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33보> - 중국에도 성탄절이 있을까?
나는 저녁만 되면 100여 개나 되는 중국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한다.
혹시나 중국어 듣기 연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나 싶어서다.
그러다가 어쩌다 마음에 드는 채널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바로 거기에 시선이 고정되고 만다.
이를 테면 역사, 철학 강의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같은 것 말이다.
이것들은 강의하는 사람이나 내레이션을 맡은 사람이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발음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연말연시가 크리스마스와 겹치게 되므로 통상 크리스마스 분위기부터 띄우고 볼 일인데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이다.
분명 밖에 나가면 어느 거리, 어느 상점 할 것 없이 캐럴송으로 도배하다시피 해서 분위기가 한층 업 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건 뭔가 중국 정부 혹은 언론통제기관에서 관리를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올해 연말연시를 여기서 보내야 하는 벗씨와 난 이러한 방송의 분위기에 그대로 편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벌써 몇 주 전부터 시내 곳곳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피려고 이곳저곳을 숱하게 찾아다녔다.
이를 테면 중국의 토종 할인매장인 따룬파(大润发)에서부터 고급 백화점인 파리춘텐(巴黎春天)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결론은 여기가 정말 중국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위위안 상가 도매시장. 크리스마스 장식품 사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
먼저 할인매장부터 보자.
우리 동네에 있는 따룬파란 할인매장은 추석이 끝나자마자 바로 겨울 상품 할인행사에 들어가더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 행사에 들어가고 있었다.
1층에 있는 식당, 옷가게부터 시작해서 2층에 있는 본 매장까지 전부 크리스마스 캐럴과 소품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참으로 신기했다.
중국 사람들은 원래부터 중추절과 국경절, 그리고 춘추절(음력설)을 최고의 명절 혹은 연휴로 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직 일당독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중국에서 이런 것을 경험하고 보니 자못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상하이에서 최대의 관광지인 위위안(豫园)과 붙어 있는 생활용품 도매시장에 갔을 때였다.
그렇게나 넓고 넓은 상가 전체가 크리스마스 장식품과 선물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물론 중국 특유의 신년 맞이 행사용품인 빨강색 장식품들과 어울려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물론이고 연말연시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이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이겠지만 산타할아버지, 루돌프사슴, 반짝이 전구, 별, 은박지, 종, 그리고 눈을 상징하는 솜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쇼핑객들도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가족은 물론, 청춘남녀에 이르기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우리와 똑같은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곳 상하이는 말이 중국이지 실제로는 선진국의 어느 대도시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 숫자나, 다국적기업의 수, 교통 체계의 발전정도,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고층빌딩, 화려한 불빛, 그리고 중국어 혹은 중국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 등 모든 면에서 이미 선진국의 여느 대도시를 능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께는 지난 학기에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랑 얼굴도 보고 송년회도 할 겸 해서 상하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곳 중의 하나인 일본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식당은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푸똥(浦东) 지역에 있었는데 지하철을 내리고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주위 전체가 고층 빌딩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그 시간이 마침 퇴근 시간과 중복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높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라는 것은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인파 문제가 아니라 그 빌딩 입구 현관에 설치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관해서이다.
일단 건물 밖에서 보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의 1층 안이 다 보인다.
그리고 수백 평, 혹은 수천 평이나 되는 건물 로비 전체가 형형색색의 전구 불빛과 장식품들로 인해 현란하기 그지없다.
그 건물, 혹은 그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빠지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외국계 기업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도로상황이나 건물상황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겉모습만 보면, 이곳이 중국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자기네 전통문화로 인식하는 선진국의 도시임에는 분명한 것이었다.
(상하이의 빌딩 1층 로비에는 대부분 이런 성탄절 장식품들이...)
어제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는 일부러 우리나라의 동대문상가에 해당하는 의류시장엘 가 봤다.
이곳 상하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도매시장인 치푸루(七浦路)시장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여기에도 한파가 덮치는 바람에 제법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나 되는 대형 건물과 상가에는 선물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경기가 이 정도라면 중국은 절대로 못 먹고 살 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기뿐만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모인다는 영화관은 어떨까 싶어 택시를 잡아타고는 변두리 영화관으로 가 봤다.
이곳 또한 변두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입장권은 이미 매진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내일까지 모두 매진이라고 했다.
영화표 한 장에 무려 85위안(우리 돈 15,000원)이라는 금액에도 불구하고 멀티 상영관 전부가 매진이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는데 이곳 젊은이들도 오늘 같은 성탄전야를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자 다시 식당을 찾았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식당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다섯 시, 여섯 시를 넘어서자 이제는 자리가 없어졌다.
식당 내에 겨우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음식 주문이 언제 나오는지를 알 수 없어 온통 아우성들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도 다른 것으로 바뀌어 나오고, 새로 주문한 메뉴 또한 언제 나올지를 알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 시간에 걸쳐 겨우 라면 정도를 챙겨먹고는 우리 집 근처에서는 제일 붐빈다는 우쟈오창(五角场) 거리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는 택시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거리로 몰려나온 가족들과 연인들로 인해 택시를 잡는다는 것은 마치 꼬리잡기 게임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우 몰려서 이리 쫓아다니고 저리 쫓아다니고···.
게다가 퇴근시간까지 겹쳤으므로 상황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리고 또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오는 큰 도로와 작은 도로도 어느 것 할 것 없이 차량들로 인해 꽉꽉 막혀서는 꼼짝달싹 할 수조차도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방송에서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 것을 어떻게 저렇게도 잘 알고 있었을까?
(크리스마스 이브가 뭔지... 대부분 식당마다 이렇게 줄을 섰어요.)
드디어 우쟈오창에 도착했다.
파리춘텐이란 대형 백화점은 물론이고, 거기에 딸린 수백, 수천 개의 가게들엔 선물 사러 온 사람들로 벌써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더욱 심한 것은 식당이었다.
간이식당, 작은 식당, 큰 식당 할 것 없이 사람들로 차 있었고, 식당 밖에까지 수십 미터씩, 혹은 수십 명씩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도대체 오늘이 다 무엇이건데 이토록 사람들이 모여든단 말인가.
그 많은 인구가 왜 하필 오늘을 빌어 이렇게 식당을 찾아 밥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하하하.
바로 내가 젊었을 때, 아니 심지어 이곳 상하이에 와 있는 지금도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데 누굴 탓하란 말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지는데 무슨 원인을 또 찾으란 말인가.
어쨌든 아무리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된 중국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가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게다가 아직도 서양이라면 대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곳 중국에서, 이렇게 크리스마스이브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고 하겠다.
방송에서 아무리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을 보내지 않은들, 성탄절 분위기에 들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억누를 수가 있단 말인가?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2010년 12월 25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멋진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 문자 주세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오우~이사님. 큰 미소는 여전하시네요. 아님, 너무 씬나서 큰 미소를 지으시는 건가? ㅋㅋ 성탄절엔 저도 모르게 정말 강아지처럼 뛰어놀고 싶어요. 이사님처럼 이날은 절대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여전히 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ㅋㅋ ....벌써 새해가 다가오고 몇 시간 안남았네요.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금새 내년이 되겠지요? 2011년 신년의 상하이도 궁금합니다~~~~ 그럼 또 들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거의 100여 개나 되는 채널 모두가 연말 특집 오락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네요. 제 손이 너무 바쁩니다. 노래 한 곡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채널로 돌리느라고. 정말 앉아서 중국 구경 다하고 있습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