只恐龍頭蛇尾).’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에게 물었다.
“그대는 호령하는 위세는 좋은데, 소리를 외친 뒤에는 무엇으로 어떻게 그 마무리를 지을 생각인가?”
그러자 중은 그만 뱀의 꼬리를 내보이는 것처럼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愚公移山(우공이산)
<愚어리석을 우><公벼슬 공><移옮길 이><山뫼 산>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列子」
☞태행산(太行山)은 둘레가 칠백 리나 되고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커다란 산으로, 원래는 기주(冀州) 남쪽, 하양(河陽) 북쪽에 있었다. 우공(愚公)은 나이가 아흔 가까이 된 노인이었다.
그는 태행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나다니기가 몹시 불편하였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이 산을 옮기기로 했다. 그는 아들 손자와 함께 산을 허물고 돌을 깨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渤海)까지 가서 버리고 왔는데, 한 번 갔다 오는데 일년이 걸렷다고 한다.
하곡(河曲)에 사는 지수(智叟)라는 노인이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그 약한 힘으로 어떻게 많은 도과 흙을 운반 하려 하는가?”
그러자 우공이 “당신은 어찌 그렇게 소견이 좁은가? 내가 죽더라도 나에게는 자식이 남아 있고, 그 자식이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다시 자식을 낳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는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지만, 산은 결코 불어나는 일이 없네. 그러니 언젠가는 산이 평평해질 날이 있을 것일세.”라고 말했다. 지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산신령은 이 말을 듣고 우공의 말대로 산이 없어질까 겁이 났다. 그래서 옥황상제에게 이를 말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지금의 자리로 태행산을 옮겨 주었다.
★有備無患(유비무환)
<有있을 유><備갖출 비><無없을 무><患근심 환>
사전에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뒷걱정이 없다는 말 이다.
「書經 春秋左氏傳」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에서는 나라의 위급함을 진나라에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진의 도승은 즉시 노(魯)․제(齊)․조(曹)나라등 12개국에 이 사실을 알려 연합군을 편성하여 위강의 지휘로 정나라 도성을 둘러싸고는 송나라에 대한 침략 야욕을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정나라는 속구무책이었으므로, 송․진․제 등의 12개국과 불가침과 화해 조약을 맺고 말았다.
초나라는 정나라가 북방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여 여겨 군대를 풀어 정나라를 침공했다. 초나라 군대의 강대함을 안 정나라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할 수 없이 초나라와도 맹약을 체결했다.
정나라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북방 12개국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북방 12개국에서는 또 연합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쳤다.
힘이 부친 정나라는 화친(和親)을 청했고 진이 응해 주자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수많은 보물을 선물로 보냈으나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편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
(居安思危 費 有備則無患 거안사위 사즉유비 유비즉무환).”
이 말을 들은 도공은 위강의 넓은 식견에 새삼 탄복했다고 한다.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오얏나무 이><아래 하><아닐 불><정돈할 정><갓 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바꾸어 신으면 마치 오이를 도둑질하는 것같이 보이고, 오얏이 익은 나무밑에서 손을 들어 관을 고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므로, 그렇듯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하라는 뜻이다. 「烈女傳」
☞전국시대 제(齊)나라는 위왕(威王)이 왕위에 있었으나 국정은 영신(佞臣)인 주파호(周破胡)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위왕의 후궁 중에 우희(虞姬)라는 여자가 있어 주파호의 비행을 왕에게 호소했다. 주파호는 그 사실을 알고 우희를 모함하고자 우희와 북곽 선생의 사이가 수상하다고 떠들어댔다. 왕은 우희를 불러 사실 여부를 물었다.
“저는 오랫동안 진심으로 왕을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만 지금 이렇게 간사한자의 모함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결백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만약 제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하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하라는 말처럼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않았던 점이 큰 실수였습니다.”
우희가 진심으로 이렇게 충언하자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서, 주파호를 죽이고 내정을 바로잡았으므로 제나라는 크게 안정이 되었다.
★一刻千金(일각천금)
<一한 일><刻시각 각><千일천 천><金쇠 금>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의 값어치가 있을 정도로 귀중 하다는 뜻이다. 「蘇東坡의 春夜行」
☞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달밤의 한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네
춘소일각치천금
花有淸香月有陰 꽃에는 맑은 향기가 있고 달은 흐려져 있네
화유청향월유음
歌管樓臺聲寂寂 노래 부르고 피리 불던 누대도 소리 없이
가관루대성적적 적적하네
鞦韆院落夜沈沈 그네가 걸려 있는 안뜰은 밤만 깊어 가누나
추천원낙야침침
★戰戰兢兢(전전긍긍)
<戰싸울 전><戰싸울 전><兢조심할 긍><兢조심할 긍>
겁을 먹고 벌벌 떨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말한다.
☞ 不敢暴虎 不敢馮河 맨손으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
불감폭호 불감풍하 서는 황하를 건널 수 없네
人知其一 莫知其他 사람들이 그 한 가지는 알고 있으나 다른 것
인지기일 막지기타 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戰戰兢兢 如臨深淵 생각하면 언제나 벌벌 떨면서 깊고 깊은
전전긍긍 여임심연 못가에 임하는 심정
如履薄氷 엷디 엷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
여리박빙
★朝三暮四(조삼모사)
<아침 조><석 삼><저물 모><넉 사>
간사환 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을 말한다.
「列子」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원숭이를 좋아하여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와 서로 뜻이 통할 정도로 원숭이를 아끼고 사랑했 지만, 원숭이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식량을 제한해야만 했다. 그래서 먼저 원숭이에게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면 어떻겠는가?”라고 하자, 모든 원숭이들이 일어나 화를 냈다. 저공은 바로 이어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면 어떻겠는가?” 라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뛸 둣이 좋아했다.
열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지자(智者)가 우자(愚者)를 농락하고, 성인이 중인을 농락하는 것도 저공이 지(智)로 원숭이들을 농락하는 것과 같다.”
★指鹿爲馬(지록위마)
<指손가락 지><鹿사슴 록><爲할 위><馬말 마>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으로,
①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과,
②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임을 말한다.
☞진시황 27년 7월 시황제는 순행 도중 사구(沙丘)의 평대(平臺)에서 죽었다. 시황은 죽기에 앞서 만리장성에 가 있는 태자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식을 치르게 하라는 조서를 남겼다.
그 후 진나라는 승상 조고(趙高)가 권력을 장악하여, 왕은 단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조고는 진시황의 아들인 부소를 죽이고, 둘째 아들인 호해(胡亥)를 왕으로 세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여러 신하들 중에 자기편 사람이 누군인지 분명하게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왕에게 바치면서 “말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승상이 잘못 알았소. 사슴을 어째서 말이라고 하오.”라고 했다. 왕은 답답하여 주위에 있던 여러 신하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떤 신하는 대답을 못하고, 어떤 신하는 사슴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조고는 이제 자신을 편들어 주는 신하와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뒤에서 사슴이라고 대답한 신하들을 모두 법에 걸어 죽여 버렸다.
그 뒤로 신하들은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의 잘못을 사실대로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처럼 조고가 권력을 한손에 잡고 마음대로 휘두르던 진나라는 결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국운이 쇠하였다.
★靑出於藍(청출어람)
<靑푸를 청><出날 출><於어조사 어><藍쪽 람>
푸른 빛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말이다.
☞學不可以已 靑出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학불가이이 청출어람이청어람 빙수위지이한어수
(학문이란 잠시도 쉬어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만들지만 물보다 더 차다)
스승에게서 배우기는 하지만 스승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더 깊고 높은 학문과 덕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荀子 勸學篇」
★他山之石(타산지석)
<他다른 타><山뫼 산><之의 지><石돌 석>
타인 소유의 산에서 나온 돌을 가지고 옥을 갈 수 있다는 뜻으로, 군자도 소인의 행동을 보고 수양과 학식 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詩經」
☞아래의 시는 선왕이 초야에 있는 현자를 구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鶴鳴于九皐 학이 깊은 산속의 울어도
학명우구고
聲聞于天 그 소리는 하늘까지 울려 퍼진다
성문우천
魚在于渚 물가에 나가 노는 물고기라도
어재우저
或潛在淵 때로는 연못 깊이 숨기도 한다
혹잠재연
樂彼之園 즐거운 저기 저 동산 위에는
낙피지원
爰有樹檀 의지하고 쉴 한 그루의 항목은 있어도
원유수단
其下維穀 그 밑에 나쁜 나무만 있어 그렇게 안 된다
기하유곡
他人之石 다른 사람 산의 몹쓸 돌이지만
타인지석
可以攻玉 구슬은 그것으로 갈아서 빛이 난다
가이공옥
★推敲(퇴고)
<밀 퇴><두드릴 고>
글을 다듬고 고친다는 뜻이다. 「劉賓客嘉和錄」
☞당(唐)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가 장안(長安)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이다.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데 시상이 떠올랐다.
閑居少隣竝 인가가 드문 곳에 한가한 집이 있어서
한거소린병
草徑入荒園 풀에 묻힌 길이 거친 전원과 통하고 있네
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자고
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승고월하문
이 시에서 고(敲)보다 퇴(推)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귀를 탄채 두 글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가 경조군(京兆君) 벼슬에 있는 한유(韓愈)의 행차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행차를 막은 혐의로 한유 앞으로 끌려온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한유는 말 위에서 한참 동안 그 시를 읊어 보다가 ‘퇴’보다는 ‘고’가 좋다고 하고는 가도와 고삐를 나란히 하여 행차를 계속했다. 이때부터 글을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하게 되었다.
★破瓜之年(파과지년)
<破깨뜨릴 파><瓜오이 과><之의 지><年해 년>
여자의 나이 16세와 남자의 나이 64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瓜)라는 글자를 쪼개 보념 팔(八)자가 둘이 된다. 그래서 여자를 참외에 비유하고, 또 그것을 깨면 여덟이 둘이 되므로, 여자의 나이 열여섯을 가리키게 된다. 첫 경도(經度)가 있게 되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남자의 나이 예순넷을 가리켜 파과(破瓜)라고 하는 것은 여덟을 서로 곱 하면 예순넷이 되기 때문인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들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螢雪之功(형설지공)
<螢반딧불 형><雪눈 설><之의 지><功공 공>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하여 성공했다는 뜻으로, 가
난과 어려운 역경을 물리치고 고학한 성과를 말한다.
「蒙求」
☞진(晋)나라의 차윤(車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밤에 책을 읽으려 해도 등잔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비단 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고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그는 나중에 관직이 상서랑(尙書郞)에까지 이르렀다.
또 진(晋)나라의 손강(孫康)도 역시 집안이 가난해서 기름을 살 수가 없었는데 창가에 쌓인 흰 눈의 빛을 빌려서 책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후세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했다.
★畵龍點睛(화룡점정)
<畵그림 화><龍용 룡><點점찍을 점><睛눈동자 정>
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뜻
으로, 최후의 손질을 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
키는 것을 뜻한다. 「水衡記」
☞장승요(張僧繇)는 양(梁)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로, 그의 그림에 대한 일화들이 많이 남아 있다. 수도인 금릉(金陵) 안락사(安樂寺)의 벽에 네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눈동자를 그리면 그림속의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자 그는 용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벽 속에서 뇌광(雷光)이 빛나고 요란스런 뇌성이 울리더니 비늘을 번쩍이며 용이 벽에서 튀 어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세 마리의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