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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소재지에서 무안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옥정리 우측으로 광주·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지형의 느러지(地 :물돌이)를 관망할 수 있다는 이정표를 두 곳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비룡산(686m)에 정상에 오르면 느러지(地
:물돌이)를 관망할 수 있는 나주 곡강정(曲江亭)과 높이 15m의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물 흐름으로 만들어진 땅의 형태가 한반도를 닮아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포진(南浦津)이라고도 불렀던
영산강(榮山江)이 나주와 무안에 이르면 강폭이 500~600m 정도 넓어지고 곡류하는데,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석관정에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구간을 흐르는 영산강은 ’S’자로 굽이돌고, 이 지점에서 한반도 형상을 한 이산리 일대에서 물길이 U’자로 굽이도는 강을 ’영산강 느러지’라
부른다.
영산(榮山江)의 명칭은 세종실록지리지와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보면 나주 동쪽에 흐르는 강을 광탄강(廣灘江)이라 했고, 영산포 부근에서는 남포강(南浦江), 금강(錦江), 목포강(木浦江)이라 했으며 강폭이 넓어져 양양한 흐름을 보여주는 동강면에서는 사호강(沙湖江), 더 아래로 내려가 심하게 곡류하는 곳에 이르면 곡강(曲江)이라 불렀다. 바라다 보이는 이곳의 특징을 살려 곡강이라 했다.
물살이 한없이 느려진다는 뜻으로 그 곡점, 음양의 접합과 같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이 굽음의 미학을 이루며
그 신비감의 절정을 이르는 곳에 쉼터 곡강정(曲江亭)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선비들의 풍류로 우리도 개운하게 놀아보자.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성현(成俔:1439~1504)이 "바라보니 마음 절로 상쾌해지고 / 정신은 먼지 세상 벗어나는 듯 하여라 一望意自快 再睹神飄然"하고 읊었던 싯
귀절이 떠오르게 했다.
이 한반도형 땅은 농가와 구릉이 남한과 북한의 경계 모양 아래위로 나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풍치를 두고
조선시대의 가장 험난한 격동기의 삶을 살면서도 한국사에서 절개와 지조의 한 상징의 인물로 자리하고 있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
선조 3∼1652 효종 3)이 1601년(선조34) 8월, 그의 나이 32세 때에 제주 안무어사(濟州按撫御史)가 되어 제주도로 가는 길에
일대를 지나면서 이렇게 감흥을 흘렸다.
푸른 풀에 흰 모래의 강은 비단 편 것 같고 / 푸른 구름 붉은 누각 버들은 또 실
같으리
동정호의 경치 어찌 영산강(濚山江)만 할 것이며 / 천주 어찌 서석봉(무등산)의
기이함만 하겠는가
靑草白沙江似練 碧雲朱閣柳如絲 洞庭孰與濚山勝 天柱何如瑞石奇
방초에 답청할 날 오늘이 맞건마는 / 맑은 동이 흰 술은 옛 친구가 아닐세
芳草踏靑今日是 淸尊浮白故人非 -申光漢
시야에 한 눈으로 들어오지 않는 광활한 풍경이었다. 조선후기의
문신이요 이조판서 좌찬성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은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두고 나그네 대신
이렇게 읊었다.
산꼭대기 또 꼭대기를 찾아 / 푸른 아지랑이 속 휘저어 가니
구름 걷히자 산은 더 높게만 보여
/ 눈앞이 아득하기만 하네
山上復山上 飛笻翠微中 雲收勢轉高 眼力渺無窮
하늘 아래 저리도 넓은 평야 / 바다는 흐르는 물 다
받아들이고
뭇 산들은 발 아래 돌며 / 나무 끝엔 무지개가 걸려 있네
天垂平野闊 海涵衆流空 足底低群嶺
林梢耀霽虹
우주 밖을 거니는 기분
/ 내 지금 바람을 타고 가는 것일까
신선은 어디메 있다더냐 / 진실로 계합하는 마음 통하기 어려워라
불로장생약 만드는 법이나 배워
/ 단숨에 영주 봉래산으로 달려갈꺼나
神遊八極表 曠然思御風 羽客何處在 眞契杳難通 願學鍊丹術 一擧凌瀛蓬
모든
자연물을 점으로 만들어 버린 그 절경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곳의 정자, 곡강정(曲江亭)은 8모정으로 최근에 지어졌으나 우리네 선비들은 “스님은
산에 깃들고, 선비는 강을 좇았다.”다며 정자와 서원은 크고 작은 강을 가깝게 두고 있다. 특히 그들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인륜의
최상의 선善은 물(水)과 같다.'는 노자의 무의자연 (無爲自然)의 물의 성질에 비유한 무위 사상을 흠모했다고 감안하면 오래전에 정자가 자리했다는
것은 자연스런 생각이다.
지금도 저 큰 물길이 굽어서 수 많은 세월을 흐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 즉 물길이 갖는 힘보다 강한
어떤 작용이 있어 물의 순리적 성향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즉 이곳에서 보이는 천지자연이 지금의 상태로 장구하게 유지하고 까닭은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는 물의 겸허(謙虛)와 부쟁(不爭)의 덕을 이룬다는 의미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노자사상의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들자 하고자한 것과 일치한다. 도덕경의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즉 '천지자연이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를 새기게 하는 겸허한 자세를 일러 주고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래저래 바쁘다. 돈을 벌여도 바쁘다보니 놀 줄 모른다. 그래서 멋스럽게 놀다간 선인들을 계속 불러 모은다.
그중에 조선 후기 문인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 대사간(大司諫)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던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과 형제들이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요 아버지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 ∼ 1689)이
영의정을 지내다 영암에 유배와 문안차 들렸다가 한양으로 오르기전에 봄날 서호(西湖)의 뱃놀이하다 읊은 긴 감흥의 시가 방문한 날 풍치와
일치하고 있다. 그 일부만 감상해 보면
이른 아침 서호를 바라다보니 / 봄 밀물 아스라이 올라오누나
너른 수면 산줄기 멀리
잠기고 / 떠오른 해 물위에 일렁거리네
西湖朝望迥 極目上春潮 闊浸連山盡 光浮出日搖
편한 흐름 뱃길이 순탄하고요 / 높은 파도
어살이 깊이 빠졌네
호탕한 저 갈매기 성질을 보소 / 돛대 아니 피하는 게 사랑겨워라
安流迎鷁首 高浪沒漁標 浩蕩看鷗性
憐渠不避橈/農巖集
조선말기 세도정치의 안동 김씨의 맥의 김수항, 그가 일대에서 거룻배 타고 건널 때에는 그가 몇 년 후 진도에서 독약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강물 넘실대는 영산강을 /
거룻배 타고 건너가는데
물새가 일부러 따라오니 / 시인과 약속이나 한 듯
瀰瀰滎湖水
一葦以杭之 沙禽故相趁 似與騷人期 蕭然水竹鄕
단출한 물과 대나무 고장이 / 맑은 가을날 다시 만났구나
평소 꿈에서나 상상했던 곳
/ 이곳 올 줄이야 진정 몰랐지
蕭然水竹鄕 更値淸秋時 平生夢想地 不意身到玆
어부의
물음(漁父辭) 어이 싫어하리 / 농리의 시 되레 부끄럽구나
출처를 이미 하늘에 맡겼으니 / 지체 않고 어서 떠나가리라
何嫌漁父問 却慙瀧吏辭 行藏已任天 去矣休遲疑 /
渡濴津 次阻風規林韻
일대는 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유유히 을러 호수같다고 해서 서쪽의 호수, 서호(西湖)라고 불렀다. 바라보는 오늘도 흐르는 지 모르게 고여 있는 듯 하다.
나는야 정이 있어 아는 얼굴 같지만 /
청산이야 옛사람을 기억할 수 있으랴 我自有情如識面 靑山能記舊時人/申光漢
그들이 일엽편주의 몸을 실고 떡을 먹으며 즐겼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두보의 낙일(落日) 시에 “막걸리야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한 잔이 일천 시름을 풀어 흩는구나.濁醪誰造汝 一酌散千愁 ”며
두릉(杜甫)은 막걸리로 일천 시름을 풀었다杜陵白醪千憂散'. 이들도 어둑해 질 때 까지 늦도록 한 손은 말
술잔을 들이키고 한 손으로는 붓초리를 휘둘렀을 것이다.
먼 물가에 밀물이 올라올 즈음 / 돌아가는 배(舟) 달(月)과 자리를
뜨니
외로운 섬 어렴풋 멀어져 가고 / 산들바람은 잔잔한 물결 일으키네
極浦潮初上 歸舟月並移 依依孤島遠 淅淅細波吹
키
두드려 물새를 깨워 놀래키면서 / 술잔 잡아 사공을 권해 마시노라
앞 여울의 물길이 아직은 얕아 / 밀물 따라 더디니 감 또한
좋구려
鼓柁驚沙鳥 持杯勸檝師 前灘流尙淺 沿溯不嫌遲
그들은 무슨 술을 마셨을까? 물증은 없어도 심증을 가는 대목을 예로부터 "성현들은 다 잊혀져도 / 오직 술꾼들은 그 이름을 남겼다네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했던 이태백의
권주가에서 찾을 수 있다.
옛말에 일러오네 청주(淸酒)는 현인에 통하고/탁주(濁酒)는 성인에 통한다고
내 이미 청주와 탁주를 마셨으니 내가 바로 현인(賢仁)이고 성인(聖人) 아니던가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聖賢旣已飮 河必求神仙
석 잔의 술로는 대도(大道)에 통하고/한 말의 술로는 자연에 합하거니
그 모두 취해서야 얻는 즐거움/부디 깨어 있는 이에겐 말도 하지
말게나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俱得醉中趣 物謂醒者傳
그가 술을 먹는 핑게는 물론 있었다. 그의 변에 할 말은 없다. "남이야
우리를 미치광이라 하든 말든 / 천 잔 술을 어서 빨리 마셔나 보세 顚狂不顧旁人欺 要使千鍾如電釂"라고 했지만 70세를 넘게 살았던 고려 고종 때 관료이자 현실에 타협한 채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문장가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아침부터 마신 술은 약 천 첩에 되고 신선이
사는 옥루(玉樓)로 향한다 했으니 요즘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을 일이지만...
석 잔
아침 술은 천 첩 약에 해당되고 / 한 베개 봄잠은 만금(萬金)의 값어치라
꾀꼬리를 귀 옆에서 울게 하지 마오 / 꿈혼이 바야흐로
옥루(玉樓) 향해 찾아가네
三杯卯飮敵千藥 一枕春眠直萬金 莫遣黃鸎啼傍耳
夢魂方向玉樓尋
그대 보지 않았는가? 황하의 물이 전상으로 부터 와서/ 기운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멋진 저택에서 거울에 비친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푸른 실 같은 머리카락이 흰 눈처럼 되었다네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인생에 뜻을 얻었으면 모름지기 즐기기를
다할지니 /금 술동이를 부질없이 달빛 아래 두지 말라
예로부터 성인이나 현인은 모두 쓸쓸하였으나 /오직 술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네
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주인은 어찌해서 돈이 없다
하는가? /오색빛 나는 말과 천금이나 되는 갖옷을
아이를 불러 나가서 술과 바꾸어 오게 해서 /그대와 더불어 함께 영원한 이 근심을 녹여보리라
主人何爲言少錢 五花馬 千金ㅇ 與爾同銷萬古愁
呼兒將出換美酒/李白 將進酒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에서 탈피하여 도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본래 자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즉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며
통찰력으로 섧리 익혀 삶을 살아가며, 도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땅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땅은
하늘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하늘은 도를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도는 자연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세상 모든 물체의 근본인
도의 원리에 따라 생활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無以人滅天하고, 無以故滅命하고, 無以得殉名이니라.
즉 "인위로써 자연을 손상시키지 말고, 기교로 천명을 손상시키지 말고, 명성을 위해 자신의 덕을 희생시키지 말라." 했다.
여기서
無以人滅天 ‘인위로써 자연을 멸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도가 사상의 본질적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삼 강조할 수 있는
장자의 도가사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구절로 곡강이 그것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지리전고(地理典故)에서는 이 구간을
두고 "나주 동쪽에 이르러 광탄이 되고 나주 남쪽은 영산강이 되는데, 이 강의 본이름은 금강진(錦江津)이다. 다시 서쪽으로 흘러
회진강(會津江)이 되고 무안에 이르러 대굴포(大掘浦)가 되고 덕보포(德甫浦)가 되며, 남쪽으로 흘러 두령량(頭靈梁)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영암해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 이 물을 거슬러 흐르는 3대강(三大江)의 하나라고 하였다"고 적고있다.
영산강의 명칭은 고려시대에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나주 남쪽의 강변에 마을을 개척한 후, 그곳을 영산포(榮山浦)로 부르게 되었고, 조선시대 초기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48㎞ 구간은 항해가 가능하여 전라남도 서남부인 나주, 무안, 영암, 해남 등과 다도해의 여러 섬들과의 수운에 이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영산포에는 조창(漕倉)이 설치되어 물자 수송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전라도 남부의 쌀은 이곳을 통해 영산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다른 지방으로 수송되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는 70년 초 까지도 황포돛배가 다녔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는 전라수군처치사영 터로 대굴포 전라수영(大堀浦 全羅水營 1408~1432)이 자리했던 곳이나 대굴포(大堀浦)로 부족해 사포마을 일대 나주시의 동강면 운산리와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사포를 잇는 영산강 본류의 사포나루에 전함이 정박했던 곳으로 무안에 함평에 이르는 시야로 긴 수로를 동시에 감시가 가능한 이 지역이 군사적 진지가 있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야 정이 있어 청산 얼굴 알 듯하나 / 청산이야 그 어찌 예전 사람
기억하리 我自有情如識面 靑山寧憶舊遊人낙봉(駱峰) 신광한(申光漢 1484 성종 15∼1555 명종 10)
일대 양지리 북쪽에 곡강과 접한 곳에 나주출신 나종하의 유유자적터
지송정(止松亭)을 짓고 시주로 처사적 생활을 지내다 읊은 시에서 강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졸함을 지키고 고향에 살며 가문의
성화를 보전하는데/두어칸의 집이 이제야 이루어졌네
선조를 받드는데 내 힘을 다하려 하고 /손 님을 대접할 때는 마땅히 성의를
다해야지
남포에 구름 열리니 들보에 날아오고 / 서산에 저녁비는 강성(江城)을 지나가네
원컨데 이 세상이 평화롭게
되어서/오래도록 인간들이 함께 육영(育英)을 하였네.
가히 누정시인이라고 부르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신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 1379 우왕 5∼1463 세조 9)가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대곡마을 일대 대굴포(大堀浦)에 들려 감흥을 읊은 시가 유유히
흐르는 흐르고 있다.
푸른 강 천만 이랑에/외로운 배 떠있네.
봉우리 끝에는 붉은해를 보내고/바다 밑에서 흰달 맞이하네.
碧江千萬頃
孤棹自橫絶
峯端送紅日
海底迎白月
물가에 가득한 모래 서리 같고/공중(空中)에 연한 물결 눈인양
고기잡이 젓대소리 서너 곡조에/갈대
사이에서 절로 처량하구나
滿岸沙似霜
連空浪如雪
漁笛三四聲
葦間自凄咽
사포나루를 함평천이
영산강 본류로 유입하는 곳에 있던 나루로 주변에 넓은 백사장이 발달되어 있고, 하폭이 넓어 호수와 같다하여 '사호진(沙湖津)', 무안에 이르는 강을 '사호강(沙湖江)' 이라고 칭했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 1569 선조 2∼1612 광해군 4)이 일대를 자주 오르락 했으며 무안 식영정 일대 사호(沙湖)에서
술을 대하고 짓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병영의 고각 소리가 이곳에서도 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전란의 참상을 금일에 보노니 / 처량한
풍경이 고향과 다르구나
풍진 세상에 도죽의 지팡이요 / 강해에
국화꽃 띄운 술잔이라
喪亂看今日 凄涼異故園 風塵桃竹杖 江海菊花樽
옛 병영에는 고각 소리 들리고 / 황량한 성은
일찍 문을 닫는다
병과가 천지에 가득한 이때 / 유랑하는 신세 어이 말할 수 있으랴
古戍遙聞角 荒城早閉門 兵戈滿天地
漂轉更堪論/석주집 제3권
달팽이 뿔사이에서 서로 싸우는 사람같이 반평생을 공명만을 찾아 산것이 스스로
부끄럽고나.自慚蝸角上 半世覓功名 /金富軾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영보(李英輔 1686~1747) 막수곡(莫愁曲)이 스쳐
지나간다.
鶴浦橋南野似油 古民忠愛見西疇 助耕尙寓公田意
百頃皇莊最有秋
바다 봉쇄 풀 때 이미
나라가 어리석었으니 / 공연히 관세만 잗달게 따진다 하네
옻칠 상자 도자 그릇은 어디에 쓰려는가 / 동남의 만곡 구슬 다 던져
버리누나
海禁開時國已愚 空聞關稅較錙銖 漆箱磁盌知安用 擲盡東南萬斛珠
상괭이는 물결 일으키고 바닷바람은 긴데 / 가을 기운
음산하게 대지에 이어졌네
하늘로 먹물처럼 한 줄기 연기 뿜으면서 / 증기선은 칠산 바다를 날듯이 건너가네
鯨魚鼓浪海風長 秋氣陰森接大荒
一直貫天烟似墨 火輪飛渡七山
"선(禪)을 말하다니 속된 짓이요/그물 뜨는 이 몸이
어찌 중이리 談禪人亦俗 結網我何僧"하며 자책했던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도 이 뱃길로 영산포 까지 갔다. 밤이였다. 배 안에서
붓초리를 휘둘렸다.
어적(漁笛) 소리 들리는 밤 강에는 달이 밝고/술집의 등불 환한 기슭은 가을.
외로운 돛배에 하늘이 물
같은데/사람은 갈꽃 따라 하염없이 흐르노니!
漁笛一江月 酒燈兩岸秋 孤帆天似水 人逐荻花流 /榮山浦舟中
느러지 인근은
2012년 행정안전부 선정 국토종주 자전거길 ‘매력 코스 20선’으로 꼽히고 있다. 전망대까지 길이 잘 나 있어 자전거로도 오를 수 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온갖 근심 날리며/곡강정(曲江亭) 북난간에 흐뭇이 기대어 섰다.解釋春風無限恨
曲江亭北倚欄干......
정내에는 이런 시가 현판에 남아 있었다.
용추폭포의 힘찬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달리다/바다로
가기 전에 한 호흡 쉬어가는 곳
천년동안 품었다가 영산강이 이제야 세상에 내 놓으니/이곳은 느러지 곡강(曲江)입니다.
곡강은
아름다운 강입니다.곡강은 여유로운 강입니다.
이곳에 오면 물길도 사람도 아름다워지고 여유로워 집니다.
얼마 만큼 오셨습니까? 너무
빨리 오셨으면 잠시 쉬어 가십시요
이제는 '싹아지(버릇) 없다'라는 말 조차 사라지고 '사기꾼' '사기친다'라는 말로 못 믿을
세상, 이미 정해진 답을 잘 찍어 철밥통 직업으로 호의호식하겠다는 풍속도로 바뀌었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했다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공무원직에 있다. 그런 결과가 그 나라의 지식 수준의 척도를 나타내는 노벨상이 애증관계의 일본은 60여개를 받았지만 유리나라는 평화상 1개의 불과하다.
"뱀(蛇)은 머리(頭)가 없으면 다니지 못한다.
蛇無頭不行"는 말이 있다. 우리는 머리가 없는 것이 아니고 머리는 있으데 안주라는 선택으로 스스로 그 머리를 쓰는것을 포기했다.
그러한 철밥통들을 꼬집는 단어로 한음(漢陰)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음은 한음노인(漢陰老人)이라고 칭한 송나라 강하(江夏) 사람 두감(杜淦)의 자호(自號)로 사수(泗水) 부근에 은거하면서
농사를 지어 15년 만에 부자가 되었는데, 그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수모를 견디고 벼슬하는 자들은 대부분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수모를 견디고 나는 노력을 한다.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에 비하면 내가 낫지 않은가. 明一統志 卷59"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라도 이러한 개탄을 잊고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괘(自快)하게 했다. 이곳에 머문는 동안 조선 전기의 명신 낙한재(樂閑齋) 윤자운(尹子雲, 1416∼1478)의 감흥과
일치했다.
보이는 곳 어디에고 풍광 좋은데 / 봄기운은 바라보는 속에 흐리네
산 깨끗해 그림같이 색깔 진하고 / 강 깊어서
푸르름이 옷에 물드네
風光觸處好 春氣望中微 山淨濃如畫 江深綠染衣
꿈길은 나비 따라 어지러웁고 / 마음은 구름 따라 날아가누나
인간 세상일 말하기 어려웁거니 / 술에 흠뻑 취하여서 돌아가리라
夢隨蝴蝶亂 心逐野雲飛 人世難開口
惟須倒載歸/명시종
지금의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의 백동마을에서 3년 유배생활을 보내면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고
위민의식(爲民意識)을 키워 역사의 큰 족적을 남겼던 조선의 설계자였던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어느 해 가을 밤(秋夜)에 읊은 충고로 이곳을 뒤로하고 자리를
뜬다.
오늘은 어제가 아닌데 / 내일 아침은 다시 어떠한 때일까.
음과 양이 멈출 기틀이 없어 /사시(四時)는 서로 밀고
옮기어간다.
今日非昨日 明朝復何時 陰陽無停機 四時相推移
백 년이란 얼마나 되나 / 속절없이 내 마음만 서럽게
한다.
슬프다 저 명리를 따르는 사람 / 노경에 이르러도 여전히 모르는구나.
百年能幾何 徒令我心悲 哀哉名利人
至老猶未知
신분 높은 이는 교만하고 고루하며 / 비천한 무리들은 벌처럼 붙어 다닌다.
영화(榮華)란 번갯불을 좇는 것이니
/죽은 뒤엔 원망만 남게 된단다.
貴者自驕固 卑者多詭隨 榮華逐電光 身後有餘譏
구한말
격동기 지식인이요 순국지사였던 광양출신 매천 황현이 1902년(광무6), 그의 나이 48세 되던 때에 학포(鶴浦) 즉 나주 영산포에서 신안군
지도읍 당산나루로 가면서 이산리를 지나며 읊은 시가 100년이 넘은 시공간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철선이 공중에 늘어져 우렛소리
웅웅대니 / 금성의 서쪽으로 빠른 길이 열렸네
배마다 해산물이 영산포에 이르고 / 말마다 모직물이 목포에서 오네
鐵線橫空吼暗雷
錦城西去快程開 船船魚藿靈山至 馬馬氈絨木浦來
학포 다리 남쪽 들판은 기름 같은데 / 옛 백성 충애는 서쪽 두둑에 보이네
경작을
돕는 것에 공전의 뜻 남았으니 / 백 이랑 큰 장원에 가을이 가득하네
참고문헌-고전번역서/고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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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촌진흥청은 딸기는 비타민이 풍부하고 소염·진통 효과와 고혈압, 당뇨, 비만 등 성인병 예방효과가 있는 영양 만점의 과일로 딸기는 블루베리, 시금치, 브로콜리, 케일, 근대 등과 함께 항산화 효과가 높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아니아 딸기는 단맛과 신맛이 잘 조화 되어 있는 과일이며 향기가 풍부하고, 과일 중에 비타민C가 가장 많고, 신맛을 내는 유기산이 0.6∼1.5%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함량은 100g중에 80mg으로 레몬의 두 배로, 딸기 5∼6개(약 70g정도)이면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비타민 섭취량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호르몬을 조정하는 부신피질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므로 체력증진에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