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에 사는 선우네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자급자족하는 그야말로 ‘자연 가족’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박혀 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항상 세상을 향한 창을 열어놓는다. 그들에게 산골 마을은 세상과 소통하며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굽이굽이 오솔길을 돌고 또 돈다. 마치 양의 창자처럼 굽은 외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오지 중의 오지,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선우네 가족이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소전리, 충북 청원군에서 가장 ‘깡촌’으로 손꼽히는 벌랏마을은 원래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었던 육지 속의 섬이었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길이 뚫려 마을 입구까지 물이 들어오고, 읍내에서 들어오는 버스도 하루 네 번에서 다섯 번으로 늘어났지만, 지금도 겨울에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해가 올라오고 오후 3시면 해가 지는 곳이다.
하늘이 온전히 열린 유토피아에 반하다
그곳에서 이종국 씨는 15년째 살고 있다. 한때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며 큰돈도 벌어봤다는 그가 두메로 들어온 이유는 ‘자연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다.
“청주 시내에서 세를 살 때였어요. 못 하나만 박아도 주인이 쫓아오는 통에 밤늦게 불을 켜놓고 작업하는 건 물론,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고, 주변에 휘둘리며 물질의 영향을 받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작은 땅이라도 맘대로 쓸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어요.” 우연히 잡아 탄 택시 기사의 소개로 알게 된 벌랏마을, 그곳은 그에게 길지(吉地)였다. 저녁노을과 강가의 달무리가 좋았고, 앞뒤는 산으로 막혔어도 하늘만은 온전히 열린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사하기에는 조금 늦은 10월의 마지막 날, 그는 세금이 잔뜩 밀려 있는 차 한 대를 끌고 무작정 마을로 들어가 폐허에 가까운 집에서 야생을 시작했다.
엄마 이경옥 씨가 벌랏마을에 온 건 9년 전이다. 이종국 씨와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서울에서 명상과 의식개발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던 그녀는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모든 게 덧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좀 더 단순하고 경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연의 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인의 소개로 벌랏마을에 들렀다가 남편을 만났는데, 봄꽃으로 물든 파스텔톤의 산들과 낭떠러지 밑의 에메랄드빛 호수가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삼베 옷을 입은 남편의 모습과 어우러져 마치 샹그릴라 같았어요.”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유토피아다. 자연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상추 한 번 길러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는 결국 이 유토피아에 반해 산골 생활을 결심했다.
편리한 답답함 vs. 번거로운 아름다움 부부는 사실 이름보다 ‘마불’과 ‘메루’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가 많다. 둘 다 각자의 스승에게서 받은 이름으로 마불은 ‘평범한 부처’, 메루는 ‘사랑의 여신’이라는 뜻을 지닌 ‘메루데비’를 줄인 말이다.
마불과 메루 부부는 늘 차를 마시며 ‘번거로운 아름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산골 생활은 번거로움 그 자체다.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당이며 부엌이 흙이다 보니 하루 종일 청소해도 표가 나지 않고, 틈틈이 집수리하고 텃밭까지 관리하려면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창호지를 뚫고 방 안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에 코가 시린 겨울엔 물이 잘 안 나오는 때가 많아 혹독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도시의 편리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새로 지은 건물의 공방을 잠깐 빌려 쓴 적이 있어요. 처음엔 ‘이제 추위에 떨며 밥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물은 잘 나오겠지’ 하며 기뻐했는데 얼마 안 되어 그 즐거움에 한계를 느꼈어요. 새벽녘 잠을 깨우는 새소리, 문만 열면 보이던 땅과 나무 같은 ‘자연의 선물’이 없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편리한 답답함과 번거로운 아름다움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고르겠다는 메루. 그녀는 흙냄새를 맡으면서, 나물을 캐고 삶고 말리면서, 또 닥나무 껍질을 벗기면서 마음의 평화와 삶이 충만해짐을 느낀다.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흙과 채소를 만지면 흙의 기운을 더 느낄 수 있어 좋다.
인공적인 게 싫은 마불 역시 ‘생태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좇으려면 번거로움쯤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흔한 시멘트나 스티로폼 대신 온전히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 집을 짓고 가구도 손수 만든다.
“집을 지을 때는 설계 도면을 먼저 잡기보다 가지고 있는 소재에 따라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나무나 돌, 나뭇잎, 지푸라기, 톱밥, 낙엽송, 흙처럼 친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완벽한 소재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집 안팎 곳곳마다 부부의 손길이 닿아 있는 완전한 핸드메이드 공간, 가끔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집 안 전체가 작품이라며 신기해하고 감탄한단다. 그곳에서 산나물이나 푸성귀에 된장국과 뜨거운 밥을 더해 푸짐한 식탁을 차리고, 화롯불에 감자・고구마・은행을 구워 먹으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 부부.
| 마불・메루가 알려주는 자연에서 살기 겨울 양식, 산나물 말리기
산나물은 바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삶아두었다가 겨우내 먹기도 한다. 삶아서 햇볕에 한나절 널어놓으면 물기가 마르고 꾸덕꾸덕해지는데, 이때 비벼가며 뒤집어야 한다. 부드러울 때 비비지 않으면 나중에 부서지거나 물에서도 잘 불지 않아 무쳤을 때 뻣뻣하다. 옥수수 맛있게 먹기
시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 중 하나인 옥수수는 겉껍질을 한두 겹 벗기고 그대로 찌는 것이 좋다. 껍질에 스며 있는 내음과 땅에서 흡수한 양분 등을 수증기로 다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또 수염 끝이 말라 밤색이 된 옥수수는 딱딱하므로 반쯤 말랐을 때 수확하는 것이 신선하고 맛있다. 바로 수확해서 먹을 수 없을 땐 약간 덜 익었을 때 따서 껍질을 벗기지 말고 삶아 냉동했다가 구워 먹는다. 감잎차 만들기
감나무가 있다면 아토피에 좋은 감잎차를 만들어보자. 우선 솥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소쿠리를 건 다음 감잎을 3cm 정도의 두께로 재빠르게 깐다. 뚜껑을 닫고 1분 30초간 찐 후 소쿠리를 꺼내 충분히 식힌 다음 다시 1분 30초간 찐다. 찐 감잎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완전히 말린 후 밀폐해서 서늘한 곳에 두면 다음해까지 먹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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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야생을 배우는 아이 둘만으로도 행복하던 부부는 선우가 태어나면서 ‘가족’으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했다. 메루의 나이 마흔셋에 가진 선우는 벌랏마을에서 17년 만에 태어난 아이다. 또래 친구는 없지만 딱새와 지렁이, 무당벌레, 지천으로 피는 꽃들이 있어 외롭거나 심심하지는 않다. 오히려 선우의 생기와 자유로움으로 가득 찬 움직임이 두메산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초여름이었어요. 강가 나루터로 내려가는데, 매미 우는 소리를 듣고 선우가 ‘매미는 싸이 톡, 쏴독쏴독 하고 울어’ 하더군요. 모든 이가 ‘맴맴’ 하고 운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선우에게 이런 생각이 주입되지 않은 것 같아 감사해요.”
선우는 젖을 떼기도 전에 부추나 달래, 취나물 등을 입에 물고 놀았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는 흙에서 뒹굴며 밭에 있는 오이나 토마토・부추・당근을 따서 깨물어 먹었다. 다섯 살인 지금은 엄마가 텃밭에 나갈 때 호미를 들고 따라나서 함께 나물을 캐고, 아빠가 캔 장작을 나르며 명실공히 가족의 일원으로 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산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선우가 백일 무렵이던 겨울, 천기저귀 때문에 빨랫감도 많을 때였는데 3개월간 물이 나오지 않아 먹을 물과 목욕물을 일일이 물지게로 길어 와야 했고, 난로에 데어 병원에 갔더니 왜 즉시 오지 않았느냐고 의사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선우에게도 도시 아이들처럼 놀이방과 수많은 장난감이 있다. 오두막 형태의 놀이방은 물론 침대, 요람, 식탁의자 모두 아빠가 직접 주변에서 구한 친환경 재료로 만들었다.
“선우는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어디 가서든 놀잇감을 발견하며 재미있어 해요. 자연에 동화되면서 생겨난 야생적 특성 같아요. 아내는 저에게 ‘어딜 가든 그곳을 자연으로 바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아이에게도 그런 야생성을 길러주고 싶어요. 자연에서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아이에게 온전한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 믿어요.”
선우는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일찍부터 학습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놀이와 사회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곳이고 무엇보다 선우가 원했기에 내린 결정이다. 엄마 아빠가 야생의 삶에서 벅찬 매 순간을 맞이하듯이 선우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법을 찾아나가길 바란다.
한지로 소통의 꿈을 실현하다 자연과 소통하며 행복을 만끽하던 선우네 가족은 요즘 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벌랏마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 대부분이 한지를 생산해 농사지을 땅이 없음에도 인근에서 시집오기를 선망하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대량생산되는 종이에 밀려 맥이 끊긴 것. 마불이 처음 귀농을 결심하고 벌랏마을을 선택한 것도 한지의 영향이 컸다.
“한지 얘기를 듣고 벌랏마을에서 한지를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 한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재발견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길과도 같은 것이죠.”
농약 없이 닥나무 밭을 일구고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뜨는 데 성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서 실패하기도 여러 차례. 하지만 벌랏마을은 결국 2005년 전통 한지 테마마을로 지정됐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한지를 뜰 수 있는 공동작업장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마불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한지 만들기와 한지를 이용한 부채, 등갓 등 공예체험을 지도하고 있다. 한지 테마마을로 지정된 후 마불은 공예품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공모전에 응모해 상을 받았고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지난달엔 문의면 호숫가에 공방도 차렸다. 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꿈을 이룬 것이다.
“조용하던 마을에 한지체험을 위한 발길이 이어지고, 전시회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요. 산골과 바깥세상을 오가며 자연과 오래된 그리움, 또 바깥세상의 새로움을 나를 수 있으니까요.”
부부는 늘 전통과 최첨단의 만남, 한국과 세계의 만남, 산골과 도시의 만남을 궁리한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가슴을 나누기를 바란다.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소통이다.
아빠가 만들어준 친환경 장난감들
나무블록 눈이 왔을 때 쓰러진 뒤뜰의 소나무로 만들었다. 야외 음악실
마루 밑에 대나무 막대, 페트병, 냄비 뚜껑 등을 매달아 닥나무 줄기로 칠 수 있게 했다.
모노레일 마루 끝에서 땅까지 나무 레일을 3단으로 연결했다. 바닥엔 나무블록을 놓아 자동차나 공이 굴러내려오면서 맞추게 했다. 미끄럼틀
지붕 재료인 함석판에 아크릴판을 덮어 완성했다. 아직 계단은 만들지 못했는데도 선우는 끙끙대며 미끄럼판을 기어오른다.
마차 바퀴는 은행나무, 바닥은 송판재로 만들어 아이 두세 명을 태우고 다녀도 끄떡없다. 지게
일찌감치 일꾼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아이에 맞는 작은 지게를 선물했다. |
첫댓글 안빈낙도의 삶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무릉도원(武陵桃源)적 삶...!
그리고 조그만 집...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