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기도 용서하십시오 1

[티나]

용서하십시오 1

글 :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

제가 태어난 나라의 
정든 산천과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맑고도 쓸쓸해지는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들녘의 볏단처럼 잘 익은
감사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주님
오늘은 서투르게나마
그동안 미루어 둔 용서의 기도를
제 자신의 기도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알면서도 감추고 싶고
되도록이면 말하고 싶지 않던
수많은 잘못들 중 다만 몇 가지라도
꼭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주님
모든 것 위에
당신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주 "딴 곳"에 가서 헤매는 제 마음을
기도의 시간조차
온전히 봉헌하지 못하고
자디잔 근심에 매여 사는 습관을
자유롭길 원하면서도 다 비우지 못하고
늘 조금씩 남겨 두는 욕심을
용서하십시오.
좀더 넓고 큰 세계로 나가지 못하고
이기적인 뜻과 개인적인 필요에
근시안적으로 집착하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주님
당신의 은총 속에
기쁨의 선물로 받아 안았던
수많은 만남의 관계들이
더러는 꽃을 피우고 열매 맺었으나
더러는 저의 게르름과 무관심
지나친 경계심과 냉정함으로
이내 시들거나 말라 버렸음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몸, 마음이 약하고 지친 이들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조차
좀더 성실한 벗이 되지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가족, 친지,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좀더 깊이 함께 나누지 못하고
때로는 홀로 떠 있는 섬처럼
거리를 두고 살았음을 용서하십시오
다른 이의 의견이나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오만함을
편견, 미움, 비난의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도
늘상 "사랑만이 전부다"라고 강조했던
저희 위선과 비겁함을 용서하십시오

꼭 타야 할 기차를 놓치거나
학교에 지각을 해서 당황하는 꿈을
요즘도 자주 꾸고 사는 저는
현실 속에서도 미루어 둔 일들이
너무 많아 부끄럽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조차
준비성 없이 허둥대는 저를
자신이 맡은 일을
사랑보다는 의무로 행할 때가 많은 저를
사소한 일로 좌절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안일 무사주의에 빠져
생명력과 창의력을 잃어버린
저희 진부한 일상을 용서하십시오

오늘도 마음을 열기만 하면
어진 눈빛의 가을 하늘로
낮은 데까지 내려오시는 주님
오랫동안 용서를 청하지 않아
뻣뻣하게 무디어진 제 마음이
이제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용서의 은혜만으로도
거듭날 수 있게 하소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아
노래 또한 잃어버렸던 제 마음이
이제 다시 기쁨의 날개를 달고
찬미의 새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또 한 해가 저물기 전에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 그동안의 잘못을 용하십시오
-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 사랑이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계절의 기도」中에서  
 
수녀님! 사랑합니다.

[아이언니]

그동안 티나님께서 정성스럽게 올려 주신 수녀님의 글들이 이 방으로 다 이사할 줄 알았습니더. ㅎㅎㅎ...어린왕자님께서 정말 수고를 많이 하시네요....^^

[김신명]

티나님 감사합니다.

[하얀바람]

마음 내려 놓으며 사랑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효주아녜스]

고맙습니다. 용서 할줄 아는 내가 되어 보렵니다.

[작은언니]

수녀님의 이 시는 저를 참으로 부끄럽게 합니다. 저도 고백할게 참 많은데... 아직도 제 속에 끌어 안고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 언제나 속시원히 용서 청할 수 있을런지요?

[솔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을 마음 안에 가득채워 힘들어 합니까? 비우고 비워도 넘치는 삶 앞에 무력한 우리! 용서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