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한 여자가 뒤늦게 체감하는 '써머타임'의 열기가 그 시간의 부조화만큼이나 착잡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이 영화는 아무래도 저만치 가버린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 계절에 보아야 제격일 듯 싶네요.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베니스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적격이었듯이 말이죠.
그래서 '1.3.5.7'로나마 여러분들과 같이 영화 보려고요. 영화 속에 아름다운 베니스 풍경이 많아서 제가 몇 장면 캡쳐했거든요.
자, 그럼 영화 속 제인(캐서린 햅번)처럼 기차를 타고 그 '여름'의 베니스로 출발~~!!
미국 오하이오주 촌구석에서 생전 처음 베니스 여행에 나선
중년의 여인 제인은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습니다.
아직 물밖에 안보이는데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군요.
드디어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한 제인.
"버스는 어디서 타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포터가 가리키는 건 마침 도착한 배.
베니스에선 모든 교통수단이 배란 걸 깜빡한 거죠.
버스는 여객선, 택시는 모터보트, 모범택시는 곤돌라.
버스(바포레토)를 타고 베니스를 S자로 가로지르는 '대운하(canal grande)'로 나가니 짜잔
수상도시 베니스의 참모습이 보이는군요. 멋있죠?
'웰컴 투 베니스'입니다^^
제인이 묵을 곳은 아카데미아 미술관 근처의 팬시오네 피오리니.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호텔 대신 베니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담한 팬션을 숙소로 정했죠.
창밖으로 산 조르죠 마조레 섬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도 일품입니다.
아름다운 산 마르코 운하를 바라보며 제인은 팬션 여주인에게 말하죠.
구경도 쇼핑도 중요하지만마음 깊은 곳에선 마술 같은 기적을 원한다고.
평생동안 맘 속에 그려온 그 무언가를 이뤄줄 멋지고 신비스런 기적을.
다음날 베니스 탐험에 나선 제인.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를 따라 골목을 헤집고 나와보니
일찍이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한
'산 마르코 광장'입니다.
광장 가에 있는 카페에 자리잡은 제인.
그런데 여전히 혼자서 사진만 찍고 있네요.
여행의 추억은 사진기에 찍히는 것이 아니라마음에 찍히는 건데...
아, 저 뒤에 그녀 마음에 추억을 찍어줄 것 같은 말쑥한 차림의 이태리 신사가 보이는군요.
좀더 '줌인'해서 자세히 볼까요?
이태리의 대표적인 미남배우 롯사노 브리지입니다.
영화 '남태평양'으로 잘 알려진 이 배우는 이런 말도 했다는군요.
"어떨 땐 히로인을 맡은 여배우보다 내가 더 아름답게 생겼다."
혹시 이 영화 찍으면서 한 말은 아닌지.
남자의 '따땃한' 시선을 느낀 제인은 황급히 자리를 뜨지만...
빨간 유리잔을 사러 들어간 골동품상점에서
가게 주인인 그 남자와 다시 마주칩니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순간이죠.^^
그러나 제인은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기적' 즉 '로맨스'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주저하다 그냥 유리잔만 사들고 가게를 나섭니다.
그러나 카사노바의 땅 베니스의 남자, 태양의 열정을 타고난 라틴족의 후예는 역시 어디가 달라도 다르지요.
제인의 팬션으로 찾아와 달콤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리나토.
"농담을 하고 있어도 속으론 울고 있군요
나도 모르게 그런 당신에게 끌려요."
아무리 경계심 많은 노처녀라도 이쯤 되면 안 넘어갈 수가 없지요.
롯시니의 야외음악회와 함께 한 첫 데이트.
제인은 집시여인의 꽃바구니에서 뜻밖에도 하얀 치자꽃을 고릅니다.
처음 무도회 갈 때 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던 옛기억 때문이죠.
리나토 왈, "모든 일은 언제가는 이뤄지기 마련이죠."
제인 왈, "네,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에게는요."
제인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목까지 꼭꼭 채워입던 사감선생 같은 옷을 벗고 어깨가 훤히 드러난 로맨틱한 드레스로 성장한 영락없는 '이탤리안 레이디'로 거듭나죠.
그러나 그 달뜬 환희도 잠시.
리나토가 아들까지 둔 유부남임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아내와 별거 중이라 해도 너무 건전해서 탈인 미국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왠지 '선수'의 손에 놀아난 느낌도 들었을 테고요.
하지만 이성보단 감정을 존중하는 이태리 남자 리나토는 제인을 또 설득하지요.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의심이 많아요.
미리 얘기하면 당신과 잘 안될까봐 그랬어요.
왜 자꾸 머리 속 잡음에 귀를 기울이나요.
그냥 당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요.
정녕 베니스제 유리그릇만 갖고 집에 돌아갈 건가요?"
결과는 말 안해도 아시겠죠?
두 사람은 그날 하늘에 자욱한 저 불꽃들 마냥 '불타는 밤'을 보내고,
'무지개가 떨어진 섬'이라는 무라노섬의 낙조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합니다.
제인이 평생을 기다려온 '기적'이 실현되는 순간이죠.
환상적인 베니스의 낙조 쫌만 더 볼까요?
산 마르코 광장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
왠지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죠?
리나토의 손을 잡고는 있지만
제인의 눈은 산 마르코 광장의 구석구석을 훑습니다.
하나라도 더 기억해 놓으려는 듯. 한 순간이라도 잊지 않으려는 듯.
결국 제인은 두 시간 후에 떠난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곤 붙잡는 리나토에게 이렇게 말하죠.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우린 결국 잘 될 수 없을 거예요.
난 늘 언제 떠나야 할지를 몰라서 파티에 너무 오래 머무르곤 했어요.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 알 것 같아요. 언제 떠나야 하는지를."
기차에 오른 제인. 아직 미련이 '한 스푼' 정도 남았나봅니다.
혹시 리나토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리죠.
사실 얼마나 저 기차에서 다시 내리고 싶겠습니까.
허나 그렇게 앞뒤생각 없기엔 제인이 너무 어른이죠.
기차는 출발하고 신파영화의 공식대로
리나토는 그제서야 플랫폼으로 달려옵니다.
제인에게 선물을 전해주려 하지만 달리기 실력 부족으로 실패.
선물상자를 열어 치자꽃을 흔들어보입니다.
그 진한 향기라도 제인에게 전달하려는 듯.
제인은 리나토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변할 때까지
멀리 산 마르코 광장의 종루가 희미해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지요.
그 사이 베니스의 바다를 떠나가는 기차.
뜨거웠던 제인의 '써머타임'은 그렇게 아득해져 갑니다. '꿈의 여행지' 베니스를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채로요...